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9> 손정준] 대자연 속 자유등반 즐기는 스포츠클라이밍 박사

입력 2020.02.13 13:55

10년간 울산바위 루트 개보수 작업… 스포츠클라이밍 교육 시스템 확립 노력

손정준(54)은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유등반가로 이름을 날렸다. 1999년 태국 프라낭에서 한국 최초로 5.14급을 올랐으며, 2000년 설악산 적벽을 자유등반으로 올라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벽인 울산바위 비너스길을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모두 힘들다고 이야기하던 한계들을 과감하게 돌파한 선구적인 등반가다.
2016년에는 미국 요세미티의 엘캡 노즈를 11시간 20분 만에 올라 한국인 최단시간 등반기록을 세웠다. 또한 총 33피치에 최고 난이도가 5.12d에 이르는 프리라이더 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데도 성공했다. 미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클라이머만 시도하는 어려운 등반에 도전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는 스포츠클라이밍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선수다. 1990년 마산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와 1991년 설악산에서 열린 암벽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 인공암벽대회 3연패를 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선수 생활을 하며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과 전국대회 20회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손정준은 국내 최초 스포츠클라이밍 박사다. 2013년 경희대학교에서 ‘스포츠클라이밍 동호인들의 체력 비교 분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의 젖산과 피로회복’에 관한 논문을 썼다. 당시 국내에 스포츠클라이밍 관련 연구 사례가 전혀 없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박사 과정을 마치는 데 6년이 걸렸을 정도다. 그런 노력 끝에 등반 실력과 이론을 겸비한 교수가 됐다.
그는 2016년부터 을지대학교 아웃도어스포츠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스포츠클라이밍과 암벽등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국립등산학교와 한국등산학교에서도 강사로 꾸준히 활동했다. 우리나라 스포츠클라이밍 교육 시스템 분야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재 그는 ‘스포츠클라이밍 지도사’ 인증제도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 인공암장이 500개 정도 됩니다. 실내암장만 해도 350개가 넘습니다. 짧은 시간에 양적으로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효율적인 운영과 교육 시스템, 인증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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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적벽 보수작업 중인 손정준씨. 설악산 적벽의 대표적인 3개 루트의 낡고 훼손된 볼트들을 1주일 동안 보수했다.
그는 2018년 국립등산학교 스포츠클라이밍 최고지도자 과정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속초에서 6개월 동안 200시간 강의를 들어야 수료가 가능한 과정인데, 23명 중에 18명이 수료했을 정도다. 지도자들의 열정을 보며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
“국립등산학교의 스포츠클라이밍 최고지도자 과정은 대학원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 전 단계인 대학 과정이 없습니다. 교육도 단계를 거치며 올라와야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학교나 체육단체 같은 공공기관에서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스포츠클라이밍 지도사’ 과정을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대한스포츠클라이밍협회와 손잡고 스포츠클라이밍 지도사 1급 과정을 개설할 계획이다. 암장을 운영하는 실력 있는 클라이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1급 지도사가 되면 2급 지도사를 양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 암장 수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그동안 혼선이 많았던 용어의 통일과 기본 기술의 표준화 등도 지도사 과정 교육을 통해 개선할 예정이다.
그의 화려한 선수시설 성적과 강사 이력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스포츠클라이머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모암母巖이 인수봉이고 히말라야 원정이 꿈이었던 자연등반을 즐기는 알피니스트다. 지도자 생활을 하며 꾸준히 알파인등반을 계속하고 있다. 2016년 요세미티 원정을 통해 거벽등반의 갈증을 해소했고, 2018년에는 유럽 알프스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딸과 함께 올랐던 몽블랑과 마터호른이 너무 좋아, 부인 윤경임씨와 한 번 더 유럽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히말라야 못 간 한을 그렇게 풀고 있다.
