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기념특집Ⅱl<2> 한국인은 왜 산에 가나?] 산을 좋아하는 유전적 DNA 실존 확인

  • 글 박정원 편집장
  •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19.06.04 20:15

    선천적 녹색선호 유전자와 지형적 정찰 유리한 환경조건으로 길러진 듯
    나이 들수록 잠재성 발현으로 산 찾아…자연과 둘이 아닌 전통사상도 한몫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이나 트레킹을 하는 인구가 전체 성인의 62%에 해당하는 2,600만 명이고, 가장 좋아하는 취미 1위가 운동, 2위가 등산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은 가히 등산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취미 1위인 운동에는 등산까지 포함돼 있고, 바로 뒤이어 등산이 2위이면 대한민국 성인 대부분이 등산을 즐긴다고 보면 될 듯하다. 주말 도심 근교 산이나 조금 먼 산에 가보면 누구나 이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월간<山>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서 등산에 관한 설문조사한 결과, 등산을 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72%), 경치/분위기가 좋아서(38%), 산을 걷는 것 자체가 좋아서(37%), 같이 가는 사람들이 좋아서(21%), 비용이 적게 들어서(17%), 정상에 오르는 기분이 좋아서(17%), 부모님에 이끌려서(5%), 도전과 모험을 즐기기 위해(4%), 그냥 아무 생각 없이(3%), 스릴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1%) 등의 순서로 나왔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이유도 건강을 위해(62%), 걷는 것 그 자체가 좋아서(42%),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40%),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39%), 편안하고 힘이 안 들어서(35%), 경치/분위기가 좋아서(27%),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아서(22%), 비용이 적게 들어서(20%), 같이 가는 사람들이 좋아서(14%) 등의 순서로 응답했다. (등산과 트레킹을 하는 이유 그래픽 참조)
    우리나라 국민들이 등산을 좋아하는 객관적 이유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밝힐 수 있지만 심리적·정서적으로 한국인들이 왜 산과 등산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왜 산을 좋아할까?’란 본질에 관한 의문이다.  
    한국인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해외에서도 매우 궁금해 한다. 등산하는 열풍을 보고 놀라기까지 한다. 더욱이 해외 이민을 간 한국인들조차 산을 좋아하고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의 DNA에 확실히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진단하는 분위기다. 
    한국인의 등산행태에 대해 해외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도 다양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장시간 노동으로 녹초가 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등산’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너무 경쟁적이어서 등산할 때도 일할 때와 비슷하다’며 ‘앞 다퉈 정상에 올라 인증사진 찍고 재빨리 하산하는 산행문화가 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달걀처럼 산이 많은 나라인데다 부유해지고 여가시간이 늘어서 등산을 즐긴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처럼 한반도는 높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봉우리로 이뤄진 산지가 절대적으로 많다. 혹자는 “한반도의 봉우리는 다리미로 펴면 미국 대륙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우스갯소리로 주장한다. 실제로 검증된 얘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산이 많고 굴곡지다는 의미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인에게 서부가 있다면 한국인에겐 산이 있다’고까지 평가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로스앤젤레스의 등산로를 가득 채운 이민 2세, 3세의 재미 한국인을 취재하고는 ‘등산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인의 정체성을 산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궁금해 하는 만큼 한국에서도 의문을 갖고 있지만 아직 명쾌한 해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가설은 있다. 우선 인류의 보편적인 가설부터 접근해 보자.  
    ‘인간은 산을 좋아하고, 나아가 등산을 좋아하는 본능적 유전자를 가졌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인 학자가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 그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이론을 발표했다. 녹색선호 또는 녹색갈증 유전자라고 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생명체의 본질적이고 유전적인 소양이라는 설명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면서 최적의 생태적 공간을 선택한 결과의 유전자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심리학자 스테판 카플란Stephen Kaplan도 자연이 주는 효과를 ‘주의 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 ART’이라고 발표했다.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인간의 주의를 회복시켜 더 나은 집중력으로 이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진화심리학자 고든 오리언스Gordon H. Orians는 녹색갈증과 관련 인간이 좋아하는 환경조건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설명했다. 첫째, 먹을 것과 경쟁자를 먼 거리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트인 장소. 둘째, 절벽 끝이나 작은 언덕, 산꼭대기 등 지형적으로 두드러져 정찰이 편리한 장소. 셋째, 물과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호수와 강이 있는 장소를 선택하며 진화했다는 것이다. 삭막한 환경보다 적당한 높이가 있으며 물이 있는 곳을 삶의 안식처로 살아 왔다. 
    이를 한국적 상황에 대비시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산이란 장소는 위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산에는 어디를 가든지 먹을 것이 있다. 먼 거리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트인 장소는 바로 산성이다. 산성에 있으면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정찰과 공격도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산은 지형적으로 두드러져 평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비교적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산에는 물과 음식을 조금만 움직이면 구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면적에 비해 부족국가가 특히 많았던 이유도 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도 있다. 하나의 산 단위, 즉 산성을 근거지로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은 한반도 사람에게 더욱 산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지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회가 점차 도시화됐지만 도시에 살면서도 잠재적 유전자를 감출 수는 없다. 실제 등산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영국 집중치료의학과 휴 몽고메리Hugh Montgomery 교수가 확인했다. 알프스 몽블랑을 오르면서 등산객 200여 명의 DNA 샘플을 채취했다. 며칠 후 누가 정상을 밟았고, 중간에 하산했는지의 차이에 대해 분석했다. II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모두 정상에 올랐고, DD형을 가진 사람은 14% 정도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히말라야 7,000m 이상급 전문등산가 25명과 일반인 1,900명의 유전자를 채취해 조사했다. 일반인들은 II형과 DD형 유전자를 고루 가진 반면, 전문등산가들은 II형이 DD형보다 5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II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산소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고소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유전자 검사를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분명 II형 유전자를 더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아직 이러한 검사를 개발하거나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이와 함께 인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수렵채취생활 당시의 잠재적 유전자가 발현된다고 한다. 일종의 귀소본능일 수도 있다. 산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도시에 살면 숲이 있는 산에 가고 싶어 하고, 산에 살면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도시로 가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은 산에 가고 싶어 하지만 산에 사는 사람은 도시에 가기를 원하지 않을 비율이 훨씬 높다. 도시를 피해서, 은둔하고 싶어서, 잠재적 유전자를 찾아서, 귀소본능으로 산에 가는 것인데, 다시 도시로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경상대 최원석 교수는 산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을 일컬어 ‘산천DNA’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도시생활에서의 안정적 놀이문화의 부재와 자연과 함께하는 전통적 신선문화의 가치도 한국민에게 산을 좋아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