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에코 트레일ㅣ37~38구간 선달산 르포]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서 발견한 평온함

입력 2019.07.04 11:07

고치령~마구령~갈곶산~선달산~옥돌봉~도래기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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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향 가득한 선달산 줄기를 걷는 블랙야크 셰르파들. 선달산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순수한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
출세한 형과 동생 사이에 낀 신세다.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선달산이 있다. 이 산에 신선이 놀았다는 유래가 힘을 받지 못하는 건, 숲으로 덮인 평범한 육산이기 때문이다. ‘선달先達’은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정승·판서의 형제 사이에 낀 선달산과 비슷한 처지다. 
한 달 만에 찾은 고치령, 초록이 싱싱했다. 은발의 열혈 산사나이 권태도·김진희 블랙야크 셰르파와 지구력의 여인 박춘영 셰르파가 함께했다. 익숙하게 “화이팅!”을 외치며 맑은 초록빛 세상에 입국했다. 진달래 지고, 철쭉 지고, 야생화도 없다. 봄날은 지나간 건가? 앙상했던 능선은 거짓말처럼 초록으로 뒤덮였다. 억울하다. 대간의 봄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경치도 꽃도 기암괴석도 없다.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가끔 나타나는 안내판이 아니었다면 국립공원인 줄 모르고 지나쳤을 법하다. 철쭉이 많다는 것 외에는 어느 야산에서나 볼 수 있는 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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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 구간을 걷는 박춘영 셰르파. 사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는 차분한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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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울과 신갈나무가 싱그러운 갈곶산 능선길.
산길은 사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이상하게 걸을수록 평온해졌다. 단순한 걸음의 반복이 평온을 가져왔다. 어떤 사람을 마주치리란 기대도, 감탄을 쏟아낼 정상도 없다는 것이, 팽팽히 당겨진 마음의 경계선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신록을 지난 잎 위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소프라노 선율로 흐르는 새소리, 나뭇잎 사이를 유영하며 목을 쓰다듬는 기분 좋은 바람, 지루한 산이 아니었다. 산길을 지나는 것은 우리 말고도 많았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다. 
1096.6m봉을 지나자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마구령이다.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28㎞ 구간을 하루 만에 끝내는 대간꾼이 대부분이지만, 촬영을 하고 산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느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3일에 나눠 도래기재까지 갈 계획이다. 
사실 취재진의 느린 속도를 비웃으며 자신의 산행기록을 자랑하는 등산인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 백두대간이 몇 시간 만에 주파하고, 며칠 만에 완주했다는 개인의 명예와 자기과시를 위한 도구가 되었는지. 속도를 중시하는 무한경쟁 체제가 산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산의 내력에 관심 갖는 대간꾼이 몇이나 있던가. 당일 산행에 수백수천 번씩 마주치면서도 이름 하나 모르는 나무와 꽃, 우리는 산을 사랑하는 것인가, 욕구해소를 위해 산을 이용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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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달마을에서 늦은목이재로 이어진 길의 낙엽송숲. 신선한 아침 햇살이 둥근 잎을 틔운 쪽동백나무 사이로 쏟아진다.
대간 기슭의 펜션에서 하룻밤 묵고, 다시 마구령을 찾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말을 탄 군사들이 자주 넘던 고개라 마군령馬軍嶺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지금은 고구려 군사 대신 강력한 햇살이 힘으로 쏘아붙였다. 
고도를 높이고 있었지만 느긋한 성미의 능선이라 호흡은 잔잔했다. 어렵지 않게 갈곶산(986m) 정상에 올라서니 신갈나무와 키 큰 진달래가 수고했다며 경치 없는 소박한 터를 내어준다. 바다의 튀어나온 육지를 뜻하는 ‘곶’이 산 이름에 붙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봉화나 영주에서 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튀어나온 육지처럼 산이 솟지 않았나 상상했다. 
늦은목이에서 물야면 생달마을로 하산한다. 낙엽송이 곧게 뻗은 계곡에는 노린재나무 꽃, 민백미꽃, 풀솜대꽃이 하얀 손을 내밀며 수고했다고 다독여 주었다. 귀촌한 지 10년쯤 되었다는 부부의 펜션에 묵었는데, 직접 키운 상추며 채소를 아낌없이 주었다. 사람도 산을 닮아 가는지 풍요로운 식생만큼 인심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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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령에서 갈곶산으로 이어진 완만한 대간길을 걷는 셰르파들.
늦은목이로 오르는 아침, 새소리가 유난히 아름다웠다. 숙소에서부터 걷는 거리를 포함하면 구간 종착지인 도래기재까지 16km를 가야 한다. 특히 선달산과 옥돌봉에서 한 번씩 올려쳐야 하기에, 만만찮은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느슨한 고개’라는 이름 풀이처럼 대간에 올라서기까지 완만하여 수월했다. 해발 1,000~1200m까지 힘자랑을 하던 주능선이 760m로 푹 들어간 곳이니, 그럴만했다. 
늦은목이재에서 국립공원 구역과 이별하고, 자유로운 향기가 나는 선달산에 들어섰다. 지도에서 본 등고선의 촘촘함에 비해 산행이 수월했다. 호흡은 여유로웠고 둥글둥글한 철쭉 잎을 관통한 햇살은 한결 순하게 누그러져 있었다.  
