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前 소장이 지리산을 말한다

  • 글 사진 신용석 전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장
    입력 2019.07.12 16:31 | 수정 2019.07.12 16:53

    공단 31년 근무했어도 아직 지리산 다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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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월 1일 천왕봉에서 무수한 등산객들이 일출을 맞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사무소장 자리에서 물러나,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산으로부터 멀어지려 했으나 지인들이 보내준 지리산 사진을 보자 불쑥 “아! 지리산 고프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반년 만에 다시 지리산에 왔다. 구례에서 새벽 버스로 천은사 입구를 지나며 그간 진통을 반복했던 사찰매표소가 깨끗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역시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보태서 합의에 이른 것이야말로 지리산의 포용정신이다.
     버스 종점은 성삼재, 2100년 전 마한의 한 부족이 달궁으로 피난을 와서 궁전을 세우고 성이 다른 세 명姓三의 장군을 보내 남쪽 통로를 지키게 했다는 곳이다. 지금은 지리산 관통도로의 정상부로서 노고단 탐방과 종주산행의 전진기지다. 조용했던 지리산을 요란한 관광지로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성삼재주차장이다. 성수기에는 차량이 운집해 대기오염이 심각하고 도로가 생태단절의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로망으로 여기는 것이 지리산 종주다. 하루에 천왕봉을 다녀올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밤낮의 아름다운 대자연에 젖어보고, 민족 역사와 애환의 현장에서 생각을 깊게 하고, 체력이 부족하더라도 이 악물고 고통을 감내하며 걷는 종주를 해야 진정으로 지리산에 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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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함께 지난 2018년 가을 천왕봉에 올랐다.
    성삼재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며 종주산행의 첫 걸음을 뗀다. 종주에 나서는 사람들이 천왕봉 28.1㎞라고 적힌 이정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거에 이 종주능선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했는지 몰라도 지도와 안내판마다 45㎞로 적혀 있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탐방로를 따라가며 줄자로 몇 번씩 재보니 28.1㎞였다. 여기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약 2㎞ 탐방로는 공단에서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보수했던 탐방로 겸 도로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겨울에는 얼고, 여름에는 강한 빗줄기로 포장재료가 패여 나가 ‘공사 중’인 경우가 많았으나 10년 전쯤 ‘노고단 아름다운 길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이 다니는 부드러운 길과 비상용 차량이 다니는 돌길을 구분하고, 길가에 야생화 공간을 만들어 노폭을 최소화 하는 등 이제는 보수소요가 많지 않다. 이 길은 본래 노고단 정상부의 군사시설과 방송시설 때문에 조성한 길로 예전에는 ‘힘 있는 분’들의 차량이 마구 올라다녔으나 카메라에 찍혀 공개되기 쉬운 요즘에는 뜸하다. 
    탐방로 곳곳에 주변의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설판을 여러 개 설치했는데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는 탐방객은 많지 않고, 이따금 탐방로를 벗어나 종석대를 통과하는 마루금을 걷는 불법산행이 있어 국립공원 직원들을 안타깝게 한다. 정해진 탐방로는 길일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훼손을 막는 수단인데, 자꾸 길이 더 생기고 패이고 사람흔적이 많으면 그만큼 지리산의 자연성과 생태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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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노고단산장을 지키던 고 함태식 선생(왼쪽)을 지난 2017년 연곡사입구에서 뵈었다.
    중봉, 반야2봉으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소풍길처럼 편안한 산길을 걸어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에 오면 늘 과거의 노고단산장을 지키던 고 함태식 선생이 생각난다. 국립공원공단이 생기고 대피소 관리를 직영하면서 선생과 같은 ‘원조 산악인’의 역할이 감소되거나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도 많은 탐방객들을 감당하면서 ‘돈 안 되는’ 대피소 운영에 수많은 민원을 처리하는 봉사와 안내, 그리고 자연조사와 탐방객 계도·단속·구조 등의 공원관리업무를 수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말년에 피아골대피소에 있었으나 건강문제로 하산하여 ‘국립공원 지킴이’로 끝까지 지리산 사람이고자 했던 고인을 추모한다.   
