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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나홀로 세계일주ㅣ스리랑카] 인도양의 보석 ‘엘라’ 여행자들의 파라다이스

글 사진 김영미 자유여행가
  • 입력 2019.06.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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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선정‘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50’중의 한 곳…천혜의 경관과 고대 유적 있어

주변의 울창한 숲, 깊은 계곡과 어우러진 나인아치브리지는 석재 벽돌과 시멘트만으로 건설되었다.
주변의 울창한 숲, 깊은 계곡과 어우러진 나인아치브리지는 석재 벽돌과 시멘트만으로 건설되었다.

습하고 무더운 남인도를 거쳐서 스리랑카Sri Lanka를 여행하겠다고 결정한 건 구글 지도에 초록색 부분이 많아서이다. 그곳은 산일 테고 내가 좋아하는 트레킹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를 뉴질랜드와 같이 짙은 초록으로 우거진 숲과 시원한 폭포를 곁에 두고 걷는 상상만으로 바다를 건넜다.

인도양의 진주, 인도양의 눈물이라 불리며 영국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50’ 중의 하나인 스리랑카. 천혜의 자연 경관이 빚어낸 환상적인 풍광뿐 아니라 곳곳에 풍부한 고대 유적지를 만날 수 있고 스킨스쿠버, 스노클링, 서핑, 코끼리 사파리 투어, 트레킹, 그리고 고래관광까지 각종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면이 바다이니 해산물의 천국이다. 새우, 굴, 참치, 꽃게 등 열거하기에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들이 새벽 어시장에 즐비하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화려한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들이 풍부한 스리랑카를 걷는 생각만으로 이미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엘라로 향하는 기차의 창밖으로 초록의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엘라로 향하는 기차의 창밖으로 초록의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달리는 슬로 기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달리는 슬로 기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에서 만난 꼬마친구

여행자들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엘라Ella’로 가는 길은 슬로 기차에서 시작된다. 콜롬보에서 출발한 기차는 스리랑카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캔디Kandy, 온통 차밭의 초록의 구릉이 펼쳐지는 ‘세상의 끝’이라는 누와라에리야Nuwara Eliya를 거치면서 엘라에 도착한다. 캔디부터 엘라까지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에서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곁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싱그런 초록의 차밭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엘라로 향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많은 여행객들이 달리는 기차의 난간에 매달려 나를 향해 질주하는 기차를 바라보며 인생에 남을 사진을 담는 모습은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스리랑카 기차 여행의 또 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이 철로는 19세기 중반 영국 식민지 시절에 고산지대에서 수도 콜롬보까지 차와 커피를 실어 나르기 위해 영국이 건설한 것인데 지금도 운행하고 있으니 스라랑카 역사의 산 증인이다.

여명과 함께 운해가 깔리고 있는 엘라 계곡.
여명과 함께 운해가 깔리고 있는 엘라 계곡.
운해 위로 붉은 햇살이 올라오고 있는 리틀 아담스 피크의 일출.
운해 위로 붉은 햇살이 올라오고 있는 리틀 아담스 피크의 일출.

내가 탄 슬로 기차는 딱 3칸만 있는 꼬마기차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몇 안 되는 현지인들조차 앉을 자리가 없다. 겨우 기차에 타서 배낭을 통로에 두고 힘들게 서 있으려니 앞에 앉았던 러시아 관광객 남자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잠시 편하게 앉아서 가나 했는데 아이 넷과 함께 탄 현지인 가족이 내 눈길에 들어온다. 아이들 중에 두 명은 네 살과 여섯 살. 네 살짜리 아이를 내 옆으로 앉혔다. 수줍어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한참 바라보다가 배낭에서 초콜릿을 꺼내어 아이에게 건넸다. 수줍어하던 아이의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초콜릿을 받아들고 한참동안 주물럭거리다가 드디어 개봉! 누나, 형들, 엄마, 아빠, 할머니, 지금 안 계시는 할아버지까지 부르며 초콜릿을 가족들에게 나누어 준다.  심지어 기차에 같이 탄 외국인들에게까지. 같은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웃음꽃을 선물해 준 아이.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나눌 줄 아는 꼬마 친구. 기찻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았다.

엘라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터.
엘라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터.

