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세계산악영화제ㅣ'김창호 1주기'포럼] 신화가 된 김창호, 우리에게 손짓한다

입력 2019.09.30 11:28

“스스로 선택한 고통은 더는 고통이 아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 활용방안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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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세계산악영화제 배창호 집행위원장이 포럼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당대 세계 최고의 산악인 김창호가 2018년 10월 12일 히말라야에서 불의의 사고로 떠난 지 1년도 채 안 돼 벌써 신화와 전설로 그의 업적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의 신화는 7년 10개월이라는 세계 최단기간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 6,000m 이상급 8개봉 초등, 5개 루트 개척, 한국인 최초 황금피켈상 수상 등 산악역사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각종 산악단체나 협회에서 포럼과 심포지엄 형태로 한국산악계, 나아가 세계산악계의 전설로 서서히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지난 9월 8일 열린 ‘김창호, 히말라야의 방랑자’란 주제의 포럼도 그의 1주기에 맞춰 그 신화와 전설에 채색을 더했다. 집행위원장인 배창호 감독은 포럼에 앞서 인사말에서 “김창호 대장이 아시아 최초로 황금피켈상 수상하는 자리에서 ‘한국의 산은 낮지만 한국인의 등반 정신은 높다’고 소감을 발표한 글을 봤다. 김창호 대장이 말한 한국인의 높은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포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포럼에서 그의 등반 파트너였던 최석문은 ‘김창호의 업적과 의미’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종교학 강사인 오영훈은 ‘탐사가, 비평가, 구도자 김창호’란 주제로 발제를 했고,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장 남선우와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 이동훈, 히말라얀클럽 부회장 이성원이 각각 토론자로 나서 활발한 의견을 개진했다. 사회는 월간<山> 박정원 편집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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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대장의 등반 파트너였던 최석문 대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첫 발제자 최석문은 2001년 카라코룸 멀티피크원정대를 시작으로 2016년 강가푸르나 코리안웨이 원정등반에 이르기까지 4번의 등반을 함께했다. 김창호의 업적을 설명하면서 그는 “김창호 대장은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당대 세계 최고의 산악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또한 “1,700여 일에 걸쳐 히말라야의 빙하와 산을 탐사해 기록하고 다수의 미등봉을 초등했고, 8,000m 봉우리를 17번이나 무산소로 오르는 것은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창호의 일기장에 있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의미를 대신했다.
“여행과 탐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의 방랑이다. 방랑의 길은 자신 속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해 보는 과정이다.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왜 산에 오르냐’고 묻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생각과 행위 사이의 갈등과 모순에 방황하지 말라. 탐험과 등반은 내 신념에 대한 믿음이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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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립대 강사인 오영훈 박사가 김창호 포럼 발제를 하고 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오영훈 박사는 “김창호는 방대한 탐사, 역사와 문화에 입각한 비평, 또 그를 통해 펼친 깊이 있는 산악철학관으로도 국내와 세계산악사에 유례가 없는 인물”이라고 김창호를 소개하며, 그의 산악인생을 입문시기, 탐사시기, 실험시기, 결실시기의 네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특히 ‘책 속의 산이 아니라 현실의 산, 최고의 산이 아니라 개개의 산, 고난 극복의 등반이 아니라 위험 직시의 등반으로 진보하는 김창호의 산악관을 이해하려면 김창호가 정열적으로 지도상의 공백지대로 뛰어들었던 2000년대 초기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700여 일 동안 히말라야 탐사
이 시기 김창호는 총 1,700여 일 동안 파키스탄 카라코룸과 히말라야, 파미르, 힌두쿠시 일대를 홀로 탐사했다. 이 탐사를 통해 김창호는 기존 지도나 등반정보가 부족하고 잘못된 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해 당시 김창호는 “공명심도 없었고 산악계에 도움이 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개인적인 소망이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산 연구는 고대부터 현재, 서양과 동양, 지리학과 민족학, 도서관과 산야를 넘나들며 접점을 찾는 방대한 학술적 작업이었다. 그의 작업으로 국내외 많은 원정대가 미등봉·미등벽에 대한 자료의 도움을 받았다. 해외의 주요 권위자들도 김창호의 산악연구에 큰 관심을 가졌다. 미국산악연감의 린제이 그리핀 편집장, 8000ers.com의 타네시와 가리 등이 김창호의 연구자료의 향후 귀추에 대해 궁금해했고, 카라코룸 등반사 권위자 독일의 볼프강 하이헬은 <낭가파르바트와 그 주변 탐사연대기>를 집필하면서 김창호의 도움을 직접 받기도 했다.
