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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새연재 옛 문헌에 나오는 ‘한반도 명산’ㅣ<1> 삼국사기] 고대 명산이 지금도 명산

글 박정원 편집장
  • 입력 2019.09.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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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오악·소사 상당수 국립공원 지정… 정확한 위치 알 수 없는 곳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 완질본에 나오는 소사·중사 관련 부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 완질본에 나오는 소사·중사 관련 부분.

한반도 명산은 한국 최초의 역사서 <삼국사기>부터 자세히 나온다. 권32 잡지1 제사조에 ‘3산·5악 이하의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을 나누어 대大·중中·소사小祀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이 사실상 한반도 명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여기에 선정된 대부분의 산이 지금까지 한반도 명산으로 꼽히고 있다. 이 명산들이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됐을까. 

먼저, 대·중·소사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소사의 분류 형식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으며, 여기에 지정된 산들은 모두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명산들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자마자 당唐의 문물과 제도를 상당부분 그대로 수용해서 실시했다. 당시 무열왕은 당 문화의 신봉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대사는 신라의 국가적 제사로서 산천에 지내는 행사 중에 가장 큰 제사였다. 중국의 대사와의 차이점은 신라에서는 대사의 상위上位에 이미 신궁神宮·오묘五廟·사직단社稷壇·선농先農 등의 관계신에 대한 제사를 따로 지정하고 있어, 대사로 지정된 산에 대해서만 제사를 지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즉 천지신과 종묘에 대한 제사를 따로 지냈다. 

대사 3산은 수도방위용·국가수호신 거주처

신라는 대사大祀로 3산을 지정했다. 1은 내력奈歷, 2는 골화骨化, 3은 혈례穴禮의 3산이 이에 해당한다. 신라에서 대사의 대상으로 숭상됐던 이 세 산은 신라 영토 내의 여러 명산대천 중에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했다. 내력은 당시 지명이 습비부習比部로 기록돼 있다. 내력은 <삼국유사>에서는 내림奈林으로 나온다. 습비부는 신라 6부의 하나로, 지금 경주시 동 및 동남에 걸쳐 있었던 행정구역이다. 고 이병도 선생은 이로 볼 때 지금 경주시 동남에 있는 낭산狼山으로 추정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내력은 경주의 동남쪽은 분명하다. 

골화는 절야화군切也火郡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골화는 지금 지명으로 영천 완산동과 범어동 일대의 완산이라는 설과 영천과 경주 사이에 있는 금강산이라는 설 등으로 나뉜다. 역사학자 정구복은 “절야화군은 양주良州의 옛 지명으로 현재의 영천시. 그 영현인 임천현臨川縣은 조분왕 때 골화소국을 굴복시켜 설치한 현으로 골화는 원래 골화소국의 수호신이었다가 신라 삼산의 하나로 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지역이 바로 완산 일대라는 것이다. 반면 이병도는 “절야화군은 지금 영천군의 옛 지명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지금의 금강산이 골화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혈례는 대성군에 있다고 한다. 대성군은 지금의 청도. 따라서 경주 북부의 어래산魚來山 또는 청도와 밀양 중간에 있는 오례산烏禮山, 그리고 경주 단석산으로 주장하는 세 가지 설로 나뉜다. 따라서 대사 삼산은 현재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나 경주 주변에 있는 세 개의 산 정도로 파악할 수 있다. 

지금으로 보면,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 산을 왜 가장 중요한 대사 3산으로 지정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왕이 거주하는 수도 주변을 지키고 보호하는 순전히 국토 수호신의 거주처인 산으로만 파악하면 될 것 같다. 고대에서 국가의 수호신은 산악을 본거지로 하여 숭배되므로 수호신과 산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삼소三蘇도 수도를 중심으로 주위에 3개 산신을 지정했고, 삼한시대의 소도 역시 신산神山 혹은 신산 아래에 설치됐던 것으로 전한다. 