엘라 록에서 화려한 일출과 조우

엘라는 광활한 차밭, 아름다운 기찻길뿐 아니라 울창한 삼림,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폭포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엘라 록Ella Rock 주변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원시림과 시원하게 탁 트인 조망이 펼쳐 있어서 걷기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그 멋진 길에서 태양과 제일 먼저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엘라 록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보려면 최소한 새벽 3~4시에는 엘라 타운에서 출발해야 한다. 컴컴한 밤에 산으로 오르는 동행을 구하는 건 참으로 쉽지 않다. 편도 3km, 왕복 6km의 아주 짧은 거리인데도 엘라 록을 오르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엘라 록으로 가는 도중에 길을 알려주는 현지인을 만나면 으레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즐거워야 할 길에서 조금이라도 불쾌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이정표가 거의 없는 어둠속의 길을 걸어야 하는 부담감에 인터넷에서 다른 이들의 경험담을 확인하고 정리했다. 다행히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오스트리아 청년 데이빗이 선뜻 가겠다고 나섰고, 브라질 아저씨 알리, 인도 청년 크리쉬나까지 합류하니 완벽한 한 팀이 꾸려졌다. 내일 새벽에 들머리인 키탈Kital 기차역까지 이동할 바이크도 미리 빌려 놓았다. 

나인아치브리지의 난간에 앉아서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
나인아치브리지의 난간에 앉아서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

키탈 기차역에 바이크를 세우고 엘라 록으로 오르는 진입로는 맵스미Maps.me에 의존해서 힘들지 않게 잘 찾았다. 어둠속에서 랜턴에 의지해서 걷다 보니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다리가 나타났다. 이 길만 따라서 가면 쉽겠다고 생각했는데 차밭과 수풀지역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다가 결국 다른 사람들이 걸었다는 길은 찾지를 못했다. 어둠속에서는 바로 옆의 길도 안 보일 때가 많다. 특히 처음 가는 길은 GPS 트랙이 있으면 더욱 쉽고 안전하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최선의 선택은 맵스미의 루트를 따라 가는 것! 다행히 산에서도 GPS 신호가 잘 잡히는 맵스미 덕분에 어렵지 않게 1시간 반 만에 엘라 록에 도착했다.

하늘에는 온통 초롱초롱 별들이 가득하고 은하수까지 반겨주었다. 삼각대는 없지만 바윗돌에 의지해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담으면서, 간식 겸 아침을 먹으며 각자의 여행 보따리를 풀었다. 외모부터 남다른 브라질 아저씨 알리는 전 세계의 유명 트레일은 거의 다 다녀온 프로급 트레커였다. 브라질 트레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오기 전에 꼭 연락하면 멋진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로 여행 갈 곳은 자꾸만 늘어간다.

산 저편에서 살짝 여명의 빛이 올라오는 순간, 우리들은 엘라 록에서 조금 더 올라가 와이드 뷰 포인터로 올랐다. 하늘로 두 팔을 번쩍 올리고 있는 소나무 숲길과 마주하는 순간, 새벽의 짙은 나무 향이 우리를 감쌌다. 절벽 끝, 엘라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터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햇님이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왔다. 뒤편의 산봉우리에서는 누군가 레이저 빔을 쏜 것 같은 강렬한 섬광이 계곡으로 번쩍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빛, 운해까지 동반한 멋진 일출. 예상 밖의 화려한 햇님의 등장에 모두 로또 복권이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즐거워했다. 세 명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늘 가이드가 정말 훌륭했어”, “덕분에 이런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어…”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서 더욱 행복이 커지는 순간이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엘라 계곡이 조망되는 리틀 아담스 피크의 정상.
시원하게 펼쳐지는 엘라 계곡이 조망되는 리틀 아담스 피크의 정상.
리틀 아담스 피크 입구에서 만난 차밭으로 일 하러가는 여인들.
리틀 아담스 피크 입구에서 만난 차밭으로 일 하러가는 여인들.

세상이 환하게 밝을 때까지 여유롭게 일출을 즐기고서 엘라 록으로 내려오니 몇몇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남들은 오르는 시간에 우리는 내려갔다. 양손에는 멋진 일출 선물을 들고서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온 전사처럼 의기양양하게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는 이들을 맞이했다. 

울창한 숲길에는 어둠속에서 보지 못했던 꽃들이 지천이다. 꽃 따라 걸으면서 점점 커지는 행복만큼 우리들의 목소리도 점점 하이 톤이 되어 엘라 록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아뿔싸!! 올라올 때와 다른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만만치 않다. 어둠속에서 이 길로 왔더라면 작은 사고라도 생길 수 있는 길이었다. 

