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옛 문헌에 나오는 해남 달마산] 도솔암 앉은 형세가 훌륭하여 그 장관을 따를 것이 없다!

입력 2019.12.02 11:36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나와…고려까지는 흔적 찾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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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기암 괴봉의 형세가 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를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다. 석양이 질 때 황금빛으로 물드는 미황사는 남도 제1경으로 꼽힌다.
달마산達摩山(489m)은 남도 제일의 석양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달마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美黃寺란 사찰 이름에서부터 수려한 노을을 알 수 있게 한다. 1692년(숙종 18) 민암이 기록한 것으로 전하는 <미황사사적비美黃寺史籍碑>에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따왔고, 황黃은 금인의 황금빛을 따와 지었다’고 나온다. 소는 사람과 같이 농사일을 하는 동물로서 저녁이 되면 먹이를 달라고 울음소리를 낸다. 소가 길게 울면 저녁이 됐다는 얘기다. 저녁은 바로 석양이 넘어가는 시간이고, 황금빛을 달마산 일대에 발하는 경관은 알려진 대로 남도 제1경을 자랑한다. 
<미황사사적비>에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창건설화는 다음과 같다.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닿자,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 명이 이것을 소 등에 싣고 오다가 소가 드러누운 골짜기에 절을 지어 미황사라고 했다.’ 
이래저래 소와 관련돼 있다. 소는 불교의 목우십도송의 주인공이다. 망아지마냥 날뛰는 소에서 인간과 친화되어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 목우십도송이다. 소를 통해 인간이 마음을 잡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따라서 소를 다스리는 과정은 인간의 성찰과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달마산은 또한 달마대사와의 관련성을 전한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해서 달마산이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원래의 산 이름은 달마dharma가 가져온 경전達摩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현대의 지형도에는 언제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달마산達馬山으로 표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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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에 있는 도솔암.
<미황사사적비>에는 749년부터 등장
<신증동국여지승람>제35권 전라도 영암군 편에는 ‘달마산은 옛날 송양현에 있는데, 군의 남쪽으로 124리 떨어져 있다. 또 해남현에서도 보인다. 고려 때 중 무외無畏의 기記에 전라도 낭주朗州의 속현을 송양현이라 하는데, 실로 천하에서 궁벽한 곳이다. 그리고 그 현의 경계에 달마산이 있는데, 북쪽으로는 두륜산頭輪山에 접해 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에 닿아 있다. 산허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여 모두 백여 척이나 되는 것들이 치마를 두른 듯 늘어서 있다. 그 위에 아주 흰 돌이 우뚝 솟아 있는데 당幢과도 같고, 벽과도 같다.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 바라보면 쌓인 눈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꼭대기 고개 동쪽에 있는 천 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彌陀穴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대패로 민 듯 칼로 깎은 듯한 것이 두세 사람이 앉을 만하다. 앞에는 층대가 있어 창망한 바다와 산들이 지호지간指呼之間(손짓해서 부를 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다. 그 구멍으로부터 남쪽으로 백여 보를 가면 높은 바위 아래 작고 네모진 연못이 있는데, 바다로 통하고 깊어 바닥을 알지 못한다. 그 물은 짜며, 조수를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 땅의 끝편에 도솔암兜率庵이 있는데, 그 암자가 앉은 형세가 훌륭하여 그 장관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 이곳은 화엄조사華嚴祖師 상공湘公이 터 잡고 지은 곳이다. 그 암자 북쪽에는 서굴西屈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처음 살면서 낙일관落日觀을 수리한 곳이다. 서쪽 골짜기에는 미황사·통교사가 있고, 북쪽에는 문수암·관음굴이 있는데, 그 상쾌하고 아름다움이 참으로 속세의 경치가 아니다. 또 수정굴이 있는데, 수정이 나온다. 지원至元 신사년 겨울에 남송의 큰 배가 표류해 와 이 산 동쪽에 정박했을 때, 한 고관이 산을 가리키면서 주민에게 묻기를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 하는데, 이 산이 그 산 아닌가” 하므로, 주민들이 “그렇다”고 했다. 이에 그 고관은 즉시 그 산을 향해 예를 다하고, “우리나라는 다만 이름만 듣고 멀리서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 하고 그림으로 그려갔다. “위대하다. 이 산이여. 어찌 매우 높고 빼어난 모양이 산과 바다의 아름답고 풍부함을 다 했을 뿐이랴. 그 성적聖蹟과 영험한 자취도 많았도다. 또 외국인들까지도 우러르고 공경함이 저와 같았다. 그러나 먼 지방에 있어서 세상에는 등반하여 감상하는 자가 없으니 슬프다. 만약 세상을 버리고 도를 찾는 선비로서 절정에 올라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대사大士가 세상 밖에서 이른바 전하지 못한 묘함을 얻은 자가 있다면 저 소림少林에서 진수眞髓를 얻은 자 또한 어떠한 사람이라 할까”라고 했다’고 기록돼 있다. 
