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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24세 여성 백두대간 일시종주기 <18>] “처음 만난 일시종주자가 외국인이라니!”

글 사진 성예진(블랙야크 셰르파)
  • 입력 2019.11.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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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째 대간 걷는 스코틀랜드 사람 만나… 다리 통증 심각했지만 끝까지 버텨

12일째 일시종주 중인 스코틀랜드 사람 닐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대간을 완주하기에 한국에서의 남은 날짜가 부족해보였지만 그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도 행복하다고,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 시간이 그저 좋다”고 말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12일째 일시종주 중인 스코틀랜드 사람 닐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대간을 완주하기에 한국에서의 남은 날짜가 부족해보였지만 그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도 행복하다고,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 시간이 그저 좋다”고 말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9월 25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32일차

신의터재~지기재~개머리재(소정재)~백학산~개처재~회룡재~큰재 26㎞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복잡하기만 하던 지난밤과 달리 마음이 초연하다. 밤새 뒤척이며 마음 정리가 된 것인지 한없이 차분하다. 텐트 입구를 열었더니 차가운 공기가 들이닥친다. 진부령에서 처음 출발할 때와 비교하면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가을이 보내는 신호일 테다. 

북진이었다면, 9월에 시작했다면, 더 고생했을 테다. 차라리 일찍 시작한 것이 다행스러운 날씨다. 차가워진 날씨 탓에 더 이상 태풍은 없을 테니 차라리 다행이다. ‘오늘도 아프면 어쩐다’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일어나야 하는데 침낭에 누워 걱정만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추워질수록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쉽지 않다.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 텐트 밖으로 나가본다.

파스로 칠갑을 하고 잔 다리에서 냉한 기운이 느껴진다. 파스를 뿌린 왼쪽 다리만 찬 기운이 맴돌고 있다. 성능 좋은 침낭 덕에 매일 따뜻한 잠자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파스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따뜻한 걸 넘어 밤새 땀을 흘리고 잔 와중에도 다리만큼은 차갑다. 밤새 왼다리만 텐트 밖으로 꺼내두고 잔 것 같다. 아이싱이 제대로 된 것 같다. 

텐트를 정리하며 움직인다. 지난밤보다 확실히 호전되었다. 어젯밤 파스를 뿌릴 땐 당장 차갑게만 느껴져 뜨거운 파스가 아닌 것을 원망했는데, 역시 차가운 파스를 바른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냉찜질 덕분에 증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썩 나쁘지 않은 느낌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하룻밤 사이에 아팠던 부위가 낫는, 일시종주 상황에서 그런 기적은 없다’고 했던 오빠의 말이 마음에 걸리지만 기적을 바라며 대간길로 내딛는다. ‘부디 다리가 오늘 하루만 더 버텨주길’ 간절한 마음을 읊조린다. 

30㎞ 이상 걸으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몸을 살피지 않고 강행했다가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좀 더 짧은 코스를 택했다. 20㎞만 더 가면 저녁에 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대간길로 들어간다. 

무수히 떨어진 알밤들이 수북이 깔려 있었다. 작년 월간山 취재산행 때와 같은 가을이었다.
무수히 떨어진 알밤들이 수북이 깔려 있었다. 작년 월간山 취재산행 때와 같은 가을이었다.

초입부터 수북이 쌓인 토종밤들이 반겨준다. 밤을 보며 이 산길을 걸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미정 언니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번 주도 설악산에 가겠지’, ‘기자님은 뭐하고 계시려나? 마감 끝내고 한숨 돌렸겠지’ 언제나 그렇듯 함께 걸었던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내 컨디션을 물어보면 거짓말 할 자신이 없어 생각으로만 그쳤다.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었다. 웬만큼 해결 못할 일이 아니라면 나쁜 소식은 혼자 짊어지고 싶다. 또 지금 누군가 “더 가는 건 무리야, 욕심 내지 말고 내려와”라고 말한다면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을 것만 같아 누구와도 통화 할 용기가 없었다.