라바나폭포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행객들.
라바나폭포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행객들.

강행군을 해서 키탈역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어려움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즐기기 위해서 길을 나섰으니까.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는 순간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지인이 등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길을 알려주면서 돈을 요구했다. 우리가 그의 각본대로 움직였었나보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는 순간이다. 돈은 있었지만 주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우린 지금 돈이 없어. 숙소에 모두 두고 왔거든.” 

그 순간 울상이 된 그 현지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각종 야생화가 지천인 엘라 록 주변.
각종 야생화가 지천인 엘라 록 주변.
엘라 록 하산 길에 유일하게 발견한 이정표.
엘라 록 하산 길에 유일하게 발견한 이정표.

리틀 아담스피크

불과 30분이면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

며칠 전에 밤새 오르던 아담스피크Adam’s Peak. 높이는 2,243m에 불과하지만 엄청나게 가혹한 순례길이었다. 산 정상의 큰 발자국 흔적이 새겨진 바위를 두고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모두 자기들의 종교성지라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돌계단으로만 형성된 길을 1,000m 이상 올라야 하는 힘든 등산코스이고, 최소한 4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정상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벽 2시 전에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그 아담스피크와 같은 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리틀 아담스피크를 향했다. 리틀 아담스피크는 아담스피크와는 달리 들머리에서 불과 30분이면 정상에 올라 엘라의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어둠속에 출발했지만 가다 보니 어렴풋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여명이 올라오는 시간, 주위 산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깔렸다. 운해다. 저 너머 옅은 하늘 사이로 경계선이 드러나는 산들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이다.

정상에 도착하니 해가 뜨기 전인데도 360도 파노라마로 엘라 조망이 펼쳐졌다. 정상에서 잠시 해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우리 시야를 막고 있는 산언덕을 넘어서 건너편의 산으로 올랐다. 아까는 가렸던 나무도 보이지 않았고 일출 조망도 완벽한 장소이다. 시커먼 구름 위로 뻗은 주홍빛의 햇살은 심상치 않았지만 구름에 가려진 햇님은 세상 밖으로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진 않았다. 70%의 일출을 맞이했지만 구름 덕분에 운해를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다. 

일출을 본 뒤 바이크로 엘라 주변 폭포를 찾아서 일주를 하고 엘라에 돌아오니 마침 일몰시간.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산의 능선 위에 벌건 태양이 걸쳐 있을 상상을 했다. 주저 없이 리틀 아담스피크로 또 향했다. 30분이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니 부담감은 거의 없었다. 나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태양은 구름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엘락 록 주변에는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이 펼쳐진다.
엘락 록 주변에는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이 펼쳐진다.
엘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홍차 립톤의 원산지인 하푸탈레 차밭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엘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홍차 립톤의 원산지인 하푸탈레 차밭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나인아치브리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나인아치브리지Nine Arches Bridge는 미얀마의 곡테익철교Gokteik Railway Viaduct만큼이나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엘라의 관광 포인트이다. 스리랑카를 알리는 홍보물에 가장 많이 출현하기도 했다. 엘라와 데모다라Demodara기차역 사이에 위치하며, 엘라역에서 기차선로를 따라 걸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나인아치브리지를 건설할 때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철근을 공급받을 수 없어 공사가 중단되자 현지인들이 석재 벽돌과 시멘트로 다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자존심이 담겨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나인아치브리지에 기차가 들어오니 곡선으로 휘어진 선로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유럽 중세시대로 이동할 것만 같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나인아치브리지 위의 선로를 걷거나 다리 위의 난간에 걸터앉아 엘라계곡의 풍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어느 한 사람 제지하지도 않았다. 시속 20km가 채 안 되는 기차가 지나갈 땐 다리의 난간 옆으로 바짝 기대기만 해도 안전해서 가능하다. 나인아치브리지를 보러 가기 전에 하루 6~7회 정도 운행하는 기차 시간을 알아두면 더욱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더위에 지친 여행자들의 최고의 선택, 엘라

엘라는 스리랑카 중남부의 고원지대로 여행자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하듯이 여행의 피로를 풀고 쉬어가는 마을이다. 도시라고 부르기에 어색할 만큼 메인도로 양쪽으로 줄 지어 있는 레스토랑이 전부인 작은 마을, 그곳엔 언제나 여행객들이 가득하고 활력이 넘친다. 우리네 삶에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있듯이, 스리랑카 여행 중 엘라에서 잠시 쉼표를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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