    노고단(1,507m) 정상의 노고할매老姑(늙은 시어머니)를 기리는 돌탑에 올랐다. 무분별한 벌채와 야영, 군부대 주둔 등으로 황무지처럼 훼손되었던 곳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고 붕대로 감은 후 탐방예약제를 한지 어언 25년, 이제 ‘구름 위 꽃밭’이라 불리는 노고단은 자연복원의 성지가 되었다. 자연의 복원력과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재창조물이다. 언젠가는 마지막 인공건물인 방송국 송신탑 시설도 철거하여 온전한 옛 노고단으로 되돌려야 한다. 여기서 바라보는 천왕봉까지 종주능선과 내려다보는 왕시루봉 능선과 섬진강과 구례평야, 그리고 멀리 무등산까지 무수한 산과 구름이 장관인데, 오늘은 안개도 구름도 아닌 뿌연 미세먼지가 자욱해 사람과 지리산의 숨통을 답답하게 한다. 그나마 갓난아이 손바닥 같은 새잎들이 투명한 초록빛 근경은 싱그럽다. 
      
    나무뿌리와 낙엽을 파헤친 멧돼지 흔적이 여전한 돼지령을 지나 구상나무 거목이 쓰러진 피아골삼거리를 지나면 곧 임걸령(1,432m)이다. 샘물이 많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맛 좋고 물량이 풍부한 이곳에서 임걸이라는 산적이 샘물을 독점하고 판을 쳤을거라고 상상해본다. 샘물이 흘러드는 습지에 동의나물의 노란 꽃이 가득하다. 지리산에 색을 정한다면 노란색이 좋을 것 같다. 생태적으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생명들의 태어남과 죽음이 점철되었던 지리산에 현재와 같은 따듯한 평화가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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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단 전경.
    임걸령 직후의 긴 오르막과 직전의 짧은 오르막을 오르며 노루들도 숨을 골랐을 노루목(1,498m) 쉼터에서 사람들은 갈등한다. 그대로 종주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1㎞ 비켜나 있는 반야봉(1,732m)을 다녀오느냐를 결정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종주객들은 천왕봉 21㎞라고 쓰인 이정표를 핑계로 “갈 길이 멀다”며 직진한다. 오늘은 반야봉 초입에 기다란 배낭 몇개가 가지런하다. “천왕봉, 노고단과 함께 3대 봉우리 아니냐!”하면서 맨몸으로 급경사 1㎞를 올라간 산꾼들의 것이다. 그러나 배낭은 항상 메고 다니는 것이 원칙이다. 사고가 많았던 반야봉 주변에 갑자기 기상변화가 있을 수도, 서둘러 내려서다 뒤로 미끄러져 허리를 다칠 수도 있다. 
    된비알 두 단을 치고 올라간 반야봉 정상도, 지척에 반야봉의 쌍둥이인 중봉도 멀리서보나 가까이보나 펑퍼짐한 것은 매 한가지이다. 이곳을 몇 번 올랐어도 날씨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늘 하얀 구름이 빠르게 흐르며 풍경을 덮었다 열었다 하면서 “날씨 좋을 때 다시 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중봉 정상은 지형의 원형을 뭉개고 큰 묘지와 헬기장 터가 들어서 있어 본래 지형으로의 복원이 필요하다. 반야봉과 중봉은 같은 높이인데, 천왕봉 옆의 중봉과 이름이 같으므로, 이곳은 반야봉, 반야2봉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떨지 생각한다.   
