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특집ㅣ설경 명산 10선<1> 계방산 르포] 겨울왕국 여왕님의 황홀했던 '눈빛'

입력 2020.02.05 11:05

향토사학자 “‘계방’은 일제의 잔재, ‘연방燕方’이라 불러야”…
건누리병원 트레킹팀과 동행… 운두령에서 전망대 왕복 8km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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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직전 쉼터에서 바라본 계방산 남쪽 방면의 운해.
눈이 너무나 그리웠다. 칙칙한 잿빛의 도시를 떠나 맑은 눈빛으로 심신을 정화하고 싶었다. 올 겨울은 도시에서 유난히 눈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날씨가 흐려서 혹시 눈이 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품으면, 야속하게도 미세먼지경보가 울리거나 눈 대신 비가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마침 수술을 마친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돕고자 만든 건누리병원 트레킹팀이 겨울 명산인 계방산을 산행한다고 해 동행했다. 계방산桂芳山(1,577.4m)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다음으로 높은 고산이지만 산행 기점인 운두령雲頭嶺의 해발고도가 1,089m로 높아 접근성이 좋다. 따라서 등산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계방산은 월간<山> 100대 명산에서 경관적 가치 중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산으로 분류 및 선정돼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에 따르면 희귀수목인 철쭉나무·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다고 한다. 희귀생물도 있다. 조류는 멸종위기Ⅱ급인 새흘리기가 관찰되었고, 현지 주민의 청문조사 결과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멸종위기 Ⅱ급 삵, 담비도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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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등산로는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져 매우 뚜렷하다.
아침 8시, 운두령에 섰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한 대가 구름 속에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한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고개가 높아 정상 부위에 늘 구름이 걸쳐 있어 항상 운무雲霧가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운두령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한때는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였지만 현재는 만항재(1,330m), 두문동재(1,268m), 정령치(1,172m), 성삼재(1,102m)에 의해 한참 뒤로 밀렸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도 있다. 버스에서 줄줄이 내려서는 등산객들의 숫자가 수십 명이다. 건누리병원 트레킹팀의 산행에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한국트레킹학교 윤치술 교장의 구호에 따라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무 계단을 오른다.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부드러운 산길을 뽀드득뽀드득 밟아나가다 보니 군데군데 잔설에 묻힌 물푸레나무 군락이 맞이해 준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물푸레란 이름이 붙었다. 나무 밑 조릿대들은 꿋꿋하게 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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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유달리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볕이 잘 드는 남쪽 방면의 길은 흙길이다.
“정상까지 스패츠나 아이젠은 필요 없겠는데요?”
윤 교장이 선두에 서서 길을 살피며 말했다. 워낙 이번 겨울이 가물었던 데다가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길이 다져졌기에 스틱으로 균형만 잘 잡으면 오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볕이 잘 드는 곳은 이미 흙길이기도 했다.
천천히 고도를 높여 나가다 보니 금세 전망대가 설치돼 있는 1,492m봉에 닿는다. 남쪽 방면으로 보여야 할 용평리조트스키장, 가리왕산, 청옥산의 마루금은 운해에 잠겨 봉우리 끝단만 살짝 드러나 있다. 전망데크 위로 올라서니 북쪽으로는 화려한 오대산 주능선이 꿈틀거리며 다가든다. 계방산 정상 능선을 따라 시선을 이으면 오대산 비로봉이 닿는다. 저 멀리 설악산 대청봉은 운해 위로 더 새하얀 눈을 인 채 머리를 내밀고 솟아 있다. 과연 남한 5위봉다운 경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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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계방은 연방, 운두령은 은두의령이 본명”
환상적인 설경 파노라마를 즐기고 있던 차에 문득 계방산에 오기 전 사전 조사했던 것과는 다른 두 가지를 발견한다. 
첫 번째는 바람이다. 계방산 능선의 바람이 매섭기로 유명하다는데 가끔 피부를 간질이는 미풍만 불어올 따름이다. 윤 교장은 “순전히 날씨 운이 좋은 것이며, 또 오전이라 바람이 잔잔한 점도 있다”며 “12시가 넘으면 골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하나는 계수나무다. 등산로에서 만난 안내표지판에는 ‘계방산은 계수나무 계桂자에 꽃부리 방芳을 써 계수나무 향기가 나는 산’이란 뜻이라고 돼 있지만 계수나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평창군청에 문의해 보니 향토사학자 정원대씨를 소개해 준다. 정씨는 용평파출소장직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 <평창향토 문화를 찾아서>, <평창별곡>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어떤 고지도나 옛 문헌을 찾아봐도 계방산이란 이름은 찾아볼 수 없어요.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1872년 군현지도 - 강릉부지도> 등을 보면 전부 제비 연燕자를 쓴 연방산燕方山이라 돼 있습니다. 계방산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들어서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지도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결국 계방이란 이름은 아직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인 셈이죠.”
