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ㅣ안데스 레알산맥] 에덴의 정원, 소라타를 가다

  • 글·사진 김영미 자유여행가
    입력 2019.03.12 17:21

    THE GARDEN OF E’DEN
    잉카 유적지 방치된 채 널려… 해발 4,000~5,000m에 호수 여러 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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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4,200m, 운무에 쌓인 치야타호수.
    우유니사막으로 알려진 볼리비아의 산을 걷고 싶었다. 라파스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황량한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 라파스를 조망하기 위해 여행객이라면 꼭 한 번은 찾는 엘 알토에 올랐다. 이곳의 해발고도가 4,150m.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엘 알토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라파스의 시내 전경이 아니었다. 만년설로 둘러싸인 5,000~6,000m의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그곳은 레알산맥Cordillera Real de los Andes이었다. 
    레알산맥 트레킹을 알아보기 위해서 라파스의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방문했다. 레알산맥 트레킹은 기간도 준비물도 상당했다. 최소한 7박8일 이상의 일정!!! 지금으로선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 이미 페루의 잉카 트레일을 예약해 놓아서 예정보다 길게 볼리비아에 머무를 수 없었다. 루트 설명을 듣다가 소라타Sorata라는 마을에 관심이 갔다. 그래 소라타에 가서 짧지만 안데스산맥 자락인 레일산맥을 걸어보자!
    소라타는 라파스에서 북서쪽으로 15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레알산맥 트레킹의 출발점이다. 앙코우마Ancohuma(6,388)와 이얌푸Illampu(6,360m)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트레킹과 산악자전거 MTB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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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무가 걷히고 온통 파란 세상으로 변한 치야타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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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4,000m 가까이 되는 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소라타 사람들.
    소라타로 향하는 미니버스의 창밖으로 레알산맥의 눈부신 설산들이 줄지어 사열하고 있는 모습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구불구불 휘어진 좁은 도로를 따라서 4,000m 이상 올라갔다가 다시 3,000m대로 1,000m 이상 내려갔다. 산을 돌아돌아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소라타에 도착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순박한 사람들만 살고 있을 것 같은, 때 묻지 않은 시골마을이었다. 트레킹을 하지 않아도 둘러싸인 산을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곳이었다. 
    안내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소라타를 소개하고 있다.
    ‘WELCOME TO SORATA,THE GARDEN OF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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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목한계선을 지나면 황량한 돌길만이 펼쳐진다.
    이런 산속 작은 마을에서 가이드를 찾을 수 있을까?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산을 걸을 생각에 가슴은 뛰었지만 가이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도 눈에 띄지 않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결국 투어사를 찾았고 가이드를 만났다. 비용은 예상외로 비쌌다. 이얌푸 바로 아래에 있는 글라시아호수Laguna Glaciar(5,050m)까지 1박2일 트레킹 비용은 500볼(1볼 약 160원). 가이드 요금과 텐트 등 숙박 장비는 포함, 식사는 불포함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글라시아호수의 고도는 5,050m. 당일 트레킹은 무리였다. 스탬프를 찍는 트레킹도 아니니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 코스가 중복되는 건 별로였지만 굳이 다른 곳을 가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아침 일찍 소라타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몇 개의 상점과 노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아침장사가 시작되어서 시장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반사적으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팥죽과 비슷한 색깔의 뜨거운 음료와 옥수수로 만든 또티야를 먹었다. 즉석에서 튀겨 주니 더욱 맛이 있었다. 고소산행에 도움이 되는 코카 잎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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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야타호수를 지나면 구름은 발 아래. 하늘을 걷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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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된 잉카유적지.

    고요함에 갇힌 치야타호수 트레킹

    차로 캠핑사이트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은 소라타로 들어올 때만큼이나 구불구불 휘어 있어서 멀미를 느꼈다. 약 2,750m 고도에서 출발한 차는 3,900m 가까이 되는 곳에서 섰고 그곳에 텐트를 쳤다. 관광객도 트레킹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들판에 가득한 양들 사이에 양치는 아주머니만 있을 뿐! 
    치야타Chillata호수에 오르는 길은 고도가 높았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르면서 뒤를 바라보니 주변 시야가 트여 있어서 소라타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바꼭질 하듯이 머리카락이 보일까 봐 산속 깊숙이 꼭꼭 숨어 있었다. 스페인 침략 때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짐작이 갔다. 구름이 잔뜩 끼고 날이 흐려서 이얌푸는 구름에 갇혀 있었다. 가이드는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미안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의 착한 마음이 좋았다. 
    잉카의 유적지는 산에 방치된 상태로 널려 있었다. 엄청난 문화유산인데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어느새 고도 4,200m 치야타호수에 도착했다. 비까지 내려 천천히 걸어서인지 고도가 높아졌음에도 호흡하는 데 불편이 전혀 없었다.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 치야타호수는 단 한 번의 출렁임조차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호수를 한 바퀴 걸은 후 텐트사이트로 하산했다. 고소적응을 위한 훈련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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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4,500m에 가까워지면 곳곳에서 얼음을 볼 수 있다.
    식사는 가이드 요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날이 춥다며 가이드가 누들을 끓여 주었다. 물을 끓이는 버너가 완전 골동품이다. 대학 시절 사용했던 엄청난 화력의 석유버너는 누들을 순식간에 완성시켰다. 고도가 높은 곳에선 해가 지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추워진다. 이때 체온 관리를 잘못하면 고소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가이드가 고마웠다.
    저녁을 먹는 동안 어둠이 시작되더니 금세 주변이 새까맣게 변했다. 정말 밤이었다. ‘오늘 밤엔 꼭 별 사진을 찍어야지’ 작정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텐트를 때리는 바람소리에 잠도 오지 않았다. 낡은 텐트는 방풍이 전혀 되지 않아서 너무나 추웠다. 그래도 밤은 깊어갔다. 텐트 문을 살짝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온통 별바다였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준비해 밖으로 나오니 어느 새 불청객인 구름이 별바다에 올라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우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다행히 텐트 가까이로는 오지 않았다. 여우를 경계하면서 시린 손을 불어가며 별사진에 집중했지만 구름은 순식간에 하늘을 덮었다. 무섭다고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은 흘러서 새벽 여명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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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약 3,900m 캠핑사이트. 근처에는 맑고 깨끗한 빙하물이 흐른다.

