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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20>] 공갈젖꼭지

글·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입력 2019.10.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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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을 오르는 등산객.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객.

약 20년 전인 2000년 6월, D일보의 고정칼럼 ‘윤치술의 산길따라 걷기’에 엄홍길 대장隊長의 히말라야 14봉에 관한 글을 썼다. ‘엄홍길의 산과 국민 여러분의 산은 전혀 다르오니 극한의 등산을 흉내 내는 거친 산행을 하지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IMF의 여파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취지로 각 언론은 개고생 끝에 이룬 정상정복의 쾌거를 앞 다퉈 다루었고, 많은 사람들이 산은 저렇게 탱크처럼 올라야 한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히말라야 14봉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1986년 세계 최초로 완등하고 난 15년 후인 2001년 엄 대장이 완등했으나 얼마 후 등정 시비로 인해 다시 올라야 했다.

http://www.8000ers.com에 의하면 고 박영석 대장의 세계 8번째 완등에 이어 9번째 히말라야 8,000m 14봉 완등자가 된 것이다. 아무튼 그 당시 박영석과 엄홍길, 한왕용의 히말라야 등정 레이스의 영향으로 등산은 국민대표 취미생활이 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산은 도전과 극복’이라고 외친 산악인들과 자극적인 언론, 아웃도어 업체의 무차별적인 광고 등의 세뇌에 국민들은 동네 뒷산도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고산등반가처럼 행동하는 착각의 공갈젖꼭지를 물게 되었다.

그 영향인지 요즘 마초macho적으로 되어버린 산깨나 탄다는 용감한 사람들이 비법정탐방로를 불법으로 다녀온 뒤 블로그나 카페, SNS 등에 산행기를 자랑스럽게 올리고, 일부 산악회에서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코스를 우리만 간다’는 식으로 회원을 모집해 곤란과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산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일부 등산학교의 경우 가르쳐준 대로 하면 쓸수록 몸이 아픈 정체불명의 스틱교육과 걸을수록 불편하고 관절을 뒤틀리게 하는 타이거스텝, 힘을 아껴주기는커녕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는 레스트스텝rest step 등 건강을 해치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또한 교육기관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존재감을 위한 보여 주기 식의 검증되지 않은 행사를 남발해 참가자를 유도하는 행태는 공갈젖꼭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민의 높은 의식수준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수준 낮은 교육으로.

코오롱 등산학교 이용대 명예교장은 ‘21세기 알피니즘의 화두는 Altitude고도에 있음이 아니라 Attitude태도에 있다’고 영국의 시각 장애인 비행사인 마일스 힐튼바버Miles Hiton-Barbe의 말을 인용해 전한다. 그렇다. 사람이 높은 산을 올랐다 해서 품격과 인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유명하다고 해서 위대한 것도 아니다.

히틀러는 유명하지만 위대하지 않다. 하지만 그에 맞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는 위대하다. 국민들은 산악계의 유명한 연예인을 원치 않고 신뢰가 넘치는 실력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더불어 산악계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 인정받는 길라잡이가 되려면 우리에게 맞지 않는 서양의 기술이 아닌, 우리 것의 개발과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것이 산과 자연을 통해 행복 찾기에 나서는 2,000만 명을 위한 길일 것이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해 우리는 이만큼 커 버렸는데 지금도 20년 더께의 거대한 공갈젖꼭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하릴없이 물고 있어야 하니.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교장/건누리병원고문/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 사)대한산악연맹 찾아가는 트레킹스쿨 교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 교장/월간 산 대한민국 등산학교 명강사 1호 선정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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