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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일본 동북지방 소특집ㅣ아오모리현 시라카미산지] 원령공주가 살 것 같은 원시숲 여행

신준범
  • 입력 2018.08.16 10:02
  • 수정 2023.11.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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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쿠라모리 원시림 산행과 섬세한 물의 흐름 돋보이는 오이라세계류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숲을 걷노라면 숲에 동화되는 듯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선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너도밤나무가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숲을 걷노라면 숲에 동화되는 듯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선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너도밤나무가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라카미산지白神山地는 일본에서 맨 처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원시 너도밤나무숲이다. 아오모리현 남서부와 아키타현 북서부에 걸쳐 있는 13만 ha에 이르는 광대한 산악지대이며, 이 중 1만6,971ha에 이르는 구역이 1993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구역 중 4분의 3이 아오모리현에 속해 있다.

아오모리현의 100명산인 핫코다산八甲田山(1,584.6m)과 이와키산岩木山(1,625m)이 화산인 반면 시라카미산지는 지각의 융기로 만들어졌다. 이곳의 너도밤나무 원시림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워낙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멀어 개발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고, 지각운동으로 생긴 구조산지로 지형이 복잡해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다. 특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말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야생동물의 낙원이라 할 수 있으며 원숭이, 곰, 산양과 같은 중대형 포유류 14종과 황금독수리, 검은 큰딱다구리 등 80여 종의 조류가 살고 있다. 식물상도 풍부해, 수종의 70%를 이루는 너도밤나무 외에 여러 종의 활엽수와 침엽수가 서식한다. 건강한 숲의 증거인 초본류, 즉 다양한 풀과 꽃이 자라는 것도 특징이다. 희귀한 야생화는 물론이며 산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 산삼을 비롯한 식물 채취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 천혜의 원시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야오 감독은 만화의 주인공인 아시타카가 사는 에미시족 마을을 그리기 위해 시라카미산지에서 야외촬영을 하기도 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너도밤나무 숲은 대부분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원시림으로 샛길조차 없는 곳이다. 보호구역을 둘러싸고 있는 완충지역 역시 숲이 울창해 일반인은 발을 들여놓기 어렵다.

시라카미산지 트레킹 코스는 쓰가루津輕고개와 안몬 아쿠아그린빌리지Anmom aqua green village를 중심으로 나있다. 안몬 빌리지에서 출발해 안몬가와 강을 따라 3개의 폭포를 찾아가는 코스, 초보자를 위한 너도밤나무 숲 산책로 코스가 있으며, 쓰가루고개에서 출발해 다카쿠라모리산을 오르는 코스와 거대한 너도밤나무 체험의 길 코스가 있다.

가장 산행에 걸맞은 코스는 다카쿠라모리高倉森산(829m)을 오르는 코스다. 해발 645m인 쓰가루고개에서 다카쿠라모리산을 올랐다가 안몬으로 내려서는 6.5km 코스다. 안내를 맡은 일본 가이드는 “시원한 경치는 드물지만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너도밤나무숲을 즐기는 산행 코스”라고 설명한다.

쓰가루고개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건 능선이었다. 빽빽한 활엽수 정글 너머로 늠름하게 뻗은 능선이 1,000m대의 시라카미다케 줄기다. 조망이 귀한 원시림에서 서쪽으로 살짝 경치가 터졌다. 산행 시작과 동시에 산신령께 입산신고를 해야 했다. ‘어머니 나무Mother tree’라는 안내판이 있는  높이 30m, 수령 400년에 이르는 멋들어진 너도밤나무가 한국에서 온 일행을 반겨주었다. 보통 너도밤나무의 수명이 최대 200~250년 정도인데 유달리 이 나무만 400년 넘게 장수한다고 하여 ‘산신령 나무’, ‘어머니 나무’ 같은 별명이 생겼다.

시라카미산지에서는 수령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너도밤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시라카미산지에서는 수령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너도밤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엄마 너도밤나무’와 ‘아빠 너도밤나무’ 잇는 산행

수줍게 핀 별목련이 길을 안내하듯 산길로 툭 튀어나와 있다.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을 따라 간다. 700m대로 고도를 높이자 브론톤사우르스 무리가 나타났다. 흰색, 검은색, 회색이 섞인 너도밤나무 수피가 흡사 초식공룡의 긴 목 같다. 아래엔 조릿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너도밤나무 원시림을 훌륭하게 키우는 데 한몫했다. 조릿대의 그물 같은 뿌리가 땅을 꽉 잡아 토양유실을 막아 주고 다른 나무나 잡초가 못 크도록 막아 줬다고 한다.

너도밤나무는 한국에선 울릉도에만 자라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선 ‘부나ブナ’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상수리나무만큼 흔한 나무다. 잎과 열매가 밤나무와 닮아 ‘너도 밤나무다’라는 의미로 유래한다. 열매는 잣과 비슷하게 생겨 원숭이들과 야생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사람도 구워서 먹을 수 있지만 열매가 작은데다 은행처럼 약간의 독성이 있어 많이 먹는 건 좋지 않다.