월간山 백두대간 취재산행을 했던 그날의 추억을 되새기니, 잠시 잊고 있던 길이 그제야 선명해진다. 다리의 통증을 느낀 뒤로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커녕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컨디션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 좋은 대간을 걸으면서도 산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올해도 여전히 밤이 많이 떨어져 있다. 사소한 밤톨 하나도 대자연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작은 밤 하나에도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길을 지나며 밤을 줍는 동네 주민 두 분을 만났다. 동물들 먹을 것을 남겨두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길을 지난다. 딱 맛볼 만큼만 서너 알 정도 줍고 싶은 욕심이 들었지만 편하지 않은 다리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다리를 구부릴 때마다 약간의 통증과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지난밤보다는 확실히 좋아졌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은 채로 종주를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경북 상주 구간의 산길이 편안하여 버틴다. 산이 낮고 오솔길이 많고, 오르내림이 크게 없어 일시종주 중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구간 종주를 할 때는 상주 구간이 쉽게만 느껴지진 않았는데, 일시종주로 내려오니 다른 느낌이다. 구간 종주 시에는 상주 구간 거리를 길게 잡아 먼 거리가 지루하게만 느껴져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남진이 아닌 북진이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신의터재로 가는 길, 길을 잘못 들어 500m 알바한 곳에서 선물 같은 풍경을 만났다.
신의터재로 가는 길, 길을 잘못 들어 500m 알바한 곳에서 선물 같은 풍경을 만났다.

남진의 경우 대개 속리산 구간만 지나면 고비는 끝났다고 말한다. 더불어 남덕유산과 지리산 구간만 잘 넘기면 대간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거라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남덕유산과 지리산, 두 개의 고비가 남아있어 막막하기도 하다. 코스는 좋은데 내 몸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동안 하루하루 걷는 속도에 민감했는데, 이제는 느리더라도 지리산까지 도착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싶다. 컨디션이 좋아지면 또 다른 마음일까? ​마음을 내려두고, 천천히 그저 지리산까지 도착만 하면 된다 생각하며 걸음을 이어간다. 그런 마음 탓인지 어째 난이도가 센 충북 속리산 구간을 지날 때나 지금의 좋은 길을 지날 때나 속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지금 걷는 속도가 마음에 들리 없다. 평소 나의 당일 산행 속도 절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속도를 내었다간 다시금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몸을 사리며 걷는다. 토끼와 거북이 이솝우화를 떠올리며 빠르게 가는 토끼보다 느리지만 꾸준히 가는 거북이가 더 빠를 수 있다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걷고, 또 걷는다.

신의터재에서 출발해 지기재, 개머리재를 지난다. 마을길을 많이도 지난다. 황금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마친 논두렁을 지나며 허수아비도 만나고, 씨알이 굵어 탐스러운 샤인머스캣 포도밭도 지나고,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을버스 정류장도 지난다.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을 때마다 마을이 나오고, 다시 능선에 올라서려면 도로를 건너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비슷한 풍경의 반복이다. 도로가 자꾸만 보이니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는듯하다. 도로로 내려오는 길이 많으니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오늘 운행을 여기서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온다.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는 것 또한 대간 종주의 몫이다. 정말 산을 걷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정말 ‘두타’의 길로 느껴지는 대간길이다. 생각이 많은 것도 잠시. 걷다보면 잡념과 상념은 비워지고 무념무상인 채로 걷게 된다. 생각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탓에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비움의 미학을 실천중이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 커다란 백발의 사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평일에 대간을 걷는 사람은 누구일까? 할아버지라기엔 키가 크고, 너무 정정한 느낌인데’, 외국인이었다. 다리가 어찌나 긴지 미처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마주쳤다. 유명한 산도 아니고, 백두대간에서 그것도 평일 낮에 외국인을 만날 줄이야! 낡은 샌들을 신은 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르긴 몰라도 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임은 틀림없으리라. 생김새가 유럽 쪽인 것 같다. 

약초꾼 차림새 비슷한 낡은 셔츠, 기능성이라곤 없어 보이는 바지, 대간꾼이라기엔 그리 커 보이지 않는 배낭차림이다. 그는 자유로워보였다. 모든 것을 갖추고 산에 다니는 우리나라의 등산 문화와는 상반된 차림새였다. 특히 대간길 위에서 그것도 가을에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는 샌들이라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아니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차림이라 배운 복장이었기에 더욱 신기했다. 산에서는 반바지도 안 된다고 하는 마당에 뱀이 많은 가을철에 발가락을 내어놓고 다닌다? 새로운 시각이었다.

