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SPECIAL] 12월의 갈 만한 산 5선!

입력 2019.12.04 09:47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단풍 들자 무섭게 낙엽이다. 떨어진 달력 마냥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쌓인다. 낙엽 밟자마자 겨울 추위가 몰려온다. 설악산은 벌써 첫눈이 내렸고 내장산·두륜산은 마지막 단풍을 불태우고 있다. 
연말이다. 정리의 시간이고 마무리의 시간이다. 한 해의 잘잘못을 돌아보며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낙조·석양은 정리이고 마무리다. 장엄한 일출은 기운을 주지만 황금빛 노을은 위안을 준다. 정리와 마무리를 하고, 위안을 받기 위한 장소를 찾는다. 당연히 남도다. 굳이 남도가 아니더라도 황금빛 석양을 볼 수 있는 산이라면 어디든 간다. 
12월의 명산은 그래서 석양·노을이 좋은 산으로 선정했다. 한반도 끝자락의 달마산과 그 북쪽으로 연결되는 두륜산은 서산대사와 초의선사로 유명하다. 해탈문도 있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초연해지라는 그 해탈이다.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한라산도 보인다. 
변산은 사진작가들의 대표 낙조 출사지이다. 노을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서석대가 있는 무등산, 서해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가 보이는 서산 가야산, 높지는 않지만 정상 부근에 낙조대가 있는 선운산 등 어디든 한 걸음에 내달리고 싶은 명산들이다. 자세한 정보는 월간<山> 홈페이지san.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산
낙조대·월명암 노을 일품… 봉래·영주로 부르기도
변산邊山(508m)은 12월에 가장 많이 찾는다. 내변산에는 낙조대·월명암이 있고, 외변산에는 채석강과 적벽강, 하섬 등 바다에 비친 황금빛 노을과 함께 볼거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변산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삼국사기>에 변산이란 지명이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백제땅에 변산이 있어 변한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변산을 영주산瀛洲山, 봉래산蓬萊山이라고도 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변산에 봉래구곡이 있는 것이다. 고창의 방장산, 고부의 두승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꼽혔다. 다른 별칭으로 능가산楞枷山도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대해보살에게 설법을 베풀었다는 산이다. 내변산에만 팔만구천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많이 회자됐고, 족보 있는 명칭도 몇 개나 된다. 
이중환 <택리지>에는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높지는 않으나 골짜기가 깊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넓은 평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 십승지 중의 한 곳이다. 지금은 국립공원지역으로 출입금지다. 조선 선비들이 숱하게 찾았으며, 여러 문헌에도 그 기록이 그대로 전한다. 내변산·외변산 모두에서 낙조를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두륜산
산세가 바퀴같이 둥근 데서 유래… 해탈문 유명
두륜산頭輪山(703m)은 대흥사와 해탈문으로 유명하다. 물론 설악산부터 시작한 단풍명산 소개는 항상 남도 끝자락 두륜산으로 끝낸다. 
단풍으로 유명한 도립공원이지만 그보다는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 노승봉(685m),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 총 8개의 봉우리가 U자형으로 둘러싸고 중앙에 대흥사가 자리 잡은 형세가 볼 만하다. 이와 함께 해탈문을 한 번 걸어보는 것도 연말 분위기와 맞다. 
대흥사는 원래 대둔사大芚寺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남현 편에 ‘(두륜산)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이 산에 오르면 제주의 한라산과 서로 바라보인다. (대둔사) 두륜산에 있다. 절 앞에 신암·사은·선유 세 중의 부도가 있다’고 나온다. 이들은 고려시대의 승려였으며, 조선시대 들어서는 서산대사가 의병을 일으켜 활동함과 동시에 부도가 대흥사에 있다. 대둔사라는 이름이 대둔산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조선 초기까지 대둔사로 사용한 기록을 보아 서산대사 이후 명칭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서산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대흥사로 개명됐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두륜의 뜻은 산 봉우리가 바퀴같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 ‘둥근머리산’ 또는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무등산
서석대 반짝이는 빛과 어울린 황금빛 노을은 환상적
무등산無等山(1,186.8m)은 무돌, 무당산, 무정산, 무진악, 무악, 무덤산, 서석산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통일신라 소사로 지정된 뒤부터 많은 사연을 갖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국사기>권32 잡지 제사조에 무진악武珍岳으로 처음 등장한다. 무등산이란 지명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권71 백제조에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의 큰 읍인데, 이 산에 성을 쌓으니… (후략)’이라는 내용이 무등산 지명에 대한 첫 기록이다. <고려사지리지>에는 서석산도 함께 나온다. 
지명의 변천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역사적 사건과 지리적 조건·구조를 동시에 봐야 한다. 그 사연만 분석해도 산의 역사가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무등산의 경우, 주상절리가 있는 정상 서석대와 입석대가 지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한다. ‘빛고을’이란 수식어도 서석대에서 유래했다. 주상절리 서석대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한다. 반짝이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동네란 뜻으로 ‘빛고을’이란 명칭이 붙은 것이다. 서석대에 반짝이는 빛과 어울린 노을은 환상적이다. 연말 분위기에 딱 어울린다. 지난 2013년 3월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선운산
낙조대 오르는 도솔암 풍광 장관
선운산禪雲山(336m)은 주로 선운사의 뒷산인 도솔산(336m)을 일컫지만 실제로는 1979년 전라북도에서 지정한 도립공원 내의 경수산(444m), 청룡산(313m), 구황봉(285m), 개이빨산(355m) 등을 두루 지칭한다. 원래 도솔산이 일반적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됐다.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선운산) 禪을 仙으로도 쓴다. <고려사> 악지에 선운산곡이 있는데 백제 때 장사가 전장에 나갔다가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그리워서 부른 노래다’라고 나온다. 산은 일찌감치 알려진 듯하다. 천연기념물인 봄 동백과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단풍 또한 탁월하다. 11월 초 절정에 이르는 애기단풍을 만날 수 있다. 
일몰 광경으로 유명한 낙조대,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선학암 외 봉두암·사자암·만월대·천마봉·여래봉·인경봉·노적봉 등 이름난 경승지가 많다. 일몰이 아름다운 낙조대 오르는 길의 천마봉 자락에서 본 도솔암 풍광은 장관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못 내려올지도 모른다. 
서산 가야산
정상에서 서해 노을 그대로 보여… 옛날 중국과 교류 관문
서산의 가야산伽倻山(678m)은 평야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이 예로부터 호서 제일의 산으로 평가받는 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자락이 동·서쪽으로 넓게 펼쳐져 이른바 ‘내포’를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내포란 육지 깊숙이 들어온 포浦를 말한다. 과거 안면도와 홍성 사이의 바닷물이 가야산 자락까지 드나들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내포는 통칭 가야산 일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됐다. 
<택리지>에 ‘충청도에서 내포가 제일 좋은 곳이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 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는데, 서해가 쑥 들어온 곳이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들 가운데 또 한 개의 포가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아울러 내포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가야산은 예로부터 서해로 연결되는 포구로 물산이 드나들었고, 바닷길을 통해 중국의 문물이 들어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은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낳은 걸작으로 불린다. 
서해 바다로 넘어가는 노을이 산 정상에서 그대로 바라보인다. 연말에 산꾼들이 찾는 대표적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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