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수의 히말라야 트레킹ㅣ네팔 무스탕 왕국의 티지 축제<1>] 고대 신성성 전승된 무스탕 티지축제

  • 글 사진 조진수 작가
    입력 2019.08.01 10:56

    종교·문화사적 가치 높아… 아늑함·신비로움 느끼게 하는 천혜의 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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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체마을에서 촬영한 안나푸르나산군의 일몰.
    네팔은 2007년 239년간 이어온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네팔의 서부 지역에 자리 잡은 무스탕 왕국은 6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영토와 권력은 모두 잃었지만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왕과 왕궁이 있고, 혈통에 따라 그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역시 권위는 스스로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 줘야 빛나는 법이다.
    무스탕 왕국의 수도인 로만탕은 1992년에야 외부세계에 공개됐다. 오지이기도 했지만 달라이라마를 추종하는 대중국 무장 저항군이 부근에 주둔했던 까닭도 있다. 티베트와 매우 가깝고, 티베트계 주민들이 다수 살고 있어 종교, 문화, 생활양식이 티베트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밭농사와 목축이 주업이고, 티베트와의 소규모 국경무역이 활발하다. 도로가 뚫리면서 찾아오는 외국 트레커가 늘어나 호텔과 로지 등의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아직은 전통문화에 기초한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 눈을 뜨면서 특유의 순수성과 신비로움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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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티나트사원에서 목욕을 하는 인도사람들.
    로만탕에는 유명한 축제가 있다. 바로 티지Teeji축제다. 축제는 본래 축일祝日과 제일祭日이 결합된 것으로 축하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요즘의 축제는 상업적이거나 즐기는 측면이 강하다. 
    티지축제는 형식과 내용이 축제 본연의 의미에 가깝고, 의상이나 프로그램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종교,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티지축제는 티베트력으로 세 번째 달인 다와숨바Dawa Sumba의 27~29일까지 3일간 로만탕에 있는 무스탕 왕의 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다. 양력으로 따지면 매년 날짜가 틀려진다. 올해는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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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만탕에서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현지인들.
    티지축제 참관 소요 비용은 10일간의 어퍼무스탕(로만탕) 트레킹 허가에 1인당 500달러를 내야 하고, 하루를 초과할 때마다 1인당 50달러를 더 내야 한다. 그리고 패키지처럼 따라붙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와 또 다른 허가에 55달러가 다시 추가되어 1인당 555달러를 우선 지불해야 하고, 여행보험도 들어야 한다. 참고로 날짜는 카그베니를 통과한 날부터 계산한다.
    티지축제의 입장료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하루에 1인당 10달러, 촬영을 하려면 1인당 10달러가 또 추가된다. 축제가 3일간 진행되므로 1인당 60달러가 추가되는 셈이다. 
    카트만두에서 로만탕으로 가자면 좀솜까지 비행기를 이용하고, 좀솜에서 다시 차를 대절해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지프차를 대절해 로만탕까지 가기로 했다. 차편을 이용해도 카트만두에서 로만탕까지 4일, 돌아오는 데 3일, 머무는 기간 3일, 합해서 10일간의 일정이기에 큰 무리가 없다. 지프차의 이용료는 한 대당 하루에 250달러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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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체마을 인근에서 만난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
    이번에 함께 간 일행은 5명이고, 스태프는 가이드와 쿡을 포함해 6명, 지프차는 3대를 빌렸다. 스태프들의 고용비용, 한국에서 네팔까지의 왕복 항공료, 식비, 숙박비까지 추가하면 부담스러운 경비다. 
    5월 28일 세 대의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카트만두를 출발했다. 포카라-베니-마파-좀솜을 거쳐 카그베니-추상-가미-차량을 지나 나흘 만인 5월 31일에야 비로소 로만탕에 도착했다.
    차량을 이용했는데도 나흘이나 걸리는 이유는 네팔의 도로 사정 때문이다. 네팔은 산이 많다 보니 산허리를 절개하고 개설해 놓은 도로가 대부분이다. 도로는 좁고 굽어 있는데다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그 흔한 가드레일조차 없다. 빨리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고, 처음 타는 사람은 차창 밖을 내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은 오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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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체마을 인근에서 만난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
    카트만두에서 베니까지는 포장도로지만 도로의 폭이 좁고 바닥이 패인 곳이 많아 역시 위험하다. 베니부터 경사와 굴곡, 요철이 심한 비포장도로가 계속된다. 공사가 진행 중인 구간에서는 위험성이 한층 높아진다.
    나는 20여 년간 네팔의 오지를 드나들면서 이런 상황에는 단련이 되어 있는 편이다. 초창기에는 등에서 식은땀이 마를 새가 없었는데 ‘허리서리남’을 체득하고부터는 심신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허리서리남’은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라는 의미의 네팔어다. 엄혹한 자연환경에서 갖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지내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비록 인간의 의지는 강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에게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이 생겨난다.
    로만탕은 지리적으로 볼 때 작은 왕국이 들어설 만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간 오지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평원인데다 그 평원을 크고 작은 물줄기가 휘감고 있다. 농사와 목축이 용이하므로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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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불경을 외고 있는 마파콤파의 어린 라마승.
    게다가 평원을 드나드는 출입지역을 빼고는 높고 낮은 산들이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무스탕 지역 특유의 강한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도 쉽다. 한마디로 히말이 겹겹이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어 아늑함과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하는 천혜의 길지다.
    구전에 의하면 무스탕 왕국의 초대 왕인 암팔이 염소 떼를 풀어놓고 그들이 정착한 지역을 찾아내 수도를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로만탕이라 한다. 암팔이 황금 공을 던져서 떨어진 곳이 로만탕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양의 풍수에서도 명당을 찾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동물은 인간에 비해 감각이 예민해 살기가 없는 편안한 자리를 잘 찾아내는데 그 자리가 바로 명당이라는 주장이다.
    로만탕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말을 빌려 타고, 부근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초세르마을은 케이브(동굴)로 유명하다.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높은 절벽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출입구와 창문들이다. 이 동굴들은 다층구조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당히 공을 들여 건설해 놓았다. 오래 전에 사람이 취사를 하면서 살았던 흔적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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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마을 노인.
    팅가르마을에는 퇴락한 왕궁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벽체는 상당히 두꺼우며 커다란 흙벽돌을 쌓아올린 구조다. 벽체의 높이는 10m 정도이고, 길이는 수십m에 달해 과거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이 지역의 건축물은 흙과 돌로 지어져 비에 취약하고, 지진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복구하거나 보존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대책 없이 방치해 사라질 운명에 처한 유적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스탕 왕국은 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국가이다. 티베트계 현지인들은 종교적인 신심이 깊다. 이들의 축제는 과연 어떠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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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만탕의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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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마을을 지나 닥마르마을과 차량마을이 갈라지는 지점의 초리덴들.
    티지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사실상 무스탕 왕국 차원의 행사라고 봐야 한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행사이기도 하다. 종교행사이기에 프로그램이나 의상 등이 원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신성시되는 종교 행사의 전부나 일부를 후대의 누군가가 임의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런 시도는 과거 축제를 주관했던 선대 모두의 권위를 부정하는 엄청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티지축제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다.
    이런 저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그래서 로만탕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점심을 먹고 티지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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