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ㅣ산악문화상 수상 쿠르트 딤베르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면 運이 따른다”

글 박정원 편집장 사진 울주세계산악영화집행위
  • 입력 2019.10.01 09: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도 양면성 있어 좋은 운이 오면 행복… 큰 산에는 보이지 않은 신령스런 힘 작용

쿠르트 딤베르거가 강연을 하고 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강연을 하고 있다.

제4회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오스트리아의 산악인이자 영화감독인 쿠르트 딤베르거가 수상하면서 5일간의 일정이 막을 내렸다. 딤베르거는 현존 인물로 유일하게 히말라야 14좌 중 2개의 초등기록을 갖고 있으며, ‘8,000m의 카메라맨’이라는 별명으로 산악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그는 특히 K2에서 그의 동료 줄리를 잃고 그 자신도 죽을 뻔한 고비를 한국인 원정대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기록을 그의 책에서 밝히고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초청으로 방한한 쿠르트는 강연과 질의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한국인 K2원정대에 감사를 표하는 자리도 가졌다. 그의 강연과 질의를 정리했다.

Q 산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A “오스트리아가 고향으로 알프스 자락에 자랐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수정을 캐러 산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입문하게 됐다. 몽블랑 능선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깊은 인상을 받아 나 혼자 즐기기에는 아까웠다. 그래서 마을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

Q 히말라야나 알프스를 등반하면서 많은 고비와 위험을 느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A “나는 많은 운이 따랐다. 인생이 양면성이 있듯이 운도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운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나쁜 운은 때로는 생명을 가져가기도 한다. 산도 양면성이 있다. 아름다운 면이 있는 반면 매우 위험한 측면이 있다.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K2는 가장 위험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히말라야다. 나는 그곳 정상을 올라서는 순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느꼈지만 곧이어 나의 최고 등반 파트너 줄리를 잃었다. 나도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 정말 행복한 순간에 가장 슬픈 순간을 맞이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산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른 채 때로는 오르기만 한다. 위험과 아름다움, 행복과 불행은 항상 따라다닌다. 운의 양면성이다. 나는 다행히 좋은 운이 여태 따라줬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K2 등반 시절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한국원정대와 자리를 함께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K2 등반 시절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한국원정대와 자리를 함께했다.

Q 산에 입문한 뒤 사회생활도 산악인으로 시작했나?

A “처음에 산에 올랐을 때 능선의 아름다운 모습이 너무 좋았고, 이를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사회생활은 교사로 출발했다. 그게 1960년대 초반이다. 교사 하면서 내 주위의 산은 종이더미 산뿐이었다. 여기도 저기도 산더미 같이 쌓아놓은 종이더미였다. 스트레스는 쌓여 갔다.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교사생활 5년 만에 교사에서 산악인으로 바꿨다. 25세 때 32세인 해르만 불과 히말라야 첫 8,000m급 봉우리, 브로드피크를 올랐다. 1969년 당시 모든 장비는 무거웠다. 지금과 같이 경량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장비와 음식 모두 무거운 걸 메고 올라갔다. 그것도 원정대로 간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알파인스타일로 갔다. 산소도 없었다.

나는 알파인클럽 회원이었다. 알파인클럽회원은 일종의 부적과 같았다. 포터나 산소 없이 그 무거운 장비와 음식을 전부 헤르만 불과 둘이서 지고 올라갔다. 등정에 성공했지만 헤르만 불을 잃었다. 시체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만이다’라고 다짐했지만 히말라야의 마력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좋은 운이 따라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입장을 하고 있다.
쿠르트 딤베르거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입장을 하고 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기와 호흡 나눠야

Q 좋은 운이 따라주어 더 이상의 위험이나 고비는 없었나?

A “그렇지 않다. 산은 항상 순간순간 아름다움과 위험이 동시에 찾아온다. 1980년대 K2를 등정했을 때 그 특이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하산길에 줄리를 잃고 나도 한국등반대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산은 처음이 마지막일 수 있고, 마지막이 다시 처음일 수 있다. 헤르만 불과도, 줄리와도 마지막인 동시에 처음이었다. K2 사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구르고 또 굴렀다. 언젠가 내려와야 하지만 400m를 그렇게 빨리 내려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은 그 위에 그대로 남겨뒀다. 자연의 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딤베르거가 자신의 책을 한글로 번역한 김영도 선생과 선물 교환을 하고 있다.
딤베르거가 자신의 책을 한글로 번역한 김영도 선생과 선물 교환을 하고 있다.

Q 쓴 책마다 ‘대기의 정령Spirit of the Air’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의미가 뭔가? 

A “큰 산에 가면 신령스런 힘이 작용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저 능선 너머 대기의 정령은 알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다. 산의 동굴은 산의 눈eye이다. 거기서 의식이 이뤄진다. 행운이 올 때는 모든 게 순조롭다. 하지만 운이 안 좋을 때도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걸 믿어야 한다. 가끔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기도 한다. 순종하고 믿었고, 조심하고 천천히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는 자가 멀리 간다. 나는 운을 따랐기 때문에 멀리 갔다고 생각한다.”

Q 지금의 딤베르거가 젊은 딤베르거에게 교훈 한 마디를 한다면?

A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빨리 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뛰기 좋아하더라도 가끔은 산 위에 앉아서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언제든 멈출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에게 육감이 있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칠감이 있다. 칠감은 육감과 함께 작용한다. 육감은 위험 상황에서 항상 멈추라고 한다. 하지만 칠감은 올라가라고 할 때가 있다. 운이 결정하는 순간이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기의 영혼에 호흡을 같이하면 운을 결정하기도 한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딤베르거의 산악문화상 수상과 더불어 국제경쟁 대상에 벤 마스터스 감독의 ‘강 그리고 장벽The River and the Wall’이, 알피니즘 작품상은 ‘영혼의 산 마나슬루Manaslu- Mountain Spirit’, 클라이밍 작품상은 ‘숨Breath’, 모험과 탐험작품상은 ‘보이지 않는 물의 무게The Weight of Water’, 자연과 사람작품상은 ‘아가Aga’가 각각 수상했다. 넷팩상은 ‘비러브드Beloved’가 받았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