    반야봉 숲 둘레의 구상나무 대부분이 강풍과 건조로 하얗게 말라죽고 있어 안타깝지만, 숲 안쪽의 구상나무들은 아직 생생한 개체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식물생태학 교재에 구상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은 장기적으로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림으로 천이遷移(변화)된다고 쓰여있고, 그 속도가 현재의 지구온난화에 의해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석평전과 같이 습기가 많고 바람이 적은 곳에서는 생장이 왕성하고, 제석봉과 같이 과거에 이식해서 생존한 개체들 중 비교적 잘 자라는 것도 있으니 좀 더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반야봉과 중봉 일대의 숲 속에는 구상나무와 주목, 소나무 등이 어울린 오래된 침엽수 군락이 있어 이들을 온전하게 보전해야 하는데, 몰지각한 사람들이 마구 출입한 길 흔적과 나무를 자른 자국이 뚜렷하여 불안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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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봉 근처에 위치한 구상나무 고사목.
    불친절하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더~”
    반야봉의 아랫도리를 돌면 곧 삼도봉(1,499m)이다. 경남, 전남, 전북의 행정구역 경계점이라 해서 삼도봉인데, 과거의 낫날봉, 날나리봉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 산 밑의 도 경계에는 저마다 자기 행정구역의 힘을 과시하려고 여러 표지판이 난립되어 있는데, 이곳만큼은 무릅 높이의 삼각 화살촉 모양 상징물이 유일하다. 행정적 경계가 무의미한 지리산이다. 
    여기서 550개가 넘는 기나긴 데크 계단을 내려서면 옛적에 남원의 산내 사람들과 하동의 화개 사람들 간에 물물교류가 있었던 화개재(1,315m)이다. 화개재에서 뱀사골 쪽으로 대피소를 다시 건립하자는 의견도 있고, 화개 쪽으로 등산로 재개방 요구도 있는데, 하나의 시설증가는 곧 나비효과가 되어 지리산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즉, 국립공원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국립공원 직원들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늘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공원을 더 잘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수많은 야생생물로부터도 비판을 받을 것이다. 
    화개재에서 토끼봉(1,534m)까지 기나긴 오르막길을 낑낑깽깽 오르다 양지바른 바위에서 잠깐 숨을 고르려 하니 돌틈에 동그랗게 또아리를 튼 튼실한 살모사가 그냥 가라고 삼각형 고개를 들어 혀를 날름거린다. 
    조금 더 오르다 ‘출입금지 난간’을 넘어가 연신 허리를 숙이는 탐방객들이 있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나와주십시오!” 했더니 나물봉지를 한 움큼 쥔 분들이 나올까 말까를 망설이며 허리운동을 쉽게 단념하지 않을 듯하다. 내가 아예 배낭을 벗어놓고 계속 주시하니 그제서야 주뼛주뼛 탐방로로 나온다. 내 경험 상, 내가 떠나면 이 사람들은 ‘식물 불법채취’를 계속할 것이지만 도리가 없다. 
    명선봉(1,586m) 밑을 지나 내리막 데크 끝의 연하천 대피소(1,440m)에 도착하니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 라면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연하煙霞란 이름은 ‘안개와 노을이 멋진 선경’을 의미하는데, 지리산 종주로를 개척했던 연하반 산악회에서 이곳을 연하천으로, 장터목 직전의 연하봉 일원을 연하선경이라 작명한데서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산악회 이름을 따서 그리 명명하였더라도, 연하천과 연하봉이 12㎞ 이상 떨어진 원거리임을 감안할 때 한 곳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본다.
    땅 이름에 천泉(샘)을 붙였듯이 연하천 일대는 물길이 많은 습지로, 주목을 비롯한 습지식물이 많아 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탐방로 바깥의 습지생태계 보호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 평편하고 아늑한 곳에서 예전의 마구잡이 야영은 사라졌지만, 희귀식물을 깔아뭉개며 자는 비박은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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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경에 세석-촛대봉 간의 등산로.
