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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화제 | 탐험 그랜드슬램] 日 마린, 최연소 ‘탐험 그랜드슬램’ 위업

글 월간산 오영훈 기획위원
  • 입력 2018.10.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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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여성이 7대륙 최고봉·남극·북극점 스키로 도달

“나는 등반가·모험가 아닌 정체성 찾는 과정”… ‘진정한 그랜드슬램’ 논란

북극점의 미나미야 마린.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북극점의 미나미야 마린.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일본 국적의 여성 미나미야 마린이 ‘최연소 탐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서 진정한 ‘탐험 그랜드슬램’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한국 박영석 대장의 ‘진정한 그랜드슬램’ 기록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마린은 2016년 18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남극점에 이어 2017년 4월 12일 북극점까지 스키로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소위 탐험계에서 말하는 ‘탐험가 그랜드슬램’을 최연소로 달성한 것이다.

마린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해외파견 근무에 종사하는 부모를 따라 말레이시아, 중국 등을 거쳐 홍콩에 정착해 자랐다. 마린은 “13세 때 홍콩의 작은 산에서 등산캠프에 참가했는데, 이 산행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했다”고 밝혔다. 17세 되던 해 겪은 부모의 이혼은 마린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때 마린은 “이제껏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며 “내 진짜 정체성을 찾아야겠다”면서 고산등반을 떠올렸다. 당차게도 첫 목표로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획했다.

일본 유니클로와 전속계약을 맺은 미나미야 마린(오른쪽)과 일본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 케이. / 사진 미나미야 마린.
일본 유니클로와 전속계약을 맺은 미나미야 마린(오른쪽)과 일본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 케이. / 사진 미나미야 마린.

일본으로 돌아온 마린은 자금 마련을 위해 먼저 신문사 여러 곳에 자신의 광고를 실어줄 수 있느냐고 접촉했다. 신문사 두 곳에서 ‘일본인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을 떠난다는 마린의 광고를 실었고, 이를 통해 에베레스트 대신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등반을 협찬 받을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가 위치한 쿰부 지역의 남체 바자르에서 스위스 등반가 율리 스텍과 함께.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에베레스트가 위치한 쿰부 지역의 남체 바자르에서 스위스 등반가 율리 스텍과 함께.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이 등반 이후 자신의 등반을 글로 써 내기 시작했다. 이어 100여 곳이 넘는 업체에 문의한 끝에 일본계 의류회사 ‘유니클로’와 등반협찬 전속계약을 맺게 됐다. 재정이 마련된 이상 7대륙 최고봉 등반은 어렵지 않았다. 2년 만에 완등에 성공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남북극점까지 종주에 성공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2015년 3월 8일, 일본의 아미다산(837m)을 오를 때 협곡 눈사면에서 250m를 추락했다. 천만다행으로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이튿날 구조헬기에 발견될 때까지 설동에서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같은 해에 네팔 마나슬루(8,163m)를 등반하기도 했다. 당시 같은 팀의 다른 등반가가 고산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산의 위험을 깨닫는 계기였다.

마린은 “고산등반 중 여성인데다 나이가 어리다고 동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밝혔다. 편견을 깨기 위해 마린은 등반 중 지친 동료들을 도와주고 남들보다 무거운 짐을 메기도 했다고 한다.

마린은 “나는 ‘등반가’나 ‘모험가’가 아니다”면서 “이 등반은 내팽개쳐졌던 스스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마린은 현재 대학생이지만 학업을 마치기보다는 모험활동으로 협찬을 받는 ‘비즈니스’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는 요트로 세계일주 항해를 준비 중이다. 지난 1월 연습 삼아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섬까지 요트 항해 왕복에 성공한 바 있다.

탐험 그랜드슬램 달성자 전 세계 63명

마나슬루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마나슬루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 사진 미나미야 마린 페이스북.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미나미야 마린. / 사진 유니클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미나미야 마린. / 사진 유니클로.

