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레킹ㅣ이탈리아 트레치메] 질투 날 만큼 어마어마하고 경이로운 트레치메!

  • 글 사진 민미정 백패킹 여행가
    입력 2019.08.08 11:15

    돌로미테에 우뚝 솟은 3개의 암봉을 도는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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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체다의 깎아지른 절벽에 앉아 드넓은 풍경을 만끽하는 필자. 날카롭게 솟은 암봉의 산세마냥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와 스위스 알프스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의 남티롤South Tirol 돌로미테 지역에 위치한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로 향했다. 세 봉우리가 우뚝 솟은 트레치메는 작은 봉우리란 뜻의 치마 피콜로Cima Piccolo(2,856m), 가장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치마 그란데Cima Grande(3,003m), 동쪽 봉우리란 뜻의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2,973m)가 나란히 붙어 있다. 
    트레치메로 들어가기 전, 잠시 쉬어가기 위해 베네치아Venezia에 들렀다. 수상버스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는 좁은 수로 사이를 누비며 낭만적인 노래를 불렀다. 여행을 시작하고 쉴 새 없이 산을 넘어오느라 지쳐 있던 심신을 달래주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돌로미테에서 트레치메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세체다Seceda( 2,519m)를 보기 위해 오르티세이로 향했다. 통나무를 거칠게 부러뜨려 놓은 듯한 세체다는 하늘을 경계하듯 평화로운 초원 끝에 날카롭게 솟아올라 있었다. 야속한 구름은 잠시 동안만 그 경이로운 자태를 허락했지만, 돌로미테만이 가진 거친 기운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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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번 트레일에서 만난 비경. 춤추는 구름과 그 사이로 비집고 내려오는 햇살, 호수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돌로미테 트레킹은 느낌이 좋았다. 알프스의 고봉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나올 것 같은 초원, 불규칙한 패턴의 상징적인 지형들이 더해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오르티세이를 출발해 도비아코Dobbiaco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유스호스텔은 문이 닫혀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도시에서 텐트를 쳤다. 3개월차 세계 여행자에게 낯선 도시에서의  노숙은 무모한 용기와 낭만이 곁들어 있었다. 
    긴장한 탓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트레치메행 첫차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돌로미테 풍경을 보았다. 어느새 피곤함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한참동안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추자 아우론조산장Rifugio Auronzo(2,320m)은 먼 길을 달려 온 하이커들을 맞이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세 개의 암봉은 보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병풍 암벽의 웅장함에 잠시 위축됐다. 하얀 안개가 빠르게 암벽을 덮기 시작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세상은 화이트아웃이 되었고, 길 위에 홀로 선 작은 교회마저 운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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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치메 뒤로 이어진 105번 트레일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1년은 머무르고 싶은 풍경
    교회를 지나자 금세 안개가 걷혔다. 아침 햇살에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드러났고, 그 길 끝에는 라바레도Lavaredo산장이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선 바위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산장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여전히 거대한 암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대쪽을 향해 걸었다. 
    병풍 같았던 암벽은 거대한 돌기둥으로 변하더니, 반대편에 이르러서야 그 병풍 암벽이 트레치메의 뒷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웅장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독특한 모양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 걸까? 트레치메는 내가 아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자연건축물이었다. 
    로카텔리Locatelli산장(2,405m)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지붕 바로 아래의 좁은 다락방이었지만, 트레치메와 잘 어울리는 방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트레킹을 위해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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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이 살 것 같은 산세를 배경으로 아우론조산장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산장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비현실적일 만큼 파란 하늘 아래, 구름은 하얀 솜사탕처럼 기암괴석에 붙어 쉴 새 없이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모든 길 위에는 하이커들이 걷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잠시 고민하다 101번이라 적힌 한산한 길을 골랐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잿빛의 울산바위를 닮은 암벽이 늘어서 있었다. 너무나 웅장해 아래에 펼쳐진 호수의 크기는 물론 거리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항상 배낭을 짊어지고 지칠 때까지 걷다 멈추는 곳이 잠자리였기에, 산장을 정해 놓고 해가 지기 전에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불안했다.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었다. 
    관광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서 누군가 걸어왔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 끝에서 얼마나 걸어왔는지를 묻자, 너머에 무엇이 있고,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곤 지도가 두 개라며 하나를 건네주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지도를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눈 뜬 장님마냥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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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치메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수많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돌로미테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커다란 산봉우리를 끼고 가는 스위스나 프랑스의 하이킹 코스와 달리, 돌로미테는 바위산 사이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촘촘하게 나뉘어 있었다. 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암봉들을 만끽하며 눈도 발도 즐거워졌다. 
    101번 코스는 개척되지 않은 듯한 황량한 바위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계속 가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로카텔리산장으로 돌아가려면 피안 디 센지오Pian di Cengio산장에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정오가 훌쩍 지났고, 울산바위를 닮은 잿빛 바위산들의 뒷모습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시 라바레도산장을 지나 트레치메 뒤쪽을 걸었다. 아침엔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아우론조산장 반대편 풍경은 설악산 용아장성을 더 첨예하게 뽑아놓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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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을 걷는 수많은 이들이 소원을 빌며 쌓아 올린 돌탑이 즐비하다.
    설악산을 좋아하는 나는 넋을 잃고 한참 바라보았다. 트레치메를 돌아 랑암Langalm산장( 2,283m)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서 1년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암봉을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었다. 계절마다 푸른 초원과 야생화가 필 것이고,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볼 것이고, 밤이 되면 세 개의 암봉 끝에 걸쳐질 은하수를 상상하니 대상도 없이 무한정 질투가 났다. 막연히 내가 누리지 못할 아쉬움이 질투를 유발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트레치메를 두 눈에 깊이 새기며, 트레킹을 마무리했다. 
    로카텔리산장의 배정 받은 아늑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어 있던 침대를 차지한 주인들이 인사를 했다. 짐을 풀며 각자 다녀온 코스를 설명하느라 소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그 경이로움을 그들보다 더 멋진 미사어구로 표현하지 못한 채, “어메이징!”이라는 외마디를 내뱉는 자신을 한탄스러워했다. 내 표정에서 그 어마어마함을 읽어냈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식당 창문으로 보이는 한 폭의 명화 같은 트레치메를 발견했고, 찬사는 계속되었다. 곧이어 나온 포크스테이크와 생맥주는 결국 로카텔리산장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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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카텔리산장에서 출발해 하염없이 걸으면 그림마냥 우뚝 선 트레치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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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 물 위의 골목마다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떠다닌다.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낭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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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치메로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유유히 떠다니는 배만큼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여유롭다.
    트레치메의 신비한 아우라
    다음날 새벽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조용히 옷을 껴입고 카메라를 챙겼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진정시키며 겨우 방을 빠져나와 로비로 내려가니 부지런한 사람 몇몇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위치가 가장 좋을지 몰라 한 무리를 따라갔다. 여명이 밝아오자 운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넘실대는 운해를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었다. 트레치메의 뒷면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치마그란데의 머리부터 물들이기 시작했다. 모든 변화가 트레치메가 자아내는 신비한 아우라처럼 느껴졌다. 트레치메에서 시작된 돌로미테 트레킹은 알타비아 코스로 이어지는 다음 트레킹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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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치메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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