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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연재ㅣ세계산악영화 순례 <12>] 불꽃같은 삶 담은 사이클리스트 다큐

월간산
  • 입력 2019.04.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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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산악영화 - 사이클 영화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모험과 탐험 부문 상영작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div>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모험과 탐험 부문 상영작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따뜻해진 날씨로 야외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도심과 강변 그리고 산길을 두 바퀴에 의지해 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이번 달에 소개할 산악영화 두 편은 모두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끊임없이 달리는 사이클리스트, 즉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삶을 포착한 다큐멘터리이다. 두 편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클 대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편은 이탈리아의 ‘지로 디탈리아’에 출전한 전문 사이클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른 한 편은 프랑스를 일주하는 ‘뚜르 드 프랑스’에 도전한 한국인 청년의 불꽃같은 삶을 담아냈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 Le Tour: My Last 49 Days

연출 임정하│한국│2016│97분│color│다큐멘터리

어린 시절부터 활달한 성격으로 모든 운동에 소질을 보였던 26세 청년 윤혁의 꿈은 체육 교사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희귀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항암치료를 받지만 차도는 없다. 윤혁은 치료를 중단하고 3,500km에 달하는 ‘뚜르 드 프랑스’ 한국인 최초 완주라는 새로운 꿈을 세운다. 건강한 사람도 불가능하다고 여길 3,500km의 여정을 위해 말기 암 환자인 윤혁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후원자를 구하고 지원팀을 모집한다. 

장비 수리 담당, 페이스메이커에 전담 의사와 영화 촬영 팀까지 가세한 윤혁의 ‘드림팀’은 호기롭게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장비 담당자는 첫 날부터 부상을 당하고 빠듯한 예산 탓으로 불편한 숙소와 환경에 처한 드림팀 내부엔 불만이 쌓이고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완주는커녕 꿈의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의 순간마다 팀원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은 바로 윤혁이다. 늘 웃으며 농담을 건네고, 타들어가는 더위 속에 피레네산맥을 겨우겨우 오르면서도 곁의 동료들을 위해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른다.   

‘암세포가 나에겐 기회였고, 아직은 페달을 밟을 수 있으니 됐다’는 열혈 청년 이윤혁은 마침내 개선문을 돌며 49일간의 뜨거운 도전을 완료한다. 페달 위에서 온몸으로 힘껏 살아 있음을 느끼고 분출했던 청년 윤혁이 우리를 향해 외치는 듯하다. 살아 있는 한 절대 포기하지 말고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프로그래머의 노트

2017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상영과 극장 개봉을 통해 큰 감동을 주었던 이윤혁군의 실화가 극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뚜르 드 프랑스’를 위해 윤혁이 그랬듯 임정하 감독이 열심히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투자자를 찾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극장에서 윤혁의 뜨거운 삶을 다시 만나볼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ㅣ감독 임정하

이 영화의 감독 크레디트에는 임정하 감독을 포함해 총 네 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2009년에 촬영하고 2010년부터 편집에 들어간 영화는 개봉까지 7년이 걸렸다. 그 사이 세 명의 감독이 연출을 포기하고 떠났으며, 이 영화의 제작자였던 임 감독이 마무리를 지었다. 임 감독은 편집기술을 배워가며 장장 5년 동안 재편집을 계속해 49차 편집 본으로 최종본을 완성했다. 

모두 고개를 흔들며 이제 그만 두라고 했을 때 감독을 일으켜 세운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윤혁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임 감독은 “이미 그는 떠났지만, 그의 영화가 ‘희망의 이름’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패자들 Wonderful Losers: A Different World

연출 아루나스 마텔리스│리투아니아, 이탈리아│2017│71분│color│다큐멘터리

사이클 대회가 한창인 이탈리아의 도심 한복판. 사이클을 타고 달리던 한 선수가 옆으로 다가온 승용차에서 물병 네 개를 받아 허리춤에 하나씩 꽂아 넣고 힘껏 페달을 밟아 다른 선수들의 무리로 섞여 든다. 

같은 색 유니폼을 입은 동료에게 첫 번째 물병을 건네고는 다시 앞으로 달려 역시 속도를 내 달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나머지 세 병도 하나씩 나눠 준다. 그리고는 본인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이 숨을 크게 내쉰다. 막상 그에게는 물병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알프스와 돌로미티 산맥을 돌아 23일 달려야 하는 ‘지로 디탈리아’는 ‘뚜르 드 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도로 사이클 대회로 꼽힌다. 아루나스 마텔리스 감독은 지로 디탈리아 경주에 대한 영화를 7년에 거쳐 완성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화려한 우승컵을 안은 승자가 아닌 늘 패자일 수밖에 없는 지원 전담 ‘그레가리오’ 선수들을 향해 있다. 한겨울에도 체력 단련을 위해 산과 호수에서 개인 훈련을 쉬지 않는 선수. 부상으로 뼈가 상한 줄도 모른 채 지원 임무를 다 마치고서야 수술실로 들어선 선수. 지난했던 재활을 마치고 다시 경기에 나선 아들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 

페달을 밟는 소리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위로 푸른 평원과 높은 산맥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감독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수십 년을 헌신해 온 그레가리오 선수들이 사는 그늘 속 세상을 세심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의 진정한 승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머의 노트

영화 중반쯤 나오는 장면. 카메라가 인적도 없고 건물도 없는 평원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자 사이클을 세워 놓고 길가에서 단체로 소변을 보는 수십 명의 선수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쉬는 시간이 따로 없는 장거리를 달려야만 하는 선수들에겐 꼭 필요한 순간. 이 틈을 타서 혼자 출발하는 선수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레가리오 선수가 웃으며 답한다. 

“다른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리만의 게임의 법칙입니다.”

아름다운 패자들ㅣ감독 아루나스 마텔리스 

사이클 선수를 꿈꾸며 훈련하던 중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전공을 바꿔 영화감독이 된 리투아니아 출신 마텔리스 감독에게 사이클은 단순한 영화의 소재가 아니라 첫사랑이자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부상당한 선수들을 치료하는 의료 지원팀과 다음날의 경기를 위해 밤에도 쉬지 못한 채 훈련하거나 마사지를 받는 그레가리오로 평생을 살아온 선수들. 

이들의 자기희생 정신과 열정 그리고 자부심을 발견할 수 있었던 지난 7년의 제작 기간은 감독 본인을 평생 따라다녔던 사이클이라는 꿈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오디세이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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