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실제 등반하며 촬영해 만든 리얼 등반 다큐멘터리
메루, 한계를 향한 열정 (Meru, 2015)
감독 지미 친,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출연 지미 친, 콘래드 앵커
각자 인생의 굴곡진 시련을 겪은 세 친구들인 지미 친, 콘래드 앵커, 르낭. 이들은 세계 최고의 전문 산악인이다. 그들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봉우리인 메루의 샥스핀을 오르며 자신의 지나간 일들을 회상한다.
<프리 솔로Free Solo>(2018)를 감독한 중국계 미국인 지미 친이 등반과 촬영을 동시에 맡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가 편집한 영화다. 2008년 첫 도전 실패 후 2011년에 결국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았다.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산악영화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다큐멘터리 <메루Meru, 한계를 향한 열정>(감독 지미 친-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2015)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박정헌(이하 박) 우리가 생생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영화 <프리 솔로Free Solo>(2018)를 감독한 중국계 미국인 지미 친Jimmy Chin이 등반과 촬영을 동시에 맡은 영화입니다.
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Elizabeth Chai Vasarhelyi가 편집을 맡아, 이 영화의 공동 감독으로 이름이 올라 있더군요.
박 이 부부는 <메루>의 성공 이후 <프리 솔로>에서도 똑같은 역할 분담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신 이들의 첫 작품인 <메루>는 제3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미국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역작입니다.
박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제28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부문과 제68회 미국 감독 조합상의 감독상(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사실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박 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 차례 절감하게 되지만, 이러한 영화 제작 자체가 일종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기암절벽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인데, 카메라까지 메고 그걸 일일이 기록하며 올랐으니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하지요.
신 우선 메루는 어떤 곳인가요?
박 메루는 인도 뉴델리에서 약 600km 북쪽에 위치한 가르왈 히말라야 강고트리 산군에 위치한 봉우리입니다. 여러 개의 연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중에 일명 ‘샥스핀Shark’s Fin’이라 불리는 곳이 중앙봉이지요.
신 검색해 보니 샥스핀의 계곡 물이 갠지스강으로 흘러 들어가더군요. 현지인들에게는 ‘우주의 중심’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고 하더군요.
박 샥스핀이라 부르는 곳은 해발 457m부터 6,000m에 이르는 아름답고 가파른 화강암 산입니다. 최고의 등산가들이 실력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최고 기량의 등반가들이 20여 차례나 도전했다가 실패한 산이라, 한마디로 공포로 가득한 곳이지요.
신 영화 <메루>가 담고 있듯 2008년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의 콘래드 앵커, 지미 친, 르낭 오즈터크가 1차 시도에 실패한 뒤 3년 만에 등정에 성공합니다.
박 이들은 인도 강고트리(해발 3,017m)에서 캐러밴으로 이동해 4,419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메루에 도전합니다.
신 대체 얼마나 험난하기에 2011년에서야 첫 정복이 가능했나요?
박 메루는 단순히 어려운 게 아니라 형상 자체가 복잡해서 높은 곳에서도 잘 견뎌야 하고 빙벽과 암벽, 모두 잘 타야 합니다. 다양한 빙벽과 암벽이 섞여 있어서 해발 6,000m에 오를 때까지 커다란 벽을 계속 넘어야 하지요. 다양한 기량이 필요합니다. 그 점에서 메루는 산악인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곳이지요.
신 박 대장님도 메루에 도전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박 메루 앞쪽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 ‘시블링’인데요. 2000년 초에 메루를 등반하기 위해 시블링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힌두교도 3대 성지의 하나인데 시블링은 힌두어로 ‘시바의 성기’라는 뜻입니다(웃음).
신 성지의 이름이 ‘성기’라니 참으로 독특하군요(웃음).
박 시블링 답사까지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메루 등정 도전은 이루지 못했지요. 메루야말로 히말라야 알파인 등반가들의 목표 대상이지요.
신 영화는 메루 암벽에 매달린 텐트 안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남자 3명이 그 안에 있는데, 모두 참담한 표정들이지요.
