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수의 히말라야 트레킹ㅣ네팔 무스탕 왕국의 티지축제 <2>] '마음의 요마' 항복 받아야 해탈

  • 글 사진 조진수 작가
    입력 2019.09.09 11:29

    불교 교리를 축제로 승화시켜…
    악과 싸워 승리해야 세계 평화 메시지도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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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지축제의 중앙무대 긴 나팔이 이채롭다.
    네팔 로만탕의 티지축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원’을 표방한다. 처음에 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작은 왕국의 축제 슬로건이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접 축제를 관람하고 나니 이해가 간다.
    티지축제는 사카Shakya 분파의 수도원인 초드 곰파Chyodi Gompa에 의해 조직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티베트 승려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또 마무리된다. 티베트 불교의 종교행사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티베트 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수행의 완성으로 보지 않고, 일체 중생의 해탈을 지향하는 대승불교다. 티베트 불교의 관점에서는 무스탕 왕국의 평화보다 세계의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것이 자연스럽다. 티지축제의 ‘세계 평화 기원’은 이러한 종교적인 토양에서 나왔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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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을 들고 민속춤을 추는 라마승들
    티지축제는 스토리가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첫째 날에는 혼돈의 세상에 부처님의 환생인 도르제 손누가 나타나고, 둘째 날에는 도르제 손누가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를 제거하며, 셋째 날에는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티지축제는 3일간 이어지는데 오전과 오후가 좀 다르다. 오전은 라마승들이 기도와 제물을 올리는 정적인 프로그램, 오후는 춤과 음악, 가면의 퍼포먼스까지 펼쳐지는 동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외국 관람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바로 오후 프로그램이다. 
    첫째 날 오후 프로그램은 무스탕 왕궁 앞 광장의 남쪽 벽면에 대형 탱화가 내걸리면서 시작된다. 이 탱화는 매우 커서 가로 5m, 세로 10m쯤 된다. 중앙에는 구루린포체가, 상하좌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보살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구루린포체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지역마다 중점적으로 신앙하는 대상이 조금씩 다르다.
    이 탱화는 400년 전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일반 탱화와는 다르게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일일이 자수를 놓아 만들었다. 섬세하면서도 매우 생동감 넘쳐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비범한 솜씨와 정성을 짐작케 한다.
    탱화 아래쪽에는 이 지역에서 살다가 열반에 든 라마승의 사진액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사진과 닮아 보이는 젊은 라마승이 앉아 있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그 젊은 라마승은 열반에 든 라마승의 환생임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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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지축제 마지막날 라마승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 부처 될 때까지 환생해서 중생 제도
    중생들은 전생의 기억을 잃고 윤회를 거듭하지만 달라이라마나 득도한 라마승들은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계속 환생해서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현지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환생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 그날까지다. 
    300평 남짓한 광장은 500명을 훌쩍 넘는 외국인들과 비슷한 숫자의 현지인들로 빼곡해서 움직이기도 어렵다. 카메라를 하나씩 든 외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들이고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인산인해를 뚫고 용을 새긴 모자를 쓴 도르제 손누Dorjee Sonnu와 황금색 모자를 쓴 라마승들이 등장하면서 카메라 셔터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도르제 손누는 부처님의 환생으로 간주되며 이 축제를 이끄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그는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추면서 느린 회전을 계속하는데 미묘하게 서로 다른 그의 춤사위는 52가지나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춤을 추면서 때때로 불경도 암송한다.
    황금색 모자를 쓴 라마승들은 도르제 손누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춘다. 이들은 도르제 손누를 보호하는 신령한 존재, 혹은 황금색 모자로 미루어볼 때 부처님의 광배를 표현한다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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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중마을 근처에서 양떼를 몰고가는 현지인
    갖가지 짐승과 흉측한 괴물, 예컨대 호랑이, 사슴, 야크. 까마귀, 말 형상의 탈을 쓴 무용수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혼돈의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여겨진다. 이 가면들은 진흙으로 만들어지며, 그 위에 여러 겹의 천을 덧댄 다음, 갖가지 색으로 동물의 특징을 잘 표현해서 생동감이 넘친다.