김창호는 책에서 읽은 신화나 현지에서 채록한 전설은 본질적으로 인류 모두에게 통한다고 믿었던 듯하다. “등반은 산과의 깊은 교감”이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신화에 등장하는 자연신이나 민간신앙을 신봉한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어떤 큰 힘’을 인식했던 것 같다. 신화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각색돼 전해 내려오고, 산악인은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꿈을 꾸고 또 역사를 만들어나가며, 그럼으로써 신화를 그려간다는 순환적인 연속성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치열한 탐사는 김창호를 완전무장시켰고, 14좌 완등은 그 날개를 단 격”이라고 평가했다. 오 박사는 ‘김창호는 평소 산까지의 접근은 탐험의 가치가 있는가, 산이 원주민의 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등반루트는 자연스럽고 스마트한 선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지적하며, “산만 따로 떼어 오름의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산이 주변 지형과 역사와 사람 모두에게 갖는 폭 넓은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남선우 원장은 “김창호가 떠돌아다닌 방랑자는 맞지만 정한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항상 히말라야의 오지 어떤 곳을 향해 출발했다. 불확실성과 불예측성이 높은 곳이고, 등반가로서 일정한 정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돌아다녔다는 의미의 방랑자이면서 동시에 한국산악계 등반의 현실과 이상, 현상과 본질 사이를 떠돌아다녔다는 점에서 방랑자란 표현이 맞을 수 있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제자들은 “시간제약이 있었겠지만 김창호에 대한 구체적 실증적 설명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라고 토론주제를 제기했다.
이동훈 회장은 서울시립대 산악회 회원 선후배로서 김창호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지도교수로서 본 김창호는 “개인적으로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산악인으로 인간성과 리더십, 엄청난 등반능력, 배려심, 솔선수범, 정밀함, 냉정함을 갖춰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김창호 대장이 남긴 방대한 기록과 히말라야에 대한 자료를 앞으로 한국산악계와 나아가 세계산악계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최소한 자서전과 같은 출판물부터 나와야 하지 않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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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세계산악영화제 행사로 열린 ‘김창호, 히말라야의 방랑자’ 포럼에서 많은 관객들이 참석해 지켜보고 있다.
떠돌아다닌 방랑 아닌 목적 갖고 다녀
마지막으로 이성원 부회장은 “14좌 최단시간 등정이라는 업적의 중압감에 그가 가진 철학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계적인 알피니스트로 성장해 산악인들의 숙제를 풀어가며 등반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머머리즘mummerism을 선도한 등로주의 등반가로서 남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고 강조했다.
관객질문에서도 “김창호가 남긴 방대한 기록을 사장되기 전에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김창호가 떠난 지 이제 1년. 그가 홀로 히말라야 오지를 누비며 채록한 히말라야의 신화와 전설은 이제 오롯이 그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김창호의 신화와 전설화 작업이 본격 진행되는 것 같다.
“등반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결국 자신밖에 남지 않는다. 잘못 생각하면 자신의 딱딱한 껍질 속에 남아 있을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등반과 탐험은 자신의 이러한 껍질을 깨고 새싹을 틔우는 것이어야 한다”던 김창호, 그의 일기장에 의미심장한 내용을 남겼다.
‘과거는 눈 앞에 있어 알지만 미래는 등 뒤에 있어 볼 수 없다는 셰르파 속담이 있듯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만나는 고통은 더는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참을 만하며 기쁨으로 승화된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히말라야에서 죽어간 산악인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살아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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