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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피서특집Ⅱ 한국의 10대 계곡|<1> 가평 용추계곡 르포] 계곡에 빠져 걷다 보면 한여름에도 닭살!

월간산
  • 입력 2018.08.09 09:51
  • 수정 2018.12.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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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용추계곡 약 16km 왕복 산행하며 더위 잊어

발을 담그고 물을 튀기며 계곡을 걷다 보면 더위를 까맣게 잊게 된다.
발을 담그고 물을 튀기며 계곡을 걷다 보면 더위를 까맣게 잊게 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산행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뙤약볕이 쏟아지는 능선길이나 초원지대를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온열질환으로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곡을 걷는 산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숲이 우거진 골짜기는 햇볕이 들지 않아 능선에 비해 시원하다. 한술 더 떠, 흐르는 계곡물에 발까지 담그고 걷는다면 더욱 상쾌한 산행이 가능하다. 역시 한여름에는 계곡산행이 답이다.

전국의 이름 난 산은 대부분 좋은 계곡을 끼고 있다. 특히 규모가 큰 명산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름다운 골짜기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피서산행에 적합한 계곡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무리 풍광이 수려하고 서늘한 계곡도 가까이 갈 수 없고 위험하다면 산행에 적합지 않다. 그리고 물속을 마음대로 걸으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도 흔치 않다. 매년 소개하는 계곡산행지 목록이 비슷비슷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표 계곡산행지에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이 빠질 수는 없다.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수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명산의 골짜기를 지면에 소개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인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달에는 볼수록 매력 넘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계곡산행지들을 골라 다시 소개한다.

가평 용추계곡은 경기도에서 가장 뛰어난 계곡 산행지 가운데 하나다.
가평 용추계곡은 경기도에서 가장 뛰어난 계곡 산행지 가운데 하나다.

초입엔 시설물 많지만 상류는 호젓해

가평 용추계곡은 경기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멋진 계곡산행지다. 수도권의 대표적인 청정계곡으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미디어를 통해 그 비경이 소개됐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찾는 가평의 유명 피서지가 됐다. 특히 2005년 용추계곡을 포함한 일대의 산지가 연인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계곡 중간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지며 차량 통행이 늘었고, 곳곳에 펜션과 음식점 건물이 들어서며 오지계곡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류 지역은 여전히 계곡미가 살아 있다.

‘용추龍湫’라는 이름은 계곡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단어다. 용이 머물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할 만큼 웅장한 폭포와 깊은 연못을 품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깊고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평뿐 아니라 문경 대야산과 함양 금원산 등에도 용추계곡이 있는데, 이 지역들 또한 탁월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가평8경 중 하나로 꼽는 용추계곡은 용추구곡으로도 불린다. 용추구곡은 제1곡 와룡추臥龍湫(용추폭포)부터 시작해 소바위 부근 무송암撫松岩(제2곡), 중산마을 앞 너른 개울인 탁영뢰濯瓔瀨(제3곡), 너럭바위 지대 고슬탄鼓瑟灘(제4곡), 일사대一絲臺(제5곡), 추월담秋月潭(제6곡), 청풍협靑楓峽(제7곡), 귀유연龜遊淵(제8곡), 농원계弄湲溪(제9곡)를 말한다. 용추구곡이란 명칭은 제1곡인 용추폭포에서 따온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이틀 뒤 용추계곡을 찾았다. 연인산과 칼봉산 사이에 위치한 용추계곡은 평소에도 수량이 적지 않은 곳으로, 폭우로 물이 불어나면 산행이 쉽지 않은 골짜기다. 안전을 위해 물이 빠지기를 조금 기다렸다가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비구름이 쓸고 지나간 용추계곡의 수위는 쉽게 낮아지지 않았다. 물줄기에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가평읍 승안리 검봉산펜션타운(구 칼봉산쉼터)에서 계곡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용추계곡은 경기도공무원휴양소 아래 버스종점이 일반적인 산행기점이다.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길도 넓어 접근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종점에서 출발하면 펜션과 식당이 즐비한 콘크리트길을 따라 2.5km를 넘게 걸어야 한다. 경치는 좋지만 계곡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구간이다.

