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 영화 “ 감동적 vs 터무니없다” <22>ㅣ<메루>] ‘메루’를 오르는 극한 도전 충실히 기록한 수작

  •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입력 2020.01.10 10:16 | 수정 2020.01.14 11:15

    감독이 실제 등반하며 촬영해 만든 리얼 등반 다큐멘터리

    메루, 한계를 향한 열정 (Meru, 2015)

    감독 지미 친,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출연 지미 친, 콘래드 앵커
    각자 인생의 굴곡진 시련을 겪은 세 친구들인 지미 친, 콘래드 앵커, 르낭. 이들은 세계 최고의 전문 산악인이다. 그들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봉우리인 메루의 샥스핀을 오르며 자신의 지나간 일들을 회상한다.
    <프리 솔로Free Solo>(2018)를 감독한 중국계 미국인 지미 친이 등반과 촬영을 동시에 맡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가 편집한 영화다. 2008년 첫 도전 실패 후 2011년에 결국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았다.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산악영화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다큐멘터리 <메루Meru, 한계를 향한 열정>(감독 지미 친-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2015)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박정헌(이하 박) 우리가 생생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영화 <프리 솔로Free Solo>(2018)를 감독한 중국계 미국인 지미 친Jimmy Chin이 등반과 촬영을 동시에 맡은 영화입니다.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Elizabeth Chai Vasarhelyi가 편집을 맡아, 이 영화의 공동 감독으로 이름이 올라 있더군요.
    이 부부는 <메루>의 성공 이후 <프리 솔로>에서도 똑같은 역할 분담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첫 작품인 <메루>는 제3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미국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역작입니다.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제28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부문과 제68회 미국 감독 조합상의 감독상(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사실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 차례 절감하게 되지만, 이러한 영화 제작 자체가 일종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기암절벽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인데, 카메라까지 메고 그걸 일일이 기록하며 올랐으니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하지요.
    우선 메루는 어떤 곳인가요?
    메루는 인도 뉴델리에서 약 600km 북쪽에 위치한 가르왈 히말라야 강고트리 산군에 위치한 봉우리입니다. 여러 개의 연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중에 일명 ‘샥스핀Shark’s Fin’이라 불리는 곳이 중앙봉이지요.
    검색해 보니 샥스핀의 계곡 물이 갠지스강으로 흘러 들어가더군요. 현지인들에게는 ‘우주의 중심’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고 하더군요. 
    샥스핀이라 부르는 곳은 해발 457m부터 6,000m에 이르는 아름답고 가파른 화강암 산입니다. 최고의 등산가들이 실력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최고 기량의 등반가들이 20여 차례나 도전했다가 실패한 산이라, 한마디로 공포로 가득한 곳이지요.
    영화 <메루>가 담고 있듯 2008년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의 콘래드 앵커, 지미 친, 르낭 오즈터크가 1차 시도에 실패한 뒤 3년 만에 등정에 성공합니다. 
    이들은 인도 강고트리(해발 3,017m)에서 캐러밴으로 이동해 4,419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메루에 도전합니다.
    대체 얼마나 험난하기에 2011년에서야 첫 정복이 가능했나요?
    메루는 단순히 어려운 게 아니라 형상 자체가 복잡해서 높은 곳에서도 잘 견뎌야 하고 빙벽과 암벽, 모두 잘 타야 합니다. 다양한 빙벽과 암벽이 섞여 있어서 해발 6,000m에 오를 때까지 커다란 벽을 계속 넘어야 하지요. 다양한 기량이 필요합니다. 그 점에서 메루는 산악인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곳이지요.
    박 대장님도 메루에 도전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메루 앞쪽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 ‘시블링’인데요. 2000년 초에 메루를 등반하기 위해 시블링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힌두교도 3대 성지의 하나인데 시블링은 힌두어로 ‘시바의 성기’라는 뜻입니다(웃음).
    성지의 이름이 ‘성기’라니 참으로 독특하군요(웃음).
    시블링 답사까지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메루 등정 도전은 이루지 못했지요. 메루야말로 히말라야 알파인 등반가들의 목표 대상이지요.