백학산 정상에서 BAC 인증사진을 찍었다. BAC 등산복으로도 인증 가능하다.
백학산 정상에서 BAC 인증사진을 찍었다. BAC 등산복으로도 인증 가능하다.

이름은 ‘닐’이라고 했다. 풀네임은 닐 맥켄지Neil McKenzie. 백학산을 3㎞ 남겨두고 만났다. 그의 표정에서도 퍽 반가운 기색이 느껴진다. “안~녕 하세요” 서투른 한국어로 반가움을 표현한다. 아마 그도 사람을 만난지 오래였을 테다. 어눌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닐에게 양갱 하나를 건넸다. “고~마 워요” 능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무슨 맛이냐고 묻는 그가 재밌었다. 한국을 좀 더 따뜻한 나라로 추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무엇이든 나눠주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내게 남은 행동식도 세 개 뿐이었다. 한참 힘들 때 지원을 와준 이들이 떠오르며 닐에게도 그런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행동식을 좀 더 챙겨 다닐 걸’이라며 곧장 후회가 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초코바와 고민하다 아마도 초코바는 유럽에도 많을 것 같은데, 양갱은 처음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흔하지 않을 것 같은 양갱을 건넸다. 다행히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서울에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 반가워 이야기를 길게 이어갔다. 닐 역시 걸음을 재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 같은 대간꾼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2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온 그는 오늘로 12일째 일시종주 중이었다. 지리산에서 북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진부령에서 내려온 나와는 정반대로 걷고 있는 거다. 맙소사, 대간길 위에서 처음 만나는 일시종주자가 외국인이라니! 걸으며 한두 명 정도는 만나겠지 짐작하긴 했지만 그게 외국인 일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진부령까지 35일을 계획하고 걷고 있다는 닐. ‘현재 진행한 속도로 본다면…’ 이미 그 길을 걸어온 내가 볼 땐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조심스레 남은 길을 23일 만에 가는 것은 어려울 거라 이야기 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일정을 35일로 잡은 것은 한국에서 머무를 시간이 그 뿐이라 그렇게 잡은 것일 뿐, 시간이 부족하다면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도 행복하다고,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 시간이 그저 좋다고 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어설픈 조언을 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과연 나는 닐만큼 백두대간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5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 먼 타국까지 와서 산을 찾는 열정과 그의 마인드, 산에 대한 태도, 그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SNS 주소를 물으니 페이스북도, 인스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워하는 내 표정을 읽은 닐은 대신 명함을 건넸다.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 제작한 것인지 상단에 ‘백두대간 2019’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다. 이름과 이메일, 사는 곳 정도의 중요한 것들만 몇 가지 적힌 간단한 명함 뒷편에 귀여운 곰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곰을 도와주세요’ 문구가 적힌 그의 명함. 셔츠 안에 입은 티에도 ‘곰을 도와주세요’ 문구가 있다. 삐뚤빼뚤 서투른 솜씨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을 닐을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나온다. 환경, 동물보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인가? 궁금했지만 짧은 영어 실력 탓에 더는 묻지 않기로 한다. 짧은 문장과 간단한 단어,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로 간단한 이야기는 나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아쉽지만 더 궁금한 것은 나중에 묻는 것으로 하고, 걸음을 옮긴다.

대간을 끝내고 명함에 있는 메일 주소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야겠다. 제목은 ‘Dear. Neil’ 정도가 좋겠다. 명함에 보이는 메일로 안부를 전해볼 생각이다. 서투른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건네던 닐처럼, 서툴지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볼 요량이다. 지금쯤 그도 백두대간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테다. 그의 대간은 어떠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백두대간 산중에서 짧은 영어 실력을 아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만난 백두대간 일시종주 도전자, 그리고 대간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 닐 덕에 다시금 영어 공부에 대한 갈증이 밀려온다. 정말이지 영어는 언제든 공부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로 내 길을 간다.

