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여성 백두대간 단독 일시종주기 <11>] 천리 길도 맞들면 낫다!

  • 글 사진 성예진(블랙야크 셰르파)
    입력 2019.10.04 15:16

    대구산악회 김종칠‧김을연 대장과 영주 천은경씨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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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가 자욱했던 소백산 주능선에서 구름이 살짝 걷힌 순간이 몹시 아름다웠다.
    9월 14일 토요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21일차
    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선달산~늦은목이~갈곶산~마구령~고치령 28km
    오늘은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다. 21일차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날짜 상으로는 10월 2일, 대간에 오른 지 39일째 되는 날이다. 휴식일을 제외하더라도 실제 걷고 있는 걸음과 연재되고 있는 이야기의 시간차가 거의 보름 가까이 나는 것이다. 
    대간의 후반부에 접어들며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다. 처음 목표한 대로 하루 20km~25km씩만 걸었다면 여유가 있었을 텐데 예상치 못한 태풍과 비소식이 잦아지며 마음이 급해져 25km 이상, 많은 날들을 30km 이상씩, 또 어떤 날은 자그마치 50km를 걷기도 했다. 하루 12~14시간씩 걷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해까지 짧아져 동트기 전 출발해 야간산행까지 감내했으니 그 피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대간의 중반에 들어서며 하루하루 걷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루를 온전히 목표한 만큼 걷고, 먹고, 자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외의 것들은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매시간 치열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운행을 끝내고 텐트에 몸을 누이기만 하면 금세 코를 골기 일쑤였다.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안부를 전하는 것, 응원의 글에 댓글을 남기는 것 또한 일절 하지 못했다.
     
    운행을 하며 글 쓰는 것을 병행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시간은 부족하고, 글재주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등반기는 대간 위에서 피곤함과 싸우며 하루하루 잠을 조금씩 양보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나름 치열함의 산물이다. 휴대폰을 들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피곤에 취해 졸다가 화들짝 깨어 다시 일어나 쓰기를 수차례, 쉽지 않은 과정을 하루하루 조금이나마 써내려가고 있다. 지연되긴 했지만 기록하는 것을 멈추진 않겠다.
    추석 당일이던 어제 밤은 부모님 덕에 모처럼 푸짐한 저녁을 즐겼다. 큰 대접에 삼색나물과 무나물, 가지나물을 넣고 밥을 슥슥 비벼 조기 한 점 얹어 한 입 크게 먹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표 꼬지전과 동태전, 부드러운 수육까지 더하니 남부러울 것 없는 저녁시간이다.
    오늘 아침엔 대구산악회의 산대장님 두 분이 응원을 오셨다. 산악회 내에서는 이미 나의 양아버지와 어머니로 통하는 분들이다. 가끔 함께 있을 때면 다들 가족으로 알아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추석 명절에 함께 있으니 진짜 가족이 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각각 창녕과 대구에서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오신 산대장님의 마음을 알기에 없던 힘도 불끈 솟는 기분이다.
    두 분은 출발 시간에 맞춰 도리기재로 와서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그간 전하지 못한 인사를 나누며 아침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며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했다. 도리기재에서 고치령까지 제법 먼 길이라 차량 회수가 어려울 것 같아 김종칠 대장님과는 선달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김 대장님은 마구령으로 이동해서 선달산으로 북진해 우리와 만나는 것으로 하고, 김을연 대장님과 나는 도리기재에서 출발해 선달산으로 가는 것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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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김종칠, 김을연 대장님과 필자가 마구령 비석 앞에 섰다.