박 암벽에 매달려 잠을 자야 할 때 쓰는 텐트로 ‘포타레지portaledge’라고 부릅니다.
신 영화는 3년 전으로 돌아가 미국 몬태나주에 있는 콘래드 앵커Conrad Anker의 단란한 가정 모습을 보여 줍니다. 유명 산악인 콘래드는 결혼할 때 “절대 높은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메루 정복을 위한 계획 세우고 있던 중이지요. 그의 아내 제니 앵커의 인터뷰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고 고백하지요.
박 콘래드 앵커는 미국 산악계에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지요. 아웃도어 용품 전문회사인 미국 노스페이스팀의 리더로 있으면서 인재들을 발굴하고 있지요. <프리 솔로>의 주인공인 알렉스 호놀드도 그가 적극 지원했던 산악인입니다.
신 영화 곳곳에서 산악서의 고전인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 저자인 존 크라카우어Jon Krakauer가 등장해 메루 정복 과정의 고충과 그 의미를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박 미국 상업 등반대의 에베레스트 조난 스토리로 일대 파문을 일으켰던 이지요. 미국의 저명 저널의 기자로서 등반대에 실제 참여했다가 목격한 일들을 기록했지요. 아마 돈도 많이 벌었을 겁니다(웃음).
신 이들은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산을 올려다보니 어떻게 올라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복잡한 산은 처음이다”라고 말합니다.
박 산에 도착한 직후의 인상이 중요한데, 이처럼 어찌 올라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 등반 과정이 힘들기 짝이 없게 되기 십상입니다.
신 지미 친과 르낭 오즈터크Renan Ozturk는 초면입니다. 지미는 화면을 쳐다보며 말하는 인터뷰에서 “내가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등반하는 게 저의 철저한 원칙입니다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제가 정말로 믿고 의지하는 콘래드가 추천한 친구라 르낭과 함께하기로 했지요”라고 토로합니다.
박 지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로프를 한 번도 같이 묶어보지 않은 사람과 험산에서 한 로프에 묶는 일은 산악인들로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르낭은 프리솔로잉만 한 인물이라 지미 입장에선 알파인 등반이 처음인 르낭이 몹시 불안했을 겁니다.
신 르낭도 “두 사람은 내가 젊고 쌩쌩하다고 생각해서 산도 잘 탈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지미의 말은 그만큼 콘래드에 대한 지미의 신뢰도가 대단했다는 뜻이 됩니다.
박 워낙 유명한 산악인이니까요. 제프 로우라고 미국의 신화적 빙벽 등반가가 있었는데, 콘래드와 절친이었지요. 그 제프 로우가 등반 사고로 사망하자 콘래드는 제프 로우의 아내와 재혼을 했지요.
신 콘래드는 르낭이 프리솔로잉하는 영화를 보고서 “장비도 없이 혼자서 벽을 타는 게 정말 대단하다”며 동반 산행을 결정했습니다. “산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 거칠게 살아왔는데, 르낭은 차도 없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박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지요. 요즘은 자연인처럼 살려고 해도 차는 있어야 하니까요.
신 장면은 1일차입니다. 해발 4,572m에서 오후 5시 반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굳이 추울 때 오르네요.
박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일사량이 제일 많고, 그에 따라 바위 낙석이 심합니다. 그 시간대를 피해서 등반하는 거지요.
신 콘래드는 2003년에 메루에 오르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와는 전혀 다른 것이 셰르파가 없기에 짐을 직접 날라야 합니다.
박 지미와 콘래드는 에베레스트에 여러 번 함께 올랐고, 지미는 산 정상에서 스키까지 탄 베테랑이지만 메루는 상황이 전혀 다르지요. 짐을 직접 지고 올라야 하니까요. 특히 메루는 올라야 할 길이가 길어서 필요한 장비가 많습니다. 짐을 암벽에 매달아 당기고 홀딩하는 작업을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겁니다.