또한 정씨는 “일제 때 계방산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는 알 수 없다”며 연방산의 지명유래는 “제비 연燕자를 썼으니 능선의 모습이 제비가 나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방향을 나타내는 방方과 함께 쓰였으므로 연燕자가 갖고 있는 여러 뜻 중 ‘편안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계방산에서 계수나무를 찾기 위해 수십 번을 오르내리고, 옛 선비들의 유람기나 한시에서 계수나무 기록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전혀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인근에 있는 계수나무로는 상원사 입구인 관대거리에 현재 한 그루 자라고 있는 걸 확인했고, 옛 한시에서 월정사 북대에 있었던 계수나무 군락을 예찬하는 기록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정씨의 말에 따라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를 확인해 보니 계방산뿐만 아니라 운두령의 명칭도 달랐다. 지도상의 한자는 은두부령銀豆付嶺이다.
“운두령도 옛 지도에는 은두부령, 혹은 은두의령銀豆儀嶺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별빛이 하얗게 쌓인 눈에 반사되는 모양을 볼 수 있는 고개란 뜻이죠. 운두령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이름입니다. 군청에서 세운 안내판과 국토지리정보원의 기록 모두 이를 그대로 옮긴 거죠."
이상하게도 다른 지도와는 다르게 <대동여지도>에선 운두령의 위치가 계방산의 북동쪽인 오대산 아래, 지금의 호령봉 남쪽의 동산리 조개골 부근으로 돼 있다. 정씨는 “회화식 지도에서 장소를 옮기다 흔히 일어나는 오류”라며 “다른 지도에는 계방산 밑에 은두의령의 위치가 정확히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건누리병원 트레킹팀은 정상이 코앞이지만 전망대까지만 산행하기로 정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재활치료를 겸한 등산이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전망대에서 봄이 되어 꽃이 피면 밤에도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아광나무 군락을 배경으로 한 번 선 뒤 하산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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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원장은 매 산행마다 참여해 환자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핀다.
하산길에 눈꽃 보려는 등산객 장사진 이뤄
오를 때도 이른 시간에 비해 등산객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 아니 설산의 일각이었다. 점심시간 직전 하산을 시작하고 등산로에서 만난 건 일렬로 끝없는 장사진을 이룬 등산객의 행렬. 하산을 마치고 운두령 남쪽 도로 길가에 주차된 관광버스의 수를 세어보니 30대가 넘었다. 운두령휴게소에서 등산객을 내려주고 휴식을 취하던 한 버스기사는 “오늘 한 60대 정도는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윤 교장은 하산 전에 “하산 길에는 스틱과 발을 평소보다 약간 더 벌려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교육했지만 도저히 스틱과 발을 벌릴 틈이 없다. 좁은 등산로에서는 하산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게 등산예절이라지만 2,000명을 기다릴 순 없어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 싶으면 몸을 던져 넣고 내려서야 했다. 등산로가 넓어져 추월하는 등산객을 향해 줄을 서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도 가끔 들렸다. 겨울 명산 계방산의 가공할 인기를 온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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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가자가 등산으로 건강해진 몸을 자랑하기 위해 아내를 업어 보였다.
산행 가이드 
계방산 산행은 운두령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주목군락지를 지나 노동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많이 선호된다. 정상까지 488m만 고도를 높이면 되며, 코스가 단순해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산행 시작 시간을 가급적 오전 8시 이전으로 잡아야 한적한 눈꽃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교통
운두령으로 가려면 진부로 와서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 진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번(10:00, 15:00) 운행하는 홍천군 내면행 버스를 타면 운두령에서 하차할 수 있다. 요금 2,800원. 다시 운두령에서 진부로 가는 버스는 13시 30분이 막차다. 진부에서 운두령까지 버스로 약 20분 걸리므로, 3시간 내외에 등산을 끝마쳐야 한다. 

맛집(지역번호 033)  
계방산 아래인 평창군 용평면과 진부면 일대는 송어회가 유명하다. 계방산송어회(332-3048), 용골송어회(332-1115), 운두령횟집(332-1943) 등이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운두령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곤드레밥 전문식당 성주식당(335-2063)은 맛깔스러운 반찬을 내놓는 평창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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