    구름 위를 걷다, 글라시아 호수를 만나다

    오늘은 해발고도 5,050m 글라시아호수까지 가야 한다며 이른 시간부터 가이드가 서둘렀다. 간단하게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도 준비했다. 이른 시간이라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어제 다녀왔던 치야타호수까지는 이미 익숙해진 길이라 가뿐하게 올랐다. 
    어제의 호수 빛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투명하고 짙은 파란 호수였다. 온 세상이 이렇게 맑고 깨끗하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발아래로는 운무가 세상을 덮고 있었다. 소라타마을은 구름에 덮여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구름이 깔린 운동장이다. 넘실대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밀고 들어왔다. 
    호수를 지나서부터는 경사도가 제법 심해졌다. 가이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길을 갔다. 길은 점점 험해졌지만 구름 속으로 어렴풋이 이얌푸가 보일 때마다 발걸음은 더 경쾌해졌다. 수줍은 모습으로 살짝 살짝 모습을 보여 주니 감질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구름이 벗겨지긴 어려울 듯했다. 그렇다고 내일 다시 올 수도 없으니 글라시아호수까지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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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타의 길거리 식당
    칼갈이 검은 숫돌이 가득한 길로 들어섰다. 미끄럽고 단단해서 무척이나 위험했다. 한발 한발 조심하면서 걷는데 이곳도 예전의 인디언들이 살았던 곳이란다. 땅만 내려다보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무도 거의 없고 키 작은 풀들과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돌덩어리들만 뒹구는 척박한 땅에 어떻게 마을을 형성하고 살 수 있었을까? 
    수목한계선이 끝났는지 풀조차 보이지 않은 바위 구간이 나타났고 날씨는 더욱 흐려졌다. 간간이 얼음도 보이기 시작했다. 살얼음이 낀 길은 더욱 위험했다. 빙하가 녹아 흘러서 길을 찾기 어려운 구간도 있었다. 가이드의 뒤를 바짝 좇지 않으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안개가 끼어서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가이드는 자주 오는 길이라 성큼 성큼 바위를 올라섰다. 나는 혹여 작은 사고라도 생길까 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하며 오르느라 고도가 많이 올라가는 것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내 앞에 ‘글라시아호수’라고 쓰인 나무 안내판이 서 있었다. 안개가 심해서 호수 전체를 조망하기는커녕 이곳이 호수임을 알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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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카 잎을 파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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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타 전통 복장을 입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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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동품에 가까운 석유버너, 고산지대에서는 가스보다 화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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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 길에 내려다보이는 켐프사이트. 빈 텐트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쉬운 마음이야 컸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어찌하겠는가? 안개가 조금 걷히기를 기다리면서 호수 한쪽에 앉아서 가이드가 내어주는 망고를 먹었다. 새콤달콤한 망고의 맛이 온몸으로 퍼졌다. 
    안개가 조금 걷히면서 글라시아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가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만큼 호수는 컸다. 간절한 나의 바람이 전해졌나보다. 그러나 글라시아호수에서도 이얌푸의 민낯과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종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너무 늦어지면 하산조차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하루 종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오름보다 더 어려운 게 미끄러운 내리막길이다. 부상의 위험도 있다. 오를 때 내내 구름에 갇혀 있던 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빛 내림도 시작되었다. 날씨도 좋아졌지만 이미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라 하산의 발걸음은 더욱 편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알고 가는 길이라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길,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길. 이얌푸의 순백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려온 아쉬움은 있지만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걸었던 이틀간,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고, 쿵쾅거리는 내 심장의 소리를 들으면서 난 더 행복했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부터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의 잃어버린 도시까지 남미 안데스를 따라 걷고자 하는 나의 트레킹 맵에 새로운 스탬프가 찍힌 순간이었다. 얻고자 하는 목적보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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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타 트레킹 맵
    소라타 이동 방법

    라파스 시내 어디서나 세멘테리오cementerio행 미니버스를 타고 세멘테리오에서 내린 후 엘 알토 방향으로 세 블록 올라가면 소라타 부스가 있다. 정해진 출발시간은 없고 미니버스에 사람이 차면 출발한다. 라파스에서 소라타까지 3~4 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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