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동계올림픽 개최지 미리 본다ㅣ<2> 코르티나 전쟁 스토리] 돌로미테 최강의 산악부대 ‘알피니’를 아시나요?

  • 글 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입력 2019.10.02 18:28 | 수정 2019.10.02 19:32

    전쟁에서 활약한 알프스와 돌로미테의 산악부대원들 시신 지금도 빙하 속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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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오스트리아 군복을 입고 라가주오이 정상에 선 코르티나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인 이들은 등산객과 관광객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절벽 아래 수석처럼 솟은 수려한 암봉이 친퀘토리이다.
    코르티나Cortina의 파쏘 팔자레고Passo Falzarego(2,105m)는 돌로미테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곳 중 하나다. 가장 유명한 행사는 매년 열리는 장거리 사이클 대회다. ‘마라토나 델라 돌로미티Maratona della Dolomiti’라고 불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라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 수 만 명이 참가했으며 2004년부터는 추첨으로 9,000명을 선정해 참가토록 하고 있다. 175㎞ 거리이며 7개의 고개Passo를 넘는 이 대회는 사이클 선수들에게는 꿈의 대회다.
    이곳 험난한 지형의 거대한 바위산 자락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최대의 전투지역이 되었다. 세계 산악 전투사에서 빠지지 않는 전투로 기록되었을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돌로미테가 솟은 지역은 본래 티롤Tirol에 속하며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오스트리아는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 의해 티롤의 남쪽 덩어리를 이탈리아에 넘겼다.
    이탈리아는 남티롤의 영토를 편입해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Trentino-Alto Adige주를 만들었고, 그 면적이 무려 13,607㎢에 이른다. 덕분에 이탈리아는 남쪽 따뜻한 지중해부터 북쪽의 알프스 돌로미테 산악지대까지 아름다운 자연을 품게 됐다.
    이 전투는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 왕국, 헝가리 제국 간의 국경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들을 일컫는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계 주민 거주 영토를 할당 받는다는 보장을 받고 협상국의 편에 서서 참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이탈리아군은 기습 효과를 기대했지만, 좁은 전선과 험준한 지형으로 서부 전선과 마찬가지로 참호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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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퀘토리의 야경. 오염원이 없는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에 무수한 별무리를 볼 수 있다.
    1915년 이후 험준한 돌로미테산맥에서 치열한 산악전이 지속되었다. 적의 포화와 알프스의 험악한 지형으로부터 병사들과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양측 공병대는 어느 정도의 방호와 더 나은 보급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전투용 갱도를 건설했다.
    돌로미테에서의 굴삭 작업은 주변 거벽 정상이나 빙하로 인해 적의 군대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극도로 높은 숙련도와 기술을 필요로 했다. 1916년 12월 13일, ‘하얀 금요일’이라고도 알려진 이 날에 1만 명이 넘는 병사가 눈사태로 죽음을 맞았다. 더불어 터널을 만들어 무인지대를 통과해 적 진지에 폭발물을 설치해 참호전의 대치 상태를 타개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1916년 1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군과 이탈리아군은 총 34개의 적국 갱도를 폭파시켰다. 당시 명 클라이머들과 현지 지리에 밝은 현 주민들이 특수 훈련을 받은 후 전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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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능선의 불쑥 솟은 친퀘토리 너머로 지는 석양.
    산악인과 산악지대 주민이 주축
    당시 이탈리아는 정예 특수 산악부대인 알피니Alpini를 운용했다. 가리발디 장군이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로마를 새 수도로 정했다. 1866년 오스트리아와 전쟁으로 알프스가 전투 무대가 되면서 주세페 페르체티Giuseppe Perruccetti 대위의 혁신적인 제안으로 알피니가 탄생했다.
    알프스와 돌로미테에 익숙한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의 주민과 산악인을 중심으로 선발한 특수부대로, 1872년 15개 중대가 창설되었다. 1877년에서 1882년까지 20개의 알파니 대대와 알피니 산포 중대는, 6개의 알피니 연대와 2개의 알피니 산포여단으로 재편되었다. 각 부대 명칭은 산과 계곡의 이름을 땄으며 이 부대들은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1883년 6월부터 알피니는 피암메 베르디Fiamme Verdi를 착용했다. 이것은 녹색 화염 휘장으로 군복의 옷깃에 부착했다. 또한 검은 깃털이 부착된 산악 부대 전용 모자, 카펠로 알피노 Cappello Alpino를 착용하면서 검은 깃털부대Le penne Nera로 불리기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 기간 알피니는 24개 대대에서 64개 대대로 늘어났다. 알피니는 600㎞ 전선의 고산 거벽과 알프스 빙하에서 전투를 치렀는데, 12m 깊이의 폭설 속에서 전투를 하다가 수천 명의 병사들이 눈사태로 몰살되기도 했다. 이때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아직도 발견되고 있으며, 대다수의 시신은 찾지 못한 채 빙하 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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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미테를 배경으로 선 제1차 세계대전 재현 참가자들. 당시 라가주오이 정상에는 오스트리아군 진지가 있었고, 절벽 아래 친퀘토리에 이탈리아군이 참호를 파고 대치했다.