같은책 불우편에서는 ‘통교사·미황사·도솔암·관음굴·서방굴·수정굴 모두 달마산에 있다’고 나온다. 
달마산의 수려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나온 지리서에 달마산과 미황사, 도솔암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을 정도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덕촌 양득중의 문집 <덕촌집>에도 달마산에 대한 설명이 살짝 언급된다. 
‘미황사는 749년(신라 경덕왕 8)에 의조義照가 세운 사찰로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으며, 두륜산 대흥사 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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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앞으로 남해 바다가 보인다.
산세와 경관은 애초부터 유명했던 듯 
조선 말기 면암 최익현의 <한라산 유람기>에서도 ‘백두산을 근원으로 하여 남으로 4천리를 달려 영암의 월출산이 되고, 또 남으로 달려 해남의 달마산이 되었으며, 달마산은 또 바다로 500리를 달려 추자도가 되었고, 다시 500리를 건너 한라산이 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내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명산 달마산은 <대동여지도>에 뚜렷이 ‘達摩山’으로 나오지만 한국 최대의 지리지로 평가받는 <택리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를 <택리지>를 꼼꼼히 읽으며 파악했다. 결론은 저자 이중환이 전라도를 전혀 가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택리지> 명산과 명찰편에서 ‘전라도와 평안도는 내가 가보지 않았고, 함경도·강원도·황해도·경기도·충청도·경상도는 많이 가보았다. 내가 본 것을 토대로 하고 들은 것을 참고하여 쓴다’고 밝히고 있다. 이중환은 전라도와 평안도 관련 부분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적어도 다른 지리지나 관련 문헌을 참고해서 썼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관련 문헌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될 뿐이다. 단지 한국 최고의 명당이면서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한 도솔암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아슬아슬한 장소까지 사람들이 가보지 않아서인 듯하다. 현재 도솔암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반도의 끝 달마산 도솔봉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입니다. (동국여지승람 記)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하신 의조화상께서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 정진하셨던 유서 깊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입니다. 여러 스님들께서 기도 정진하여 왔던 도솔암은 조선조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패배한 왜구들이 해상퇴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하던 중 화마를 면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빈터에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아 있었는데, 30년 전부터 여러 차례 많은 스님네들이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인연이 되지 않아 불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생불이라 불리신 곡성 성륜사조실 청화 대종사께서 한때 수행하셨던 곳입니다.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법조스님이 연속 3일간 선몽의 꿈을 꾸고 현세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이곳 도솔암 터를 보고 해몽하여 32일 만에 단청까지 마친 여법한 법당을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법당을 건립할 수 있게 된 것은 부처님의 가피력과 시절 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불사로 주변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후략)’ 
도솔암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달마산 서쪽 정상 두 암봉 사이 기운이 터져 나올 듯한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칸 남짓 되는 조그만 암자 주련에는 ‘조광장엄동해출朝光莊嚴東海出(장엄한 아침빛이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고) 야경적정해중월夜景寂靜海中月(고요한 야경 가운데 바다 위에 달이 떠있네!)’이라고 쓰여 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역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본 감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아닌가 여겨진다. 
사람들은 일출을 통해 기운氣運을 받고 일몰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운이 강한 이유가 산을 많이 다녀서 그렇다는 해석도 있다. 믿거나말거나 얘기지만 산에 가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기운을 받는 건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니 나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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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은 야트막하지만 기암 괴봉들이 많아 등산하기 쉽지 않다.
도솔암 주련에도 일출·일몰 모습 적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국토 최남단 달마산을 찾아 남도 제1경의 일몰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 받고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 달마산 중턱 미황사에서 석양을 즐기고 남서쪽 끝자락 도솔봉 도솔암을 찾아 기운도 받고 건강도 챙기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어떨까. 달마와 어우러진 불상과 기암, 그리고 석양 세 가지가 최고의 조화를 이룬 더없이 아름다운 남도의 명산이다. 국토 최남단 땅끝마을전망대까지 걷기길이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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