    연하천에서 삼각고지까지 소풍길 같이 쉬운 길을 지나 몇군데 포인트에서 천왕봉을 조망하며 돌길을 내려서면 길쭉하고 두꺼운 두개의 바위덩어리 형제봉(1,452m)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의 조합인 이 바위를 함양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뜻의 부자암父子岩으로 부르고 있어 명칭 정리가 필요하다. 
    이어서 벽소령 대피소(1,340m)에 안착하니 낯익은 직원들이 반기는데, 산에서 사는 직원들은 상하관계를 떠나 동지에 가깝다. 노총각 직원의 애인이 이 산꼭대기로 ‘힘들게’ 올렸다는 수박과 떡을 ‘쉽게’ 해치우고 나니 포만하고 나른하다. 해가 뉘엿뉘엿한 가운데 ‘깊은 밤 시리도록 푸르스름한 달빛’이라는 벽소명월碧霄明月을 오늘은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나의 됨됨이가 부족해서 그런 호강은 할 수가 없다.  
    이튿날, 아침 일찍 직원들의 대피소 정리가 분주한 가운데 누룽지 식사가 정성스레 차려졌다. 두런두런 아침을 먹으며 직원들에게 덕담을 해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고산지대 대피소는 좀 불편해서 민원이 많고 불친절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말투로 들리는 것이죠. 그러니 상냥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시지요!” 그러나 사투리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에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그러면, 탐방객들에 대한 안내방송 말미에, ‘최대한 상냥하게 말씀드린 것인데, 그래도 불편하게 들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더~’라는 마무리 멘트를 하라”고 했더니 머리만 긁적댄다. 순박한 산 사나이들에게 재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친절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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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석-촛대봉 등산로의 현재모습.
    영신봉은 신령스런 중심 봉우리
    직원들의 환송을 뒤로 하고 벽소령을 출발한다. 남쪽으로 가까이 의신마을 계곡, 멀리 섬진강과 백운산 위로 구름바다가 넘실넘실하다. 덕평봉을 오르기 전의 작은 빈터에 구상나무 묘목을 심어 야영과 비박을 막고자 한 곳이 있는데, 이 지점은 과거에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전남 하동군 화개면을 잇고자 계획되었던 벽소령 관통도로의 정점이기도 하다. 이 사업은 산 아래에서 중간부까지 진행되다가 중단되었지만, 이 도로를 마저 개설해야 한다는 일부 지역인사들의 주장은 중단되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협조를 받아야 할 공원관리자가 지역개발사업에 대해 의견을 함부로 내어서는 안 되지만, 지리산을 동강내는 이 사업만큼은 다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비교적 평탄한 오르막을 올라 덕평봉 아래 선비샘(1,456m)의 낮은 물구멍에서 물한모금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선비가 되어 본다. 오르락내리락 어느덧 일곱 분의 선녀님이 늘씬한 바위가 되신 칠선봉(1,558m)에 이르니 산 아래에선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얼레지와 개별꽃, 현호색 군락이 서늘한 숲그늘 밑에서 늦봄을 붙잡고 짱짱하다. 그런 연약한 식물들의 강한 생명력도 인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일부 탐방객들이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무시하고 난간을 넘어 들어가 그 꽃밭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있다. 나오셔야 한다고 하니 알겠다고 말만 하고 움직이질 않아 공원관계자라 하니 신분증이 있냐고 묻는다. 이렇게 따지는 분들을 만나면 괜히 지적했다 싶을 정도로 논쟁을 길게 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세석대피소에 이르는 마지막 긴 오르막, 한 두번 쉬어야 하는 기다란 데크계단을 헐떡이며 올라선다. 이어서 탐방로에 붙어 뾰족하게 서있는 좌고대坐高臺에 올라 먼 풍경을 아슬아슬하게 일견하고 나아가면 곧 영신봉靈神峰(1,651m)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의 동서쪽 경계점으로부터 개략적인 위치중심은 벽소령이지만, 풍수지리에 능하고 도를 닦았던 사람들은 영신봉을 지리산의 정신적 중심으로 셈한다. 
