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ㅣ10년 넘게 장애인과 함께 산행해 온 박태원] “발달장애 청소년과 에베레스트 도전할 겁니다”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C영상미디어
    입력 2019.05.30 17:40

    12년간 사비 털어 발달장애청소년 산행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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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산행을 해 온 박태원 응급처치 강사.
    장애 청소년들의 산이 되어주는 산악인이 있다. 코오롱등산학교 응급처치 강사로 유명한 수원 산악인 박태원(돌비알산악회)씨다. 그는 2년 동안 발달장애청소년들과 훈련한 끝에 지난해 4월 히말라야 간잘라피크(5,675m) 등정에 성공했다. 9명의 장애 청소년 중 4명이 정상에 올랐다. 단순히 해발 5,675m의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편견을 이겨내고 장애라는 산을 넘어선 것이다. 그 뒤에는 장애인 가족과 박태원 강사가 함께한 숱한 시간이 있었다.  
    첫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간다. 경기도 적십자구조대에 장애 청소년 부모들이 찾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산행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부터 박태원 강사는 2~3개월에 한 번꼴로 아이들을 데리고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겉모습은 멀쩡한데 말 한마디만 나누면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주관적인 사고가 어려운 수준이라, 산에서 누가 물병을 앞에 놓아두면 뛰어가서 멋대로 마시고 던져 놓고 그냥 갈 정도였다. 참을성과 판단력이 없어 옆에서 통제해 줄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적십자 강사들과 함께했으나,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그가 소속된 돌비알산악회 회원들을 동원해 산행을 이어간 것이 올해로 12년째가 되었다. 
    히말라야 원정의 발판은 2014년 설악산과 한라산에서였다. 오색을 출발해 중청대피소에서 1박하고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는데 밤이 되어 겨우 하산해서 내려왔다. 또 겨울 한라산에 도전해 새벽 4시에 산을 올라 정상을 거쳐 저녁 6시에 하산했다. 정상인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다려 주면 안전하게 어느 산이든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부모들과 아이들이 자신감 얻어 “히말라야를 가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국내 산행만 해도 박태원 강사를 비롯한 돌비알산악회원들이 사비를 털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사비로 버스를 대절하면 아이 한 명, 부모 한 명씩 20가족이 참가하고 강사 5명이 45인승 버스를 꽉 채웠다.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수입의 상당부분을 쏟아 붓느라 생활이 빠듯한 집이 많아 본인 식대 외의 비용은 부담시키기 어려웠다.  
    불가능처럼 보였던 이들의 원정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실현되었다. 박태원 강사와 인연이 있는 등산을 좋아하는 도의원의 발의로, 경기도에서 예산을 지원 받게 된 것이다. 이후 대원 선발을 위해 2년간 훈련해 우여곡절 끝에 9명의 대원을 선발해 최종 4명의 아이들이 정상에 오르며 처음 히말라야의 꿈을 가진 지 4년 만에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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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잘라피크 정상에 선 발달장애인(아랫줄 가운데)들과 돌비알산악회원들과 셰르파들. 사진 박태원.

    발달장애 4명과 간잘라피크 정상 올라

    이를 위해 아이들은 숱하게 반복 훈련을 했다. 2년의 연습으로 9명 중 절반이 등산화 끈을 묶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들의 장애를 생각하면 부모들은 대단한 발전이라고 말한다. 대원 선발 기준은 훈련과정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아이와 부모를 기준으로 15세부터 26세까지 남자만 갔다. 산행 때는 여자아이들도 있었으나 부모들이 최종 참가를 포기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박태원 강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다른 사람이 시키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철저히 ‘대장’으로 받아들였고 그가 시키면 다 했다. 그는 “야단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반복적인 경험으로 아이들이 산행을 즐거운 놀이로 인식한 결과”라고 말한다. 
    “부모들이 아이를 히말라야에 보낼 수 있었던 건, 산행을 통해 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체력이 월등히 좋아지고,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생겼어요. 점잖아지고, 인내력이 생겼어요.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죠. 잠시도 못 견디는 경향이 있었어요.”
    간잘라피크 정상 등정 후에도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산행을 지원해 주는 브랜드나 후원자는 없다. 그럼에도 박태원 강사는 더 큰 도전에 나섰다. 사비를 쏟아 장애인산악단체를 만들고 있다. 산행에 참가하는 부모들 위주로 수원의 4개 구에 각각 산악회를 만들었고, 이들 산악회 연합단체를 만들고 있다. 자비로 연합회 사무실을 임대해 한 달째 후배 이정수씨의 무료봉사로 공사를 하고 있다. 수원시에 정식 장애인단체로 등록해 교통비라도 지원 받아, 더 많은 장애인들이 산에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무실을 만들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예상했던 금액보다 초과되었어요. 수익사업은 못 하고 있지만, 임대료 걱정 없이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이제 생각해 봐야죠. 제가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서…. 응급처치 강의가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응급처치 전문 강사인 그는 코오롱등산학교를 비롯해 스포츠안전재단,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응급구조사협회, 산림문화컨텐츠연구소, 환경교육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역시 발가락 10개가 없는 지체장애4급 장애인이다. 1992년 구소련 포베다(7,439m)를 등정하고 내려올 때 탈진한 후배를 데리고 오느라, 3일간이나 죽음의 비박을 감행했고 결국 동상으로 발가락 10개를 잘랐다. 지체장애4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1996년 데날리(6,194m)를 등정했고, 2000년 아이거 북벽을 올랐으며, 2008년에는 엘부르즈(5,642m)를 올라 장애를 넘는 등반투혼을 보여 주었다.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을 더 이상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응급처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그때 후배가 죽었더라면 다시는 산에 못 갔을 것”이라 말한다. 
    응급처치 강의로 번 돈을 장애인들을 위해 쏟아 붓는, 그의 가족 입장에선 엉뚱한 가장이지만 “일 하는 아내와 대학 졸업반인 딸이 응원해 주는 건 아니지만 이해해 준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의 이런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돈을 안 받고 하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법 없이 살 수 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이에요. 우리가 아니면 산행할 기회가 전혀 없거든요. 내가 가진 능력을 베푸는 게 아니고 그냥 같이 산을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성숙해진다고 할까요. 꾸밈없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처음 장애인 가족을 만났을 때는 ‘부모가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장애 아이를 보는 즐거움에 산다”는 것. 그만큼 아이들이 유아 수준의 재롱둥이이며, 30세가 넘어도 천사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렵지만 “장애 아이가 있음으로 고통이 아닌 행복을 느낀다”고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단다. 박태원 강사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그런 행복감을 느낀다. 
    그의 소망은 아이들과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발달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 더불어 “장애인 클라이밍센터가 생겨 사계절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이 클라이밍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포베다에서 저승 문턱까지 갔던 후배를 데리고 돌아온 그는, 지금도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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