중사 기타 지정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

중사中祀는 5악과 4진, 4해, 4독, 그리고 기타로 나뉜다. 5악은 다섯 방위로 나눠 국가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산으로 지정했다. 오악은 원래 중국 전한前漢 때부터 숭상하던 다섯 방위의 명산으로, 천자가 매년 제사지내기 위해 순행했다. 기원 전부터 숭배했던 산악신앙은 왕조가 바뀌어도 계속 이어졌다. 삼국 시기에도 신라에서 경주 평야 주변에 토함산, 남산, 선도산, 금강령, 중악이라는 오악의 개념을 사용했던 흔적이 보인다.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는 중국의 오악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는 동시에 확대된 국토를 관리하기 위해 신문왕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산 5개를 오악으로 다시 지정하며, 국가적 제사체계를 새로이 갖췄다. 대사가 수도를 수호하는 신들의 거처였다면, 중사는 국토 전체를 지키는 수호신들의 거주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국방상의 요새 역할을 하며, 신라왕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중국의 <주례周禮>에 따르면, 주나라는 중사로서 일월성신과 사직, 오사, 오악에 제사 지냈고, <구당서舊唐書> 예악지禮樂志에서도 당대에 중사로서 일월성신, 사직, 선대제왕 및 오악, 사진, 사해, 사독과 제사帝社, 석존 등에 제사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신라는 당의 중사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되, 산천에 대한 제사만으로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사의 오악, 사진, 사해, 사독은 신라의 동서남북 사변을 원칙으로 하고, 때로는 거기에 오악과 같이 중中을 넣기도 했다. 

5악의 동은 대성군에 있는 토함산吐含山, 남은 청주菁州(지금 진주의 옛 지명)에 있는 지리산地理山(원본에는 智異山이 아니다), 서는 웅천주(현재의 공주)에 있는 계룡산鷄龍山, 북은 내사군奈巳郡(영천의 옛 지명)에 있는 태백산太伯山, 중은 압독국押督國(경산의 옛 지명)에 있는 부악父嶽(지금 팔공산)이다. 오악의 산들은 지금도 한반도의 명산으로 꼽힌다. 

4진도 오악만큼 중요시된 곳이다. 중국 <주례>에서 4진은 행정구역상 9주九州의 진으로 된 대산 중에 오주의 진, 즉 오악을 제외한 나머지 4주의 진산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4진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중요한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진은 동진에 온말근溫沫懃, 남진은 해치야리海恥也里, 서진은 가야갑악加耶岬岳, 북진은 웅곡악熊谷岳이다. 현재 정확한 위치가 확인된 지명은 서진인 가야갑악이 충남 예산 덕산과 서산시 해미면에 걸쳐 있는 가야산이라는 것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대충 지역만 추정할 뿐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대충의 위치는 동진 온말근은 경주시 강동면과 포항시 연일읍 부근 정도로 알려져 있다. 남진 해치야리는 추화군이라고 하며, 현재 밀양시로 추정하고 있다. 북진 웅곡악은 비열홀군이며, 함경남도 안변군 정도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4해·4독은 산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설명을 생략한다. 

중사 마지막 부분에 기타로 해서 6개 지역을 소개한다. 삼년산군(현재 보은군)에 있는 속리악, 대가야군에 있는 추심推心, 서림군에 있는 상조음거서上助音居西, 결기군에 있는 오서악烏西嶽, 대성군에 있는 북형산성北兄山城, 조금도에 있는 청해진 등이다. 대가야군은 현재 고령군이나 추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오서악은 지금의 오서산이다. 북형산성은 경주 강동에 있는 형산으로 알려져 있고, 청해진은 장보고가 활동하던 완도 동쪽 장도다. 기타의 지정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나 아직 정확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부는 소사에 들어갈 지역이 중사에 잘못 들어간 지역이라는 설과 오악와 사진 사독 등을 지정한 후에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추가로 중사에 지정했을 것이라는 설 등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시대부터 명산이 지금도 대부분 명산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진은 <삼국사기></div> 소사로 지정했던 설악.
삼국시대부터 명산이 지금도 대부분 명산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진은 <삼국사기> 소사로 지정했던 설악.