    청옥산에서 월간<산> 취재팀을 만난 뒤로 오랜만의 응원이다. 청옥산 이후 홀로 묵묵히 걸어오며 이제는 혼자 걷는 길이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다시금 지인들의 얼굴을 보니 왜인지 마음 속 깊이 울컥함이 치고 올라온다. 얼굴만 봤을 뿐인데, 벌써 헤어질 때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런 감정은 참으로 낯설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반갑기만 하다. 응원의 힘인지 날씨가 좋기만 하다. 적당한 햇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공기, 선선한 바람,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대간을 걸으며 정말 많은 버섯을 보았다. 아는 것이 없으니 어떤 버섯인지 모르고 눈길만 주고 지나쳤는데 을연 대장님 덕에 고치령까지 걸어오며 족히 10여종의 버섯을 알게 되었다. 그 생김새가 다들 비슷한 까닭에 구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버섯을 볼 때마다 저건 무슨 버섯이다 말하는 대장님의 말이 신기하기만 했다.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다음에는 싸리버섯과 노루궁뎅이 버섯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리기재에서 박달령까지 싸리버섯 군락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 들으며 걷다보니 잠시 잊고 있던 숲해설사 공부가 생각난다. 대간이 끝나면 언젠가 꼭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 앞으로 적어도 40년 이상은 산에 다닐 텐데, 뭐라도 알고 다니면 보이는 게 훨씬 많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산에 다니며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자연의 이야기에는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고, 마치 그 산에서 자란 듯 이 나무, 저 나무 설명해주는 선배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두 눈을 반짝이곤 했다. 나도 자연에 스며든 사람이고 싶다.
    함께 걸으니 무얼 봐도 즐겁고, 어떤 것이든 이야깃거리가 되는 길이다. 몇 날 며칠을 혼자 걷기만 해서인지 가끔 이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걷는 길이 이처럼 반가울 수 없다. 왜 사람들이 집에 혼자 있으면 식물과 이야기하고, 키우던 강아지와 대화를 한다고 하던데, 며칠 더 혼자 걸었다면 나도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내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과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제 구룡산에서 내려온 만큼 옥돌봉까지는 지겹도록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이후 박달령까지 편안한 산책길 코스가 펼쳐진다. 걸음마다 여전히 태풍의 여파로 가지치기를 한 마냥 여기저기 흩어진 나뭇가지가 눈에 띈다. 태풍의 후폭풍이 여실히 드러나는 숲길이었다.
    선달산 도착 직전 배가 고파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선달산에서 종칠 대장님을 만나 같이 점심을 먹으려 참고 또 참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허기짐이 밀려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비탈진 산길에 철퍼덕 주저앉아 허겁지겁 떡과 과일을 집어 먹었다. 박달령에서부터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며 걸었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더는 걸을 수 없었다.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었는데 배가 어찌나 고프던지.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혼자일 때는 아침을 잘 챙기지도 않고 다녔는데 오늘 따라 배에 거지가 든 것 마냥 걷는 내내 배가 고파 이것저것 참 많이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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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달산 정상석.
    그렇게 먹고 얼마 걷지 않아 선달산에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다. 점심으로 전투식량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 게 얼마 만인지. 음식에 대한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무엇보다 전투식량이 아닌 일반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컸다. 아마 전투식량을 한 달 내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대간이 끝나고 나면 아마 아예 쳐다보지 않을 것 같다.
    좌청룡, 우백호라 했던가. 선달산에서부터 앞에는 을연 산대장님이 길을 봐주시고, 뒤에는 종칠 대장님이 지키고 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었다. 아마 인적이 드문 탓에 거미줄이 많았을 텐데 먼저 앞서 걸으며 거미줄을 걷어주신 산대장님께 감사드린다.
