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하나씩! 전국52명산] <21> 북한산

  • 월간山 편집실
    입력 2020.03.20 15:13 | 수정 2020.03.23 11:11

    삼각산·부아악·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려

    북한산北漢山(837m),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단위 면적당 방문객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워 1994년 세계기네스북협회로부터 인증서를 받았다. 문화재관람료가 폐지된 2007년엔 연간 방문객이 1,000만 명을 육박했으나 지금은 600만 명을 조금 상회하고 있다. 
    북한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의 이름을 낳게 한 산이기도 하다. 옛날 도시의 이름을 정할 때 풍수지리적으로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을 양陽으로 봤다. 산과 강 중에 강을 우선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한강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한양이란 이름이 생겼다. 한양 이전의 이름이 한산이고, 그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한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삼국시대 북한산은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렸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큰 삼각형을 이뤄 명명됐다. 통일신라 말기 도선道詵(827~898)의 <삼각산명당기三角山名堂記>에 삼각산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이미 나말여초부터 지명이 고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인수봉 형상이 아기가 엄마 등에 업힌 모습과 비슷해 부아악負兒岳으로도 불렸다.
    부아악은 신라 소사 중의 한 곳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당시까지 부아악은 신라와 고구려, 백제 삼국 간의 각축장이었다. 백제는 건국부터 400여 년 동안 한강을 중심으로 터전을 다졌다. 그러다 부여, 공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신라 이후부터, 엄격히 고려 현종조 이후부터 부아악이란 지명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아악은 삼각산과 함께 고려 전기까지 간혹 불리다가 이후 삼각산으로 굳혀진 것으로 보인다. 삼봉산, 화산이라고도 불린 것으로 전한다.
    북한산北漢山이 한강 이북을 일컫던 지역 이름이 아닌, 산 이름으로서 불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조선 후기 이서구李書九(1754~1825)의 <유북한산중시遊北漢山中詩〉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진흥이비고眞興二碑考〉에 이 산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엽의 일로 추정된다.
    북한산은 수도권 시민 2,000만의 헬스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민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 어디서나 갈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한다. 경관과 생태적 가치도 여느 산 못지않게 훌륭하다.
    대표적인 산행기점은 북한산성, 우이동, 정릉, 불광동, 구기동 등 분소나 탐방안내소가 있는 기점만 해도 10곳이 넘을 정도다. 산기슭 주택가로 이어지는 산길에 산 안에서 갈래 친 산길까지 엮는다면 산행코스는 난이도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6월의 한국의 명산 방문객은 전국의 산 중에서 북한산이 단연 앞선다. 2018년 6월 북한산 방문객은 55만6,821명, 설악산 26만9,610명, 무등산 25만2,102명, 지리산 24만 8,446명, 소백산 20만 797명, 속리산 13만 35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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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성.
    주변 관광지 
    북한산성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지금의 산성은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이다. 성곽의 전체 둘레는 12.7㎞, 성벽을 둘린 체성 연장은 약 8.4㎞이며 백운대·노적봉·용암봉·문수봉·의상봉·원효봉·영취봉 등을 연결하고 있다.
     
    도선사  북한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인 서울 우이동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이 862년(경문왕 2)에 창건하였다. 도선은 이곳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법에 불법佛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내다보고 절을 세운 다음,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했다고 전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마애불입상은 높이가 8m에 이른다. 영험하다고 소문나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다.

    진관사  북한산 서쪽 기슭의 고려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다. 불암사, 삼막사, 보개산 심원사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한양 근교의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은 절이라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륙재가 열리던 근본 도량이었다.

    교통 정보  
    백운대를 비롯해 주능선 서쪽의 칼바위능선과 형제봉능선 접근 시 우이경전철을 이용해 접근한다. 남서쪽 비봉능선은 지하철3호선 불광역과 구파발역 등을 통해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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