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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해외트레킹ㅣ일본 반다이산과 오제] 일본인이 꼽은 ‘버킷리스트’

월간산
  • 입력 2018.09.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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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후지산… 습원에 고산식물
일본 백명산百名山 반다이산磐梯山·오제 습원 동시 즐겨

조망이 뛰어난 북측의 우라반다이 등산로를 오르는 등산객들과 멀리 보이는 둘레 32km의 히바라 호수.
조망이 뛰어난 북측의 우라반다이 등산로를 오르는 등산객들과 멀리 보이는 둘레 32km의 히바라 호수.

출발하기 전, 서울은 111년 만의 기록적인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비행기로 2시간 만에 도착한 도쿄는 가마솥 더위였다. 우리나라보다 공기가 깨끗하니 햇볕이 더 강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하네다공항에서 모노레일, 전철과 신칸센을 차례로 바꿔 타고 후쿠시마현福島縣 코오리야마君山로 이동했다. 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만에 코오리야마시에 도착했다.

1888년 발생한 화산 폭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반다이 산의 사면.
1888년 발생한 화산 폭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반다이 산의 사면.
장쾌한 산정호수 비경  만끽!

‘하늘로 닿는 다리’라는 의미를 지닌 일본의 백명산인 반다이산(1,819m)은 아사히반다이국립공원 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일본에서 4번째로 큰 이나와시로호수의 북쪽 넓은 평야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반다이산의 북쪽에는 히바라호수와 아키모토호수가 있다. 지명 또한 이나와시로호수를 중심으로 광활한 평야가 있는 남쪽 지역은 ‘오모테반다이’라고 칭한다. 이나와시로호수는 후쿠시마현의 중앙에 위치하며 현을 대표하는 행락지로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다. 이나와시로 반다이 지역에는 7개의 스키장이 있으며, 다양한 경사면이나 형태의 코스가 구비되어 있다. 100여 개의 호수와 크고 작은 소와 늪이 있는 북쪽 지역은 ‘우라반다이’라고 칭한다.

아사히반다이 지역의 자연은 호수, 산, 그리고 숲과 소沼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호수를 중심으로 수상 스포츠 및 레저 활동을 할 수 있고, 반다이산을 중심으로 등산을 포함한 다양한 익스트림 스포츠와 휴양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산재한 온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히바라고槍原湖, 오노카와고小野川湖, 고시키누마五色沼 등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호수들은 가족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은 장소다.

화산폭발로 폐허가 된 반다이산 중턱에 위치한 나가노유 온천지대.
화산폭발로 폐허가 된 반다이산 중턱에 위치한 나가노유 온천지대.

특히 접근하기 쉬운 ‘오색소’는 1888년 7월 15일, 화산 폭발 때 호수로 녹아든 분출물들이 가라앉아 초록, 빨강, 파랑, 노랑, 검정 등으로 굳어져서 맑은 호수의 빛깔이 다채롭고도 신비롭게 보인다. 호수에는 비단잉어가 살고 있으며 배 부분에 하트(♥) 모양의 무늬가 있는 잉어를 보면 평생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반다이산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는 총 6개가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남쪽의 오기나지마 등산로와 이나와시로 등산로, 동쪽의 시부다니 등산로, 북동쪽의 가와가미 등산로와 북쪽의 우라반다이 등산로, 서쪽의 하포우다이 등산로 이다. 우리 일행은 이 중에서 가장 조망이 뛰어나고 화산 폭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우라반다이 등산로를 선택했다. 겨울에 사용되는 스키리프트가 출발하는 지점(해발 900m)까지 버스로 이동해 천천히 걸어 오르면 3시간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출발 전에 가이드의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반다이산은 주봉인 오오반다이大磐梯, 쿠시가미네, 아카하니야마의 세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우라반다이는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반다이 고원이다. 1888년의 폭발로 ‘고반다이산小磐梯’은 아예 없어졌고, 현재 반다이산의 높이도 665m나 낮아졌다고 한다. 게다가 500여 명의 지역주민들이 사망했다고 하니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곳에 있는 반다이산 분화기념관에서 지역의 역사, 문화, 지리정보, 동식물 분포 등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다.