계곡에 놓인 징검다리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계곡에 놓인 징검다리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물이 물어난 와폭의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다.
물이 물어난 와폭의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다.

물에 빠져 걷기 좋은 골짜기

시원하게 계곡 속을 걷고 싶다면 포장도로가 끝나는 검봉산펜션타운까지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 비록 유료지만 마음 놓고 차를 세울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숙박하거나 음식을 시키면 주차료를 받지 않아 산행의 베이스캠프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물이 조금 불었지만, 크게 위험한 곳은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

산자락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 골짜기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검봉산펜션타운의 주인장 이종흥씨가 취재팀을 맞이했다. 용추계곡 마지막집에 살던 그는 오래 전부터 본지 박영래 기자와 교류하며 인연을 이어온 온 분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계곡 상류부의 상황을 물어본 뒤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잔잔한 계곡을 건너고 있는 취재팀.
잔잔한 계곡을 건너고 있는 취재팀.
용추계곡 등산지도.
용추계곡 등산지도.

검봉산펜션타운 마당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뒤 나타나는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 본격적인 용추계곡이 시작된다. 한참 동안 차를 타고 들어왔기 때문에 이미 계곡은 깊고 아득했다.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차분한 산길은 몇 차례 징검다리를 통해 물을 건넜다.

상류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볼거리는 용추구곡 중 제8곡인 귀유연이다. 귀유연은 옛날 옥황상제를 모시던 거북이가 용추계곡의 경치에 반해 내려와 놀다가 결국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대로 바위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명소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옆에서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와 깊은 소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귀유연의 거북바위.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거북이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귀유연의 거북바위.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거북이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등산용 아쿠아슈즈는 바닥창이 단단해 산길을 걸어도 불편함이 없다.
등산용 아쿠아슈즈는 바닥창이 단단해 산길을 걸어도 불편함이 없다.
비가 갠 후 몸을 말리러 나온 뱀 한 마리를 만났다.
비가 갠 후 몸을 말리러 나온 뱀 한 마리를 만났다.

산길이 계곡과 가까워질 때마다 물에 손을 담그며 땀을 식혔다. 날이 뜨거워 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젖은 등산화를 말리는 것이 귀찮아 꾹 참았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오래가지 못했다. 상류로 갈수록 물에 잠긴 징검다리가 많아지며 등산화를 벗고 물을 건너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발을 자주 벗을 바엔 그냥 물속에 들어가는 게 낫겠네요.”

기자가 미리 챙겨온 아쿠아슈즈로 갈아 신고 먼저 물로 뛰어들었다. 물을 헤치며 걷는 계곡산행의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걷다 보니 따가운 햇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게 첨벙거리며 계곡을 가로지르니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용추계곡에서 제대로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용추계곡 옆으로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용추계곡 옆으로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용추계곡 입구에 자리한 연인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
용추계곡 입구에 자리한 연인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
용추계곡에서 가까운 가평 자라섬캠핑장.
용추계곡에서 가까운 가평 자라섬캠핑장.

우정고개 잣나무 숲에서 힐링

칼봉산 오름길이 갈려나가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숲이 짙어졌다. 휴대폰 통화도 불가능한 오지로 접어든 것이다. 잠시 뒤 길 왼쪽의 허름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은 사유지입니다’라고 쓴 돌기둥의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폐교 된 내곡분교로 1970년대 중반까지 용추계곡에 살던 화전민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였다. 검봉산펜션타운의 이종흥씨도 이 학교 졸업생이라고 했다.

내곡분교를 지나면서 숲길이 짙어졌다. 이리 저리 계곡을 건너며 계속 상류로 향했다. 걷기 편한 평탄한 흙길 덕분에 진행 속도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건너면서 땀을 식히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용추계곡은 폭이 넓고 옆으로 임도가 잘 나 있어서 초보자도 쉽게 산행이 가능하다. 폭우로 물이 불어나면 대피할 만한 장소도 많았다. 마음 편하게 계곡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수려한 풍광의 용추계곡 옆으로 편안한 임도가 이어진다.
수려한 풍광의 용추계곡 옆으로 편안한 임도가 이어진다.