    지난해에, 예전에 도술가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자리다툼을 했다는 영신봉 하단의 제단터에 갔을 때 어떤 인문학자는 여기만 오면 특별한 기운을 느낀다 했고, 어떤 직원은 머리가 뽀개질듯한 느낌을 받는다 했다. 지리산의 달인이라 불리웠던 산꾼 성락건 선생은 그의 책 ‘연인과 숨어 살고픈 지리산’에서 “이곳에만 오면 힘이 펄펄 솟아 험한 지역을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고, 자고나면 정력이 솟아났다”고 했다. 
    나만 부족해서 그런 기운을 느끼지 못한건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주변 지형지세가 뭔가 색다른 것은 분명했다. 어쨌든, 기도발이 잘 받는다는 이유로 토굴을 짓고 촛불을 켜고 바위틈마다 쓰레기가 넘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이곳은 출입을 금하고 순찰을 빈번하게 하고 있다.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동남쪽의 청학동과 서쪽 쌍계사에 다다르는 지리산 남부능선(낙남정맥)의 분기점을 삼신봉(三神峰)이라 부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도인들에게는 신령이 깃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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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대봉에 있었던 늠름한 장군 염소.
    영신봉에서 촛대봉과 세석평전 사이의 우람한 고원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알프스의 초원을 보듯 이색적이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이란 말 보다는 우리말 ‘잔돌밭’이 더 정겨운데, 큰 바위가 오랜기간의 풍화작용으로 쪼개져 생겼을 이 잔돌들은 흙과 풀에 묻혀 현재는 보기 어렵다. 이곳은 산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단 이 고원에 올라서면 논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로 평탄하고, 물이 많고 바람도 피할수 있어 산밑에서 쫓기는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어 예로부터 걱정없이 살 수 있다던 청학동의 한 곳으로 거론되어 왔다. 
    세석평전은 한국전쟁과 빨치산 전투 때 격전지가 되고 90년대 중반까지 과도한 야영과 철쭉제 등으로 황폐화 되었던 곳을 복원하여 본래의 생태계와 경관을 회복하고 있으나 아직 곳곳에 상흔이 남아있다. 훼손은 잠깐이지만 복원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편, 지리10경의 하나인 세석철쭉은 그 이름을 이제 세석구상나무 또는 세석고원으로 바꾸어야 할 판이다. 과거에 다른 큰 나무 없이 군락을 이루었던 철쭉은 점차 구상나무를 비롯한 다른 키큰나무들의 그늘에 가리우고 있고, 이는 숲의 자연스런 변화이기도 하다.  
    세석 대피소(1,600m)에 오면 꼭 생각나는 것이 20여년 전 여름성수기의 난장판 같았던 시절이다. 예약제를 무시하고 무조건 찾아온 사람들이 바깥의 자연복원장소에서 비박을 하지 않도록 복도와 홀과 처마 밑에 빼곡하게 앉히고 혹시 무슨 안전사고가 없을지, 질서를 무시하는 군중심리가 발동하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며 새벽을 기다렸던 시절이다. 
    그런 무질서는 이후 비예약자에 대한 하산 유도, 입산시간 지정제, 그리고 최근의 음주금지제도 등에 의해 많이 개선되었다. 우리 산꾼님들의 정서상 음주금지가 되겠냐고 의아해한 분들이 있었겠지만, 이제 대놓고 한잔 하시는 분들은 없으니 음주량의 90%는 감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산에서 술을 안 마시는 분들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아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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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의 장터목대피소에 많은 등산객들이 머물고 있다.