선달산도 정상 표지석은 여느 명산 못지않게 늠름했다. 경치가 없을 뿐 숲은 보전이 잘 되어 있었다. 눈개승마와 병꽃나무 꽃이 간간이 윙크하고, 큰앵초는 특유의 폭죽 같은 분홍꽃을 터뜨리며 반겨주는 것 같았다. 선두의 주민욱 기자는 뱀이며 멧돼지,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을 한 굽이 넘어설 때마다 마주치고 있었다. 오히려 소백이나 태백에 비해 찾는 사람이 드문 탓에 가공되지 않은 산 그대로의 산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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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를 헤치고 가는 김진희 OB셰르파. 대부분 초보자가 걷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산길이 잘 나있다.
550년 된 철쭉의 우아한 용틀임
선달산 정상부터 강원도가 시작된다. 작년 4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블랙야크와 함께하는 백두대간 에코트레일’이 지리산을 출발해 강원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산이 더 높고 험준해질 것이 분명했지만, 종주대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이럴 때 더 조심해야 함을 되뇌며, 수시로 현 위치를 확인하고 신중하게 운행했다.  
높이 967m 고개인 박달령에 닿자 북적북적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무리 산악회원들이 임도가 지나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구석에는 대간꾼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높은 곳에 있는 신령스런 고개’라는 뜻답게 한쪽에는 산령각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소나무가 많은 산이었는데, 지금은 쇠퇴해 활엽수에게 밀려났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철쭉, 진달래, 개옻나무, 노린재나무, 미역줄나무, 물박달나무, 사스레나무, 쪽동백나무, 당단풍, 함박꽃나무가 빼곡하게 고산능선을 장악했다. 1,000m대 능선치곤 다양한 나무가 공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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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과 옥돌봉 정상 오름길을 제외하면 이번 구간은 대체로 완만해 산행이 수월하다.
오후 3시가 넘자 경북 지역에 내려진 폭염주의보가 대간 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옥돌봉(1,242m)의 가파른 계단까지 더해 땀으로 온 몸이 젖었다. 가끔 빽빽한 숲 사이로 실바람이라도 불면 멈춰 서서 시원함을 음미했다. 아까시 꽃내음 같은 은은한 달콤함이 묻어났다.  
이름과 달리 바위 없는 옥돌봉, 경치는 없지만 속은 시원하다. 몇 모금의 물과 하산만 남아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하산길을 배웅하는 건 550년 된 철쭉. 우아한 곡선으로 승천하려 용틀임을 하고 있다. 반세기를 살아낸 나무의 꽃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맑은 날 상쾌한 마음으로 마주치는 이 순간도 좋은 연이다.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길, 아기 살내음이 난다. 고산 능선은 6월 초에도 신록의 티를 벗지 못했다. 독기 덜한 어린 수풀의 향기가 선달을 닮았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해 갑갑한 심정이겠지만, 세상살이의 혹독함 겪지 않은 순수를 간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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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 정상에 오른 블랙야크 셰르파들. 왼쪽부터 박춘영, 권태도, 김진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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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령의 큼직한 표지석. 정자가 있어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선달산 구간 종주 가이드
산행보다 들머리와 날머리 교통편이 관건이다. 고치령, 마구령, 도래기재 모두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고치령과 마구령은 경차는 엔진에 무리가 갈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가파르고 좁은 산길이다. 대간 남쪽의 영월·봉화를 기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수월하다. 산행을 마친 후 차량 회수에만 한 시간이 걸리므로 시간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자가용보다 3~4명 인원이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진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산행은 전반적으로 이정표가 뚜렷하고 능선이 선명해 길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육산인 탓에 위험한 곳도 없다. 늦은목이에서는 1.2km만 내려서면 용운사 앞 도로로 연결되므로 중간기점으로 나누기 좋다. 도로 포장은 잘 되어 있으나 버스는 들어설 수 없는 좁은 길이다.
교통(지역번호 054)
영월버스터미널에서 고치령까지 30km, 봉화버스터미널에서 33km 거리이므로 어디를 기점으로 하든지 비슷하다. 다만 날머리인 도래기재에서는 봉화가 훨씬 가깝다. 단산면까지 군내버스로 가서 택시를 타면 요금을 아낄 수 있다. 마구령에서 고치령까지 택시를 탈 경우 3만5,000~4만 원 정도 받는다. 문의 단산 개인택시(633-4628), 부석 개인택시(010-3538-3103), 물야 개인택시(673-3818).
맛집(지역번호 054)
희방사역 인근의 풍기 천수남원추어탕(637-7878)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추어탕 8,000원. 풍기읍내의 풍기 한결청국장(636-3224)은 3대째 며느리에게 비법을 전수해 온 전문점이다. 청국장정식 9,000원. 풍기 죽령옛길맛집(635-3255)은 백반(7,000원)이 저렴해 부담 없이 한 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영주시내의 김영남손짜장(632-5758)은 짜장면, 짬뽕, 찹쌀탕수육이 별미다. 
영주 봉현면의 약선당(638-2728)은 대한민국 음식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요리연구가가 운영한다. 약선정식(2만3,000원)은 탕평채, 인삼튀김, 표고탕수, 떡갈비, 된장찌개, 나물, 황태구이 등이 나온다. 영주시내의 빵집 태극당(633-8800)은 카스테라인절미(70조각 1만2,000원)와 소보로크림빵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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