1. 반다이산 정상(1,819m)에 선 등산객들.
2. 반다이산 정상 아래 위치한 아담한 산장 ‘고보키요미즈 고야’.
1. 반다이산 정상(1,819m)에 선 등산객들. 2. 반다이산 정상 아래 위치한 아담한 산장 ‘고보키요미즈 고야’.
야생화와 호수 보는 즐거움 큰 코스

숲길로 들어서기 전의 등산로는 7월의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지역이라 산중 어디에도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아서, 일본인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등산용 기저귀를 구입해 볼 일을 보고 처리한 후 배낭에 넣고 내려온다고 한다. 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매우 불편한 산행지이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니 자연이 온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엔 스키 슬로프로 사용되는 넓은 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니 숲길이 나타났다. 900m가 넘는 고도 탓인지 숲속은 비교적 시원했다. 1km 정도의 완만한 숲길을 타고 오르면 사방이 훤해지면서 황무지 같은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화산폭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화산폭발로 인해 무너져 내린 산의 사면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개활지에서 올려다보는 산의 경사면은 매우 가팔라 오르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의 가파른 등산로보다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산길 곳곳에 여러 종류의 여름철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데다 발아래 펼쳐진 둘레 32km의 커다란 히바라호수의 아스라한 풍광으로 인해 그리 힘든 줄 몰랐다.

출발지점에서 1시간 30분 정도 오르면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작은 종 모양의 보랏빛 꽃들과 분홍빛 패랭이꽃 종류인 ‘다카네나데시코(고산패랭이꽃)’가 바람에 흔들리며 등산객들을 반긴다. 아름다운 야생화와 화산 폭발이 빚어낸 오묘한 풍광에 취한 산객들이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있을 정도이다. 조망이 툭 터진 능선 오름길 곳곳에 야생화 꽃밭과 맑고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 샘터가 있어 지루하거나 힘든 줄 모르고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 주니 7월의 뜨거운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몽환적 분위기의 오제가하라 습원의 새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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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분위기의 오제가하라 습원의 새벽 풍경. <김영희 아마추어 사진작가>.

고도 1,600m에 위치한 고보키요미즈 고야(산장) 주변에는 제법 너른 공터가 있어 점심이나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었다. 조망 또한 좋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커피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다이산은 작은 후지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후지산과 많이 닮아 있다. 남성적이기도 하고 넓은 평야지역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그렇다.

산장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0.5km인데 대체적으로 좁고 가파르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잠자리 떼가 몰려다니는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아주 특별하다. 좌우로 서로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화산폭발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지역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숲이 울창한 지역의 차이가 눈에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쪽은 포근하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한쪽은 위태롭고 날카롭고 곤궁하게 보인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았고, 주변에는 잿빛 화산석 돌무더기가 가득했다. 정상(1,819m)에 서면 아사히 반다이 지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북쪽으로는 히바라호수와 고시키누마(오색소), 남동쪽으로는 일본에서 4번째로 큰 이나와시로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로 황금평야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행들은 정상 조형물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수려한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맑은 날씨 덕분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었다. 게다가 산 밑으로 피어나던 아침 안개가 사라지면서 주변의 경치가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후쿠시마현은 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유명한 사케, 고급 쌀, 품질 좋은 농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반다이산에서 흘러나오는 천연수와 독일산 맥아를 사용한 산지 맥주는 아주 유명하다. 또한 오리지널 소시지도 매우 인기가 높다.

하산은 하포우다이八方台 도잔구치山行口로 했다. 비교적 오르내리기 쉽고 그늘지고 시원한 울창한 너도밤나무 숲길을 걷는 코스로 인기가 있지만 조망은 그리 좋지 않다. 이 코스의 기점은 네코마하포우다이猫魔八方台다. 버스로 8부 능선까지 올라와서 출발하기 때문에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산정까지 2시간 2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하산은 정상에서 2시간이면 가능하다.

너도밤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가파른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마치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넓고 편안한 길을 따라 30분 정도 내려가니 달걀 썩은 냄새가 코끝에 느껴진다. 이곳이 예전 온천단지가 있었다는 나가노유라고 하는데, 화산 피해를 입은 것을 복구하지 않고 기념 삼아 그대로 놔두었다. 지금도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오면서 온천수가 흘러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특이한 풍경과 장소들이 반다이산을 중심으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대한 오제 누마 호수와 호수로 향하는 오래된 목도木道.
거대한 오제 누마 호수와 호수로 향하는 오래된 목도木道.
꿈 속 같았던 오제 습원濕原

