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ㅣ콜롬비아] 자연의 신비, 워터 스펀지를 걷다

  • 글·사진 김영미 자유여행가
    입력 2019.11.20 16:43

    삼림과 빙하 사이 위치한 파라모 데 오세타 트레킹…희귀 동식물 서식하는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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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고원에 펼쳐진 워터 스펀지, 프라일레혼 존.
    콜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개의 다른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인 파라모Paramo는 삼림과 빙하 사이에 위치한 알파인 툰드라 생태계로 해발고도 3,000m 이상에 있는 거대하고 건강한 워터 스펀지, 즉 자연습지이다. 스펀지 같은 토양에는 각종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해 생물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자원이다. 장마철에는 홍수 완충 역할을 하며 안정적인 물 공급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행히 광업, 석유, 가스 등의 굴착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파라모 데 오세타Paramo de Oceta는 콜롬비아 안데스산맥의 동북부 연안 해발고도 3,000~4,000m 사이에 분포하며, 스페인 정복 이전에는 이 지역에 거주했던 무이스카의 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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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오 바위에서 작은 광야처럼 시원스럽게 펼쳐진 산릉을 조망하고 있다.
    작은 알프스 마을 몽구이
    남미 여행 중에 코쿠이Cocuy 트레킹에서 보았던 자연과 흡사하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트레일을 발견했다. ‘파라모 데 오세타’라고 소개한 트레킹이었다. 파라모 데 오세타의 시작점은 보야카Boyaca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인 몽구이Mongui.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몽구이는 너무나 작은 마을이어서 숙소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소가모소Sogamoso로 향했다. 마침 코쿠이 트레킹을 함께했던 수덕씨도 동행을 했다. 코쿠이 트레킹에서 무척이나 고생했는데 “다시 더 걸어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의외였다.
    코쿠이 트레킹을 끝내고 밤새 버스를 타고 툰하Tunja를 거쳐서 소가모소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임에도 소가모소는 활기가 가득했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 도착해서 ‘파라모 데 오세타 트레킹’을 문의했더니 마침 친분 있는 가이드가 있다며 마리아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의 영어는 유창해서 트레킹 관련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트레킹 루트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지만 트레일에 들어서면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고 혹여 길을 잘못 들어서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안전하게 가이드를 동반하기로 했다. 준비물은 충분한 식수, 점심 그리고 간식. “트레일 중간에는 먹거리를 살 만한 곳이 전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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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짠 우유를 팔러가는 어르신.
    간단하게 만든 샌드위치, 과일, 식수를 가지고 몽구이로 향했다. 버스 종점이 몽구이. 내려야 할 지점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이동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버스에는 일하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몽구이는 알프스 트레킹을 할 때 보았던 스위스 마을의 모습 그대로였다. 또한 성모 바실리카성당, 칼리칸토 데 몽구이 콜로니얼 다리 등 16세기의 식민지 건축물이 가득하다니 트레킹을 마친 후에는 꼭 마을 구경을 하고 가야겠다. 약속 장소인 몽구이교회 앞 광장에 도착하니 작은 배낭을 멘 외국인 10여 명이 있었다. 모두들 파라모 데 오세타 트레킹을 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왔을까?
    트레킹의 들머리까지는 마을에서 5km 정도. 그곳까지 택시로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걷기로 했다. 몽구이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걷고 싶었다. 새벽에 짠 우유를 말에 싣고 마을로 팔러 가는 어르신, 바게트 빵과 오렌지 주스를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아주머니, 집 앞에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 그들은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들은 그들을 구경했다. 서로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것도 멋진 풍광을 보며 자연 속을 걷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마을을 벗어나니 예전에 원주민들이 살았던 집들이 있었지만 모두 빈집인 듯했다. 세상은 너무나 고요했다. 마을에서 출발한 외국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들머리까지 택시로 이동했으니 우리들보다 먼저 이 길을 통과했겠지. 이따금 걷고 있던 길을 집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럴 때면 가이드는 당당하게 나무로 만들어 놓은 대문을 열고 가로질러 걸었다.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가이드 없이 왔더라면 어디가 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알프스 트레킹을 할 때에도 목장을 통과해야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는 목장에 있는 사람들이 길도 알려 주었고 이정표도 잘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길 찾기가 쉽다고 했는데 이정표 하나 없는 이런 길을 가이드 없이 왔더라면 엄청나게 고생을 할 것은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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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말과 함께 마실가는 할머니.
    프라일레혼 세상으로 들어서다
    나무가 거의 없는 고원에 다다르니 시원스러운 조망을 품은 프라일레혼Frailejon 존이 펼쳐졌다. 마법의 세계이다.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고 축축하고 습했다. 바로 이곳이 파라모 데 오세타. 지천으로 산을 덮고 있다는 표현이 무색했다. 코쿠이와는 비교 불가였다.
