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 90] 조선 개국의 상징 ‘천상열차분야지도’

  • 글 한국지도학회 최선웅 부회장
    입력 2020.01.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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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 때 제작한 목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392년 7월 17일 이성계李成桂는 개경의 수창궁壽昌宮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禪位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조선을 개국했다. 이때 태조는 조선의 개국이 천명天命에 의한 것임을 만천하에 밝히기 위해 천문도를 만들려는 뜻이 있었다. 이때 옛날 평양성에 있었던 천문도 인본을 바치는 자가 있어 이를 귀히 여겨 서운관書雲觀으로 하여금 이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돌에 새길 것을 명했다.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한 권근權近을 중심으로 유방택柳方澤·설경수偰慶壽 등 천문학자와 전문가 11명이 1395년(태조 4)에 흑요석黑曜石 판에 새겨 제작한 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이다. 이 각석刻石은 높이 211cm, 너비 122.7cm, 두께는 11.8cm이고, 무게는 약 1톤에 달한다. 각석의 양면에 천문도가 각각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제목이 가운데 있고, 뒷면에는 천문도가 거꾸로 새겨져 제목이 상단에 위치한다. 현재 전해지는 탁본은 모두 뒷면의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247년淳祐 7 남송南宋에서 제작된 소주천문도蘇州天文圖(일명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오래된 천문도 각석으로, 1395년(태조 4)에 제작된 태조본과 1433년(세종 15)에 복각한 세종본이 있고, 이 각석의 표면이 마모되자 1687년(숙종 13)에 새로 복각한 숙종본이 있다. 현재 태조본과 숙종본 각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탁본과 1571년(선조 4)에 제작한 목판본, 그 외 필사본 등 여러 종류가 국내외에 보관되어 있다.
    <선조실록> 4년 10월 19일 기사에 “관상감에서 천문도 120축을 진상하였는데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천문도의 여분이 30건이라 문신 2품 이상이 51명이니 그중 30명을 낙점하소서觀象監天文圖一百二十軸進上 政院啓曰天文圖餘數三十件而文臣二品已上五十一員而其中三十員落點 傳曰知道”라는 기록과, 동년 11월 3일 기사에 “박응남, 노수신, 유희춘 세 사람이 천문도를 하사받았다天文圖受賜者三人朴應男 盧守愼柳希春”는 기록으로 보아 선조 때 목판본 120장이 인본되어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판본의 크기는 가로 101.9cm, 세로 162.7cm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뜻은 천체의 현상인 ‘천상天象’을 목성의 운행을 기준으로 설정한 적도대의 12구역인 차次와 별자리 구역을 12로 나눠 지상의 해당지역과 대응 시키는 분야分野에 따라 펼쳐놓은 천문도를 뜻한다. 천문도의 방향은 위쪽이 북쪽이고, 아래쪽이 남쪽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구성과 내용은 크게 성도星圖와 도설圖說로 나눠지는데,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난해하다.
    중앙의 큰 원이 성도, 즉 천문도로, ‘황도12궁진12국분야黃道十二宮辰十二國分野’라고 한다. 바깥 둘레에는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12간지十二干支와 황도 전체를 12등분해 월별로 태양이 위치한 자리의 별자리인 12궁十二宮, 12제후의 별자리인 12국十二國이 적혀 있다. 원 중심의 작은 원은 북극을 둘러싼 주극원週極圓이고, 주극원과 동심원을 이르는 쌍선 원은 황도黃道이고, 북서쪽으로 약간 빗긴 황도와 같은 크기의 쌍선 원은 적도赤道를 가리킨다. 서쪽卯과 남쪽午을 기점으로 포물선을 이루는 푸르스름한 띠는 은하수銀河水를 나타낸다.
    주극원 내의 별자리는 한양의 북위 38°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고, 그 바깥은 1세기경 고구려의 북위 40°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다. 천문도 내에 그려진 별자리와 별은 모두 육안으로 보이는 것으로, 별자리 283개에 1,467개의 별이 밝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져 있다. 주극원에서 바깥 둘레까지 방사상으로 그어진 28개의 선은 동양의 전통 별자리를 나타내는 28수宿를 구획한 경선으로, 구획 내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수宿’라고 부른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도설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상단 가운데 작은 원은 ‘절후별혼효중성節候別昏曉中星’으로 24절기 별로 초저녁昏과 새벽曉에 자오선을 지나는 남중하는 별자리를 기록한 것이다. 상단 우측과 좌측의 ‘12국분야 및 성수분도十二國分野及星宿分圖’는 하늘의 12차에 대응하는 지상의 12분야에 대한 기록과 각 별자리의 도수를 기록한 것이다. ‘일수日宿’는 태양의 궤도 운행에 관한 것으로 적도에 대한 황도의 경사가 24도라 했고, ‘월수宿’는 달의 궤도 운행에 관한 설명이다. 이밖에 천문도 위쪽 좌우에는 북·서·남·동방 각 7수七宿의 성수星宿와 각 방方의 폭을 적었다.
    도설 하단의 ‘논천論天’은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하늘과 땅의 관계와 하늘의 생김새를 풀이한 것이고, ‘28수거극분도二十八宿去極分度’는 28수의 거극도와 각 수에 따른 별의 수와 폭을 적었다. 여기에서 거극도란 천구 북극에서 천체까지의 각 거리를 뜻한다. 가장 아래쪽에 기록된 권근의 발문 첫머리에 “이 천문도의 석본은 옛날 평양성에 있었으나 병란으로 강에 빠져 분실된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 인본조차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라고 천문도에 대한 유래가 적혀 있는데, 여기에서 병란은 고구려 말에 일어난 난으로 해석함에 따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은 고구려 때 제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밖에 천문도 아래 좌우에는 28수의 방위를 표시하기 위해 4방에 7수씩 나누어 설명하고, 경성상수經星常宿와 분도형명分度形名이 적혀 있다. 맨 끝 서운관에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관직과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이름은 권중하權仲和·최융崔融·노을준盧乙俊·윤인룡尹仁龍·김퇴金堆·전윤권田潤權·김자수金自緩·김후金候 등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제일 끝에는 ‘洪武二十八年十二月’이라고 간기가 적혀 있는데, 이는 태조 4년(1395) 음력 12월이다.
    1913년 평양 숭실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던 선교사 칼 루퍼스W. Carl Rufus가 처음 밝힌 대로 조선 태조 때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고구려 천문도를 모본으로 제작된 귀중한 유물이며, 또한 천문도에 수록된 내용이 거의 완전한 정보를 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우수성이 인정되어 태조 때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985년 8월 9일 국보 제228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날 숙종 때 태조 석각본을 복각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보물 제83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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