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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캠페인ㅣ관악산 클린하이킹] "제발 쓰레기를 땅에 묻지 마세요!"

월간산
  • 입력 2019.09.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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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범벅이 되었지만 보람찼던 제9회 관악산 클린하이킹

파고 또 파도 끝 없이 땅 속에서
나오는 쓰레기.
파고 또 파도 끝 없이 땅 속에서 나오는 쓰레기.

한 달에 한 번,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바로 클린하이킹 하는 날! 쓰레기를 줍는 날이 기다려진다니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번에는 어떤 좋은 사람들과 어떤 산을 깨끗이 할지, 좋은 에너지를 나눌지 늘 기대가 된다. 산행지를 고르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벌써 공식적인 산행 횟수가 9번째에 이르니 서울 근교 웬만한 산은 다 가본 것 같다. 그러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산이 있었으니, 바로 관악산! ‘악’자가 들어간 산이라 미뤄 왔지만 ‘악산’이라고 외면하면 섭섭하다. 그래, 이번엔 관악산이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클린하이킹 신청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작년에 첫 클린하이킹 모임 때에는 6명 참가자 전원이 남자들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엔 여성이 더욱 열성적으로 신청을 한다. 처음엔 못미더웠던 클린하이킹 모임에 신뢰가 생긴 것일까? 좋은 신념을 지닌 여성 하이커가 늘어난 걸까? 어찌 되었든 간에, 반갑고 기쁜 마음 가득이다. 클린하이킹 세계에 들어온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바이다.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도!

쓰레기를 줍는 필자. 무언가를
깨끗이 하기 위해 사용한 휴지일
텐데, 그것을 버려 자연을
더럽힌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쓰레기를 줍는 필자. 무언가를 깨끗이 하기 위해 사용한 휴지일 텐데, 그것을 버려 자연을 더럽힌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소리 나는 관악산, ‘광부가 되다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면 ‘악’ 소리 날 정도로 힘들다고들 말한다. 관악산 또한 거친 암릉으로 이루어져 서울에서도 유독 힘든 산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과천역에서 시작하는 과천향교코스는 클린하이킹 하기에 제격. 등산로도 잘 닦여 있고, 완만한 편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13명의 클린하이커들이 도란도란 걸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짙은 여름색으로 농익은 푸른 세상이 우리를 에워싼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잔 하고, 쉬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3명의 하이커들이 보이질 않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려가 봐야 하나 싶을 때쯤 올라오는 사람들. 어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쓰레기 하나가 묻혀 있어서 땅을 파헤쳤는데 노다지처럼 파내고 파내어도 쓰레기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졸지에 광부가 된 클린하이커들. 

어이없어 웃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사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심심찮게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어떤 경우에는 쓰레기가 오랜 시간 파묻혀서 그 위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수거하지 못하고 흙을 다시 덮어야 하는 때도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건 나쁘다. 하지만 쓰레기를 묻는 건 더더욱 참을 수 없다. 우리가 즐기는 산은 나무와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누가 우리 집에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상황을 한 번쯤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다.

관악산의 암릉을 타는
클린하이커들.
관악산의 암릉을 타는 클린하이커들.

소박해도 행복할 수 있는 곳

흠뻑 땀을 빼며 쓰레기를 줍다 보니 금세 뱃가죽에서 둥당둥당 소리가 울린다. 연주암 근처 공터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절제하고 요령껏 싸온 도시락과 달콤한 아이스커피 한잔에 절로 어깨춤이 춰진다. 행복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클린하이커 정은씨가 이야기했다.

“몇 년 전 백패킹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동호회 활동에 몇 번 나간 뒤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사와서 버리고, 각종 포장 쓰레기에, 밤새 술을 즐기는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꼈거든요.”

나 또한 느꼈던 아쉬움이다. 산을 즐기는 방법은 제각기 다양하겠지만, 소박해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산 아닌가. 우리가  자연 속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누리고자 하는 편안함이나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 소박한 물 한 모금, 김밥 한 줄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느끼는 순수함이 아닐까?

그 누구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이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육수에 선크림은 녹아내리고, 13명의 클린하이커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격려하며, 이따금씩 함박웃음 짓는 그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아름다운 얼굴처럼 보였다. 오늘의 클린하이킹은 하산하자마자 보이는 식당에서 시원한 콩국수, 묵사발로 마무리했다. 이제껏 느꼈던 더위를 보상받는 시원함. 그래, 이 맛이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관악산 클린하이킹 참가자들이
암봉 위에 모였다.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사람들이다.
관악산 클린하이킹 참가자들이 암봉 위에 모였다.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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