    프라일레혼은 해바라기처럼 보이는 꽃과 부드러운 털이 많은 잎을 가진 다년생 관목으로 공기 중의 수증기를 포착해 스펀지처럼 생긴 트렁크와 흙으로 전달한다. 외계 생물처럼 생긴 이 식물은 1년에 1cm씩 자란다고 하는데 내 키보다 훌쩍 큰 것들이 대부분이니 나이가 200살이 넘은 어르신들이다. 보통 수명은  300~400년 정도. 산에 물이 많을 때는 품고 있다가 가물어지면 다시 산으로 물을 돌려준다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식물이다. 자연은 알면 알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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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보다 훌쩍 큰 프라일레혼이 산을 덮고 있는 파라모 데 오세타.
    길을 걷던 가이드가 어떤 식물의 잎을 따서 손목에 올려놓은 다음 지그시 손으로 눌렀다. 잠시 후, 잎이 있던 손목 부분에는 잎사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손으로 지워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이것은 머리 염색이나 타투에 사용하는 헤나라는 식물이었다. 예전에 헤나 분말을 사서 염색약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것으로 만들었구나! 헤나는 일반 타투와 달리 1주일 정도 지나면 지워진다고 했다.
    길은 완만하게 오르다가 내려가고 시야가 막혀 있지 않아서 피곤하지도 않았다. 세로 엘 모로Cerro El Morro까지 걸으면서 악마의 제단El Pulpito del Diablo을 다시 만났다. 코쿠이에서 보았던 악마의 제단은 하얀 만년설로 뒤덮여 있어서 위엄이 느껴졌는데 이곳의 악마의 제단은 평범한 모습이어서 친숙하게 다가왔다. 원주민들은 이곳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봄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살방살방 걸었는데 수덕씨가 무척 힘들어했다. 아마도 고도가 높아지면서 고산증세를 가볍게 느끼는 듯했다. 세로 엘 모로를 향해 오를수록 프라일레혼의 키도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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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와 바위가 가득한 동굴.
    능선에선 초록의 향기가 더욱 물씬 느껴졌다. 이곳의 파란 하늘이 유독 더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정상으로 오르기 직전 인디오 모습을 한 바위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발아래로는 산 구릉이 작은 광야처럼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살짝 험했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세로 엘 모로(3,950m). 그리 넓지 않은 정상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쪼였다. 온 세상이 프라일레혼이었다. 프라일레혼 세상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 세로 엘 모로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30분 정도 달콤한 낮잠까지 즐겼다.
    하산하려던 차에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 가이드가 두 명의 트레커와 함께 올라왔다. 그런데 우리 가이드가 아주 반갑게 남자 가이드와 포옹했다. 그들은 부녀지간. 엄마가 제일 먼저 시작하고 아빠, 딸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 가족이다. 남미에서는 가이드가 꽤 고수익을 올리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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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일레혼이 가득한 가파른 절벽과 아름다운 계곡들이 펼쳐지는 파라모 데 오세타.
    내려오는 길에 가이드는 작지만 깊은 동굴로 우리를 안내했다. 길은 거칠고 어두웠고 클라이밍까지는 아니어도 바위를 타야만 했다. 아마도 같은 길로 왕복하면 조금 무료할까 봐 따로 개발한 루트인 듯했다. 봄날의 소풍처럼 무난한 트레킹이어서 동굴 탐험의 시간은 색다른 맛이었다.
    배낭에 먹거리도 제법 남아서 일몰까지 보고 하산하면 좋겠지만 소가모소행 버스의 막차 시간이 오후 7시. 일몰을 보고 택시를 불러서 몽구이로 돌아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이럴 땐 과감히 포기해야지. 땅으로 떨어지는 해와 함께 몽구이로 걸었다. 이미 마을엔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트레커들은 모두 돌아가고 복작거렸던 마을 광장은 조용하기만 했다. 소가모소로 돌아갈 마지막 버스는 1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저녁은 소가모소로 돌아가서 먹기로 하고 몽구이마을 구경을 나섰다. 스위스 시골마을처럼 대부분의 집들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집집마다 창가에 작은 꽃바구니를 걸어놓아서 스위스 느낌이 물씬했다.
    특이하게도 몽구이엔 공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축구공은 80년 이상 전통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여 개의 작은 회사들은 손으로 풍선을 제조하고 있는데 콜롬비아 전국에서 소모되고 있는 풍선의 25%를 이곳 몽구이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풍선 산업의 메카였다. 조그만 가게에 가득 차 있는 축구공과 풍선들에 빛이 반사되니 마을은 요술 상자에 담진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동화책의 한 페이지에 담아져 있는 장난감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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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나 식물을 이용해 팔목에 염색을 하고 있다.
    자연의 생태계를 돌아보다
    코쿠이 트레킹처럼 다이내믹한 트레킹도 좋지만 봄날 소풍가듯 잔잔하고 편안한 길을 걸으며 새롭게 자연을 바라보고 생명의 신비로운 세계를 접했던 파라모 데 오세타 트레킹은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내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를 어떻게 보존하고 지킬 것인지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한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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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구이의 축구공가게. 80년 이상 전통방식으로 만든 축구공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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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모 데 오세타 트레킹 개념도
    몽구이는 어디에 있나?

    소가모소에서 약 20km, 툰하에서 85km, 보고타에서 230km 떨어져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소가모소를 경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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