    연휴인데다 주말이었음에도 산행객이 많지 않았다. 도리기재에서 고치령까지는 사람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었는데 마구령과 고치령에는 고개를 지나는 차들이 많았다. 우리가 잠시 머무른 10여분 정도에 5~6대가 지났고, 개중에는 주차를 하고 주변을 구경하는 이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나의 시선으로는 일부러 올라 올만한 곳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길이 좋은 것도 아니고, 비포장도로인데다 구경할 것 하나 없는 이곳에 대체 왜 올라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걸어온 날들의 피곤이 쌓인 탓에 걸음이 빠르지 않다. 산대장님들이 응원도 오셨고, 날 밝을 때 저녁이라도 먹고 배웅을 하고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야간산행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적게 쉬고 꾸준히 걸었다. 정상석과 인증지점에서도 인증을 위한 사진만 찍고 걸었고, 점심을 먹을 때를 빼곤 고치령을 향해 꾸준히 걸어갔다.
    마구령에서 고치령까지 남은 8km는 종칠 대장님과 함께 걸었고, 을연 대장님께서 고치령까지 차량 회수를 위해 운전을 해주셨다. 마구령에서 얼마 걷지 않아 출사를 나온 부부를 만났다. 지리산까지 무사 완주를 응원한다며 멋지게 찍은 사진을 건네주셨다. 참으로 친절한 분들이셨다. 
    25km를 넘어서니 걸음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산행을 재개한 이후 꼬박 7일째 쉬지 않고 걷고 있다. 평균 26km씩 4일을 연달아 걸었더니 힘에 부치나보다. 마지막 3km, 1시간이 고비였다. 함께였기에 좀 더 힘들지 않게, 즐겁게 내려올 수 있었다.
    여유를 부리지 않은 덕에 해 지기 전에 고치령으로 내려와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트랭글을 확인해보니 도리기재에서 출발한 나는 약 28km를 걸었고, 종칠 대장님은 마구령에서 선달산으로, 다시 선달산에서 고치령까지 26km 정도를 걸었다. 평생 산행 한 것을 통틀어 오늘이 제일 길게 걸었다 하신다.
    고치령에서 아래 마을로 내려와 준비한 고기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멀리서 온 산대장님들과 기분을 낸답시고 캔 맥주 하나를 마셨는데 산행 후 맥주 한 캔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맥주의 다른 맛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다음날 운행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하기도 해야 하고, 기사에 쓸 내용도 정리해야 해서 일찍이 자리를 정리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짧게만 느껴지는 저녁. 나는 고치령 근처에서 잠을 청하고, 산대장님은 대구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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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팀이 늦은목이를 넘어 마구령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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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신이 대지를 관찰하기 위해 뚫어 놓은 듯한 구멍이 구름 사이에 생겼다.
    9월 15일 일요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22일차
    고치령~마당치~늦은맥이~상월봉~국망봉~소백산 비로봉~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죽령~죽령휴게소 28km
    어젯밤 캔맥주 한 캔에 제대로 뻗어버렸다. 평소 주량이 적지 않은 편인데 어쩐 일인지 달랑 한 캔에 비몽사몽이 되어버렸고 저녁을 먹은 직후 곧장 잠이 들어버렸다. 피곤이 잔뜩 쌓여서인지 혈관을 차지한 알콜의 흐름이 세포를 타고 온 몸에 전해져 오는듯했다. 확실히 수분이 빠져버린 자리를 알콜이 대신하니 흡수가 빨랐던 모양이다.
    불행이랄까. 다행이랄까. 밤새 푹 잔 덕에 눈을 떴을 때 개운한 기분이었다. 부모님 덕에 아침도 챙기고, 혼자일 때보다 비교적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한다. 혼자였으면 아침도 거르고 눈을 뜨자마자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 출발하기 바빴을 텐데 아무래도 부모님이 있으니 무슨 일이든 도와줄 사람이 있어 든든하다. 내가 야영을 고집하는 바람에 편하지 않은 잠자리였을 텐데 묵묵히 따라준 부모님께 감사를 전한다.
