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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백두대간 여성 단독 일시종주기 <1>프롤로그] 24살 여자, ‘진짜’ 산악인 되고자 백두대간 걷는다

글 사진 성예진
  • 입력 2019.08.23 18:52
  • 수정 2019.08.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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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45일 간의 백두대간 일시종주

성예진(24)씨가 8월 25일부터 단독 백두대간 일시종주에 나선다. 진부령에서 출발해 지리산으로 남진하는 45일 간의 일정이며, 합법적인 법정등산로만 이용하는 에코트레일 종주를 할 계획이다. 월간<山>은 성 씨의 생생한 종주기를 실시간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다. 젊은 산악인의 도전에 대해 많은 독자들의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올해 목표는 3가지였다. 등산학교 정규반을 졸업하는 것, 대한산악연맹의 오지탐사대에 지원하는 것, 그리고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진정한 산악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해외 원정을 가고 싶다’는 꿈에서 비롯됐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며 빠른 속도와 경쟁에만 집중했던 내가 산에 오르게 된 것은 제주 산악인 ‘형님들’ 때문이다. 제주 한라산에서 잠시 일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형님들과 나눈 대화의 99%는 산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중 많은 부분이 바로 고산등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땐 산에 무지했었다. 히말라야 8,000m 산을 오른 이야기를 마치 동네 뒷산에 오른 것처럼 얘기하기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마칼루, 에베레스트, K2 같은 고산을 올랐던 이야기가 나올 때도 뉘앙스 상 ‘그저 어려웠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K2는 등산복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밤을 새워가며 8,000m를 오른 이야기, 다음 원정에 대한 이야기, 죽기 전에 꼭 오르고 싶은 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내 속에도 고산등반의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무엇인가가 느껴졌고, 진정 산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날 추동시키는 가슴 속 열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등산학교에서 들었던 한 강의가 떠오른다. 강사는 ‘산악인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 건, 일반인에게 왜 사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산악인에게 산은 곧 ‘존재의 이유’기 때문이다. 명료하게 언어화된 대답보다 산악인의 행동과 삶, 존재 자체가 대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념과 태도 지키며 걸을 것

산에 다니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소속에 대한 것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된 바 없었기에 어느 대학교 산악부인지, 어느 등산학교 출신인지 물을 때마다 대답하기 곤란했다. 여태껏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쉬움이 들었다. 심지어 지금이라도 대학교에 들어가서 산악부에 가입하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그만큼 산악인들 사이에서 소속이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산악부는 갈 수 없으니 등산학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올해 4월 한국등산학교에 입학해 일반등산부터 산악문학, 알피니즘, 한국등반사, 암벽등반까지 넓은 범위의 산을 배웠다. 이렇게 올해 달성하고자했던 3가지 목표 중 한 가지를 이뤘지만 오지탐사대는 행사 자체가 중단돼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올해 목표의 마지막. 백두대간 일시종주 그 시작점 앞에 지금 막 섰다. 당장 내일이면 45일 간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출발 전날이라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백두대간의 ‘백’자도 몰랐던 내가 어쩌다 여기에 섰는지 모를 일이다. 

1년 동안 산에 다니면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산행의 추억들이 참 많다. 아마도 일시종주를 하다보면 외로움이 불쑥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추억들을 떠올리면 외롭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 같다.

한편 최근 알게 된 한 선배는 백두대간 일시종주에 대한 응원의 말과 함께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어린 산악인이 드물다. 기성세대의 산악인들이 너의 길을 오해할 수도 있다. 가령, 타이틀을 노리는 산악인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열정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쌓는 와중에 항상 겸손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가라.”

쉽지 않은 이야기다. 이러한 오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결국 내 안에 신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내 마음과 자세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불편해 하는 누군가도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에서의 ‘최초’나 ‘최단’ 같은 일에는 그다지 욕심이 들지 않는다. 다만 욕심을 내는 것은 8,000m 위를 오르는 일이다. 휘황찬란한 타이틀보단 고산을 향한 오름 짓을 계속 이어가보고 싶을 따름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 일시종주에 도전하고, 또 완주하며 기쁨과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길 위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많은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산은 스포츠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은 자연이 허락하는 일이다’ 등 선배 산악인들이 들려준 말들이 많다. 이 말들을 가슴에 품고 백두대간 위에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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