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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등반가ㅣ알피니스트 시모네 제틀]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는 게 두렵다

글 사진 임덕용 꿈 속의 알프스등산학교
  • 입력 2019.06.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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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리넷따디오로 수상한 이탈리아의 프리솔로 등반가

돌로미티의 티레스(7a) 암장의 오버행을 오르는 시모네 제틀. 그의 뒤로 펼쳐지는 장미공원이란 뜻의 로젠가르텐은 설악산 울산바위의 10배쯤 되는 거대한 바위줄기다.
돌로미티의 티레스(7a) 암장의 오버행을 오르는 시모네 제틀. 그의 뒤로 펼쳐지는 장미공원이란 뜻의 로젠가르텐은 설악산 울산바위의 10배쯤 되는 거대한 바위줄기다.

4월 21일, 젊은 알피니스트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캐나다 하우즈피크Howse Peak를 등반하려던 금세기 최고의 알피니스트인 한스요르그 아우어Hansjorg Auer(오스트리아 35세), 다비드 라마David Lama(오스트리아 28세), 제스 로스켈리Jess Roskelley(미국 36세)의 실종 소식은 전 세계 산악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며칠 후 그들이 하우즈피크 동벽 아래에서 눈사태로 사망했다는 더 슬픈 소식이 강타했다. 구조견이 눈 속에 있는 시신을 찾아 낸 것이다. 4월 16일 정오경 동벽을 오른 후 하산 중 사고를 당했다. 다비드 라마의 모친 클라우디아와 부친 린지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비드는 자기 삶을 산에 바쳤습니다. 다비드의 등반에 대한 열정과 실천은 우리 가족과 항상 함께했습니다. 항상 자신의 길을 따라 가며 꿈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다비드가 산을 사랑하는 과정 중 하나였던 이번 일을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의 수많은 긍정적인 말과 위로에 감사하며 다비드의 인생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산에 대한 마음으로 다비드를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 아들의 마지막 동반자였던 한스요르그와 제스 로스켈리의 가족들과 함께할 것 입니다.” 

나는 이 3명 모두와 친분이 있었다. 특히 다비드 라마는 인터뷰를 한 적 있어 친분이 매우 두터운 편이었다. 처음 만난 건 다비드가 10대 후반이던 아르코에서였다. 아르코 록마스터 대회에 초청 받아 경기를 할 때였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너무 놀랐다. 보는 각도에 따라 동양인으로도 보였고, 다른 서양 선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수줍은 듯 다소곳이 혼자 연습하고 몸을 풀고, 경기에 임했다.

7a(5.12a) 난이도인 티레스 암장에서 장난치듯 벽에 매달려 여유로운 몸짓으로 오르는 시모네 제틀. 마치 창공을 배경으로 유영하는 듯 자유로운 몸놀림이다.
7a(5.12a) 난이도인 티레스 암장에서 장난치듯 벽에 매달려 여유로운 몸짓으로 오르는 시모네 제틀. 마치 창공을 배경으로 유영하는 듯 자유로운 몸놀림이다.

나중에 그의 주변에 항상 붉은 머리의 작은 오스트리아 여자와 매우 키가 작은 동양인이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네팔 셰르파 출신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의 백인 여성 어머니를 둔 혼혈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외 받고 자란 듯한 그의 애잔한 모습이 마치 이탈리아의 백인 아이들 틈에 자란 우리 아들의 어린 시절과 같아 유난히 애정이 가는 친구였다. 그리고 훗날 그가 경기 등반을 떠나면서 어느 날 알피니스트로 변신해 금세기 최고의 알피니스트가 된 것을 보고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스위스 머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3대 히말라야 거벽인 안나푸르나 남벽을 프리솔로로 하루 만에 오른 율리 스텍이 하늘로 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3명의 사고 소식은 ‘정말 지금 세계적인 알피니스트들은 살아 있는가?’란 질문을 절로 하게 했다.

