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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트레킹ㅣ하와이 빅아일랜드] 육지가 태어나는 태초의 신비

글 사진 우태영(언론인)
  • 입력 2019.06.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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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라우에아 화산 트레일…바다 속 잠겨 있는 마우나케아산 높이 1만m

라바가 굳어서 만들어진 크레이터 로드 주변의 땅.
라바가 굳어서 만들어진 크레이터 로드 주변의 땅.

예로부터 사람들은 지옥을 상상해 왔다. 살아 있을 때 죄 지은 자들이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을 당하며 죗값을 치르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이 그린 지옥도들 중에 빠지지 않는 광경이 벌겋게 달구어진 쇳물이 끓어오르는 장면이다. 땅속 깊이 자리 잡은 지옥 바닥에서 펄펄 끓는 쇳물 한가운데로 떨어진 죄지은 자들이 조롱거리가 되어 고통당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고 악행을 뉘우친다. 

우리가 사는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상상 속의 지옥을 떠올릴 만큼의 고열 때문에 녹은 암석이 액체 상태로 펄펄 끓고 있다. 붉고 뜨거운 액체 상태의 암석을 ‘라바lava’라고 부른다. 라바는 지각을 뚫고 화산으로 분출된다. 라바가 지상으로 나와 식으면 다시 현무암 같은 암석으로 변하며 새로운 육지를 만들어낸다. 지옥보다 뜨거운 지하에서 달구어지며 죗값을 치른 라바가 지상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의 은총을 받고 나서 비로소 검은 육지로 부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울릉도 등은 오래전 분출한 라바가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이다. 그러나 현재는 지각이 안정되어 라바가 분출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라바의 분출로 형성된 암석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부식되고 식물이 자라나 숲이 형성되면서 뜨거웠던 태초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열대우림이 자라는 산길을 내려가면 마침내 킬라우에아 칼데라 바닥에 도착하게 된다.
열대우림이 자라는 산길을 내려가면 마침내 킬라우에아 칼데라 바닥에 도착하게 된다.

태평양에 위치한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Hawaii는 라바가 분출되어 형성된 화산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와이의 바다 밑에는 태평양 바다 속에서 7,000만 년 동안 분출된  라바가 굳으며 쌓여 만들어진 6,000km의 거대한 하와이 해저산맥이 뻗어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하와이 해저산맥 중에서 바다 위에 드러난 부분이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섬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빅아일랜드는 하와이뿐만아니라 미국의 영토 가운데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이 1만3,170km²로 전체 하와이 면적의 63%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제주도 면적의 8배라고 보면 된다. 빅아일랜드는 동시에 가장 젊은 섬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육지이다. 지금도 땅속에서 라바가 분출되어 바다로 흘러내리며 새로운 땅을 만들어내고 있다. 

빅아일랜드는 코할라, 마우나케아, 후알랄라이, 마우나로아, 킬라우에아 5개의 화산이 분출한 라바와 화산재가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킬라우에아 칼데라 바닥에서는
어느덧 식물이 자라나고 있다.
킬라우에아 칼데라 바닥에서는 어느덧 식물이 자라나고 있다.

화산국립공원

빅아일랜드의 5개 화산 가운데 남쪽에 위치한 높이 1,247m의 킬라우에아산은 지금도 화산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학자들은 킬라우에아산이 30만~60만 년쯤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젊은 땅덩어리인 빅아일랜드의 5개 화산 가운데에서 가장 어린 화산이다. 

미국의 지질학자들은 킬라우에아산이 해저에서 형성된 시기를 21만~28만 년 전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이 화산에서 분출된 라바가 쌓여 바다 위로 드러나기 시작해 육지가 된 것은 대략 1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킬라우에아의 표면은 라바가 분출해 굳은 용암과 화산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암석은 1,000년 이내에 분출한 라바가 굳어져 형성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활화산인 킬라우에아에서는 최근까지 라바가 지속적으로 분출되었다. 올해에는 라바 분출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라바가 분출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킬라우에아산은 현재에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1916년 빅아일랜드에서 화산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로아 화산 지역 일부를 포함해 화산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987년에는 유네스코가 이 지역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화산국립공원의 면적은 1,308km²에 달한다. 화산국립공원의 킬라우에아 정상에서는 화산 폭발로 발생한 거대한 칼데라와 지금도 가스를 분출하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화산국립공원에서는 또 외계행성을 방불케 하는 불모의 검은 사막, 라바가 흘러내려 새로이 만들어 놓은 바닷가의 검은 신천지, 그리고 열대우림 등 다양한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킬라우에아 칼데라 주위의 땅 속에서는 지금도 허연 가스가 분출되고 있다.
킬라우에아 칼데라 주위의 땅 속에서는 지금도 허연 가스가 분출되고 있다.

화산국립공원에 있는 킬라우에아 방문자센터에서 짧은 트레일을 가면 거대한 칼데라caldera 주위를 지나면서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지난 4월 말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전망대 주위 파인 땅 곳곳에서는 검은색 현무암들 틈으로 허연 가스가 끊임없이 분출하고 있었다. 가스의 성분 대부분은 아황산가스로 인체에 유해하다. 

