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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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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News] 알렉스 호놀드 버금가는 미국 유명 등반가 브래드 고브라이트, 하강 사고로 사망

글 오영훈 기획위원
  • 입력 2019.12.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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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처음 만난 사람과 고난도 등반… 백업 매듭 없는 외줄 동시 하강이 부른 참사

브래드 고브라이트. 사진 새뮤얼 크로슬리
브래드 고브라이트. 사진 새뮤얼 크로슬리

미국의 유명 등반가 브래드 고브라이트(31)가 2019년 11월 27일 멕시코에서 암벽등반 중 추락해 사망했다. 고브라이트는 알렉스 호놀드(미국)와 더불어 ‘프리솔로(로프 없이 하는 단독등반)’로 유명한 인물이다. 2015년 요세미티 엘캐피탄의 하트 루트(5.13b)를 최초 자유등반으로 올랐고, 2017년 엘캐피탄의 대표적인 루트 노즈를 2시간 19분 만에 올라 속도등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기록은 2년 뒤 알렉스 호놀드 일행이 1시간 58분 만에 오르면서 갱신됐는데, 두 등반 모두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호평을 받았다. 특히 미디어에서 성향이 비슷한 둘 사이의 우정과 경쟁을 라이벌 구도로 그려내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외에 고브라이트는 엘캐피탄의 뮤어월(5.13c)을 자유등반으로 올랐고, 단피치 스포츠클라이밍은 5.14-급까지 오른 바 있다.

사고가 발생한 멕시코 북동부의 엘 포트레로 치코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벽등반지로 700여 개의 루트가 개척돼 있다. 접근이 수월하고 거대한 바위가 많아 다양한 멀티피치 등반을 즐길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엘 토로(725m)의 대표적인 고난도 루트 엘 센데로 루미노소(5.12d, 760m, 15피치)다. 암벽 중앙을 직등하는 루트로, 대부분 피치의 난이도가 5.12를 상회할 정도로 꾸준한 난이도를 가진 게 특징이다. 2014년 1월에는 알렉스 호놀드가 로프 없이 단독등반에 성공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알렉스 호놀드는 ‘산악계는 정말 진실한 사람을 잃었다’며 슬픔을 담은 게시물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알렉스 호놀드는 ‘산악계는 정말 진실한 사람을 잃었다’며 슬픔을 담은 게시물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고 며칠 전 브래드 고브라이트는 캘리포니아에서 등반 초보자 15명과 함께 이곳으로 가이드 겸 등반여행을 떠났다. 현지에서 등반할 시간 여유가 생기자 등반 전날 인스타그램으로 함께할 등반파트너를 찾았다. 마침 등반여행을 와 있던 미국인 에이든 제이컵슨(26)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고브라이트에 연락해 이튿날 함께 등반하게 됐다.

두 사람은 처음 함께 등반하는 사이이지만 등반은 순조롭게 진행돼 오후 무사히 정상에 섰다. 고브라이트가 줄곧 선등하며 한 번도 추락하지 않고 올랐고, 5년의 등반경력을 가진 제이컵슨은 3번 정도 추락했지만 사고 없이 정상에 올랐다.

2017년 요세미티 엘캐피탄에서 속도등반 기록을 수립한 고브라이트의 등반 장면. 사진 고브라이트 인스타그램.
2017년 요세미티 엘캐피탄에서 속도등반 기록을 수립한 고브라이트의 등반 장면. 사진 고브라이트 인스타그램.

사고는 하강 중 발생했다. 둘은 80m 로프 한 동으로 동시하강을 했다. 로프를 걸고 로프 양쪽에 각각 외줄로 동시에 하강하는 것으로,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두 하강자가 잘 소통하면서 내려가야 한다. 한 명이 하강 로프에서 무게를 빼면 무게중심이 기울어 다른 하강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강로프 끝을 옭매듭으로 묶어 놓는 것은 안전의 철칙이다. 대다수의 등반 사고가 하강 중에 로프 끝을 묶어두지 않아 하강기가 빠지면서 추락하는 사고다. 그러나 로프가 쉽게 엉킬 수 있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옭매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브라이트와 처음 만나 함께 등반하다 사고 후 구조된 에이든 제이컵슨(좌). 사진 누에보 레온
고브라이트와 처음 만나 함께 등반하다 사고 후 구조된 에이든 제이컵슨(좌). 사진 누에보 레온

사고는 9피치를 하강하던 중 발생했다. 9피치에는 다른 등반가 두 명이 등반 중이었다. 그들에게 5피치의 넓은 테라스까지 거리를 물어보았는데, 80m 로프 한 동으로는 부족해 6피치까지만 하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6피치 확보지점까지의 거리를 너무 가깝게 여겨 로프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어 하강로프를 설치하지 않았다. 하강을 시작할 때 늘어뜨린 로프는 제이콥슨 쪽은 테라스에 닿아 있었고 고브라이트 쪽은 작은 나무에 걸려 있었다. 

엘 토로에서 하강하다 사고를
당한 고브라이트(우)와 제이컵슨(좌). 로프 길이를 착각했고 로프 끝 매듭을 하지 않은 결정적 실수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미지 더 선.
엘 토로에서 하강하다 사고를 당한 고브라이트(우)와 제이컵슨(좌). 로프 길이를 착각했고 로프 끝 매듭을 하지 않은 결정적 실수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미지 더 선.

이 사실을 모른 채 이들은 함께 하강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테라스를 10여 m 남겨두고 갑자기 로프가 튕겨나갔고 둘은 함께 추락했다. 제이컵슨은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가까스로 테라스로 떨어졌다. 고브라이트는 바닥까지 약 200m를 추락했다. 고브라이트의 로프가 짧았기 때문이다. 또 로프 끝에 매듭을 해두지 않아서 고브라이트의 하강기 그리그리에서 로프가 빠져나갔다.

제이컵슨은 발목에 부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확보지점까지 이동해 자기확보를 했다. 마찬가지로 사고를 당한 제이컵슨의 ATC 하강기에는 프루지크 백업 매듭으로 로프가 연결돼 있었다. 9피치에 있던 등반가 2명이 사고를 보고 하강해 제이컵슨의 하강을 돕고 구조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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