    고치령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하는 이들을 만났다. 대안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이 뜻을 모아 종주를 하는 팀도 보았고, 주말마다 홀로 북진을 하는 아저씨도 만났다. 이들 모두 북진을 하는 것이니 지리산에서 고치령까지 꽤 많은 구간을 지나온 것이다. 진부령에서 고치령까지 아직 반도 지나지 못한 내 걸음을 생각하니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 점에서 학교 팀이 부럽기도 했다. 혼자 등산화 끈을 묶으며 준비하는 내 곁에서 서로 오늘 진행할 구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부러움이 들기도 했다.
    배웅을 받으며 소백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인사를 전하고 씩씩하게 돌아선다. 처음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더니 이젠 제법 작별의 시간에 적응을 했나보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한바탕 시끄러운 손님맞이가 끝나고 이제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다. 일요일인데다 국립공원을 지나는 구간이라 막연히 혼자인 시간은 아닐 테지만 그렇게 또 혼자가 되었다.
    고치령까지 한참을 내려왔다. 고치령에서 구왕봉으로 향하는 길은 내려온 만큼 다시 또 오르는 길이다. 잠이 미처 다 깨지 못한 채로 멍하니 오르막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개운한 듯 하더니 몇 걸음 떼지 않아 이내 졸음이 쏟아진다.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다리에 피로 또한 풀리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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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비로봉 정상.
    어제는 날이 좋더니 길을 조금 지나자 금세 안개로 뒤덮인 길을 걷게 됐다.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안개 속을 걷고 있으니 꿈속을 걷는 듯 몽롱하기만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고 오르다 보면 능선에 접어들곤 한다. 그러나 왜인지 오늘은 능선까지 오르는 길이 길게만 느껴진다. 다시 운행을 재개한지 8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하루 평균 25km 이상 걸었으니 꽤 많은 피곤이 쌓인 탓일까?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떨어지는 기분을 달리 해보려 애써 발을 힘차게 들어보지만 자꾸만 나무뿌리와 돌 뿌리에 걸리기 일쑤다. 힘이 빠졌다는 뜻일 테다. 이제 막 하루를 시작했을 뿐인데 큰일이다.
    비틀어진 경사도의 산비탈을 지난다. 발이 살짝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저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질 것만 같은 길이다. 야생동물이 지나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처럼 보인다. 앞전에 걸어오며 야생동물이 지나는 길을 보고 사람이 지나는 길로 착각하여 알바를 한참 동안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을 떠올리니 정말 정신이 없긴 했나보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꽤 많은 날들을 걸어오며 이제는 지나는 날들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시간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 테다.
    연화동 삼거리 방면으로 향하다 두 부부를 만났다. 이 시각에 벌써 소백산 쪽에서 넘어왔을 리는 만무하고 분명 나와 같은 방면으로 진행 중인 걸 테다. 고치령 근처에서 밤을 보냈기에 누가 올라가는지 모를 리 없었는데 대체 언제 출발하신 걸까. 중간에 샛길이 있었나? 어디서 시작한 건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나를 살짝 경계하는 것 같아 고개만 끄덕이고 별 말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어쩐지 거미줄이 왜 이렇게 없을까 했더니 앞서 걸어간 두 부부 덕분이었나 보다. 이후 걸음부터 역시나 거미줄이 내 얼굴을 감싼다. 그래도 4km 가량 거미줄 없이 걸었으니 그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조용할 줄 알았던 고치령 초입에서 산객을 만나니 반가웠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은 일요일이다. 대간에 들어서고부터는 정말 정신이 없다. 분명 어제 토요일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오늘이 일요일이란 사실이 새롭기만 하다. 어느덧 시간은 9월 중순이 되었고, 이제 추석도 다 끝나가고 있다.