닐의 명함 뒤편의 그림. 왜 곰을 돌봐달라고 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닐의 명함 뒤편의 그림. 왜 곰을 돌봐달라고 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머리를 감지 않아서인지 온갖 벌레들이 내 곁으로 다가온다. 몹시 앵앵거리며 귀찮게 엉겨 붙는다. 한동안 벌레가 보이지 않았는데 비교적 낮은 지대라 그런지 벌레가 많다. 날이 차가워져 몽땅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랜만의 벌레들의 습격에 썩 기분이 좋지 않다. 내겐 영 성가신 존재다.

어제 저녁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격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총 소리에 이어 마치 맹수가 부르짖는 듯 날카롭게 짖어대는 개소리 역시 들려온다. 광견병에 걸려 침을 질질 흘리는 개가 연상되는 울음소리. 생각만으로도 주위가 스산해지는 기분이다. 혹여 광견병에 걸린 개일까, 나를 쫓아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길을 지난다. 이럴 땐 풍부한 상상력이 원망스러워진다. 무지개산에서 내려올 때도 매섭게 짖어대는 개소리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내려왔는데, 이 동네엔 개가 많은가보다. 그 소리 역시 사냥개 소리였을까? 총소리와 함께 개소리까지 들리니 이 순간만큼은 깊은 산속보다 훨씬 무서운 길이 되어버린다.

지난 밤, 서미석 언니와 통화를 하며 오후 5시에 큰재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막 출발했다는 언니와 통화를 하며 시간을 계산해본다. 아마 이 정도 속도라면 비슷하게 맞춰갈 수 있으리라. 먼저 도착해 언니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가 며칠 전에 본 것 마냥 생생하게 느껴진다. 대간을 시작하기 직전에 언니네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기도 했고, 일시종주 전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언니라 더욱 반갑기도 하다. 살이 많이 빠진 나를 보면 놀라겠지? 언니의 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술잔을 기울이던 그때를 생각하면 살이 엄청 빠진 상태다.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라던 언니에게 이만큼 내려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자랑해야지. 언니를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언니와 통화하며 잠시나마 싱글벙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백학산에서 윗왕실을 지나 개터재로 걸음을 옮기며 나를 끈임 없이 채찍질 했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길이 이어지지만 재와 재 사이에 오르내림이 있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저 쉬운 길은 없었다. 힘에 부칠 때마다 ‘조금만 더 가서 쉬자. 큰재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착해서 쉬자’ 생각하며 꾸준히 걷고, 또 걸었다. 한 번 쉬게 되면 계속해서 쉬고 싶을 것 같아 꾹 참고 쉼 없이 달렸다. 자전거로 서울-부산-서울 1,000㎞ 라이딩을 할 때도, 진부령에서 30여 일 동안 지금껏 달려오면서도 느꼈지만 장거리에서는 속도보다 꾸준함이 생명인 것 같다. 뚝심으로 큰재까지 밀어붙였다. 아마 쉬고 싶을 때마다 쉬었다면 한없이 늘어져버렸으리라.

퉁퉁 부은 나의 발. 통증을 견딜 수 없어 큰재에서 등산화를 벗었다.
퉁퉁 부은 나의 발. 통증을 견딜 수 없어 큰재에서 등산화를 벗었다.

개터재를 지나고부터는 거의 5분에 한 번씩은 지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이쯤하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얼마나 남았을까 자꾸만 지도로 가는 시선을 말릴 수 없었다. 1시간에 한 번 보던 시계도 30분, 10분, 5분으로 점점 줄어들고, 어느 때보다 시침에 눈길을 많이 주고 있다. 자연히 눈길이 휴대폰으로 옮겨지는 힘겨운 걸음.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고도를 올리길 여럿 반복하더니 저 멀리 백두대간 생태교육원 건물이 보인다. 눈물이 울컥 차오른다. “휴” 교육원과 도로를 보고서야 한숨 돌렸다. 예전에 왔던 기억에 따르면 교육원 입구에 조그맣게 큰재라고 적혀진 입간판이 있을 테다. 

