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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14>] 酒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글 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입력 2019.05.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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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핀 북한산을 찾은 등산인들.
봄꽃이 핀 북한산을 찾은 등산인들.

1905년 폴란드의 헨리크 생키에비치는 <쿠오바디스Quo Vadis>라는 장편소설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951년 영화로 제작된 ‘주主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는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의 주연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새벽 미명微明 로마를 탈출하는 베드로가 밝은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에게 구한 절박하고 심오한 물음은 예나 지금이나 혼돈의 시대에 던진 영원한 화두이리라. 

이렇듯 고귀한 主를 턱없는 주酒로 바꾼 무례에 그 누가 나를 꾸짖어도 할 말 없지만, 토마스 풀러의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과 맞물린다면 이해해 주지 않을까?

대학 교양과목 산행 실기수업 준비물을 일러 주는데 여러 학생이 “교수님, 술은 뭘 가져갈까요?”하고 물어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학생들에게 산이 어떻게 비춰졌기에 단박에 술이 연상될까? 이렇듯 산은 술판이 되고 술로 인한 산행사고가 잦은 현실에 급기야 국가가 국립공원 등에서 음주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고 시행되었음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다. 이런 현상의 이유 중 산은 ‘도전과 성취’라는 프레임에 갇혀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정상주頂上酒를 마셔대고 전투적인 등산으로 힘이 부쳐 고통을 잊고자 마시며, 음주산행이 마초macho적이고 호방豪放한 것처럼 보이는지 술의 힘을 빌려 우쭐대려는 허세도 있으리라.

고백하건대 예전에 북한산 노적봉, 도봉산 오봉 등에서 비박bivouac을 하다 산꼬대를 견딘다는 핑계로 권커니 잣거니 술로 밤을 샜고, 그런 과거를 추억으로 버무려 떠벌인 적도 있다. 이 글로서 나의 지난 날 산에서의 음주가 미화될 수 없으며, 그 시절엔 흉이 되지 않았다는 변명 또한 아니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해 자연에서의 한잔 술이 범법犯法이 되는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현실이 되어버렸음에, 우리 산행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바른 산행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나의 반성이기도 하다.

네팔 사가르마타Sagarmatha국립공원 로지에는 락시가 있고, 일본 33개 국립공원과 중부산악국립공원中部山岳立公園의 고야小屋에서도 맥주와 사케를 팔며, 미국 그랜드캐니언 캠핑장도 음주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설악산 희운각대피소에서는 한 잔의 술과 함께하는 달밤의 낭만을 즐길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무시한 대가로 받은 ‘제재와 구속’의 산행이 쪽팔린다. 자기통제가 되지 않는 산행, 그것은 자신과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례함이며 몸을 망가트리는 어리석음이고, 안전에 대한 무지함이며 산 벗과의 바른 교류도 아니고 자연을 즐기는 방법 또한 아니다. 결국 도를 넘는 음주산행은 법法이라는 울타리에 자신을 가두는 초라한 인격人格이 되고 ‘등산은 B급 문화’라고 개무시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酒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탈무드가 일러 준다. 

“악마가 인간들을 찾아다니기 바쁠 때 대신 술을 보낸다.” 

‘酒와 함께’를 거부하는 그대의 산행은 A급 문화가 되고 산격山格을 높여 주리라 믿는다.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교장/건누리병원고문/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 사)대한산악연맹 찾아가는 트레킹스쿨 교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 교장/월간 산 대한민국 등산학교 명강사 1호 선정 /EBS1 국내 최초 80분 등산 강의/KBS TV 9시 뉴스, 생로병사의 비밀, 영상앨범 산/KBS2TV 헬로우숲 고정리포터/KBS1 라디오주치의 고정출연 등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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