    출발하고부터 머리가 너무 간지럽다. 두피가 간지러워 머리를 벅벅 긁으며 걸음을 옮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3일째 머리를 감지 못했다. 들, 날머리 어디에도 물이 없었던 까닭이다. 개울이나 화장실만 있었어도 머리에 물 칠 정도는 했을 텐데, 한동안 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이 없어도 물티슈로 몸은 닦을 수 있지만 머리까지 감기에는 역부족이라 이즈음 되면 가려울 만도 하다. 물티슈로 몸을 매일 닦기는 했지만 몸 역시 여기저기 가렵지 않은 곳이 없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가려운 곳이 많아진다. 한동안 때를 밀지 못해 그런가? 특히 매일 같이 배낭에 짓눌리는 곳들이 유독 가려운 것 같다. 등판에 눌리는 등도 간지럽고, 어깨끈과 허리밸트가 지나는 부분이 암만 긁어도 그 가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 옴이 붙은 것 마냥 온 몸을 벅벅 긁어대며 걸어가고 있다. 21세기와 너무 동 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다. 야영으로 걸음을 이어가겠다는 욕심이 불러낸 화다.
    걷는 길목 마다 투구꽃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함께 걸으며 투구꽃을 보고 좋아하던 산대장님이 생각난다. 비슷한 색을 지닌 용담도 보이고, 두 꽃 모두 한참 피어나는데 제 힘을 다하고 있었다.
    저 멀리 소백산 능선을 보니 뜨거운 온천수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안개처럼 하늘로 높이 피어오르는 구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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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능선이 넓게 펼쳐져 보이는 데크길. 가장 좋아하는 포토존이다.
    늦은맥이로 향하다 신선봉 방향으로 잠시 알바를 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지도를 다시 보니 늦은맥이를 지나 상월봉 방향이 아닌 신선봉으로 정반대 방향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묵묵히 올라가다가 늦은맥이까지 300m 남았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다. 무언가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만 몸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무념무상인 채로 말이다.
    난 길을 찾는 감각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더 멀리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감사할 정도.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은데 구간마다 지도를 잘 살피지 않으니 매일 같이 알바하기 일쑤다. 요즘 매일 같이 알바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 덕분에 계획한 거리에 비해 항상 적게는 1km 많게는 3km까지도 더 걷고 있다. 힘들수록 매 km마다 지도를 확인하고, 길을 잘 살피며 걸으라고 조언하던 신준범 기자님의 말이 떠오른다. 하아, 그러나 어쩌겠는가. 숨 쉬는 것조차 귀찮아진 체력인데 정신이 멀쩡할 리 없다. 당장 걷는 것조차 버거워 비틀대는 내게 꼼꼼함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국망봉을 지나 소백산 최고봉 비로봉을 지난다. 비로봉의 정상에는 정말 많은 산객이 몰렸다. 고치령에서 국망봉까지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데 반해 비로봉은 사람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언뜻 살펴보기에도 어림잡아 20명은 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산악회 2~3곳에서 같은 날 소백산 산행을 잡았던 모양이다. 왜인지 정상에서 느껴지는 시끌벅적함이 썩 좋지 않아 인증 사진으로 쓸 사진만 몇 장 남기고 서둘러 연화봉으로 향했다.
    비로봉은 올해만 벌써 3번째 찾았다.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 나의 든든한 소울메이트 미희와 산행했던 추억, 월간<산> 취재 팀과의 산행, 그리고 ‘김미곤 대장과 함께하는 멘토산행’ 행사 준비로 블랙야크 대구경북 셰르파님들과 함께 소백산을 올랐던 추억들이 점점이 기억된다. 그 추억들 덕에 시장통 같던 비로봉을 지나면서도 외롭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진다.   
    소백산에는 내가 좋아하는 포토존이 있다. 비로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목의 길고 긴 데크 중 한 곳이다. 그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저 멀리 소백산 능선이 마치 드넓은 초원인양 그 광활함을 양껏 펼쳐 보인다. 하늘에 걸린 구름마저 좋은 날에는 말이 필요 없는 그림을 보여주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곳에는 늘 그렇듯 누군가 앉아 있다. 오늘도 그 자리엔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셔서 일행인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객이었다. 그저 우연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감동을 받고 쉬어가는 자연의 객이었다.