‘연인능선’ 방면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흙길은 산자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질적인 계곡산행은 이곳에서 끝났다. 이후 계곡을 벗어난 호젓한 오솔길이 임도와 어우러지며 우정고개까지 이어졌다. 우정고개의 옛 이름은 전패고개였다. 그런데 ‘전패’라는 단어가 ‘모조리 진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해 1999년 가평군에서 ‘우정고개’로 고쳐지었다.

굽이치는 임도를 타고 우정고개에 오르니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하지만 울창한 아름드리 잣나무 숲과 함께하는 시간 또한 의미가 있었다. 계곡에서 맛보지 못한 또 다른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정고개 부근 평탄한 잣나무 숲에서 긴 휴식을 가진 뒤 다시 용추계곡을 통해 하산했다. 오르막 구간에서 흘린 땀을 씻어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역시 한여름에는 계곡산행이 최고였다.

산행길잡이

연인산군립공원 내에 자리한 용추계곡은 입구부터 중류까지 식당과 펜션 등이 늘어서 있다. 이 부근의 계곡은 여름철에는 번잡하다. 계곡산행을 하려면 마지막 식당이자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검봉산펜션타운(구 칼봉산쉼터)부터가 적당하다. 차량 20~30대를 세울 수 있는 유료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1일 주차비 1만 원.

사람이 몰리는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공무원휴양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는 편이 훨씬 낫다. 길이 좁아 차량의 교행이 쉽지 않은데다, 다른 등산객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휴양소에서 검봉산펜션타운까지는 약 1시간 거리다.

검봉산펜션타운에 차를 대고 1km 정도 진행하면 차단기와 함께 등산로와 임도(연인산 MTB 코스)가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한다. 이 임도는 연인산 쪽으로 이어지다가 우정고개 전에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구라우골 합수점에서 주계곡으로 20분 정도 가면 칼봉산 갈림길에 닿는다. 칼봉산으로 가려면 왼쪽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쪽 계곡 길을 따르면 내곡분교 터를 지나 산행을 이을 수 있다. 넓은 흙길이 우정고개까지 이어진다. 내곡분교 터부터 전패분지까지는 잣나무와 소나무 등이 어우러진 호젓한 오솔길이다. 우정고개에서 오른쪽 연인능선을 타고 연인산 정상을 다녀올 수도 있다. 하산은 장수봉 쪽으로 내려 청풍능선을 타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면 된다.

검봉산펜션타운에서 우정고개까지 약 8km 거리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공무원휴양소에서 우정고개까지는 왕복 약 22km 거리에 6시간 이상 걸린다.

찾아가는 길

가평터미널 또는 가평역에서 ‘용추’행 버스를 타면 용추계곡 버스종점까지 갈 수 있다. 25분 정도 소요.

자가용으로는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화도나들목으로 나온다. 이후 가평읍까지 간 후 75번국도로 갈아타고 목동 방향으로 1.5km 정도 달린 뒤 용추계곡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숙식(지역번호 031)

용추계곡 입구부터 펜션과 민박, 식당이 즐비하다. 동막골 펜션(582-8465), 추억만들기(581-3510), 용추펜션(582-6217), 하늘맑은집(582-7007), 미엔느펜션(582-3456) 등. 산행기점으로 소개한

검봉산펜션타운(구 칼봉산쉼터, 582-7488~9)는 민박·방갈로와 함께 토종닭백숙, 흑염소구이 등을 낸다. 집 뒤편 산자락에 넓은 주차장을 구비하고 있다.

주차 관련 문의는 010-5361-6488.

김기환 차장 ghkim@chosun.com

1997년부터 <월간산>에서 일하며 아웃도어와 등산장비 분야의 취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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