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ㅣ<4> 안치영] 이틀 굶으며 정상에 오른 집념의 알파인 등반가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C영상미디어, 안치영 제공
    입력 2019.07.14 13:54

    서성호 죽었던 순간 지금도 또렷… 8,000m 알파인등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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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치영 알피니스트. 사진 황문성 작가.
    안치영은 과소평가 받은 알피니스트다. 대중에겐 덜 알려졌지만, 독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8,000m 고봉은 아닐지라도, 누구도 간 적 없는 벽을 소수 정예로 오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알피니스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에베레스트도 돈만 있으면 줄서서 올라갈 수 있는 시대, 그 반대편에 안치영이 있다. 돈 있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누구도 간 적 없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에베레스트 노멀루트 등반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하지만 일부 산악인 외에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그래서 외롭고 배고플 수밖에 없는 독기어린 길 위에 그가 있다. 한국의 알피니스트 안치영(43세) 대장을 소개한다.
    주요 등반 경력
    2017년 다람수라(6,446m) 신 루트 등정
    2015년 오호스 델 살라도(6,893m) 자전거 등정
    2014년 가셔브룸 5봉(7,147m) 세계 최초 등정
    2013년 암푸1봉(6,840m) 세계 최초 등정
    2013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
    2012년 힘중(7,140m) 세계 최초 등정
    2012년 테게토르(4,441m) 북동벽 세계 최초 등정
    2006년 로체(8,516m) 남벽 등반 한국 최초 8,200m 진출 
    2005년 로부제 서봉(6,145m) 남서벽 세계 최초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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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춤부(6,859m) 동벽 등반을 할 때의 안치영 대장. 지금은 고인이 된 유영직(왼쪽) 대원과 함께했다.
    마산이 고향인 그는 고교시절 마산 산바래산악회를 통해 산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2004년 서울로 상경해 홍대 애스트로맨 실내암장에서 강사로 일하며 한국봔트클럽에도 가입했다. 빼어난 운동신경과 노력으로 고난이도인 5.13까지 이뤄냈지만, 15m 높이의 벽은 그의 열정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그는 흰 산으로 눈을 돌렸다. 2005년 한국산악회 네팔 로부제 서봉 원정대에 참가해 로부제 서봉 정상에 섰다.
    첫 원정부터 알파인이었다. 사람이 오른 적 없는 6,000m대 험봉을 두 명의 대원과 함께 4박5일간 올랐다. 식량이 떨어져 이틀을 굶으며 악전고투로 벽을 올랐다. 이후 자신감에 찬 그는 무수한 미등봉과 신 루트에 도전하며, 고요하고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왔다. 
    그 결과 2013년 박영석 특별상, 대한민국 산악상 개척등반상, 한국산악상 김정태상, 2014년 한국산악상 알파인클라이머상, 올해의 산악인상, 2015년 한국산악상 고산등반상, 2016년 우수 산악인상, 2017년 올해의 도전상 등을 수상했다. 일반인에게 덜 알려졌을 뿐 산악인들 사이에선 차세대 알파인 고산등반가로 유명하다. 
    “알파인 등반은 소규모 팀이라 원정을 꾸릴 때 짐과 경비,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장기간 등반을 해야 하는 고산등반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고 한 번의 출정에 여러 개의 산을 오르거나 등반을 할 수도 있어 알파인 등반을 좋아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산, 아무도 가지 않은 벽을 오를 때의 심정과 준비과정에 대해 물었다. 
    “새로운 산과 신 루트 등반은 기존 루트를 갈 때보다 등반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더 신중하고, 더 깊이 있게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고, 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신체 능력과 산의 어려움, 날씨 같은 요인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다른 등반가들이 고산등반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는지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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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구곡빙폭을 오르는 안치영.
    8,000m 알파인 등반 해보고 싶다!