다왔다는 기쁨에 일순간 힘이 빠져버렸다. 온종일 긴장하며 걷던 몸에 퓨즈가 나가 버린듯 힘이 없다. 긴장도 풀리고, 어깨와 다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발에 다시 물집이 잡힌 것인지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당장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싶다. 이 상태로 입구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힘겨워 눈앞에 보이는 정자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열기가 가득 찬 등산화를 벗어던지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땀 냄새에 절은 배낭도 던져버리고 드러누워 바람을 느낀다. 무게를 더하던 것들을 벗어버리니 몸이 한결 자유롭다. 머리를 땅에 대고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피곤이 몰려온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생각이 더뎌진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5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그러곤 별안간 얼마간 잠들어버렸다.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스스로 감내한 길이지만 많이도 고단했나보다. 사실 중간에 쉬고자 했을 때 쉬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앉아서 쉬면 금방이라도 잠들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1시간이 흐른 뒤였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며 한기가 든다. 아차, 아무리 피곤했어도 자켓을 입고 잤어야 했는데. 생각할 새도 없이 잠들어버린 탓이다. 감기가 걸릴 것 같아 얼른 배낭에서 자켓을 챙겨 입는다. 몸은 왜 이리 가려운지. 그사이 모기의 밥이 된 모양이다. 여기저기 가렵지 않은 곳이 없다. 긁어도 긁어도 온 몸이 가려운 게 내가 잠든 사이 얼마나 물어댄 건지 가늠되지 않는다. 땀에 절은 가려운 몸이 모기의 습격으로 벅벅 긁어 난리통이다. 산모기가 독하다더니 그 진가를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움직이는 동안에도 틈만 나면 물어대려는 통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 통 속에서 대체 얼마나 피곤했던 건지 1시간을 잘 잔 내가 신기해진다. 이놈들 그렇게 피를 수혈해가고도 어찌나 집요한지.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괴롭힐 것 같아 쫓기듯 배낭을 챙겨 큰재로 자리를 옮겼다. 

푸짐한 음식을 싸들고 경기도 동탄에서 큰재까지 지원을 와준 고마운 언니.
푸짐한 음식을 싸들고 경기도 동탄에서 큰재까지 지원을 와준 고마운 언니.

앉아서 얼마나 기다린 걸까. 반가운 언니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온다. 주차장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보곤 “어머, 예진씨~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하며 급히 차에서 돗자리부터 꺼내는 언니가 반갑기만 하다. 산모기에게 뜯겼다며 언니에게 무용담을 재잘거리니 “어휴, 누가 그러게 이 고생 하라고 시켰냐고요!”하는 말로 구박하면서도 행여 기다리며 배고팠을까 도착하자마자 먹을 것부터 챙기는 언니의 모습이 정겹다. 차에서 음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마치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의 마법주머니 같다. 언니가 몇 번 움직이니 금세 뚝딱뚝딱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피자 두 판, 던킨 도너츠, 쪽갈비 4인분, 된장찌개, 김치, 콜라 정말 많이도 챙겨오셨다. 대충 봐도 6~7인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양이다. 입이 떡 벌어질 것 같은 한 상. 역시 우리 언니 손 큰 건 알아줘야 한다. 피자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한 조각 떼어주고, 쪽갈비도 조금 전에 포장한 거라 맛있을 거라며 손에 쥐어주는 언니. 언니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언니는 나부터 챙기기 바쁘다. 

다 먹을 수 있을까? 그 많던 음식을 모조리 해치우고 과일까지 잘 먹었다. 몸이 힘들어 배고픔을 몰랐는데 체력을 많이 쏟긴 했나보다. 후식으로 사과, 자몽, 파인애플을 챙겨오셨는데, 자몽이 흔한 과일은 아니기에 자몽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냐고 자몽 정말 좋아한다 이야기 했더니 월간山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오대산 편에서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고 본 것 같아 피자도 사왔다고 하셨다. 내가 기사에 쓰고도 깜빡하고 있었는데, 세심하게 챙겨주는 언니가 정말 고마웠다. 오대산 일시종주 기사가 가장 인기 있었나보다. 유독 그날 기사 잘 봤다며 피자와 자몽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동탄에서 멀리 상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언니. 언제 한 번 오겠다했지만 정말 이리도 극적인 순간에 와주어 감사했다. 정말 올 거라 생각지 못했다.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마음이다. 비록 사방이 뻥 뚫린 먼지가 풀풀 날리는 주차장에 돗자리 위에서의 식사였지만 세상 그 어떤 만찬보다 맛있었던 기억이다. 식사를 끝내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주차장 한편의 공터에 자리를 잡고 텐트 안에서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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