    대피소 직원들 사실상 24시간 근무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1,703m)을 오르는 중간에 습지데크를 둘러보았다. 25년 전 촛대봉까지 무분별하게 난 여러 갈래 등산로를 한 갈래로 정리하고 나머지 길을 복구하면서, 지면이 축축했던 이곳의 물길을 막아 습지복원을 기대했었는데, 오랜기간 복원이 될까말까 하다가 결국 전형적인 산지습지가 형성되고 있다. 동그란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습지식물인 동의나물과 왜갓냉이, 골풀과 이끼류가 빼곡하게 박혀 이곳이 본래 습지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와 같은 기후변화시대에서는 이런 습지지형과 그늘환경이 더욱 다양하게 존재해야 기후변화에 취약한 야생생물들이 기후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촛대처럼 뾰족하지만, 가까이 보면 사자바위를 비롯한 여러개 바위가 성城처럼 모여 있는 촛대봉은 종주능선에서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제석봉과 천왕봉이 손에 잡힐듯 가깝고, 서쪽으로 세석평전의 광활한 초원 위로 토끼봉과 반야봉, 왕시루봉, 노고단, 서북능선 등 지리산의 원경이 아련하다. 여기서 바라보는 천왕봉 일출은, 어쩌면 천왕봉에서 지리산 바깥을 바라보는 일출보다 장엄하다. 
    촛대봉에서 남쪽 방향 도장골 계곡은 출입금지구역이지만, 산 밑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그곳에 야전병원을 차렸다는 빨치산들의 애환과 예전에 도인들과 피난자들이 즐겨 찾았다는 청학연못을 생각하면 왜 지리산이 포용의 산인지를 알듯말듯 하다. 지난해에 저 멀리 촛대봉 밑 바위 위에서 뿔을 세우고 수염을 날리며 늠름하게 서있던 늙은 염소는 해를 잘 넘겼을까 궁금하다. 
    촛대봉을 내려서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하다 다소 밋밋한 연하봉(1,730m)에 이르러, 언제나처럼 연하선경煙霞仙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본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곳을 안개와 구름이 어우러져 신선이 노니는 비경으로 표현했을까. 이원규 시인은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할 정도로 이곳을 찬미했다. 그러나 지난 31년간 100번이 넘게 이곳을 지나다니며 ‘예쁜 산 풍경’이란 생각은 들었어도 지리산 십경으로 칭송할만한 ‘굉장히 신비로운 비경’은 만나지 못했으니 연하선경과 벽소명월은 혹시 마음속의 풍경은 아니었는지 지리산 선배님들께 여쭙고 싶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지리산 10경을 재조명하는 것은 어떨지 의견을 내본다. 이와 더불어 능히 이름이 있을 법한 봉우리와 폭포에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도 병행되었으면 한다. 
    장터목 대피소(1,653m)는 건물이 보이기 이전에 사람들의 목소리부터 들려오는 곳이다. 남쪽 산청과 북쪽 함양 사람들이 올라와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장터답게 늘 사람들이 북적대는 길목에 내려서니 100명이 넘는 중학생 단체가 뙤약볕 밑에서 질서정연하게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얌전하게 행동하는 것을 오랜만에 보니, 이 또한 지리산의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피소 사무실에 들어서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근무자 몇 명이 작업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장터목은 탐방객에겐 잠시 들려가는 대피소 또는 휴게소이지만, 국립공원 직원 입장에서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중봉, 칠선계곡 상부, 연하봉 일원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탐방객이 집중되는 지역의 생태계 보호와 탐방객 안전을 책임지는 공원관리거점이다. 대피소는 직원들의 ‘퇴근 후 생활장소’이기도 하지만, 좁은 건물 내에서 퇴근장소는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출퇴근 없이 사실상 24시간 근무를 해야하는 직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탐방객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직원에 대한 서비스와 처우개선에 정성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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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천문 위 가문비나무. 지난 겨우내 나뭇가지가 몇 개 부러져 안타깝다.
    벌목 현장 없애려 불 질러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첫 오르막은 경사가 급하고 단차가 높아 금방 사람들을 끙끙거리게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무릅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하는 돌계단이다. 10분 정도의 가쁜 호흡 끝에 서서히 경사가 완만해지며 제석봉(1,808m) 정상이 가까워지면 이따금 서있는 외로운 고사목이 지리산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하다.