마린이 사용한 ‘탐험 그랜드슬램’이라는 용어와 최연소 완주 기록은 미국 여류 탐험가 바네사 오브라이언(1964년생)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다. 오브라이언 역시 2013년에 11개월 만에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고 남북극점에 도달한 바 있는 저명한 탐험가다.

‘탐험 그랜드 슬램Explorer’s Grand Slam’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98년 영국의 데이비드 햄플먼-애덤스(1956년생)가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고 남극점·북극점 및 남극 자기극점·북극 자기극점까지 모두 도달했을 때부터다. 자기극점이란 나침반이 더 이상 가리킬 방향이 없는 지점을 뜻하며 극점과는 수백km 이상 차이가 난다. 매년 위치가 변하기 때문에 탐험 대상지로서 널리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현재 ‘탐험 그랜드슬램’은 7대륙 최고봉과 양 극점 도달로 굳어졌다.

박영석 대장이  ‘진정한 그랜드슬램’ 유일

2005년 북극점에 도달한 뒤 환호하는 고 박영석.
2005년 북극점에 도달한 뒤 환호하는 고 박영석.
중국의 장리앙. / 사진 CGTN.
중국의 장리앙. / 사진 CGTN.

이어 2005년에는 고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실종) 대장이 7대륙 최고봉, 남북극점 외에 8,000m 14좌를 모두 완등하는 업적을 달성했고 이를 ‘산악 그랜드슬램’이라 칭했다. 일부 산악인에 의해 과연 이게 ‘산악’ 활동인가에 대해서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오브라이언은 박영석의 그랜드슬램을 현재까지도 유일한 ‘진정한True 탐험 그랜드슬램’으로 꼽는다. 박영석 대장은 1995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남북극점에 도달했던 허영호와 함께 ‘탐험 그랜드슬램’에 성공한 전 세계 63인에 속해 있다.

‘진정한 탐험 그랜드슬램’에 대한 정의는 불분명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현재 극점 도달은 마지막 1도, 즉 위도 89도부터 90도까지 약 100km 구간만을 완주하면 인정받는 추세다. 약 5만~6만 달러에 이를 대행해 주는 업체도 여럿이다. 어떤 이는 꼭 스키로 종주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한다. 항공편으로 날아가 극점에 서기만 하면 도달이라는 것이다. 실제 스키로 수백km를 주파해 남북극점에 도달한 ‘탐험 그랜드슬램’은 63인 중 17인에 불과하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올해 초 중국의 장 리앙이 박영석 대장에 이어 ‘진정한 탐험 그랜드슬램’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장 리앙은 7대륙 최고봉에 14좌를 모두 완등했고, 이어 남북극점을 스키로 도달했으나 남극점은 ‘마지막 1도’ 120km만 고작 7일에 걸쳐 주파했으며, 북극점은 600km를 20일 만에 주파했기 때문이다.

남극점은 고사하고 북극점 도달마저 애매한 기록이다. 통상 북극점을 스키로 주파하는 경우 러시아 북부에서 헬리콥터로 유빙 가장자리까지 날아가는데, 이곳에서 북극점까지는 길게는 950km, 짧게는 765km에 이르기 때문이다.

박영석 대장은 북극점까지 775km거리를 53일에 걸쳐 주파했으며, 남극점은 전 구간 종주라 할 수 있는 1,130km를 45일에 걸쳐 주파했다. 장리앙의 여정이 ‘진정한 탐험 그랜드슬램’인지의 여부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이는 지난 7월 K2를 스키로 활강하는 데 성공한 안드르제이 바르기엘(폴란드)과 함께 2018년 가장 주목받는 탐험 성취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도 ‘탐험 그랜드슬램’의 정의는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을 듯하다.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남북극점에 도달했으며 8,000m 봉우리를 일부 등정한 미국의 라이언 워터스도 ‘탐험 그랜드슬램’의 개념정립을 시도한 바 있으나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탐험가들에게 정의를 물어봤더니 다들 거리나 방식에 상관없이 자신이 한 것이야말로 ‘그랜드슬램’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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