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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칼럼ㅣ한국적 알피니즘] 대한민국 산악구조대, 그들이 산에 가는 이유?

글 노익상 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 입력 2019.06.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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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적 알피니즘이다

“너, 왜 산에 가?” 

어색한 질문이다. 수 십 년 지기 산 친구들끼리 술도 안 마시고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살갗이 간지러울 수밖에. 그래도 물었다. 전국에서 모인 산악인 60명, 각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산꾼들의 단체인 대한산악구조대 대장과 강사들이다. 그냥 말로 하기는 진짜 어색해서, “오늘 내일 중 이메일로 각자의 생각을 보내 달라”고 했다. 우리의 공통분모가 무엇인지 서로 알고, 또 돌연변이 같은 생각은 무엇인지 공유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구차한 설명을 붙여서 말이다.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아무도 메일을 안 보내면 어떻게 하지? 구조대 대장과 강사들이 “새로 온 회장이 이상한 이야기를 해. 뭐, 그런 질문이 있어? 내가 좋아서 산에 가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장이 답하라고 하니 그냥 건성으로라도 답은 해주자”고 하면 창피한 노릇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메일을 열었더니 반가운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질문은 “왜 산에 가는가?”와 “내가 생각하는 알피니즘”의 두 가지였으나, 실은 산에 가는 마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한 가지 의도였었다. 그래서 두 질문의 답을 구분하지 않았다. 

구조대 대장들의 고백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모두 비슷하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구나. 물론 한 가지 생각만으로 산에 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아래와 같이 분류를 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두세 가지의 이유가 같이 어우러져 있는 듯했다. 

  

첫째, 산 친구들이 좋아서. 산에서 만나는 산 친구들과의 정이 좋아서 산을 자꾸 찾게 된다. 산에서 보면 좋고 내려와서 보면 더 좋고 그래서 그가 산에 가자고 하면 또 간다.   

“20대에는 대학 산악회에서 선배들이 무서워서 다녔습니다. 다니다 보니 후배도 생기고 나름 개똥철학도 생기고 악우들을 많이 사귀면서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산이 좋고 함께하는 선후배들과의 정과 의리에 반해서 오래도록 다니고 있습니다.”

“산정이 아름답고, 산에서 의리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산을 더욱 찾게 됩니다.”

“내가 익혔던 기술과 능력을 후배들에게 전수, 교육하기 위해 다녔던 시기가 많았지요. 지금은 산에 가는 친구들과의 정이 좋아서 다닙니다.”

“높은 산, 좋은 등반도 있겠지만 저는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좋은 알피니즘이라고 봐요.”

“나 혼자가 아닌 등반팀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정상을 향하는 것. 이것이 알피니즘이 아닐까요?”

그러나, “나는 누구와 같이 가도 좋습니다. 누구와도 갈 수 있습니다. 산에 갈 때 동반자를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사람도 있다. 동반자를 가려서 가는 사람보다 조금 더 프로다운 산 꾼이 아닌가 싶다. 

둘째, 산에 가는 것이 나의 삶 자체라는 것이다. 산은 취미의 대상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믿고 또 사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나의 산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산과 산행은 내 삶의 한 부분, 중요한 부분이다. 인생의 생할의 연장선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 산골인지라 친근한 친구로서 함께했던 산이 세월이 지나며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더 높은 더 험난한 산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덧 산악구조봉사라는 정점에 다다랐네요. 이제 산은 나에게 있어 두려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허나, 이 친구와 절친한 벗이 되기 위해 오늘도 산에 오르며 부딪치고 깨져 결국 인생 마지막까지의 동반가로 반려자로 남기기 위해 오늘도 배낭을 꾸립니다.” 

“산과 산행은 저의 취미가 아닙니다. 제 생활입니다. 저의 삶이에요.”

“늘 산을 그리워하지요. 그 속에서의 시간은 바로 저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산 속에서 찾아지는 또 다른 내가 좋아서이다. 여기에는 성취감도 있다. 세속에서는 좀 바보스럽고 못나 보이는 내가 산에 가면 괜찮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산에 갑니다. 나의 도전의 한계는? 나의 능력의 한계는? 산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으러 산에 갑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적한 바에 도달했을 때의 그 과정이 좋았습니다. 힘들고 고통도 있고 거기에 다른 땀의 의미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등반에서 어렵고 힘들 때 하나씩 느끼고 배워가는 나를 찾을 수있기 때문.” 

넷째,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서, 산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간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연과의 동화 또는 일치를 찾으러 갑니다. 그 것 때문에 지금껏 산에 다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내가 곧 산이요, 산 또한 나라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느끼는 동물적인 기분, 그로부터 얻는 무한한 성취감. 이것이 저의 알피니즘 입니다.”

“대자연과의 동화. 이것이 알피니즘”, “어렸을 적엔 그냥 산이 좋아서 산을 올랐고 지금은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즐기고 산에서 느끼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좋아서 간에 갑니다.”

“자연에 가장 가깝고 단순한 원시적 생활 속에서 찌든 속세로부터 일탈의 기회를 갖고 삶의 의욕과 활력소를 찾을 수 있어서.”

“일상의 괴로움의 틀 속에 갇힌 나를 해방하기 위한….”

“산은 나에게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두려운 친구이다.”

“순수함의 결정체. 알피니즘.”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 

다섯째,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활력소가 생겨서 간다. 

“저는 마음이 편해져서 산에 갑니다.” 

“어떤 성취감이나 희열감을 느끼기 위해 산에 간다는 것은 처음에 산을 다니며 생겼던 감정이었고 지금은 뭐랄까….  내 스스로의 안정감을 찾기 위한 등산인 것 같습니다.”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즐기고 산에서 느끼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좋아서 산에 갑니다.” 

“자연 환경이 좋고 모든 걱정들이 잠시 잊혀지고 생활의 고민들에 대한 휴식을 얻을 수있으며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서”.  

“마음과 신체를 정화하기 위하여 산을 오르고 활력을 찾기 위하여.”

“어느 날부터인가 산에 다녀오면 나에게 에너지가 생기고 활력이 넘쳐요.”

여섯째, 미지, 도전, 탐구, 그것이 좋아서. 

“새로운 대상지가 주는 설렘.” 

“모험과 즐거움과 반가움이 알피니즘.” 

“미지에 대한 모험의 설렘, 성취감에 수반되는 즐거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 반가움. 저의 알피니즘입니다.”

“미지의 길.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 언제나 가는 그 길도 같은 길은 없습니다.”

“바위를 처음 접하면서 길이 아닌 곳을 올라 갈 수 있구나.”

그러나 아직 왜 산에 가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왜 산에 갈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인 데, 그저 산이 좋아서 산에 다녔는데, 이 기회를 통해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종합한 대장도 있었다. 

“나는 왜 산에 가는가? 자유로움을 신고, 새로움을 메고서 두려움 반, 설렘 반을 타고서 기쁨과 고난의 길을 오르고 만족과 부족함의 그 아리송한 느낌을 안고 하산하는 매력에 매료되어 또 다른 산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의 알피니즘이란? 함께, 즐기는 행복한 오름 짓.” 

구태여 무슨 사족이 필요하랴. 산과 산행은 나의 삶, 그 자체이다. 그 도전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의 정을 느낀다. 무엇보다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 이것이 알피니즘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고통 속에서의 행복이다. 

추신: 우리의 생각을 나누어 준 대한산악구조대 모든 대장과 임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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