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ㅣ한글로 된 산 명칭] 우리말 산이름 전체 10%도 안 된다

입력 2019.10.08 17:18

‘고유의 산이름 되찾기 운동’ 벌이거나 산이름 알기 쉽게 변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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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 산 정상에는 이름을 표시한 이정표가 있지만 가끔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지를 만난다. 친근한 산이름이나 이해하기 쉬운 산이름으로 바꾸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싶다.
우리말의 한자비율은 약 70%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한창 벌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구성비율은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한자를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우리말의 한글비율은 매우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산이 전체 중에 몇 %나 될까 궁금하다. 아직 통계를 내 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순우리말의 비율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 산에도 이름이 있는 건 당연하다. 당연하다는 의미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작명할 때 요즘은 그냥 별 뜻 없이 짓는 경우가 많지만 옛날에는 태어난 날일시와 한자 획수 등을 종합해서 최대 조합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짓곤 했다. 음양오행의 전통 동양사상이 주는 의미를 최대한 그 사람의 기운에 맞추려는 시도였다. 살아가면서 그 기운을 최대한 좋게 발휘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의미도 컸다.
사람 이름이 그 사람의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산에 갈 때 그 산이름을 보면 대충 의미를 알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이름만 들어도 눈과 바위로 된 산이라고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이런 산들이 많다. 한국의 산만 그런 게 아니고 외국의 산도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히말라야Himalayas의 경우,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결합되어 생긴 말로 ‘눈의 거처’ 또는 ‘만년설의 집’의 의미다. 알프스도 산을 뜻하는 켈트어 alb와 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즉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이와 같이 이름에 그 뜻과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래 지명에 고유 의미 담고 있어
산 이름을 명명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설악산이나 히말라야나 알프스같이 산 그 자체의 의미와 모습을 보고 명명한 경우다. 많은 경우 이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순우리말로 된 대부분의 산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명명했다. 까치산, 두리봉, 작은까치산, 소바위등, 둥글봉, 물래봉, 나래산, 닭벼슬산, 동그랑산, 애기봉, 사슴산, 개이빨산, 벼락봉, 할미봉, 큰산, 갓거리봉, 뒷산, 노루목이산, 소쿠리봉, 뱀산, 뾰족봉, 깃대봉, 칼산 등 많은 산이름이 생긴 모습대로 이름을 붙인 경우다.
둘째, 특수한 목적으로 명명된 경우가 있다. 비로봉·도솔봉 등 불교식 명칭을 가진 봉우리들이 많은데, 이는 불교를 널리 알리고 부처의 세상이 되게 해달라는 특수한 목적으로 명명된 경우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불교 명칭을 가진 산이름은 다 이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우에 중앙집권적 사고로 명명된 경우도 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은 똑 같지만 한자는 계속 변화된다. 최초로 표기된 지리산은 ‘地理山’이었다. 그러다 智異山, 頭流山, 方丈山 등이 등장한다. 우리말 표기는 똑 같지만 한자의 ‘地理山’, ‘智異山’은 완전히 다른 뜻이다. 전자가 땅의 이치나 본원에 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불교적 색채가 굉장히 강한 의미를 지닌다.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아직까지 ‘智異山’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논란 중이다.
셋째, 풍수적으로 필요에 의해 명명된 경우다. 계룡산은 회룡고조형으로 풍수적으로 예로부터 길지에 속했다. 많은 종교들이 계룡산 언저리에 터전을 잡을 정도였다. 문필봉, 쇠금봉 같은 이름은 생긴 모양새도 붓이나 쇠같이 생겼다고 볼 수 있지만 풍수적으로 문장가가 나오거나 장수가 나올 형세라고 해서 명명된 경우다. 쇠금봉은 쇠의 기운이 넘쳐나서 명명된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진안 마이산의 원래 이름은 서다산西多山이었다. 경주 서쪽의 이로운 산이라 하여 명명된 것으로 전한다. 산신제를 지낸 기록도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용출봉 또는 용출산이라 했다. 기운이 용솟음치 듯 하늘로 솟아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말의 양 귀를 닮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정해져 현재 이르고 있다. 마이산의 경우는 첫째 기준과 둘째, 그리고 셋째 기준 모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어느 시대에 중심적 트렌드가 작용했는지 여하에 따라 명칭도 변화하는 것이다.
넷째, 원래 형세를 보고 명명된 산을 한자로 바꾸면서 이상한 이름으로 변형된 경우다. 현재 네 번째에 해당하는 산이름들이 많은 문제가 된다. 도저히 왜 이 명칭이 이 산에 명명됐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산들이 가진 명칭은 지금 수두룩하다.
‘월月’ 지명을 가진 산들이 대표적이다. 일부 학자에 따르면 산의 옛말은 달이었다고 한다. 고구려어에서는 실제 ‘산’을 ‘달’이라고 지칭한 흔적을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달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하늘의 달을 뜻하는 月로 변하면서 원래 의미를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바뀐다. 월출산의 경우, 평야에 산(암벽)이 우뚝 솟은 형국이라 하여 월출산이라 불렸지만 한자로 바뀌면서 달과 관련한 산으로 본질이 바뀐다. 현대 들어서는 전혀 생뚱맞은 달타령 노래까지 나왔다.