    사진을 한 장 부탁드리고, 나도 잠시 자리에 앉아 소백산의 그림에 취해본다. 언제 봐도 참 좋은 그림이다. 올해만 몇 번을 찾았음에도, 보고 또 봐도 좋은 곳. 다른 객에게 방해가 될까 속으로 감탄을 삼키며 한참을 머물렀다. 자리를 일어서려는 찰나 커피를 나눠주셔서 자리에서 좀 더 머무르게 되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굵직굵직한 내용물이 알찬 왕김밥도 나눠주시고, 영주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포도라며 과일도 나눠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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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능선을 핥고 넘어가자 넓은 소백산 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 음식을 나눠준 언니는 참 멋진 분이었다. 해외 트레킹을 숱하게 다녀온 베테랑 산꾼이셨다. 블랙야크 셰르파로 활동하는 진미장 셰르파님과도 몇 차례 트레킹을 함께 다녀오셨다고 한다. 세상 참 좁다. 소백산 정상에서도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누구든 함께 아는 이가 있다.
    멀리서 볼 때도 내공이 느껴지던 언니. 지금 떠올려 봐도 데크에 멋지게 기대어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던 그 모습은 내가 언제나 바라고 있는 산행의 모습이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산행. 발길 닿는 대로, 쉬어가고 싶은 대로 얽매이지 않는 산행. 언니의 걸음엔 그런 여유로움이 느껴져 부러웠다. 세월이 지나고 연륜이란 것이 생기면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게 산을 즐길 수 있을까? 
    마음을 달래주는 산. 은경 언니에게 소백산은 그런 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게도 소백산이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고 진정 소백산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느낀 소백산은 잔잔한 산이다. 물론 바람만큼은 그 어느 산 보다 매서운 산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잔잔하게 다가오는 산이다. 다음에 언니와 이 산을 다시 오를 땐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올지 자못 기대가 된다. 그날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별을 나눈다. 언니는 희방사로, 나는 죽령으로 걸음을 딛는다.
    이후 죽령까지 내려오는 길은 그다지 좋지 않은 길이었다. 연화봉을 지나 죽령휴게소까지의 길은 잘 포장된 아스팔트 임도기에 산객들에게 그리 친절한 길이 아니다. 무릎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임도. 다소 불편한 길이지만 이 또한 대간이기에 묵묵히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령까지 걸어 내려왔다.
    죽령에서 근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일찍 잘 준비를 하고 짐을 챙기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죽령에서 같이 저녁 먹어요” 은경 언니의 카톡이다. 분명 희방사로 내려가신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 궁금했다. 아직 저녁을 짓기 전이기도 했고, 어차피 나는 죽령에서 밤을 보낼 테니 기다리는 일 외에 할 게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경언니가 죽령으로 내려오셨다. 나를 먼저 내려 보내고 데크에서 낮잠을 잤다고 한다. 원래 계획대로 희방사로 하산해서 집에 가려다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하는 어린 동생이 마음에 걸려 저녁이라도 사 먹이고 보내고 싶어 죽령으로 뒤이어 따라오셨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여유롭게 내려올 수 있는 길이었을 텐데, 내가 기다릴까 급하게 뛰어내려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언니 덕에 죽령주막에서 산채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죽령에 여러 번 오고서도 간판만 보고 매번 지나치던 죽령주막이었는데, 그동안 왜 그냥 지나쳤을까 싶을 만큼 솜씨 좋은 식당이었다. 음식경연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6시 내 고향’을 비롯해 각종 방송프로에 출연한 맛집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우연에서 비롯된다. 소백산에서 우연히 산 친구를 만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산에서 만난 객에게 마음을 다해 준 영주의 천은경 언니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산에서 만난 동생을 생각하는 언니의 마음 덕에 소백산에서, 죽령에서의 밤은 따뜻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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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산중에서 만난 천은경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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