소사는 국토방위·지방호족 관리용인 듯

국가적 제사지의 마지막 소사小祀는 전국에 걸쳐 구석구석까지 24곳을 지정했다. 이것도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주례>는 소사로서 사령司令 이하 산천백물에 제사 지냈다고 소개하고 있고, <구당서>에도 사중司中, 사령司令, 풍백風伯, 우사雨師, 제성諸星과 산림천택지속에 제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는 당의 제도를 변용해 받아들이면서 대중사에 끼지 못한 산천만을 지정해서 배정했다. 

소사는 상악霜嶽, 설악雪嶽, 화악花嶽, 겸악鉗嶽, 부아악負兒嶽, 월나악月奈嶽, 무진악武珍岳, 서다산西多山, 월형산月兄山, 도서성道西城, 동로악冬老岳, 죽지竹旨, 웅지熊只, 악발岳髮, 우화于火, 삼기三岐, 훼황卉黃, 고허高墟, 가아악嘉阿嶽, 파지곡원악波只谷原嶽, 비약악非藥嶽, 가림성加林城, 가랑악加良岳, 서술西述이다. 

현재 강원도 고성군의 옛 지명은 달홀이었으나 경덕왕 이후의 지명인 고성군으로 소개된 것은 상악, 즉 금강산이 소사로 지정된 시기가 상당히 늦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수성군 설악은 지금의 설악산. 근평은 가평군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화악산을 말한다. 칠중성은 파주시 적성면의 옛 지명이고, 겸악은 지금 감악산의 옛 이름이다. 북한산주는 지금 종로구 일대를 말하며, 부아악은 북한산의 옛 지명이다. 인수봉이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 닮았다고 해서 명명됐다. 조선시대에는 백운대·동장대·남장대의 세 봉우리가 유달리 솟아 삼각산으로 주로 불렸다. 월나군은 영암군의 옛 지명이고, 월나악은 현재 월출산을 가리킨다. 무진주는 현재 광주 동구 일대. 무진악은 현재 무등산이다. 백해군은 전북 진안군 일대를 말하며, 서다산은 현재 서대산이다. 월형산은 현재 충북 제천시 한수면과 덕산면에 걸쳐 있는 월악산을 말하며, 나토군 사열이현은 현재 제천시 청풍면 일대를 말한다. 만노군 도서성은 도살성이라고도 하며, 충북 제천의 니성산성 일대가 이에 해당한다. 진례군 단천현은 현재 무주군 무주읍 일대이며, 동로악은 덕유산이 해당된다. 덕유산 정상 근처에 동엽령冬葉嶺이 있는데 옛 지명의 흔적으로 보인다. 급벌산군은 현재 영주 순흥면 일대이며, 죽지는 죽령의 옛 지명이다. 웅지는 현재 진해시 성내동 일대이며, 지금의 웅산을 말한다. 우진야군은 울진군의 옛 지명이지만 악발의 현재 위치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우화현은 울주군 웅촌면 일대를 말하며, 현재 곡천리 서쪽에 있는 운암산이 우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경주 금곡산이 신라 때 삼기산이었다. 모량은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훼황도 지금 경주 부근으로 현재 단석산(과거 월생산)으로 추정한다. 사량도 지금 경주 부근으로 짐작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며, 고허는 금오산으로 짐작하고 있다. 삼년산군은 지금 보은이며, 가아악은 속리산을 제외한 그 주변 일대를 말하는 듯하다. 아지현은 현재 포항시 청하면 일대로 파지곡원악은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퇴화군도 현재 포항시 흥해읍이지만 비약악은 어딘지 알 수 없다. 가림현은 현재 부여군 임천면 일대를 말하며, 가림성은 그곳의 성흥산성을 가리킨다. 청주는 진주의 옛 지명이며, 가랑악은 지금 가야산이다. 당시 가야산은 대가야군(지금 고령) 소속으로 기록해야 하는데 청주로 표기한 것은 학자들마다 이견은 있지만 신라의 의도로 파악한다. 모량은 경주시 서현동 일대를 말하며 서술은 그곳의 선도산을 가리킨다. 선도산의 다른 명칭은 서악, 서술, 서형, 서연西鳶 등이 있다. 선도산신모神母의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 산이다. 

이와 같이 현재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몇몇 지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대의 명산은 지금도 그 명산의 명맥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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