    영화는 메루 암벽에 매달린 텐트 안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남자 3명이 그 안에 있는데, 모두 참담한 표정들이지요.
    암벽에 매달려 잠을 자야 할 때 쓰는 텐트로 ‘포타레지portaledge’라고 부릅니다.
    영화는 3년 전으로 돌아가 미국 몬태나주에 있는 콘래드 앵커Conrad Anker의 단란한 가정 모습을 보여 줍니다. 유명 산악인 콘래드는 결혼할 때 “절대 높은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메루 정복을 위한 계획 세우고 있던 중이지요. 그의 아내 제니 앵커의 인터뷰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고 고백하지요.
    콘래드 앵커는 미국 산악계에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지요. 아웃도어 용품 전문회사인 미국 노스페이스팀의 리더로 있으면서 인재들을 발굴하고 있지요. <프리 솔로>의 주인공인 알렉스 호놀드도 그가 적극 지원했던 산악인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산악서의 고전인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 저자인 존 크라카우어Jon Krakauer가 등장해 메루 정복 과정의 고충과 그 의미를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업 등반대의 에베레스트 조난 스토리로 일대 파문을 일으켰던 이지요. 미국의 저명 저널의 기자로서 등반대에 실제 참여했다가 목격한 일들을 기록했지요. 아마 돈도 많이 벌었을 겁니다(웃음).
    이들은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산을 올려다보니 어떻게 올라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복잡한 산은 처음이다”라고 말합니다.
    산에 도착한 직후의 인상이 중요한데, 이처럼 어찌 올라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 등반 과정이 힘들기 짝이 없게 되기 십상입니다.
    지미 친과 르낭 오즈터크Renan Ozturk는 초면입니다. 지미는 화면을 쳐다보며 말하는 인터뷰에서 “내가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등반하는 게 저의 철저한 원칙입니다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제가 정말로 믿고 의지하는 콘래드가 추천한 친구라 르낭과 함께하기로 했지요”라고 토로합니다.
    지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로프를 한 번도 같이 묶어보지 않은 사람과 험산에서 한 로프에 묶는 일은 산악인들로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르낭은 프리솔로잉만 한 인물이라 지미 입장에선 알파인 등반이 처음인 르낭이 몹시 불안했을 겁니다.
    르낭도 “두 사람은 내가 젊고 쌩쌩하다고 생각해서 산도 잘 탈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지미의 말은 그만큼 콘래드에 대한 지미의 신뢰도가 대단했다는 뜻이 됩니다.
    워낙 유명한 산악인이니까요. 제프 로우라고 미국의 신화적 빙벽 등반가가 있었는데, 콘래드와 절친이었지요. 그 제프 로우가 등반 사고로 사망하자 콘래드는 제프 로우의 아내와 재혼을 했지요.
    콘래드는 르낭이 프리솔로잉하는 영화를 보고서 “장비도 없이 혼자서 벽을 타는 게 정말 대단하다”며 동반 산행을 결정했습니다. “산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 거칠게 살아왔는데, 르낭은 차도 없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지요. 요즘은 자연인처럼 살려고 해도 차는 있어야 하니까요.
    장면은 1일차입니다. 해발 4,572m에서 오후 5시 반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굳이 추울 때 오르네요.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일사량이 제일 많고, 그에 따라 바위 낙석이 심합니다. 그 시간대를 피해서 등반하는 거지요.
    콘래드는 2003년에 메루에 오르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와는 전혀 다른 것이 셰르파가 없기에 짐을 직접 날라야 합니다.
    지미와 콘래드는 에베레스트에 여러 번 함께 올랐고, 지미는 산 정상에서 스키까지 탄 베테랑이지만 메루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요. 짐을 직접 지고 올라야 하니까요. 특히 메루는 올라야 할 길이가 길어서 필요한 장비가 많습니다. 짐을 암벽에 매달아 당기고 홀딩하는 작업을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에 60m밖에 전진하지 못한다고 나오더군요. 그 속도로 먼 길 가는데 식량과 물, 거기에 텐트와 연료까지 챙겨야 해 무게가 90kg이 넘고 등반용 랙과 22kg 아이언까지 필요한 상황입니다.
