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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ㅣ<7>인천산악구조대 천준민 대장] 산 없는 인천에서 탄생한 강력한 산악구조대의 수장

글 김기환 차장 사진 황문성 사진작가, 천준민 제공
  • 입력 2019.11.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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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실전처럼 즐기는 열혈 산꾼… 나눔원정대 통해 등반과 봉사 실천

일반인들은 암벽을 오르는 전문등반은 위험한 행위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의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스포츠클라이밍이 인기를 끌며 등반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동시에 등반 중 일어나는 안전사고 또한 증가해 산악구조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산이 거의 없는 인천에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산악구조대가 활동하고 있어 화제다.

2018년 14대 대장으로 취임한 인천광역시산악연맹(이하 인천연맹) 산악구조대 천준민(50)씨는 인천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경찰이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산악구조대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 해외원정도 다녀왔고, 다른 나라 구조대와 합동 훈련을 기획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직업부터 취미생활까지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간적인 알피니스트라 하겠다.

“사실 저는 알피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저 산이 좋고 바위가 좋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기록에 남을 만큼 의미 있는 등반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구조대원들과 함께하는 등반과 봉사가 알피니즘의 한 형태이며, 그 핵심은 바로 ‘자일의 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악인들은 등반을 위해 많은 장비를 이용한다. 안전벨트와 카라비너, 암벽화, 퀵드로, 프렌드 등 안전한 등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로,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천 대장은 이렇게 많은 장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일’이라고 이야기한다.

Cheon Junmin

소속

인천광역시산악연맹 산악구조대 대장

등반 활동

2013년 티베트 마낭강일(6,400m) 원정

2014년 중국 샤문 구조경진대회 참가

2017년 대만·미국 구조대 국내 합동 훈련

2018년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 원정

2019년 미국산악구조대 60주년 행사 참가

기타상벌

2016년 산림청장상 수상

2018년 마니산제 우수산악인상 수상

지난 봄 미국 마운틴 후드에서 열린 미국산악구조대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천 대장(앞줄 가운데).
지난 봄 미국 마운틴 후드에서 열린 미국산악구조대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천 대장(앞줄 가운데).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자일에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선등자, 다른 끝에는 후등자가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며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소리는 안 들려도 자일을 흐름으로 소통하고 오름짓을 하면서 바위를 느낍니다. 자일은 아무하고나 묶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래서 자일로 이어진 ‘정’은 등반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구도시 인천 태생인 천준민 대장은 바다가 가까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레 더운 여름이면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피서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어린 시절 바다에서 겪은 불쾌한 기억 때문에 산을 더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가족들과 송도해수욕장에 자주 갔는데, 아버지는 늘 저를 어른 키만 한 깊이의 물에 빠뜨려 놓고 허우적거리면 꺼내주는 장난을 하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게 무척 싫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수영장을 잘 가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야영하는 재미로 전국의 산을 돌아 다녔다. 지금으로 말하면 백패킹을 마니아였던 것이다. 암벽등반을 처음 접한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그는 1990년 군에 입대해 7년간 직업군인 생활을 했는데, 마침 선임자 중에 산을 좋아하는 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 이끌려 1994년 여름 처음으로 북한산 인수봉을 오른 것이 계기가 됐다.

2017년 산악구조협회와 대만·미국 산악구조대가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인수봉에서 기념촬영을 한 참가 대원들.
2017년 산악구조협회와 대만·미국 산악구조대가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인수봉에서 기념촬영을 한 참가 대원들.

“군대 선임이 북한산 놀러 가자고 하더니, 대슬랩 앞에서 암벽화 두 켤레와 안전벨트 2개, 자일, 장비 등을 꺼내놓더군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날 줄을 묶고 함께 인수봉을 올랐습니다. 그 이후 가끔 바위를 했는데, 1997년경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백봉 이영관 선생님을 만나 등반을 배운 이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천연맹 산악구조대 소속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좀더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등반을 함께할 이들을 찾다 보니 산악구조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실 인천에는 산이 없어서 산악구조대가 조난자 구조를 위해 현장 출동할 일이 거의 없다. 주로 산에서 진행되는 행사 지원을 많이 나가는 편이다. 대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월 2회 북한산이나 설악산 등에서 강도 높은 훈련등반을 실시한다.