오제국립공원은 거대한 오제가하라 습지, 오제누마호수와 높은 시부츠산과 히우치가다케산 등 일본을 대표하는 명산들로 이루어진 ‘오제’ 구역과 산 정상 부근 습원에 앵초과의 고산식물이 피는 아이즈고마가다케산이 위치한 ‘아이즈고마가다케’ 구역, 산정 습원이 유명한 타시로야마산 지역과 양귀비과 다년초의 군락을 볼 수 있는 타이사쿠산 지역의 3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묵은 ‘아이즈 고원 아스토리아 호텔’은 이름에 걸맞게 800m 고지 숲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설악산국립공원 내의 아담한 호텔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이곳 또한 일본의 여느 호텔과 마찬가지로 노천온천(21시 폐장)이 있고, 건물 내부에는 대욕장(24시간 개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여유롭게 온천욕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첫날 일정은 호텔 뷔페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버스로 오제 국립공원 내의 미이케Miike, 御池에 오전 8시경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미이케휴게소에서 셔틀버스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누마야마 토게 언덕Numayama Toge Pass에 도착해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인 미이케→누마야마 토게 언덕→오오에 습원→아자미 습원→시라스나타시로→오제가하라→미하라시見晴의 야시로산장 도착 코스(총 16.5km, 6시간 소요)를 선택한다.

트레킹 출발지인 누마야마 토게 언덕의 해발고도가 1,760m라고 하니 이미 3분의 2 이상 올라온 것이다. 미이케⇄ 누마야마 토게 왕복 셔틀버스 요금은 520엔(편도 260엔)이다. 운행 시간은 하절기엔 첫차가 새벽 4시 30분 출발이고 막차는 16시 50분, 동절기엔 첫차가 5시 30분 출발이고 막차는 동일하다.

단체 관광객들은 일본인 등산 가이드의 구령에 맞춰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하는데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원시림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사를 터트린다. 커다란 나무들이 줄 지어 서있고, 나무판이 깔린 목도 주변으로 희고 노랗고 붉고 파란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개중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나도수정초’ 같은 희귀한 품종들도 있으니, 꽃과 나무들에게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목도 옆의 굵고 곧게 수직으로 뻗은 눈잣나무들의 희고 넓은 등짝에는 붉은색으로 표시해 놓은 선이 있었는데, 지난겨울 동안 그곳까지 눈이 쌓였다는 표식이라 한다. 그 위로 있는 화살표시는 길 안내 역할을 한다.

오제 습원은 약 1만 년 전에 화산폭발로 인해 흘러내린 용암이 다다미貝見川강을 막으면서 해발 1,400~1,600m 지역의 산허리를 따라 수많은 습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오제국립공원 지역은 군마, 후쿠시마, 니가타, 도치키의 4개현에 걸쳐 있으며, 광대한 습원인 오제가하라見晴(1,423m), 오제누마 늪, 그리고 시부츠산과 히우치가다케산 등 일본의 대표적인 명봉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히라노 초오조씨가 개척한 지 약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청정하고 아름답게 보전돼 있어서 일본 자연보호의 상징적인 곳이다. 일본인들 또한 죽기 전에 반드시 방문해야 할 여행지라면서 모든 일본인들이 아끼고 자랑하는 곳이다.

국가적으로도 법률에 의해 특별보호지구 및 특별지역으로 지정해 자연 생태계와 경관이 엄격히 보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일본 특별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어 귀중한 자연문화재로서 높은 수준의 보존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람사르 국제조약에 등록된 습지로서 철새 등의 생물과 귀중한 생태계가 국제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습원의 잔설이 사라질 무렵인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마치 하얀 요정처럼 생긴 물파초(미즈바쇼)가 피기 시작하고, 그밖에 동의나물, 곰취, 참나물 등을 포함한 산나물과 야생화들이 앞다투어 꽃을 피운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8월 상순까지는 희귀종인 ‘나도수정초’를 비롯해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하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여름의 오제를 대표하는 ‘큰원추리’는 오제가하라와 오제누마 늪 주변의 오오에 습원에 군락을 지어, 마치 노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군무를 추듯이 피어난다. 또한 이때쯤 시부츠산의 오제소 다년초, 아이즈코마가다케산의 앵초과의 고산식물 등의 꽃도 피기 시작한다.

8월 중순 이후 여름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지나면, 습원에는 과남풀 등의 가을꽃과 함께 습원의 풀들이 단풍이 들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풀 단풍’의 계절을 맞게 된다. 동시에 주변 산들도 붉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해 그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10월 중순이 지나면 산장들도 영업을 중단하고, 오제는 춥고 눈이 많은 긴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 겨울이 지나 5월 초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서 산장과 국립공원은 다시 사람들을 맞이한다.