    본래는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이 빼곡했을 이곳에서 고사목만을 벌채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후 살아있는 나무들을 마구 벌목한 것이 문제가 되자, 현장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모든 나무들에게 불을 지른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이곳이 고사목 군락이 되었다. 이후 그 고사목들도 도벌꾼들이 마저 잘라가고, 그나마 남아있던 고사목들도 최근에 전에 없던 강풍으로 넘어져 이제는 옛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 다만 20여년 전부터 고사목의 후계목으로 심은 구상나무 중 일부가 정착해 차츰 키를 높이고 있어 그나마 미래의 제석봉이 과거와 비슷하게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천왕봉의 관문인 통천문 바위구멍을 통과해 두 개의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여기에도 멋진 가문비나무 거목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서 표표한 고산풍경을 연출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 보니 한쪽의 고사목 반절이 부러지고, 또 한쪽의 나무도 가지 몇 개가 부러져 옛 위용을 찾을 길 없어 안타깝다. 균형을 잃은 그들의 나머지 몸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생의 후반기에 있는 내 몸과도 비슷하다.  
    짧은 깔딱고개를 올라 칠선계곡으로 빠지는 포인트를 지나고, 이제 드디어 천왕봉(1,915m)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하늘과 땅이 가장 가깝게 맛닿아 천상과 천하의 기운이 통하는 곳, 멀리서 보면 마치 천지창조 그림에서 하늘의 조물주가 땅의 아담에게 생명을 전하는 손가락 맞춤을 하는 듯 하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사방의 하늘을 바라보면 지구 끝과 우주가 맞닿아 있는 듯 아득한 지평선 위에 하얀 구름띠, 운평선雲平線이 더욱 아득하다. 서쪽으로 종주를 시작했던 머나먼 노고단과 서북능선의 점과 선을 바라보면서 나의 대견함과 소중함을 확인함은 물론 나를 이곳까지 옮겨준 지리산에 감사하고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올라 조선시대 유학자 김종직은 “가슴이 탁트이고 시야가 넓어짐을 느꼈다.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리라” 했고, 조식 선생은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 그래서 천왕봉처럼 살겠다!” 했다. 현재도 많은 유명인들이 비슷한 이유로 천왕봉을 찾고 있지만, 그런 철학과 통찰의 흔적을 남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기대를 이제 미래세대에게 걸어본다. 오후 3시쯤인 이 시간이면 적요해야 할 성지가 단체산행을 온 청소년들의 힘찬 목소리로 웅성웅성하다. 삼삼오오 정상의 표지석에 모여 멀리 바라보는 그 아이들이 지리산과 천왕봉의 기상을 받아 미래로 세계로 힘차게 솟아오르기를 바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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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에서 바라본 중산리 방면. 첩첩한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모석상 보물로 승격하고 복원해야
    공원관리자로서, 지리산 사람의 하나로서 늘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서 지리산의 역사와 애증을 지켜보았던 성모석상을 돌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가 칼부림하여 목에 상처를 입고, 종교적 이유(?) 때문에 산 밑으로 굴러 떨어졌으며, 얼굴과 몸통이 분리되는 등의 수난이 있었지만, 이제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심이 높아진 현재, 이 위대한 문화적 상징물을 제 위치에 돌려놓아 천왕봉의 역사적 위용을 복원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 석상을 보관하고 계셨던 분께는 큰 상을 드리고, 복원 이후에는 이 석상의 격을 현재의 도道지정문화재에서 보물 또는 국보로 승격시켜 문화적 가치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게 하여 안전하게 보존하였으면 한다. 
