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17>] 노진산님!

  • 글 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입력 2019.08.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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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트레킹을 즐기는 등산인들.
    1953~      6.25전쟁 끝난 직후부터 산에 들었다. 지금이야 산이 흔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 때 동네 사람들 눈총을 피해 배낭 메고 꼭두새벽에 나갔다가 어두컴컴한 뒤에 들어와 간첩으로 오해도 받았단다. 이렇듯 그 시절 ‘산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했을 터, 지난至難한 시대의 여울목에서 높고 깊은 산으로 자아를 찾아 나서고 산을 닮고자 했던 임의 산격山格이 사뭇 그려진다. 내가 산山을 배우면서 만난 당신은 설악산 울산바위 의연함이었고, 귀떼기청봉의 서북릉을 빼다 박은 미쁨이었다. 산의 향기를 배낭에 담아와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듯 희망을 노래했던 님!
    1984~     “안 돼! 산행은 치기가 아니라 겸손이고 산악회 지도자는 능력이 아닌 철학이야!” 삼선교 정거장에 내려 가파른 길을 20여 분 오르면 산동네 둔덕 슬레이트집에 닿는다. 방 구석구석마다 설악 내음이 흐르고, 반창고 기러기 되어 날아가는 금간 들창, 그 밑 궤짝 위에는 카라비너, 하네스와 청자일이 웅크리고 벽에는 공작새 자수 횃댓보와 용아장성의 운해가 동해로 빠져 나가는 흑백사진 한 점. “네 번째 왔어요.” 형수가 여리게 귀띔하니 임의 소리 단단하다. “찾아오지 마라. 산은 설치며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하릴없습니다. 저는 꼭 만들어야겠습니다.” “나는 못 도와 줘!” 그날 밤 앞꿈치 구두 끝에 부딪는 지독한 경사를 내려서는 내 가슴은 검퍼렇게 멍든 엄지발톱이었다.
    1986~      클럽을 만들고 좌충우돌 산 생활은 공룡능선 1275봉을 어렵사리 넘어가는 구름이었다. 겨울날 그간의 서먹함을 털고자 임과 함께 점봉산 산행에 나섰다. 눈이 가슴까지 차서 러셀russel이 되지 않아 망대암산도 못 가고 주전골로 내려섰다. 오색에서 임은 쇠맛 비릿한 약수 한 모금 후 입술을 어슷하게 훔치며, “네가 생각하는 산은 무엇이며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이냐?” “입산入山입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사람과 산을 이어주는 튼실한 길라잡이가 되고 선善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습니다.” 임의 엷은 미소가 하얀 눈 속의 노란 복수초로 피어났고, 나는 서설瑞雪이 흩날리는 바람 드센 한계령을 오달지게 넘어섰다.
    2019~     나의 산행사山行史는 노진산님에게 큰 힘과 빚을 지고 있다. 임은 ‘바윗길 크럭스clux에서는 강한 유연을, 여유로운 숲길에서는 유연한 강단’을 단순히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가르쳤고 ‘산으로의 길’을 가리켰다. 산행의 이로움과 가치를 삶에 적용시키고자 함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당연 드러났다. 요즘처럼 링반데룽Ringwanderung에 빠진 듯 산의 철학이 부치고 정신이 고플 때면 임의 부지런한 발과 뜨거운 마음을 그리며, 음수사원飮水思源과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배낭에 담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단어인 山! 그 ‘산으로의 길’을 탐구한다.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교장/건누리병원고문/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 사)대한산악연맹 찾아가는 트레킹스쿨 교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 교장/월간 산 대한민국 등산학교 명강사 1호 선정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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