신 그래서 하루에 60m밖에 전진하지 못한다고 나오더군요. 그 속도로 먼 길 가는데 식량과 물, 거기에 텐트와 연료까지 챙겨야 해 무게가 90kg이 넘고 등반용 랙과 22kg 아이언까지 필요한 상황입니다.
박 바위 확보를 위한 장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90kg 넘는 짐을 메고 1,120m를 가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걸 콘래드가 최초로 시도했던 겁니다.
신 헤드램프를 켠 채로 야간등반 중인데 “밤에 오르니 나사가 잘 박혀 고정돼 좋다”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박 밤에는 바위 표면이 얼어붙으니까요. 밤에 올라갈 때 박았던 아이스 피톤이 낮에 하산할 때 보면 다 빠져 있는 경우도 잦지요.
신 새벽 2시인데, 그냥 눈 위에서 아무 것도 없이 잠을 청하더군요.
박 등을 댈 자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는 거지요. 능선에 올라서면 그런 공간들이 나옵니다.
신 산을 오르는 과정이 보여 주면서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콘래드는 산악인 사이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통한다. 콘래드의 업적을 보며 자란 세대로서 그와 같이 7년째 등반하고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고 지미가 말합니다.
박 사실 콘래드는 세계의 높은 산을 정복한 기록보다는 맬러리의 시신을 찾아낸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말로 유명한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1886~1924)의 시신을 찾는 프로젝트를 1999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진행했었거든요.
신 “등반은 수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기묘한 기술입니다. 그걸 배우려면 멘토가 필요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더군요.
박 콘래드는 머그스 스텀프Mugs Stump라는 등반가 밑에서 배웠습니다. 머그스는 1986년과 1988년 두 번 메루에 도전했는데 모두 실패했죠. 1992년 머그스는 불법으로 손님을 안내하던 중 산악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신 갈라진 틈, 즉 크랙이 있어야 하는데 샥스핀의 어느 지점에서는 크랙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암벽 전체가 아무것도 없이 매끈매끈한 것이지요.
박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도 지미와 콘래드는 빈틈을 찾지요. 이것이야말로 전문 경험자들의 영역입니다.
신 무척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하기에 마치 조각하듯이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돌조각 하듯이 힘을 조절해 가며 두드리고 당기면서 섬세하게 암벽을 깎아 내야 한다는 거지요.
박 그렇게 여러 번 내려치다 보면 돌이 쪼개질 수도 있는데 돌 조각품이야 망가지면 그만이지만 절벽에서 파편이 떨어질 경우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등반이야말로 클라이밍의 모든 것이 테스트 받는 총 시험장입니다.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크랙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바위의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위가 벽에 단단히 붙어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피톤을 박을 때 벽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박아야 하지요. 너무 많이 두드리면 바위가 부서지고, 너무 약하게 두드리면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신 산악 사진 전문가인 지미의 부모님은 공산혁명 때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분들입니다. 겨울에는 나무 땔감으로 난방을 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지요. 부친은 산악가라는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아들의 선택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박 지미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노숙자 같은 등반가를 계속할 거라면 한 가지 약속만 해다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산악가들도 대부분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신 어느덧 17일째 6,096m 지점입니다. 눈앞이 정상인데 손발은 거의 감각 잃은 상태이지요. 식량도 보호 장비도 없고 체력이 바닥 난 상태에서 콘래드는 정상 100m를 남겨 두고 포기를 결정합니다. “다시는 안 온다”면서요.
박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둔 장면입니다. ‘최후의 5분’이라고, 원래 정상 직전 5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서 돌아가는 게 우선이니까요.
신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3년 뒤인 2011년 드디어 메루 정상에 오릅니다. 그 고난의 과정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메루>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박 저에게도 메루는 여전히 오르고 싶은 봉우리 중 하나입니다. 등반가들의 로망 같은 봉우리이지요. 콘래드가 열 번이나 시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알파인 등반가들의 꿈인 메루에 오르는 고난과 좌절의 과정을 충실히 기록한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