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에코 트레일ㅣ41~43구간 덕항산 르포] 고랭지밭과 폭염 넘어 시지프스의 운명에 도전하라!

입력 2019.09.15 13:56

태백 땅 두문동재에서 바람의 언덕과 환선굴 품은 덕항산 지나 삼척 땅까지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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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대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드러나는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 출하를 앞둔 여름 배추와 압도적인 높이의 풍력발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람이 없는 것이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폭염 경보가 내린 날, 산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끝없이 올려쳐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종주 산행을 삼복더위에 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로 갈 수 있는 하늘 끝에 두문동재(1,268m)가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 ‘문을 닫아걸고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이가 머물기 좋은 두문동재다.
스틱을 펴고 등산화 끈 질끈 조여 산행을 준비하는 이들은 전국에서 온 블랙야크 셰르파들이다. 용인의 권태도, 김천의 김찬일, 대구 성예진 셰르파가 종주에 나선다. 더불어 1,700㎞의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을 완주한 문승영씨가 함께한다. 체력과 의지가 강한 멤버들이라 폭염도 기세가 사그라지는 것 같다. 
너른 숲길을 따라 대간에 몸을 싣자 말나리와 동자꽃이 주황색 미소로 반긴다. 태백산, 함백산, 이름 높은 산들 지나서 닿은 기대 없는 능선에는 요정 같은 꽃들이 살고 있었다. 이름값은 낮지만 금대봉은 범상치 않은 산이다. 480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며,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있는 비범한 산이다. 산 이름도 ‘신이 사는 곳’이란 뜻의 검대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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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여름 햇살로 광합성한 식물들이 정글을 이루었다. 백두대간 등산로가 아무리 뚜렷하다 해도 여름 수풀의 성장을 억누를 순 없다.
금대봉은 인근 함백산 기슭의 고찰 정암사 창건설화와도 관련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절을 세우며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세웠는데, 금과 은으로 만든 탑은 중생들이 탐할 것을 우려해 금대봉에 금탑을, 은대봉에 은탑을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금대봉에는 금을 캐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금맥이 발견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금대봉 정상은 경치 없이, CCTV와 기상관측장비, 작은 표지석만 있다.
당마가목 껍질이 얼룩말 무늬처럼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자작나무나 거제수처럼 남쪽에서 볼 수 없었던 북방 나무들이 눈에 띈다. 땅은 기름져 거대한 활엽수들이 널려 있다. 특히 수아밭령에는 산신령 같은 풍모의 아름드리 물푸레나무가 아늑하게 터를 지키고 있다. 참나무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잎이 다르다. 이렇게 큰 물푸레나무는 처음이다. 자연낙지(햇볕을 받지 못하는 아래쪽 나뭇가지가 자연적으로 도태되어 떨어지는 현상)로 떨어진 나무줄기를 잘라 물에 담그면 세월의 무게 짙은 푸르스름한 빛이 우러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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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 넘치는 숲길을 걷는 블랙야크 권태도·김찬일 셰르파. 권태도씨는 71세로 전체 셰르파 중에 맏형이지만, 아일랜드피크 (6,189m)와 몽블랑(4,810m)을 올랐으며 백두대간을 3번 종주한 집념의 산악인이다.
처음 나타난 바윗길을 야금야금 음미하며 오르자, 비단봉 정상이다. 순간 거대한 녹음의 왕국이 휘몰아치듯 덮쳐온다. 영험한 신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태백산을 배경으로 함백산, 은대봉, 금대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순수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후두둑 소나기가 들이닥친다. 
더위에 넋이 나간 걸까? 가파른 비탈을 다 내려서고 나서야, 비단봉에 스틱을 두고 왔음을 알았다. 스틱을 되찾아 일행을 좇아가는 길이 유난히 힘들다. 폭염과 소나기 탓에 순간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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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를 넘어 대간을 걷는다.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도 숲의 순환은 계속된다.