킬라우에아 칼데라는 지름이 3.2~4km나 되는 거대한 타원형이다. 멀리서 보아도 바닥은 라바가 굳은 검은색 암석이다. 칼데라의 가장자리를 이루는 절벽의 높이는 최대 120m에 달한다. 5월 초 이곳에서 관광객 한 명이 추락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칼데라의 가장자리에는 라바가 흘러나왔던 곳으로 보이는 분출구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이러한 곳들에서는 흘러나온 라바가 굳은 뒤 잘게 부서지고 쌓여 경사진 비탈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 붉은 라바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칼데라에서 전망대 반대편에 위치한 곳에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crater가 자리잡고 있다. 지름이 770~900m에 달하는 원형 분화구이다. 2018년 5월 17일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서 라바를 분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 지역 전체에 대한 출입을 금지했다. 라바의 분출이 중단된 9월부터 제한된 지역에서만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서는 흰색의 아황산가스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광경을 바라볼 수 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토착신앙에 따르면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는 화산의 여신 펠레가 살고 있다. 펠레는 화산의 여신이자 하와이 섬들의 창조주이다. 신화에 따르면 펠레는 타히티에서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 동생의 습격을 받고 싸우다 죽는다. 펠레의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남아 킬라우에아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를 안식처로 삼는다. 지금도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서 라바와 연기로 변한 펠레 여신의 영혼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카카폭포는 나이아가라폭포보다
높이가 2배 이상 높다.
아카카폭포는 나이아가라폭포보다 높이가 2배 이상 높다.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는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없지만 킬라우에아 칼데라는 바닥으로 내려가 트레킹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칼데라 바닥으로 다가갈 수 있는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이 있다. 이 트레일은 먼저 좌우로 열대우림이 우거진 시원한 그늘 길을 지나게 된다. 열대의 푸르른 식물들이 우거져 있지만, 특히 거대한 고사리와 다양하고 푸르른 이끼류가 눈에 띈다. 생겨난 지 얼마 안 되는 원시의 땅이기 때문에 원시적인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짙푸른 녹음이 만들어낸 시원한 그늘길을 20~30분 걸어 내려가면 마침내 칼데라 바닥에 다다른다. 20만 년 전에는 거대한 화산의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던 장소이다. 오랫동안 펄펄 끓어오르던 라바가 굳어서 만들어낸 땅이다.

칼데라의 바닥은 솥뚜껑처럼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듯 솟아오른 원형의 검은 돌바닥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20만 년 전 펄펄 끓어오르던 라바가 부분적으로 각기 다른 모습을 만들며 굳어버린 듯하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동심원들의 주름을 유지한 채 굳어버린 형상이 가장 많다. 라바가 굳는 순간 가스가 분출하며 형성된 크랙도 곳곳에 눈에 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크고 작은 현무암 덩어리들도 발에 차인다. 트레킹이 허용된 지역 내에서 직선거리로 1km 이상 되는 거리를 라바가 굳은 땅을 내려다보며 걸으면서 20만 년 전 1,000℃의 붉은색 뜨거운 라바가 설설 끓어오르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뜨거운 붉은 라바에 담긴 화산의 여신 펠레의 영혼. 그 영혼의 본질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면 라바가 만들어내는 땅을 하사받은 인간에 대한 사랑일까? 

불모지일 것 같은 칼데라 곳곳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나며 생명을 전파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나무도 있다. 암석이 풍화되어 흙으로 변한 곳에 바람에 날려 온 식물의 씨앗들이 자리 잡고 생명을 전파하고 있다. 칼데라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에는 이미 숲이 형성되어 있다.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 이곳도 하와이의 따뜻한 날씨 덕분에 열대우림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킬라우에아에서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 이외에도 산 중턱에 있는 거대한 틈에서 라바가 분출한다. 이 틈새에서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라바가 분출해 바다로 흘러내렸다. 그후 라바가 굳으면서 220헥타르(220만 m²)의 새로운 검은 땅덩어리가 만들어졌다. 

킬라우에아 칼데라에서 남쪽 바다까지 이어진 지역은 최근까지 라바가 분출해 만들어진 땅이다. 차를 타고 크레이터로드를 내려가다 보면 사방에 라바가 만들어놓은 땅덩어리를 감상할 수 있다. 차를 세우고 라바가 만든 검은 땅을 밟으며 얼마든지 트레킹할 수도 있다. 라바가 만든 바위와 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라바가 갑작스럽게 굳으면서 형성된 여러 가지 균열이 갖가지 문양으로 다시 태어났다. 검은색 돌마다 동심원이나 그릇을 뒤집어놓은 듯한 봉긋한 원형, 물고기 비늘 같은 형상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갖가지 상상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라바공원이라고도 부르는 이 지역은 한없이 많은 크고 작은 검은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곳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태평양의 푸른 바다로 이어진 드넒은 검은 땅을 전망할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킬라우에아산에서 분출된 붉은 라바가 흐르던 곳이다. 뜨거운 라바는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에 열을 빼앗기고, 푸르른 바다에 이르러 마침내 붉은빛마저 잃고 검은 땅으로 변했다. 

