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세계산악영화순례 <13>] 산과 등반에 미친 골수꾼들의 삶

  • 글 최선희 프로그래머
  • 사진 울주세계산악영화집행위원회
    입력 2019.04.29 11:29

    5월의 산악영화, 골수 더트백을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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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알피니즘 부문 작품상 수상작 <더트백>
    더트백dirtbag. 무슨 뜻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더트백의 사전적 의미는 환경 미화원, 쓰레기 수거인, 불결한 녀석, 혹은 언행이 더럽고 막된 사람을 일컫는 개차반을 뜻하는 명사이다. 
    하지만 서양 등반계에서는 등반에만 전념하기 위해 모든 사회적 규범은 물론 직업까지 포기하고 유목민적 삶을 사는 사람을 더트백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저분한 외모는 덤으로 따라온다. 한국어로는 산과 등반에 미친 사람들을 칭하는 ‘산쟁이’라는 말이 유사하긴 하지만, 완벽하게 겹치지는 않는 것 같아 이 글에선 원어인 ‘더트백’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이번 달에 소개할 영화 두 편은 모두 미국의 다큐멘터리로, 원조 골수 더트백들의 등반과 삶을 다룬 장편 영화이다.
    미국 등반계 이단아이자 전설, 원조 더트백 사나이
    더트백 Dirtbag: The Legend of Fred Beckey
    연출 데이브 오리스케│미국│2017│
    96분│color│다큐멘터리
    2017년 94세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 가족, 친구, 직업도 없이 오로지 등반만을 위한 삶을 살다간 미국 등반계의 이단아이자 전설인 프레드 베키는 원조 더트백으로 불린다. 이미 10대 시절인 1930년대부터 등반을 시작해 북미의 수많은 봉우리를 초등으로 올랐으며, 본인의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의 저술까지 많은 산악인들에게 영감을 안겨준 바 있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 제작 의뢰가 있었지만 프레드는 82세가 돼서야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데이브 오리스케 감독의 다큐 제작에 동의했으며, 이 영화가 완성되는 데는 꼬박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등반 이외의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던(영화를 보면 연애는 별개였던 거 같다) 프레드가 평생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모아 온 풍성한 자료와, 90세가 넘어서도 몇 차례 시도했던 중국과 북미의 등반 영상, 프레드와 등반을 함께했던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의 인터뷰, 또 프레드의 전설적인 일화를 재연한 애니메이션 장면까지 96분의 상영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프레드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허울뿐인 속세의 규범과 시스템을 천진하게 거부하며 90이 넘는 나이에도 편법이나 쉬운 길은 생각조차 안 하고 등반의 정도만을 고집했던 그의 삶과 순수한 열정에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지고 원조 ‘더트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알피니즘 부문 대상을 받기 전까지 25개가 넘는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대상 5개, 관객상 2개를 비롯해 25개의 상을 수상했다. <던월>이 2018년을 대표한 산악영화였다면, <더트백: 프레드 베키의 전설>은 2017년을 휩쓴 산악영화였다.   

    프로그래머의 노트


    총 제작기간이 10년이나 됐던 만큼 영화의 스틸 사진들이 무척 다양하고 많다. 

    그중에서 ‘음식 주면 확보 봐주겠음’이라고 쓴 판지를 들고 도로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려는 백발이 성성한 프레드의 모습을 포착한 스틸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한 장의 사진이 프레드 베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단번에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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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브 오리스케.
    감독스토리

    더트백 감독 데이브 오리스케

    오리스케 감독은 미국인으로 1998년부터 본인의 영화 제작사를 만들어 등반과 모험, 환경에 대한 영화와 사진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오리스케 감독은 영화화가 결정되고 나서 처음 2년간은 아예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고 그저 프레드와 함께 등반만 했다고 한다. 영화를 만드는 10년 내내 오리스케 감독이 가장 걱정했던 점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하고 프레드가 사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프레드는 첫 상영회에 참석해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화에 수많은 인터뷰 대상자가 나오지만 친한 친구 혹은 친구라는 타이틀로 나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프레드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한 오리스케 감독과 제작팀이 그의 말년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든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미국 거벽 등반 성지 즐기던 초기 클라이머들
    반란의 계곡 Valley Uprising
    연출 피터 모티머, 닉 로젠│미국│2014│99분│color│다큐멘터리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요세미티계곡은 한 해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미국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암석인 엘 캐피탄과 900m가 넘는 암벽이 즐비한 이곳은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미국 등반가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영화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등반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등반가들의 모습을 풍성한 자료 영상으로 발랄하게 담아내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요세미티 캠핑장의 ‘캠프4’에서 장기간 야영 생활을 하며 오직 등반을 위해 몸을 만들고 함께 훈련하고, 새로운 루트를 만들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클라이머들의 모습은 당시 요세미티국립공원 관리인들에겐 큰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무질서하고 반항적이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온 청춘을 이곳에 바친 클라이머들은 그곳에서 성장하고 정체성을 찾아 갔으며, 미국 암벽등반의 큰 줄기도 이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워렌 하딩, 로열 로빈슨, 이본 취나드, 린 힐의 전성기 등반 모습부터 딘 포터, 토미 칼드웰과 알렉스 호놀드 그리고 올 봄 향년 73세로 타계한 요세미티 등반 개척의 선구자이자 ‘독불장군’으로 불렸던 짐 브리드웰의 생전 등반 모습까지 쟁쟁한 클라이머들을 모두 만나 볼 수 있는 영화로 거벽 등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의 노트

    2015년 봄 네덜란드산악영화제 출장 때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선 휘파람과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고, 필자는 ‘이런 산악영화가 있었다니!’라는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형적 산악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유머, 촬영, 편집, 음악을 아우르는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로, 공개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산악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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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모티머
    감독 스토리
    반란의 계곡 감독 피터 모티머, 닉 로젠  
    이 영화는 두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미국의 등반영화 전문 제작사인 샌더 필름즈의 영화이다. 영화를 전공한 피터 모티머가 대학 친구인 닉 로젠과 함께 설립한 샌더 필름즈는 <던월>을 비롯해 1년에 3~4편이 넘는 등반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본인들의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들을 모아 미국과 세계 전역을 돌며 상영하는 ‘릴 락 투어Reel Rock Tour’를 2006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1960~1970년대에 요세미티를 오르던 클라이머들이 찍힌 빛바랜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가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자, ‘난 개의치 않아’라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요세미티에 모여든 젊고 뜨거운 클라이머들에게 바치는 찬가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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