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세계산악영화순례 <15>] 한국 산악영화의 역사, 임일진

  • 글 최선희 프로그래머
  • 사진 울주세계산악영화집행위원회
    입력 2019.07.09 17:11

    7월의 산악영화

    2014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준비단에서 바로 다음해에 열릴 프레페스티벌 기획서를 준비할 때 무척 난감했다. 한국에서 열리게 될 최초의 국제 산악영화제인데 정작 한국에서 제작된 산악전문 영화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임일진 감독을 만났다. 
    한국외국어대 산악부 출신으로 2005년경부터 꾸준히 클라이밍 영화를 만들고 한국 원정등반대의 촬영감독으로 활동해 온 임 감독은 거의 유일한 한국 산악영화 전문 감독이었다. 2008년 세계 최고最古의 산악영화제인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에서 <벽>으로 아시아 최초로 본상을 받아 세상에 한국 산악영화의 존재를 알렸다. 이때부터 시작된 임일진 감독과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인연은 이후 2015 프레페스티벌의 트레일러 영상 제작과 2016년 울주서밋 지원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로 이어졌다. 
    그후 <북한산 다람쥐>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던 임 감독은 촬영 담당으로 김창호 대장과 함께 떠났던 2018년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9월 6일부터 10일까지 열릴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는 임일진 감독을 추모하는 특별전을 개최해 2005년부터 제작된 그의 전작 6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산악영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지치지 않고 산악영화를 연출해 온 그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특별전은 한국 산악영화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전을 준비하며 제작연도 순서대로 임 감독의 영화들을 모두 살펴본 후 떠오른 생각. 임 감독 개인의 영화 세계의 성장과 변화가 바로 한국 산악영화의 성장과 변화였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영화는 한국 등반영화의 시작을 만나볼 수 있는 초기작 세 편이지만 올가을에 열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는 6편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임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알피니스트>를 공동 연출한 김민철 감독이 현재 고故 서성호 대원을 추억하기 위해 임 감독이 만든 <몬순>과 <알피니스트>를 재편집하고 있다고 한다. 
    <알피니스트>는 구르자히말로 떠나기 직전 녹음한 임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새롭게 편집해 2016년 버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한다. 올가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김형일의 기나긴 거벽 여정
    어나더 웨이 Another Way 
    출연  김형일, 장기현 | 한국 | 2007 | 61분 | color | 다큐멘터리
    임일진 감독의 클라이밍 다큐멘터리 <브리드 투 클라임>의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거벽이다. 카메라는 김형일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를 따라 인도  탈레이사가르와 파키스탄의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를 오르는 지난한 여정을 함께한다. 
    산과 벽과 오름짓만 가득한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일터로 돌아온 나. 하지만 나는 어느새 또 한계를 느낀다.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수없이 떠나고 떠나보냈지만 정작 벗어나 지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길이 저 높고 가파른 곳에 있다.
    프로그래머의 노트
    <알피니스트>의 주요 등장인물인 김형일 대장이 처음으로 등장한 영화. 거벽의 크랙에 간신히 확보 장치를 하나 끼워 넣고, 자일을 걸고, 주마링으로 힘겹게 한 발을 딛는 지난한 등반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산을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인공 김형일에 대한 임일진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잘 느껴지는 영화.  
    손상원고미영의 생생한 목소리 담아
    브리드 투 클라임 Breathe 2 Climb 
    출연 고미영, 손상원 | 한국 | 2005 | 69분 | color | 다큐멘터리
    오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다. 오르고 매달리고 또 오른다. 선운산 장군바위를 국내 최고의 암장으로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클라이머 손상원과 고미영이 길을 나섰다. 
    장군바위의 ‘두이노 길’(손상원, 5.13b)과 자유 2000길(고미영, 5.14a) 등반을 비롯해 두 등반가의 열정과 노력의 현장을 인터뷰와 함께 생생하게 담았다. 특히 히말라야 14좌에 도전하기 전 여성 클라이머로서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고미영의 힘찬 함성과 오름짓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당시 획기적이고 감각적인 편집으로 특히 주목받은 임일진 감독의 클라이밍 연작 세 편 중 첫 번째 작품.
    프로그래머의 노트
    장군바위 자유등반, 인터뷰, 북한산 볼더링 등 약 1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 경쾌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현란한 영상은 마치 클라이밍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손상원과 고미영, 전성기에 오른 두 클라이머의 손동작과 발동작 하나하나와 그들이 쏟아붓는 응축된 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동양인 최초 트렌토영화제 특별상 시상작품
    The Wall 
    출연  전양준, 조형국, 박희용 | 한국 | 2008 | 79분 | color | 다큐멘터리
    “적막 속에 거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모습이 마치 인생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는 심사위원장의 평을 받으며,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2008년 트렌토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 캐나다의 험준한 거벽 ‘부가부’, 들리는 건 오로지 오름짓에 목숨을 건 클라이머들의 거친 숨결과 황량한 바람 소리뿐이다. “더 높이 올라가면 우리가 보이겠지, 하지만 너무 높이 올라가면 우리를 못 볼지 몰라.” 오를수록 간절해지는 고독과 그리움…. 그들에게 벽은 간절히 넘고 싶지만, 지독히도 넘기 힘든, 현실의 벽일 뿐이었다. 
    프로그래머의 노트
    영화감독으로서의 성찰적 고민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산을 오르려는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 정상에 오르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아닌 현실 세계와 등반세계를 오가며 등반가들이 겪는 깊은 혼란과 외로움을 영상과 음악 내레이션으로 섬세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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