    그동안 안치영 대장은 6,000~7,000m대 산에서 초등과 신 루트 등반을 이뤄냈다. 목표를 상향 조정해 그 이상 높이에 대한 알파인 등반도 현실적인 등반 가능성이 있는지, 도전 의향이 있는 궁금했다.  
    “등반에서 높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에 6,000~7,000m 높이를 올랐다 내려오려면 그만큼 강한 체력과 기술이 필요하고, 고소적응도 확실하게 끝낸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준비를 철저히 잘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8,000m에서 알파인 등반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등반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도전해 볼 마음은 있지만 솔직히 내 체력이 버터 줄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그 정도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아직 그만한 여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에베레스트, 로체 남벽, 로체샤르 이렇게 3개의 8,000m 산을 등반했기 때문에 8,000m 위에서의 상황과 그 느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로체 남벽의 경우 8,200m까지 진출하며 3,000m가 넘는 거벽을 오를 때도 알파인 등반의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체력으로는 아직 등반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대상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8,000m 이상의 산에서 알파인 등반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등반가들이 그렇지만, 그 역시 형제처럼 지내던 대원들을 여럿 잃었다. 특히 고인이 된 김창호·서성호와는 함께 로프를 묶고 여러 산을 누볐던 사이다. 
    “2013년 에베레스트 등반 때가 기억납니다. 마지막 캠프인 사우스콜(약 8,000m)에서 텐트를 함께 쓰던 서성호 대원의 죽음과 직면했습니다. 함께 정상을 다녀와서 새벽에 차가운 텐트에서 잠을 깼습니다. 헤드랜턴 불빛이 꺼지지도 않은 채 텐트 한켠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호를 발견하고 정신없이 인공호흡을 하며 흔들어 깨웠는데…. 결국 눈을 뜨지 못한 성호와 함께 내려와야만 했던 그때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입니다.”
    이토록 고통스런 기억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있으면서 다시 새로운 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등반은 많은 순간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찾아오는 짧은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겠지요. 등반을 마치고 시간이 흘러 한가로운 때가 찾아오면 그때의 즐겁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몰려오고…. 다시 산으로 가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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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다람수라 등반 당시 고 김창호 대장의 확보를 받으며 쿨와르를 올라오는 안치영.
    김창호 대장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김창호 대장님이 이끈 원정대는 대원 모두가 즐거웠고 파이팅 넘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히말라야 아래에서 모두 자신감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등반할 때는 나와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그들과 웃으며 즐겁게 훈련하고 등반하고, 때로는 약간씩 다투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때가 소중하고 행복했구나’라고 느껴집니다.” 
    지난해 그는 흰 산을 가지 않았다. 경기도 동탄에 ‘프리월클라이밍짐’이라는 실내암장을 오픈해 회원들과 부대끼며 암장을 운영했다. 항간에는 그가 ‘현역에서 은퇴한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는 “생계와 등반을 함께할 수 있는 일이라 시작한 것이고, 원정을 다니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고 돌파구라 여겨 암장을 창업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발판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1년 넘게 좁은 벽에 웅크렸던 알피니스트의 마음은 이미 히말라야에 가 있다. 하늘을 응시하는 안치영의 눈 속에 도도한 첨봉이 스쳐 지닌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해외등반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등반되지 않은 히말라야 고산 몇 개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방식의 록클라이밍 루트와 빙벽루트를 등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목표로 삼았던 클라이밍 난이도 5.14a까지 올려보고 싶습니다.”
    산악인들이 그를 최고의 알파인 고산등반가 중 한명으로 꼽는 것은 단순히 등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40대 초반의 나이보다 훨씬 깊이 있고 부드러운 안목을 가지고 있으며, 산 앞에선 빠르고 과감하다. 안치영 대장에게 산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산은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원정 계획을 짜고 사람을 만나고 하는 모든 것이 산을 가기 위함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산이 되었습니다. 그곳엔 나의 생각과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어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산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해나갈 것이고,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산에서 소중한 시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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