이들과 버금가는 등반을 하고, 여러 번 황금피켈상 후보에 오른 키가 무척 작은 이탈리아 알피니스트가 있다. 율리 스텍을 비롯해 위 고인이 된 3명의 알피니스트 모두 키가 상당히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

등반라인을 주시하며 홀드를 당기는 시모네 제틀. 그는 스스로 두려움을 모르는 게 단점이라고 말한다. 아래의 확보자는 스포츠클라이밍 공인강사인 클라우스.
등반라인을 주시하며 홀드를 당기는 시모네 제틀. 그는 스스로 두려움을 모르는 게 단점이라고 말한다. 아래의 확보자는 스포츠클라이밍 공인강사인 클라우스.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게 꿈

시모네 제틀Simone Gietl. 1984년 11월 5일 이탈리아 돌로미테의 산골 브루니코Brunico에서 태어났다. 2009년 알파인 가이드가 되었고, 이탈리아 최고의 산악상인 그리넷따디오로(황금 화강암상)를 2016년에 받았다.  시모네의 삶이 바뀐 건 18세 때였다. 학교를 갈 때마다 길에서 차를 얻어 타는 히치 하이킹을 했는데 어느 날 운전자가 자신의 등반 세계를 들려 주었다고 한다. 

시모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돌로미테에서 태어나 18년을 자라며 보아 온 산이었지만 자신의 정원만 바라 보았던 그는 새로운 정원 속에서 자신의 산을 보게 되었다. 

이후 시모네는 빛나는 등반을 했다. 인도 히말라야 시블링Shivling(6,543m) 북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초등, 돌로미테의 심장이자 상징인 트레 치메 라바레도Tre Cime Lavaredo 동계 초등과 550m 길이의 오버행 벽에서의 고난이도 프리 솔로 등반 등을 했다. 아이거 북벽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로 꼽히는 오디세이Odysee 초등은 로버트 재스퍼Robert Jasper와 로거 쉘리Roger Schali와 함께했다. 

페루 안데스 산맥의 크루스델수르Cruz Del Sur의 라에스핀지La esfinge(5,325m) 초등을 했으며, 히말라야, 중국, 남미, 알래스카, 유럽의 험봉을 찾아 다니며 초등과 프리솔로 등반 순례를 지금도 하고 있다. 나와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등반과 삶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제 꿈은 아주 간단해요. 행복하게 아주 오래 사는 것이지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하는 것이고, 가능한 오랫동안 길게 등반하는 것이지요. 지금껏 가장 좋았던 등반은 2017년 비토 메시니Vito Messini와 함께 등반한 인도 히말라야 시블링 시바스 아이스Shivas-Ice 루트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루트였지요.

그러나 제게 등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고의 여성이며 저희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는 아내와 두 명의 장난꾸러기들입니다. 제 삶의 1순위는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등반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리지만 등반을 한다면 아버지로서 무척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장난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재미있는 등반 놀이가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강요되거나 혹은 유도하려는 것을 저는 경계하고 참아야 합니다. 그들의 길을 그들이 스스로 행복하게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가 할 일이지요. 제가 산 보다 더 좋아하고 즐기는 취미는 아내와 아이들과 산책하는 것입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오버행을 자유롭게 오르는 그는 한 마리의
새처럼 가벼운 몸짓이었다. 뒤로 로젠가르텐의
현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오버행을 자유롭게 오르는 그는 한 마리의 새처럼 가벼운 몸짓이었다. 뒤로 로젠가르텐의 현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산은 인생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산은 제게 매력적인 영감을 주며 계속 새로운 도전을 제공합니다. 산에 있을 때 정말 행복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강한 것을 알고 있지만 불멸하지는 않다’는 철학으로 산에 갑니다. 나는 산에서 기쁨을 나누고 행복하고 싶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거벽Die großen Wande>인데 몇 백 번은 읽은 것 같아요.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항상 새로운 산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메스너와 같이 강연하고 있는 저를 보고 스스로 많이 놀랐습니다. 그를 직접 보는 것만 해도 감격해서 잠을 못 잤었는데?

세계적인 산악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산은 등반가를 힘들게 하지만 그 대가로 인생을 극복하게 한다’고 말이죠. 저는 이런 기회를 만났을 때 산이 저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알피니즘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배우게 되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지나친 용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세히 말한다면 극복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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