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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셰르파 스토리ㅣ락파 셰르파] ‘세계 여성 최다’ 에베레스트 9번 오른 ‘싱글맘’

글 서현우 기자
  • 입력 2019.11.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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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접시닦이로 일하며 홀로 아이 돌봐…가정폭력으로 이혼한 후 3번 추가 등정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있는 락파 셰르파. 평범한 이민자 가정주부로 보이지만 세계 여성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자다. 사진 <아웃사이드></div>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있는 락파 셰르파. 평범한 이민자 가정주부로 보이지만 세계 여성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자다. 사진 <아웃사이드>

고산 등반을 위시한 산악계는 여전히 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월간<山>이 지난 3월 주최했던 ‘여성산악인 토론회’에서는 그 이유로 “여성들 대부분이 결혼해 육아와 가사를 도맡으며 자연스럽게 산을 내려놓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자도 남성이 훨씬 많다.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00~2019년 간 에베레스트 등정한 남성은 3,805명인데 반해 여성은 53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락파 셰르파Lhakpa Sherpa(46)는 이처럼 여성이 등반을 펼치기에 불리한 사회 환경 속에서도 무려 9번이나 에베레스트를 오른 셰르파다. 네팔 히말라야 마칼루의 높은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 발라카르카Balakharka에서 7명의 자매와 4명의 형제와 더불어 자란 락파의 원래 꿈은 의사와 비행기 조종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 형편 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고소 등반 가이드로 일하고 있던 아버지와 마을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보며 등반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형제자매 중에 유달리 키가 컸던 락파는 15세가 되자 아버지를 따라 본격적으로 셰르파 일을 시작했다. 락파는 “당시 어머니는 ‘너는 여자이므로 집에 있어야 하고 결혼해야 한다’고 반대했다”며 “그러나 나는 ‘산을 오르며 내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주장하며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린 락파에게 원정대의 요리 수발을 들 것을 권했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20kg에 달하는 짐을 지어 날라 한 명의 셰르파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락파는 이후 8,000m급 등반을 준비하는 등반가들이 먼저 찾는 6,000m급 봉우리 메라피크(6,476m)와 얄라피크(5,520m)에서 주로 활동하며 고산 등반, 특히 에베레스트 정상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90년대 말이 되자 락파는 정부와 수십 명의 기업가들에게 “네팔 여성 셰르파로만 구성된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만들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는 1993년 파상 라무 셰르파가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 중 사망한 뒤로 여성 셰르파의 활동이 뜸해진 상황이었다.

네팔 정부와 일부 기업들이 락파의 호소에 답해 2000년, 네팔 여성 셰르파 5명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결성됐다. 이들은 2000년 5월 18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무사히 하산까지 마친 최초의 네팔 여성이 됐다.

에베레스트를 등반 중인 락파 셰르파. 사진 마이클 코다스
에베레스트를 등반 중인 락파 셰르파. 사진 마이클 코다스

“등반 능력의 비결은 셰르파의 피”

락파는 이 등정을 마친 직후 카트만두에서 루마니아계 미국인이자 미 코네티컷 주에서 유명한 산악인이기도 한 조지 디즈마레스큐George Dijmarescu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당시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다른 셰르파들을 통해 의사소통했다. 이들은 만난 지 2년 뒤,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현지에 정착했다.

락파는 디즈마레스큐와 함께 2001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2003년 등정 이후로는 매번 세계 여성 최다 신기록을 갱신한 등반이었다. 종전 기록은 인도의 산토쉬 야다브Santosh Yadav의 2회(1992, 1993년)다. 디즈마레스큐의 유명세와 수완으로 자금 조달과 등반가 모집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등반역정은 순탄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락파는 “2003년에 첫딸이 태어난 이후부터 디즈마레스큐의 가정 폭력이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중에는 베이스캠프에서 디즈마레스큐가 락파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락파 부부와 함께 종종 에베레스트 원정을 같이했던 한 미국 산악인은 이를 두고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는 극한 도전을 너무 오랫동안 같이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락파 셰르파가 201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자신을 후원해 준 웨스트 하트퍼드 지역 도서관의 휘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씨에스모니터></div>
락파 셰르파가 201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자신을 후원해 준 웨스트 하트퍼드 지역 도서관의 휘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씨에스모니터>

결국 디즈마레스큐와 관계가 껄끄러워진 락파의 에베레스트 등정은 2006년을 기점으로 중단된다. 그녀는 한동안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3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그러나 한 번 깊어진 갈등은 봉합되지 못했고, 결국 락파 부부는 2015년 1월 이혼하게 된다.

이혼한 후 락파는 편의점이나 동네 음식점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며 홀로 3남매를 돌봤다. 그리곤 다시 에베레스트 등반을 꿈꾸기 시작했다. 2016년 잠시 네팔로 돌아온 락파는 여전히 셰르파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7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 그리고 2017년, 2018년에도 등반하기 좋은 계절이 되면 네팔로 들어와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총 9번, 세계 여성 최다의 기록이다.

흥미롭게도 락파는 별다른 등반 훈련을 하지 않고도 이러한 업적을 이뤄냈다고 한다. 그녀는 “나고 자란 고향이 해발 4,000여 m에 달하기 때문에 워낙 고소 적응 능력이 뛰어나고, 셰르파의 피가 흐르고 있어 등반에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하며 “다음 목표는 10번째 정상 등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수적인 셰르파 사회에서도 이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문화인류학 오영훈 박사의 논문 <히말라야 등반에서 셰르파들의 간문화間文化 경험: 실용주의적 현상학의 관점>에 따르면 셰르파 사회의 이혼율은 30%에 달할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 박사는 “셰르파 사회의 풍습은 티베트불교와 고산지대 극한상황으로 인한 모계적 전통 등에 영향을 받아 이혼을 해도 여성들이 남성처럼 당당할 수 있다”며 “이혼 후의 생활은 보통 마을공동체 원로회에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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