    바위 확보를 위한 장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90kg 넘는 짐을 메고 1,120m를 가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걸 콘래드가 최초로 시도했던 겁니다.
    헤드램프를 켠 채로 야간등반 중인데 “밤에 오르니 나사가 잘 박혀 고정돼 좋다”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밤에는 바위 표면이 얼어붙으니까요. 밤에 올라갈 때 박았던 아이스 피톤이 낮에 하산할 때 보면 다 빠져 있는 경우도 잦지요.
    새벽 2시인데, 그냥 눈 위에서 아무 것도 없이 잠을 청하더군요.
    등을 댈 자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는 거지요. 능선에 올라서면 그런 공간들이 나옵니다.
    산을 오르는 과정이 보여 주면서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콘래드는 산악인 사이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통한다. 콘래드의 업적을 보며 자란 세대로서 그와 같이 7년째 등반하고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고 지미가 말합니다.
    사실 콘래드는 세계의 높은 산을 정복한 기록보다는 맬러리의 시신을 찾아낸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말로 유명한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1886~1924)의 시신을 찾는 프로젝트를 1999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진행했었거든요.
    “등반은 수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기묘한 기술입니다. 그걸 배우려면 멘토가 필요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콘래드는 머그스 스텀프Mugs Stump라는 등반가 밑에서 배웠습니다. 머그스는 1986년과 1988년 두 번 메루에 도전했는데 모두 실패했죠. 1992년 머그스는 불법으로 손님을 안내하던 중 산악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갈라진 틈, 즉 크랙이 있어야 하는데 샥스핀의 어느 지점에서는 크랙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암벽 전체가 아무것도 없이 매끈매끈한 것이지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지미와 콘래드는 빈틈을 찾지요. 이것이야말로 전문 경험자들의 영역입니다.
    무척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하기에 마치 조각하듯이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돌조각 하듯이 힘을 조절해 가며 두드리고 당기면서 섬세하게 암벽을 깎아 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여러 번 내려치다 보면 돌이 쪼개질 수도 있는데 돌 조각품이야 망가지면 그만이지만 절벽에서 파편이 떨어질 경우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등반이야말로 클라이밍의 모든 것이 테스트 받는 총 시험장입니다.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크랙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바위의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위가 벽에 단단히 붙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피톤을 박을 때 벽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박아야 하지요. 너무 많이 두드리면 바위가 부서지고, 너무 약하게 두드리면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산악 사진 전문가인 지미의 부모님은 공산혁명 때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분들입니다. 겨울에는 나무 땔감으로 난방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지요. 부친은 산악가라는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아들의 선택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지미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노숙자 같은 등반가를 계속할 거라면 한 가지 약속만 해다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산악가들도 대부분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어느덧 17일째 6,096m 지점입니다. 눈앞이 정상인데 손발은 거의 감각 잃은 상태이지요. 식량도 보호 장비도 없고 체력이 바닥 난 상태에서 콘래드는 정상 100m를 남겨 두고 포기를 결정합니다. “다시는 안 온다”면서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둔 장면입니다. ‘최후의 5분’이라고, 원래 정상 직전 5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서 돌아가는 게 우선이니까요.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3년 뒤인 2011년 드디어 메루 정상에 오릅니다. 그 고난의 과정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메루>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저에게도 메루는 여전히 오르고 싶은 봉우리 중 하나입니다. 등반가들의 로망 같은 봉우리이지요. 콘래드가 열 번이나 시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알파인 등반가들의 꿈인 메루에 오르는 고난과 좌절의 과정을 충실히 기록한 수작입니다.
    박정헌 대장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1994),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1995), 낭가파르바트 문 라이트 등정(1997),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2000), 시샤팡마 남서벽 신 루트 등정(2002) 등의 기록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등반가.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원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생환했으나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었다. 
    이후 패러글라이딩에 입문,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에서 캉첸중가까지 3,200km를 하늘을 날아 종단했고, 2015년에는 자전거와 스키, 카약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5,800km를 횡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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