    무용수들의 의상은 대부분 실크로 만들어졌는데 문양은 복잡하고도 섬세하며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다. 주로 삿된 기운을 쫓아내는 용이 많이 표현되었고, 불교 특유의 상징과 문양들이 많은데, 그 의미를 상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근래에 만든 새 의상도 있고, 아주 오래되어 변색되거나 천이 해어져 너덜거리는 의상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상징을 대변하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동안 투구뿔새의 벼슬처럼 생긴 커다란 붉은 모자를 쓴 라마승들은 구리로 만들어진 긴 나팔과 북, 커다란 나팔고동, 심벌즈를 연주하면서 춤사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는 매일 3시간 남짓 공연되며 3일간 계속되는데,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춤의 동작은 현란하지 않고, 음악의 리듬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연중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광장을 가득 채우며 모두의 영혼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들의 춤동작은 다양한 스텝과 우아하고 느린 동작, 계속되는 회전이 특징이다. 이 동작들은 무용수들이 제멋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 만들어진 이후, 대를 이어 비밀스럽게 전수해 왔다고 한다. 음악을 포함한 티지축제의 모든 프로그램 역시 그렇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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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마지막 기도를 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춤과 음악이 또 다른 형태의 기도라고 판단하고 있다. 춤과 음악을 통해서 구루린포체를 비롯한 고대의 스승들과 교감하고 또 일치를 이룬다고 본다.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은 다르다. 신앙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기도, 즉 일치를 위한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기도문이나 육자진언을 후대의 누군가 임의로 바꾸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티지축제의 춤과 음악은 일종의 기도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본다.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형태를 그대로 재현해야 신과 교감할 수 있다. 춤의 동작과 음악의 템포, 불경을 외우는 고저장단 등이 정확해야 구루린포체와 교감하고, 가호를 받을 수 있다.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는 행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범부가 기도하는 것보다는 수행을 많이 하고, 심력이 큰 사람이 기도해야 신이 응답하고, 소원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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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지축제에서 북을 치는 라마승. 2 로만탕에서 만난 현지 여인들. 3 사진은 로만탕의 죽은 고승이고 옆의 젊은 라마승은 그의 환생이다. 4,5,6,7,8,9 가면춤을 추고 있는 라마승들. 10 보리가루와 야크버터로 만든 떡을 들고 기도를 하는 주무라마승. 11 로만탕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노인. 12 무스탕 왕이 왕족과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관람하고 있다.
    둘째 날의 오후에도 벽면에 비슷한 크기의 탱화가 내걸리는데, 첫째 날의 탱화와 달리 구루린포체 한 분만 묘사되어 있다. 구루린포체의 가호를 중점적으로 염원하는 의미라고 본다. 이 탱화는 비교적 최근에 제작한 것 같다. 이제 무용수들의 동작은 전날에 비해 더 활발하고 공격적인 형태를 띤다. 악마의 발호와 살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춤이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악마로 상징되는 짚인형을 공중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셋째 날에는 벽면에 아무런 탱화가 내걸리지 않는다. 이제 평화가 찾아왔음을 암시한다. 동물 가면을 쓴 승려들이 춤을 추고, 단검으로 인형을 척살하며, 인형의 머리는 잘라버린다. 그 머리는 궁전의 출입구에 묻는다고 하는데 혼잡한 통에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축제가 끝나면 참여했던 승려들은 모두 궁 밖으로 향하고, 그 뒤를 왕과 현지 주민들이 뒤따른다. 그리고 화승총을 쏘면서 악에 대항해 정의가 승리했음을 선포하고 또 자축한다.
    무스탕 왕국의 티지축제가 지향하는 평화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악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둘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개인이나 국가, 세계 모두 치열하게 악과 싸워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선언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요마의 항복을 받아야 해탈에 이른다’는 불교의 교리와 상통한다. 평화를 누리려면 악과 싸워야 한다. 천지간에 공짜는 절대로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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