“인천에 산이 없지만 인천산악구조대의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전국 산악구조대 경진대회에서 재작년과 작년에 우승해 2연패했고, 올해는 종합 3위에 입상하는 등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실전 투입 기회는 적지만, 언제나 등반 중에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입니다. 인천산악구조대 30명 대원들은 요구조자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도록 손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천 대장은 인천연맹 산악구조대 소속으로 해외원정도 몇 차례 참가했다. 2013년 티베트의 마낭강일(6,400m), 2018년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에서 인천을 대표해 등반을 펼쳤다. 여러가지 여건 상 8,000m 고봉 등반은 어렵지만, 일선 형사로 바쁘게 근무하며 해외원정까지 다녀왔다는 것은 보통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피곤하다고 쉬는 날 집에서 누워 있으면 절대 산에 못 갑니다. 근무가 없는 날은 무조건 배낭 메고 산으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3년째 인천등산학교 대표강사를 맡아 교육하고 있고, 구조협회에서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산에서 야영하고 등반을 할 때는 피곤한줄 모르겠어요. 그래서 20년 이상 꾸준히 등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퇴직하면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도 가고 싶습니다.”

2018년 진행한 인천산악구조대 ‘나눔원정대 1기’ 악사이 산군 원정 당시 코로나봉에 오른 천 대장.
2018년 진행한 인천산악구조대 ‘나눔원정대 1기’ 악사이 산군 원정 당시 코로나봉에 오른 천 대장.

그는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인천산악구조대가 꾸린 원정대의 운영을 책임지는 핵심 멤버다. 특히 지난해 인천산악구조대가 출범한 ‘악사이산군 나눔원정대 1기’의 모든 훈련과 일정을 총괄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원정대 이름도 그가 지었는데, 산악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통, 배려, 나눔이라는 3가지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나눔원정대가 추구하는 3가지 정신 중 ‘소통’은 우리가 찾아가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호흡을 의미합니다. ‘배려’는 원정대의 운영에 가장 중요한 대원들 간의 팀워크를 강조하는 말이며, ‘나눔’은 말 그대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원정대상지에 도움을 주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나눔원정대 1기’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현지 고아원을 방문해 준비해 간 학용품과 장난감을 나눠줬습니다. 내년에는 나눔원정대 2기 출정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2013년 실패한 미답봉 티베트 마낭강일 재도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 대장은 해외 산악구조대와 우리나라 산악구조대 간 교류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중국 샤문에서 열린 국제구조경진대회에서 만난 대만과 미국 구조대원들과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정기적인 합동훈련을 추진한 것. 이후 대만 신북시 구조대와는 1년에 한 번씩, 미국 베일구조대와는 3년에 한 번씩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에는 대만과 미국 구조대를 국내로 초청해 함께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는 미국팀 초청으로 미국산악구조대 60주년 행사에 참가해 미국팀과 함께 선수로 출전했다.

그가 이렇게 산악구조대 활동에 열심인 것은 산꾼들이 추구하는 ‘정통 알피니즘’을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서다. 천 대장 스스로 ‘알피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은 쑥스러워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피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암벽등반 인구가 점차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힘든 산으로 가기보다 실내나 외벽으로 빠지려 해 아쉽습니다. 저는 산꾼들 사이의 선후배 문화를 좋아합니다. 역사와 전통을 잘 아는 선배가 후배를 이끌며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산악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천 대장은 직장과 산악구조대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산꾼이다. 하지만 늘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술 마신다고 늦게 귀가하고, 주말이면 등반 간다고 집을 비웠기 때문이다.

“결혼 몇 년차까지는 집사람이 휴일이면 ‘또 산에 가?’라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산에 안 가?’로 멘트가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가기 싫어도 무작정 배낭을 메고 집을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저의 모습을 20년 동안 지켜봐 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이 좀 놀아주고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등반만 다니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다 커 있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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