홀대 속에 망가진 백두대간
시야가 뻥 트인다. 태백의 유명한 고랭지 배추밭과 거인 같은 풍력발전기가 능선 끝까지 뻗어 있다. 시원스러운 경치가 좋았던 것도 잠시, 선명하던 대간길이 개척산행길로 바뀐다. 태백산국립공원 경계임에도 관리가 안 되어 있다. 제멋대로 자란 초본류는 정글을 방불케 하고 토사 유출로 산길이 패이거나 소실되어 체력 소모가 크다. 백두대간 주능선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무너져 가고 있다. 
안타깝다.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맥론>이 지금도 한국 지리학의 기본 개념이듯, 원래 이 땅의 지리 개념인 〈산경표>와 백두대간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심지어 정부기관인 국립공원공단조차 백두대간을 통제하고 나라의 뼈대를 두 발로 답사하려는 이들을 ‘불법’이란 굴레를 씌워 억압하고 있다. 고토 분지로가 이름 붙인 ‘태백산맥’을 지금도 중고등학교에서 달달 외우듯, 대간은 태백시·국립공원·민간 모두에게 내팽개쳐져 홀대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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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거목 덕분에 햇살이 바닥에 닿아 초본류가 번성하고 다른 생명들이 성장하는 기회를 얻는다.
‘바람의 언덕’에는 택시와 구둣발의 관광객이 엉켜 있다. 고랭지밭이 해발 1,200m 주능선까지 장악한 탓에 임도가 잘 나 있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택시가 성행하게 되었다.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에서 관광객에 섞여 사진을 찍는다. 바람의 언덕은 관광객이 넘쳐나는데 600m 떨어진 매봉산(1,303m) 정상은 딴 세상인 듯 고요하다. 
풀숲에 뒤덮인 유적 같은 전망데크에 서자 매봉산에서 분기하는 낙동정맥이 한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 경상도의 근간이 되는 긴 산줄기가 백두대간에서 처음 갈라져나가는 곳이며, 한강과 낙동강이 시작되는 한반도의 젖줄이 되어준 이 의미 있는 산을 설명하는 안내판은 없다. 땀내 풀풀 풍기는 우리를 그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상한 외로움과 안타까움에 가까운 분개심이 일어나는 걸, 감미로운 노을이 달래 준다. 
임도와 산길을 주파해 도로가 가까운 건의령에서 길었던 하루를 마감한다. 폐교가 된 창죽분교를 ‘한강의 아침’이라는 이름의 야영장으로 리모델링한 곳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묵는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10년 전 내려와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 주인장 부부의 배려 덕분에 편히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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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령에서 구부시령으로 이어진 대간길의 초원 구간. 산불로 소실된 숲에 어린 소나무를 심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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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노을이 고랭지밭에 내려서고, 사람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아홉 번 남편 얻은 이야기 전하는 구부시령
건의령에서 삼척 방면으로 트인 첩첩산중을 눈에 담고 백두대간에 몸을 싣는다. 건의령은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살해되자, 공양왕의 신하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관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생긴 지명이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한의령寒衣嶺으로 표기되어 있어 이정표에는 한의령으로 표기한 곳이 많아 혼돈을 준다. 한 가지로 통일이 돼야겠다. 
오늘도 전국적인 폭염 경보이지만, 피할 곳은 없다. 평범한 육산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꽃들이 메워 준다. 새며느리밥풀, 일월비비추, 도라지모시대, 물양지, 참나물, 흰이질풀, 오리방풀, 마타리, 큰제비고깔, 싸리, 여우오줌, 닭의장풀, 뚝갈, 바위채송화, 참취, 짚신나물, 병조희풀 야생화가 꽃밭을 이뤄 소소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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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정상에 선 블랙야크 셰르파들과 문승영씨(뒷줄 왼쪽).