월악산도 비슷한 경우다. 암벽이 주변을 압도할 정도의 산이라 하여 월형산 등으로 불렸으나 바위에 비친 달의 모습이 환상적이라는 산으로 바뀌었다. 원래의 의미와 전혀 달라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같은 경우는 원래의 지명이 순우리말이었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원래의 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뀐 사례에 해당한다. 유사한 사례는 이어진다.
산봉우리에 매봉이나 응봉이라는 지명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대개 순우리말 매봉이 애초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한자로 바꾸면서 송골매나 매를 나타내는 ‘鷹’봉으로 바뀌었다. 이 정도면 애교로 받아줄 수 있다.
2018년 월간<山> 독자 김홍주 선생이 산이름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을 기고했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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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한글박물관을 찾은 모녀가 훈민정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행정편의로 명칭 바꾸면서 원래 의미 사라져
‘산의 이름이 잘못된 유형을 가려보면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순우리말로 된 산이름을 한자화하면서 그 뜻에 맞는 한자가 없어서 소리 나는 대로 그 음을 한자로 쓴 것이다. 예를 들면, 볏가리·나뭇가리하는 가리처럼 생겨 가리산이라 한 것을 한자로 加里山이라 한 것이다.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둘째, 암탉산을 암컷 ‘빈’자를 써서 빈계산牝鷄山이라 명명한 경우는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갓을 걸어놓은 산을 닮았다고 해서 갓걸이산을 ’괘관산掛冠山‘으로 바꾼 경우도 의미를 알 수 없다. 셋째, 순수한 우리말 이름의 반은 한자로 고치고, 나머지 반은 한자가 없어 음만 따서 쓴 경우다. ‘두메산골의 큰 산’이란 뜻의 ‘한듬산’의 경우 한은 대大로 고쳤는데, 듬이라는 뜻의 한자는 없어 듬이라는 소리에 가까운 둔자를 써서 대둔산大芚山으로 고친 경우다. 원래 의미와 완전히 달라진 전형적인 사례다. 넷째, 아무 뜻도 없고 유래도 없이 멋대로 고친 것과 새로 명명한 이름이다. 강화 마니산이 이에 해당한다. 원래 우두머리산 또는 머리산에 해당하는 마리산이었는데, 불교식 용어인 ‘摩尼山’으로 고쳐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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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순천 낙안읍성을 찾은 사람들이 읍성을 둘러보고 있다. 보기에도 편안한 읍성은 이름 자체에서도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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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글날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이같은 지적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고유의 지형을 나타내는 산이름을 행정편의로 원뜻을 무시하고 바꾸는 경우는 사람에 비유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산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2018년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 7,414개로 나타났다. 여기서 순우리말로 된 산이름은 10%도 채 안 된다.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행정기관에서 자의적으로 변경한 사례가 상당수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말 산이름 갖기’나 ‘고유의 산이름 찾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원래 지명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산이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여겨진다. 한글날을 맞아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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