    천왕봉 주변에는 사람 발길에 의해 씻겨나간 흙을 보충하고 야생식물을 이식한 후 대나무 말뚝을 여러개 박아 사람출입을 막고자 한 훼손지복구 현장이 많다. 일부 지점에는 여전히 사람출입 흔적이 많지만, 일부 지점에서는 연약한 새싹들이 돋움하며 사람들의 배려를 고마워하고 있다. 자연에서 사람의 자유는 ‘엘보우 룸(elbow room), 즉 팔꿈치를 돌리는 정도의 공간’ 안에서만 행해야 하고, 그 바깥은 자연의 공간이라 했던 문장이 생각났다. 
    남쪽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하기 전에 동쪽으로 불쌍한 중봉(1,875m)과 그 너머의 치밭목 길을 일견한다. 중봉은 높이로 따질 때 지리산의 2인자 이지만 천왕봉 지척에 있어 이름을 날릴 수 없는 불쌍한 봉우리이다. 치밭목을 거쳐 무재치기 폭포를 일견하고 유평으로 내려서는 길은 지리산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고즈녁한 탐방로이며,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화대종주를 하는 사람들의 ‘기나긴’ 하산길이기도 하다. 최근에 지리산 종주를 뜀박질로 대원사까지 달리는 마라톤행사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지리산 이용이다. 참가자들이 좁은 탐방로를 피해 주변을 마구 헤집고 다니고, 조용히 다니는 탐방객에게 위화감과 불안감을 주며, 이런 급경사 내리막  돌부리 길에서는 참가자 자신에게도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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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은 식생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이제 중산리까지 내리막만 있는 하산길이다. 아마 이 천왕봉에서 천왕샘 사이의 계단이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의 표정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장소일 것이다. 그만큼 길고 급하다. 그 계단 끝에서 직원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흔들리는 난간을 조이고 있어 반갑고 대견했다. 
    천왕샘 바위틈에서 졸졸 나오는 석간수 한 모금이 지리산 종주로에서는 마지막 자연수이다. 장거리 등산로에서 종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대부분 다리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는 뒤태가 많다. 이 때 발목이 접히고 무릎이 꺾이고 헛발을 딛는 등의 사고가 많다. 그렇지만 지금 내 앞을 걷고 있는 70대 내외의 고령 종주객들은 아직 발걸음이 당당하시다. 그 분들의 성공요인은 쉬엄쉬엄 요령 있게 가는 ‘슬로우 탐방, 현명한 휴식’이다. 그 와중에 거의 발을 움직이지 못하시는 분을 서너 명이 부축하고 내려서는 아름다운 동행도 있다. 
    법계사와 로타리대피소에서 무릅과 발목을 잠깐 쉬게 하고, 지리산의 옛이름 두류산에서 ‘순탄한 길’이란 뜻의 순두류 계곡으로 살살 내려서면 드디어 지리산 종주로의 종점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 목표를 완수한 느긋함과 산행에 지친 나른함이 함께 묻어 있다. 중산리에 내려와 성당의 높은 돔을 보듯 고개를 치켜들고 천왕봉을 우러러본다. 나는 감정을 표했지만 천왕봉은 무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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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에서 되돌아본 종주능선.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지리산 산행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
    성삼재에서 순두류까지 33㎞, 1박2일 간 많은 자연과 풍경과 재회하고,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으며, 많은 장소에서 지난 31년의 기억을 더듬었다. 같은 산을 수백 번 다녀 눈 감고도 훤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산은 늘 진화하고 있고, 산을 휘감는 계절과 기상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며, 산에 들어가는 나도 항상 변화되고 있어 단 한 번도 같은 상태의 산과 나와 마주한 적이 없다. 백번을 와도 늘 처음 대하는 첫사랑 같은 지리산이어서 종점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다시 오마!”하고 다짐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하기 마련이다. 
    어떤 현자가 산행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고, 지리산의 이름 뜻이 이 산에 들면 지혜가 달라진다 했으니, 지리산이라는 큰 도서관에서 1박2일 책을 읽고 내려서는 듯 마음은 뿌듯하고 몸은 가볍다. 마음이 다시 답답해지거나 몸이 무거워지면 이 지리산도서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수만 권의 책을 언제 다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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