편안한 발걸음으로 오제 습원을 걷는 탐방객들.
편안한 발걸음으로 오제 습원을 걷는 탐방객들.
특별한 휴식 주는 오제의 습원

누마야마 토게 언덕으로부터 20분 정도 걸어 습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구름 위의 정원이었다. 여름 햇빛이 강하긴 했지만 좀 더 잘 보고 깊이 느끼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벗어버리고 식물들을 관찰하고 숲과 습지를 둘러보았다. 습지의 여기저기에서 백白, 황黃, 적赤, 청靑, 녹綠의 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는데 어전교(고젠다치바나), 두루미꽃, 원추리, 물꽈리 아제비, 등대풀, 초롱꽃, 산마늘, 난초, 장구채, 소암경(고이와카가미), 투구꽃, 의립초(키노가사소우), 산철쭉, 기생초, 붉은 병꽃, 산까유우 등이 홀로 또는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었다.

습원에 들어선 후 30분 정도 더 걸으면 오제누마 방문객센터 겸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오제에 자생하는 동식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진 등과 함께 오제국립공원의 자연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안내물과 책자들이 마련되어 있다. 방문객센터 주변에는 오제누마호수 건너편으로 히우치가다케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겸 방문객 휴식처(화장실, 급수대)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지은 지 200년 정도 된다는 ‘장장소옥’이라는 산장도 있어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무리하지 않고 충분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습원을 보면서 호수 둘레길을 50분 정도 더 걸으니 오제누마호숫가에 자리 잡은 또 다른 휴게소누쉬리Nushiri가 나왔다. 버려진 작은 논 같은 습지에는 수련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었는데 물에 비친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풍광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여행사에서 제공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원점회귀를 해야 하는 방문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만, 1박2일 여정으로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충분히 휴식시간을 가진 후에 ‘시라수나 타시로’를 지나 숙박지인 야시로 고야 산장으로 향한다.  미하라시見晴 지역인 그곳에는13~18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6개의 산장이 있다. 수용할 수 있는 총인원은 900명 정도라고 하며, 한국인 방문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야시로산장에만 25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산장 주변에는 별도의 무료 캠핑장도 있다.

오제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새벽 오제’의 모습이다. 산장 뒤, 동쪽에서 일출이 시작되기 전에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낀 습지 풍경과 더불어 용궁십자로 부근의 전망대에서 일출을 꼭 보라고 추천한다. 작년 6월에는 새벽 4시경에 조용히 산장을 빠져나왔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요하고도 엄숙한 풍경을 보기 위해 습지 곳곳에 나와 있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꿈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깊은 잠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회색빛 운무가 습지 초원 가득히 내려앉아 한편으론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아프리카 초원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말 그대로 이국적이면서 몽환적이었다.

오제가하라 습원의 고즈넉한 새벽 풍경을 감상하는 탐방객.
오제가하라 습원의 고즈넉한 새벽 풍경을 감상하는 탐방객.

그때는 초하初夏인 6월의 새벽이었지만 해발고도가 1,400m가 넘는 곳이기에 피부로 느끼는 기온이 몹시 차가웠다. 얇은 우모복을 입기는 했지만 한참을 서있다 보니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한기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야시로 고야 산장 앞의 새벽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다음날 일정은 미하리시의 산장을 출발해서 아카다시로赤田代를 지나, 산죠폭포를 본 후에 다시 텐진다시로天神田代 습원을 거쳐 전날의 출발지인 미이케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약 11km에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였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광들이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높은 산에는 겨울 내내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남아 있었지만, 피부에 쏟아지는 청정지역의 햇살은 강렬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넓은 주차장이 있는 휴게소에 속속 도착한 일행들은 하루를 더 묵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한결같이 표정이 밝고 편안했다. 오제의 평화로움과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이 그들의 표정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버려진 땅처럼 보이는 습지나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생명 부양의 생태계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개발을 목적으로 한 관개와 매립, 오염 등으로 습지와 갯벌이 훼손되고 있다. 하지만 생태학적 또는 생물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습지와 갯벌 보호의 중요성이 20여 년 전부터 인식되고 있다. 개발 논리로만 철저히 무장된 사람들에게 오제국립공원 트레킹만큼 교훈적인 여행도 드물 것이다. 오제 습원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휴식과 깨달음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거대한 자연친화적 습지이다.

■여행 정보

우라반다이 관광협회
Tel) 0241-32-2349  Fax) 0241-32-3333 
www.urabandai-inf.com

동북관광추진기구
Tel) 022-721-1291  Fax) 022-721-1293 
www.tohokukanko.jp

후쿠시마현 관광교류국 관광교류과
전화 024-521-7287/팩스 024-521-7888
www.pref.fukushima.lg.jp

동북운수국 관광부 
전화 022-791-7510/ 팩스 022-791)7538

재단법인 오제보호재단
전화 027-220-4431 / 팩스 027-220-4421/ 우편번호 371-8570

군마현 마에바시시 오오테마치
1-1-1 www.oze-fnd.or.jp (한국어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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