능선 우측으로 시야가 툭 트인다. 산불로 사라진 숲이 초원이 되었다. 기관과 기업, 민간이 십시일반하여 묘목을 심은, 어린 숲이다. 지도의 촘촘한 등고선 몇 줄도 폭염 앞에선 어려운 난코스가 된다. 무덥고 습한 날씨가 몸에 주렁주렁 달라붙어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1,055m봉 꼭대기에 퍼질러 앉아 토악질 같은 숨을 뱉어낸다. 한 줄기 바람만 있어도 좋을 텐데, 나무는 빽빽하고 기류는 찜통 같다. 
모처럼 서늘한 느낌의 안부, 구부시령이다. 옛날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이곳 한내리에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나무가 높은 덕항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자암재를 넘어서자 어제와 비슷한 듯 다른 고랭지배추밭과 풍력발전시설이다. 여름에 수확하는 배추이지만, 폭락한 가격 탓에 갈아엎은 밭도 눈에 띈다. 올해 배추농사가 잘돼 출하량이 늘면서 배추 가격이 2배 이상 폭락했다. 임도를 따르는 길은 좋지만 뙤약볕의 역공이다. 
큰재에 닿자 날이 저문다. 입추를 지났음이 일찍 저무는 해에서 비로소 실감난다. 익숙한 어둠, 익숙한 야간산행이 몸에 잘 맞는 옷 같다. 
하염없이 걷노라면 산이 이따금 묻는다. ‘왜 이 시간에, 이 고생을 하냐’고. ‘이 고통스런 산줄기가 그리워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하자, 울먹울먹 쏟아져 내리는 별무리를 내어주었다. 댓재 아스팔트 위에 퍼질러 눕자, 도시에서 축척한 수분이 모두 땀으로 빠져나간 듯 몸이 가볍다. 가슴이 텅 비어 지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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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에 세워진 표지석. 블랙야크 낙동정맥 인증지점이다.
덕항산 구간 종주 가이드
두문동재에서 댓재까지 36.7㎞이다. 오르내림이 많아 한 번에 종주는 어렵고, 구간을 나눠 산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41구간 두문동재에서 건의령까지, 42구간 건의령에서 자암재까지, 43구간 자암재에서 댓재까지 각각 당일 산행하는 것이 무난한 종주 방법이다. 자암재에서는 환선굴로 하산하거나 1.8㎞ 더 가서 만나는 고랭지밭 임도(승용차 통행 가능)에서 귀내미골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금대봉에서 분주령 방면은 사전예약을 해야 하지만, 대간길은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만 아니라면 별도의 허가 없이 산행 가능하다. 고랭지밭을 만나는 곳에서 산길이 희미해진다. 밭 경계의 희미한 산길을 따라가야 하며 간혹 임도를 따라 오르는 곳도 있다. 임도에서는 ‘바람의 언덕’ 이정표를 따른다. 매봉산은 정상을 들렀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피재에 닿는다. 1007m봉 구부시령에서 하산길처럼 길이 좌측으로 확 꺾인다. 주능선처럼 느껴지는 지능선을 따라 직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유명한 산이 없고 도로도 적당히 지나는 쉬워 보이는 구간이지만, 오르내림이 꾸준히 있으므로 체력과 시간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교통(지역번호 033)
두문동재를 관통하는 싸리재터널로 내비게이션이 안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고한 방면 터널 직전에서 우측의 구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서야 두문동재에 닿는다. 버스 노선이 없으므로 태백이나 고한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댓재에서는 삼척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하장에서 출발(08:40, 14:50, 18:00)해 삼척시내로 나간다. 문의 고한택시 592-0000, 592-4422. 태백택시 552-1212,  552-4747.
맛집(지역번호 033)
태백시내의 엄마손태백물닭갈비(554-3344)는 강원도식 물닭갈비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다. 닭갈비지만 육수가 있어 물닭갈비다. 과거 광부들이 고기류가 기관지에 좋다는 속설에 따라 칼칼한 고기를 찾았고, 저렴한 닭고기로 양을 불리기 위해 물과 국수를 추가했다고 한다. 보통맛과 매운맛이 있으며 육수에 깻잎과 부추, 미나리가 수북하게 얹혀 나와 얼큰함 끝에 향긋한 감칠맛이 돈다. 1인분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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