크레이터로드는 굽이굽이 바다로까지 이어진다. 마침내 남녘 땅끝에 다다르면 홀레이 아치가 나타난다. 라바가 흘러내려 만들어진 절벽이 파도에 침식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27m 높이의 현무암 아치이다. 

라바공원 전역에서 지금은 도처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뜨거운 라바가 흐르고 독가스가 뿜어 나오던 곳이지만 점차 생명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라바공원은 지금 당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불모지나 다름없지만 장구한 시간이 흐르면 비옥한 땅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킬라우에아산 자락에는 대부분 용암 위에 열대우림이 우거진 비옥한 토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다를 향한 경사지에는 커피, 파인애플 등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빅아일랜드 섬 동쪽의 중심지인 힐로 주변에는 비가 자주 내려서 수량이 풍부한 열대우림을 형성한 지역이 많다. 

라바가 굳어서 만들어진 땅.
라바가 굳어서 만들어진 땅.

아카카폭포국립공원

힐로에서 북쪽으로 18km 지점에 있는 아카카폭포국립공원은 대부분의 지역이 열대우림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카카폭포는 높이가 135m나 된다. 외줄기 폭포이지만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도 매우 크다. 50여 m 높이의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2배 이상 높은 아카카폭포는 공원 안에 형성된 길지 않은 트레일을 걸어가면서 바라볼 수 있다. 

트레일 주위에는 열대 식물들이 빼곡하게 자라나고 있다. 초록색 도마뱀 등의 신비한 동물들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 트레일을 걸어가다 보면 높이 90m의 카후나폭포 등도 함께 관찰할 수 있다. 

아카카폭포국립공원처럼 빅아일랜드의 동부에는 비가 많이 내려 열대우림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에 밀려 이동하는 비구름이 섬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해발 4,207m의 마우나케아산을 넘지 못하고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마우나케아 정상 주변의 운해, 구름 아래로는 비가 내린다.
마우나케아 정상 주변의 운해, 구름 아래로는 비가 내린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마우나케아산

마우나케아산은 빅아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약 100만 년 전에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이 산의 높이를 합하면 1만 m가 넘는다. 이 때문에 산 자체의 높이만으로 치면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아서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마우나케아산이 6,000년 전에 라바를 마지막으로 분출한 후 현재는 휴화산 상태라고 보고 있다. 

마우나케아는 하와이 원주민들에게는 신들이 살고 있는 매우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정상으로 갈 수 있다. 

마우나케아의 정상을 향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차창 밖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변한다. 처음에는 라바가 굳은 검은 대지에 풀이 덮인 초원지대가 나온다. 얼마를 가다 보면 방문자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경사진 비포장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철문에 ‘4×4 only’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4륜구동 차량만 운행을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용케 승용차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비탈이 심한 비포장도로이므로 내려올 때 핸들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 경우가 많아서 위험하다. 정상을 오르기 전후 고산병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도 필수다.

방문자센터를 지나면 차창 밖으로 운해雲海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지리산 운해도 아름답지만 불모의 황토 아래에 떠 있는 마우나케아산의 운해도 대단하다. 저 구름 아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운해 위에 있는 산 정상 부근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씨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 공기가 건조하고, 밤하늘이 인공조명에 오염되지 않아 천체관측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마우나케아산 정상에는 세계 최대의 천문대가 자리 잡고 있다. 한밤중 별을 관측하기에 좋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우나케아산은 붉은색이다. 붉은 행성이라 불리는 화성으로 여행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킬라우에아산 정상에 있는 것 같은 거대한 칼데라는 없지만 라바를 분출했을 크고 작은 분화구들이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학계에서는 원래에는 거대한 칼데라가 있었지만, 크고 작은 라바 분출이 지속되면서 칼데라를 메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우나케아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하와이 빅아일랜드가 선사하는 장관 중의 하나이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뿜는 커다란 붉은 태양…도무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던 눈부신 태양이지만 어느덧 동전만큼 작아지며 아득히 먼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다. 하늘에 떠있을 때에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완벽한 원형의 태양이지만 일단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진다. 그토록 위대한 빛을 선사하던 태양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광경이 너무나 안타까워 허망할 지경이다. 

이 모든 운행은 자연의 철칙에 다름 아니다. 화산 폭발과 라바의 분출, 그리고 새로운 땅이 형성되고 다시 풍화되고 침식되어 사라지는 것도 모두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이다. 태양도 화산도 돌도 풍화와 침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피해 갈 수는 없을진대 바닷가를 구르는 조약돌보다도 허약한 인간의 육체가 이 땅에서 영생을 갈구할 수는 없을 터…. 어찌하여 찰나의 생존에 누리지도 못할 욕망과 쾌락을 담으려 성스러운 영혼을 팽개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마다하지 않는단 말인가. 

죽임을 당한 펠레 여신의 영혼이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서 안식을 구하며 라바와 뭉게뭉게 피어나는 연기로 나타난다는 하와이 원주민의 설화에는 이 세상 인간살이에서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귀중한지를 알려주는 태고의 지혜가 담겨 있는 듯하다. 태양이 사라진 캄캄한 마우나케아산의 높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태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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