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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감동산행기] 화악산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

글 사진 곽성진
  • 입력 2019.04.01 11:46
  • 수정 2019.04.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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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 중봉 능선에 선 필자.
화악산 중봉 능선에 선 필자.

산행에 나서다 보면 종종 길을 잃는다. 잃어버린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고행이 결국 즐거움으로 환원되는 것은 모험이 개입해서다. 건삼 한 근이 수삼 닷 근과 견준다는 말이 있듯이 산 길 10리가 평지 50리와 맞먹는다. 등고선과 지형숙지에 만전을 기해도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길 앞에 허둥대기 마련이다.

 악岳자 돌림의 산세는 명성 그대로 돌과 바위투성이다. 산에 대해 숙지하며 건방떠는 객기를 잠재울 일이다. 그것이 완벽한 장비를 갖추는 것보다 힘겹다. 산을 오르는 일은 자신의 오만을 탐색하는 일이다. 거기엔 어떤 타협이나 순응도 불필요한 짐이다.

화악산華岳山(1,468.3m)을 오르기로 했다. 머리 위에 눈발을 달고 내려다보는 신비가 있다. 만전을 기한 만큼 길은 쉽게 열려졌다. 산행엔 늘 혼자였다. 어차피 생은 스스로 꾸려야 할 짐이 아닌가. 협곡이 버티고 30도 경사로 끌어 붙인 비탈은 땀이 삐질 거릴 만큼 덜미를 단단히 잡았다. 자리 못 잡은 바윗돌이 과장된 소리를 지르며 굴러내려 긴장하기도 했다. 군용임도가 거들먹대며 펼쳐진다. 산길은 철조망을 우회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줬다. 전시의 군은 민간인보다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보호의 구실 아래 지배와 만용이 서려 있다.

그늘 한 점 없는 정상은 햇볕 천지여서 서둘러 하산 길을 택해 주저앉기로 했다. 해는 길지만 턱마루에 닿을 일이 요원해 서둘러야 했다. 입 안에 대충 밥을 우겨 넣고 떠날 채비를 했다.

지맥은 흔들대며 걸음을 요구했다. 표식이 없는 갈림길에 들면 육감에 의지해야 한다. 감도가 떨어지는 날은 그저 운이 안 좋다고 푸념할 뿐이다. 갈림길에서 우회의 길은 제법 다져진 길이었다. 그 길을 무시한 채 묵은 낙엽과 둥치가 가로막는 길을 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만용을 되돌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길은 어차피 걷는 이가 만드는 것

다리는 힘을 잃었고 식은땀은 비 오듯 했다. 어차피 악산岳山을 오르리라 했을 때 각오한 일이었다. 일상의 길을 버리고 호젓한 길 하나 드는 일이 내겐 소중했다. 그런데도 망각의 수렁에서 몸은 허우적거렸다. 

다큐멘터리 속 설산의 등반가들은 더욱 각박하다. 호흡이 가쁜 정상에서 벌이는 파노라마는 눈부시지만 목숨을 떼어놓고 덤비는 일이다. 자일에 매달려 동사한 동료의 시신은 눈사태로 떠밀려 나가기도 한다. 저승길에 든 자들의 흔적을 밟고 기어이 찾아 눈물 몇 방울 떨어뜨려도 그것마저 얼어붙게 하는 게 설산이다.

화악에서 모여 용수목을 이루는 개울이 시퍼렇다. 그 여울의 소용돌이와 허옇게 부서지는 물길이 꿈틀댄다. 처절한 몸을 담구며 장엄한 산세를 쳐다보았다. 원점회귀를 목표로 붙었던 등산로였지만 어디까지나 산의 표지는 참고용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찾아오는 늦은 오후의 산 그림자는 길을 재촉한다. 길은 어차피 내가 만든다. 

덤불이 우거진 사이로 어렴풋이 푸른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디서 기운이 솟아나는지 지친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달려갔다. 인적도 드문데다 객기가 발동했고 갈증과 더위가 극에 달한 터라 휘도는 물속에 몸을 던졌다. 온 산을 아우르며 쉼 없이 소용돌이치는 계곡물에 몸을 담그자 비로소 달궈진 몸이 안도했다. 

다시 세상을 향해 거추장스런 옷을 걸치고 비상식량도 바닥이 난 배낭을 걸쳤다. 버스 시간도 놓쳤고, 해는 산 너머로 누우려 한다. 길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대책 없이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 

달리는 차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만큼 고행을 했으니 길 잃은 고행을 멈추게 해주시오’하는 은연중의 시위가 담겼다. 짐을 잔뜩 실은 트럭 한 대가 순순히 엔진음을 내쉬며 정차했다. 세워준 운전기사에게 산길에 얽힌 이야기를 쏟아내며 감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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