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 주장은 날조된 허구다

입력 2018.12.19 18:40 | 수정 2018.12.21 19:45

‘은주시청합기’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 ‘송도도해면허’ 기록 교묘히 조작 해석

[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동해에 외로이 떠있는 섬 독도.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부속 땅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되는 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들의 고유영토라고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 사진 안동립씨 제공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매년 10월 25일 대한민국 독도의 날을 전후해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고 나오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올해는 초중고 검인정 교과서에 공식적으로 게재하는 등 ‘독도=일본 영토’ 교육까지 강화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면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들은 더욱이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자’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도대체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완전히 도를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으면서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월호에 ‘2월 25일은 다케시마의 날’을 맞아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히 고찰하면서 일본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데 이어 이번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와 그 허구성을 낱낱이 밝히고자 한다. -편집자註

[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서도의 일몰. / 사진 안동립씨 제공.

일본의 독도 점령은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열강들과 함께 아시아 대륙으로 본격 진출한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해양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뛰어난 전초기지로 독도를 활용한 전략을 세운다.

독도 주변 해양에는 무궁무진한 해양자원뿐만 아니라 미래 청정자원으로 각광받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6억 톤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근해 해저에 매장된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고체 천연가스 또는 메탄 수화물로서, 녹으면서 물과 메탄가스를 발생시켜 효용가치가 큰 미래형 청정자원으로 평가받는 선진국들이 주목하는 해양자원이다. 당시 일본이 이 사실을 확인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영토 침략과 해양자원 확보, 러시아 남하 견제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은 확실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당시 강치 집단서식지인 독도에 일본 어부들에게 강치잡이 허가를 발급하는 동시에 해군 망루watchtower를 조성하고 해저전선을 설치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울릉도에 3개, 독도에 1개의 망루를 설치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17세기 중엽부터 실효적 지배 주장

[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좌측 사진) 동도의 암벽에 한국령이라는 암각이 새겨져 있다. / 사진 안동립씨 제공 (우측 사진) 독도가 한반도 부속 섬이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한반도 지형을 띠고 있다. / 사진 안동립씨 제공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1952년 즈음부터 한국과 독도분쟁을 일으킨다. 당시 일본의 주장은 주인 없는 땅을 일본이 점령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2000년대 이전까지 일본이 내세웠던 주장은 ▲일본은 17세기 중엽에 독도영유권을 확립했고, ▲1905년 내각회의 결정에 의해 독도영유 의사를 재확인했고, ▲한국 측은 그 이전에 독도를 실제 지배했다고 주장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으므로 독도는 일본 영토가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10년 접어들면서부터 일본의 주장이 더욱 구체적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그들이 주장했던 역사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는지 몇 가지 사실을 보충한다.

첫째, 17세기 중엽 일본의 ‘松島渡海免許송도도해면허’를 증거자료로 하여 17세기 중엽부터 일본의 고유영토로서의 독도 영유와 실효적 지배를 매우 강조한다. 둘째, 종래 1905년 2월의 독도침탈을 ‘무주지 선점’에 의한 새 영토의 일본 영토 편입이라는 설명보다, 1905년 1~2월에 내각회의 결정에 의해 독도영유 의사를 재확인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한국은 그 이전에 독도를 영유하고 실효적 지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은 계속된다. 나아가 2012년 일본 외무성은 일주일에 걸쳐 70여 개 신문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홍보기사를 일제히 게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다. 일본은 17세기 중엽에는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보했고, 1905년(메이지 38) 각의 결정에 의해 다케시마를 영유하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한국 측은 일본보다 먼저 다케시마를 실효 지배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근거하고 있는 문헌의 기술은 애매하며, 보증하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홍보기사에 이어 아베 정권은 일본의 초중고교 검인정 교과서에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케 하면서 일본의 ‘독도고유영토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구체적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1667년에 독도를 기록한 일본 최초의 고문헌 ‘隱州視聽合記은주시청합기’와 1779년에 그려진 ‘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송도도해면허’ 등이다.

일본 제시 근거는 한국땅이라는 증거

[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독도고유영토 주장의 허구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첫째, 은주시청합기의 주요 내용은 ‘독도와 울릉도에서 고려를 보는 것은 마치 운주雲州(시마네현 소속)에서 은주隱州(=은기도隱岐島: 오키섬)를 보는 것과 같으므로 일본의 서북쪽 영토는 이 은주로서 한계를 삼는다’는 게 요지다. 다시 말해 독도와 울릉도에서 고려(한반도)를 보는 것과 운주에서 은기를 보는 것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일본은 1956년 한국에 보낸 외교문서에 ‘일본 최초의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서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서북부의 한계로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해석하면, 독도와 울릉도는 고려에 속한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지는 은기도를 한계로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이를 교묘히 날조 해석해서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해 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일본 정부의 독도 고유영토 주장은 완전히 허구인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독도에 대한 일본 최초의 기록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인 증거가 아니라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 문헌인 셈이다.

둘째, 일본은 1779년에 그려진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를 제시하며 ‘현재의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일찍이 마쓰시마松島로 불렸으며, 반대로 울릉도가 다케시마 또는 이소 다케시마로 불렸다. 일본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존재를 옛날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각종 지도나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에서 실제로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표시하고 있다. 그 옆에 깨알 같은 글씨로 ‘견고려유운주망은주’, 즉 두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은 마치 운주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앞의 은주시청합기의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역설적으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했다는 두 자료 모두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자료인 것이다.

[小테마특집 ‘독도’ <1> | 일본 주장의 허구성]
‘독도를 둘러싼 역사의 쟁점과 독도 영유권 증명’이라는 독도학술 대토론회에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의 해석이 허구라는 지적을 제기하자, 최근에는 1661년 발급된 ‘송도도해면허’를 증거로 들고 나왔다. 일본은 주인 없는 땅 송도(독도)에 대해 17세기 중엽 독도영유권을 이미 확립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1618년 돗토리번 호키국 요나고의 주민 오야 진키치와 무라카와 이치베는 돗토리번의 번주를 통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당시 일본명 다케시마)에 대한 도항면허를 취득했다. 그 이후 양가는 교대로 일 년에 한 번 울릉도로 도항하여 전복 채취, 강치(바다사자) 포획, 수목 벌채 등에 종사했다. (중략) 이러하여 일본은 늦어도 에도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17세기 중엽에는 다케시마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 또한 당시 막부가 울릉도나 다케시마를 외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쇄국령을 발하여 일본인의 해외 도항을 금지한 1635년에는 이 섬들에 대한 도항 역시 금지했을 것이지만 그러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일본이 다른 나라인 울릉도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울릉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 조선의 영토였고, 당시 막부는 엄격히 쇄국정책을 강화 실시해 외국에 가는 것은 반드시 사전에 막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고 있었고, 외국에 월경하여 고기잡이를 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식허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도해면허 자체가 외국에 건너가는 허가장이었으며, 도해면허 앞에 기록된 죽도 송도 등의 지명은 그것이 외국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죽도도해면허와 송도도해면허를 막부로부터 배령拜領했다고 표현하여 마치 죽도와 송도의 영토를 하사받은 것처럼 인상을 주려 하지만 배령은 배수의 의미밖에 없다. 절해서 받는다는 의미뿐이지 영지를 하사받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따라서 1618년 죽도도해면허나 1661년 송도도해면허는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증명이나 근거가 전혀 될 수 없는 것이다. 도리어 이 면허들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는 셈이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 승리 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다각적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낸다. 독도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면서 해양자원을 확보하는 다각적 포석으로 자국영토로 확보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확실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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