고도를 높일수록 너도밤나무가 날씬해지는데, 성장 환경이 혹독해지는 만큼 성장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시원한 경치에 대한 기대는 접고 오르는데, 절벽 한편으로 창문만 한 시야가 트인다. 압도적인 힘의 산, 이와키산이 카리스마 있게 솟았다. 그 모습이 당당하고 후지산을 닮았다 하여 ‘아오모리 후지산’이라고도 불린다. 시라카미산지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시라카미다케白神岳(1,235m)는 구름 속에 묻혔다. 시라카미다케는 한반도의 백두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정상은 가이드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길목이다. 나무가 높아 경치는 없으나 작은 정상 표지목과 삼각점이 있다. 다카쿠라모리高倉森는 3개 봉우리 중 가장 높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원래 약초꾼과 곰사냥꾼이 다니던 길이었으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등산로로 만들었다.

원시림이 내어주는 순수한 숲 내음, 농도 짙은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는다. 문득 성채 같은 거대한 너도밤나무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며 서있다. 갈라진 수피 속이 비어 있음에도 건강한 잎과 가지를 뻗었다. 역시 400년이 넘은 산신령급의 너도밤나무다. 쓰가루고개 입구의 장수 나무를 ‘엄마 너도밤나무’, 이 나무를 ‘아빠 너도밤나무’라고 부른다.

시라카미산지에는 옛날부터 잘생긴 사냥꾼이 산에 들어오면 여자 요괴가 나타나 사냥꾼을 홀려서 산을 못 내려가게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특히 산신이 여성이기에 예쁜 여성을 질투해 산에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반면 못생긴 여인이 들어오면 크게 기뻐한다는 특이한 전설이 있다. 심지어 산신제를 올릴 때도 못생긴 과일을 상에 올려야 기뻐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산길은 의외로 성질이 급하다. 가파른 내리막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고도감이 센 곳은 없지만 전날 내린 비로 진흙길이라 걸음이 조심스럽다. 너도밤나무 잎 사이로 너른 찻길이 보인다. 낙엽 사이로 숲의 요정 같은 나도수정초가 고개를 내밀어, “사요나라”하고 작별인사를 건넨다.

산행 정보

쓰가루고개에서 고도 184m만 높이면 정상에 닿는다. 산행이 끝나는 안몬의 고도는 240m,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전체 산행에서 보면 더 길다. 전형적인 육산이라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다. 외길이라 산길만 따라가면 길 찾기도 쉽다. 다만 처음에 ‘엄마 너도밤나무’를 보려면 갈림길에서 200m를 갔다가 다시 되돌아나와서 오르막길로 가야 한다. 현지 안내판에는 5.6km로 표시되어 있으나 GPS로 확인한 실주행거리는 6.4km이다. 4시간 정도 걸린다. 초보자의 경우 정상까지만 갔다가 다시 쓰가루 고개로 되돌아간다.

오이라세계류奧入瀨溪流

섬세하고 아름다운 물의 흐름을 보며 걸을 수 있는, 동북지방에서 손꼽히는 아기자기한 계곡이다. 해발 400m 높이의 도와다호十和田湖에서 야케야마燒山까지 14km에 이르는 이 계곡은 국립공원이자 특별 명승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하다. 계곡을 중심으로 자동차 도로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삼림욕을 겸한 트레킹 코스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그만큼 계류를 따라 이어진 원시림 계곡길의 매력은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청정지역인 오이라세계류의 상류를 따라 걷다 보면 노송나무,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등이 우거진 울창한 숲, 크고 작은 폭포와 변화무쌍한 물줄기, 다양한 종의 이끼로 덮여 있는 바위 등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다. 계곡길 바로 옆에 차도가 있어 언제든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으므로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어린이, 고령자와 함께 걷더라도 부담이 없다.

또한 자매폭포, 9단폭포, 대폭포 등 여러 개의 폭포를 볼 수 있다. 이를 ‘폭포가도瀑布街道’라 부르기도 한다. 오이라세계류는 역동감이 넘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물의 흐름의 독특한 계류 미가 특징이다.

수륙양용버스 투어

수륙양용버스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는 특별한 관광코스. 세계자연유산 시라카미산지에 20 16년 쓰가루댐이 완공되었고, 천연원시계곡 일부가 호수로 바뀌었다. 이후 쓰가루시라카미津輕白神 호수를 유람하는 수륙양용버스 투어가 생겼다. 산간도로와 호수를 가르는 달리는 수륙양용버스는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와 시라카미산지의 대자연을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이라고 버스 가이드는 소개한다. 15분 동안 산간도로를 이동해 30분 동안 호수를 유람하고 돌아오는 1시간 코스. 하루 5회(9:00, 10:30, 12:00, 13:30, 15:00) 운행하며 요금은 2,5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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