    수 백 명의 병사들 힘으로 끌어 올린 대포들은 해발 3,980m에 배치되었다. 이때 물자 수송용으로 개발된 케이블카와 산악철도, 거벽 안을 파내어 만든 긴 터널들과 수 백 ㎞의 철조망이 지금도 알프스 고산 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알피니에게 클라이밍과 산악 스키는 절대적인 생존 수단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산악 전문 병사들이었지만 40만 명이 전투에 참가해 12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이들은 적의 총알과 포탄에 죽기보다는 추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었으며, 눈사태로 숨을 거둔 이들이 더 많았다. 젊은 산악인들이 안타깝게 산에서 숨져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알피니들은 아프리카, 프랑스,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전역에 파병되었다. 심지어 소련 전선에까지 파병되었다. 고산 전투에 능한 이들이었으나 지휘관의 잘못된 파병으로 기계화 사단과 보병 사단과의 전투에 투입되어 1개 사단은 전멸했고, 다른 두 사단은 3분의 1, 10분의 1만 살아서 돌아왔다.
    전쟁 시 여러 개의 사단으로 운영하던 알피니들은 전쟁이 끝난 후 6개 여단으로 줄었고, 다시 2개 여단이 해체되었다. 지금도 산악 특수 부대원들의 혁혁한 전과와 전우애를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 최대의 예비군 행사인 NAANational Alpini Association이라는 친목 단체를 만들어 매년 5월에 전국을 돌며 창립 기념행사를 한다. 현역 알피니들의 최신 무기와 예비역들의 거리 행진은 반나절 이상 이어지며, 군악대의 연주와 행진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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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재현 참가자들은 자비를 들여 군복과 무기를 구입했으며, 대포로 공포탄을 쏘아 깜짝 쇼를 보여 주기도 했다.
    산에서의 전쟁이여 안녕!
    월간<山>에 게재할 코르티나 특집을 준비하며 팔자레고, 라가주오이, 친퀘토리 등반을 하던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알피니들과 함께 등반을 했다. 최고의 산악 전문 부대원을 자부하는 이들은, 이탈리아 국경의 여러 산의 지형과 암질을 파악하고 등반을 경험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탈리아에는 쿠르마에르, 볼자노, 코르티나에 알피니들의 부대가 있는데 이들은 몽블랑 남벽 아래의 쿠르마에르 마을에서 왔다.
    8월 4일, 라가주오이 건너편 돌로미테의 5형제봉 친퀘토리Cinque Torri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항상 남보다 빨리 산 입구에 도착해 신속하게 산행을 하던 우리였는데, 아침 8시경 주차장에서 진기한 풍경을 만났다. 이탈리아 알피니, 오스트리아와 독일군, 헝가리 군들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을 입고 무기를 챙기는 진기한 풍경을 보았다.
    나는 일행들에게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 것과 마찬가지인 장면을 만난 것”이라고 이 풍경을 소개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55년 전 전시 상황에 온 것 같았다. 반갑게 맞아 주는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친퀘토리 등반을 마친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스코토이아산장 주변의 옛날 참호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집 발코니나 화단에 꽃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자기 집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집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기기를 바라는 배려의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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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를 두고 왼편은 독일군, 오른쪽은 이탈리아 산악부대 알피니와 헝가리 산악부대원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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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에서 군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등산객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들은 주로 참전 용사의 후손이 많다.
    베네치아 카니발이나 다양한 축제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년간 돈을 모아 비싼 축제용 카니발 옷과 화려한 가면을 착용하고 행사에 참가한다. 축제에서 자신들 스스로 즐기면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참가하는 것이다. 군복을 입은 이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다.
    참전용사 후손들이 주로 많은데, 이들은 지금은 구하기 정말 힘든 군복과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150년 전 대포로 공포탄을 쏘면서 주변 산의 산악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부나 기업체의 돈을 받고 연출된 행사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돈을 들여서 스스로 즐기며 하는 행사였다. 그들의 외침이 친퀘토리와 라가주오이에 울려 퍼졌다. 
    “이제 전쟁은 그만, 산에서 전쟁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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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현역 알피니(산악부대원)들이 훈련차 팔자레고 칸테를 등반하고 있다. 선등으로 오르는 지도 교관은 난이도 8a를 등반하는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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