“이제는 추워서 높은 산은 못 갈 것 같아요. 무릎과 발목을 두 번씩이나 수술해서 8,000m는 생각도 못 합니다. 3,000~4,000m급 유럽 알프스나 남미 파타고니아의 암봉들이 제 수준에 맞아요. 시간 날 때마다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등반을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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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 정상에 선 손정준.
‘울산바위는 최고의 거벽 자유등반 훈련장’
손정준은 은퇴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이 자유등반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고산등반가와 스포츠클라이머는 많이 배출했지만 자유등반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루트 하나의 난이도에 집착하기보다 대자연의 암벽 전체를 상대하는 등반가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미국의 이기범 선배 덕분에 요세미티의 거벽을 오르며 자유등반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그런 등반을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거벽에 적합한 등반기술을 익히고 강한 체력을 갖추지 않으면 어림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거벽 자유등반 훈련에 적합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설악산 적벽과 울산바위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손정준은 울산바위의 기존루트를 새롭게 정리하고 볼트를 다시 박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암벽 루트는 개척자의 허락 없이는 손댈 수 없는 게 등반 세계의 불문율이다. 국립공원공단도 새로운 암벽 루트 개척은 불허하지만, 안전을 위한 보강 작업을 하려면 개척자에게 먼저 연락한다.
그는 루트를 개척한 산악회와 소통한 뒤 요반길, 현용길, 문리대길 등을 개보수하고 있다. 대부분의 울산바위 개보수 작업은 아들 승민(24)씨와 함께하고 있다. 젊고 체력 좋은 조력자 덕분에 작업은 순조로운 편. 이들은 작업 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볼트 설치를 최소화하고 있다. 설악산 적벽 에코길 상단에 볼트 한 개를 설치할지 말지 4년째 고민 중일 정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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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윤경임과 함께 미국 요세미티의 노즈 루트 등반 중이다.
“제가 운동하는 암장에 울산바위 요반길을 개척한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이야기를 나누며 루트 개보수의 필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분들의 도움을 얻어 요반길의 볼트를 새로 박는 작업만 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살펴보니 너무나 좋은 등반대상지들이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개척되어 정상적으로 등반하기 힘든 곳이 너무 많아 직접 손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울산바위 루트 개보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개보수가 완료된 울산바위 암벽 루트는 30여 개. 서울대 문리대 산악부와 현용산악회, 에코클럽 등 개척자가 알려진 곳은 해당 산악회의 동의와 도움을 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울산바위에는 사방에 흔적만 남아 있는 개척자 미상의 곁가지 루트가 많다. 이런 루트 중 등반성이 있는 곳은 먼저 개보수를 하고 순수한글 이름을 붙여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개척자를 찾으면 원래 루트명으로 바꿀 예정이다.
“루트를 개척한 산악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구성 좋은 볼트를 사용하다 보니,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납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울산바위의 훌륭한 루트를 만든 선배님들은 대부분 연세가 70대 이상입니다. 이분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을 때 서둘러야 합니다.”
그의 주도로 우리나라 개척 등반의 역사가 담긴 울산바위 루트들이 하나 둘 살아나고 있다. 거벽 자유등반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멋진 훈련장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보수 작업을 하면서 암장 아래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일반인이 못 가는 곳이니 모두 클라이머들이 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등반가들은 권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책임도 져야 한다”면서 “정기적인 정화활동을 하거나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의 일이 또 늘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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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준과 함께하는 월드클라이밍투어(스페인 편). 당시 이벌브 암벽화를 수입했던 매드아웃도어 김병철 사장의 후원으로 꿈나무 선수들을 육성했다.
소속
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겸임교수
손정준 스포츠클라이밍연구소 소장
한국등산학교 등산강사
등반 활동
스포츠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및 전국대회 20회 우승
1999년 태국 프라낭 5.14급 루트 한국 최초로 등반
2000년 설악산 적벽 최초 자유등반
2008년 설악산 울산바위 비너스길 최초 자유등반
2016년 요세미티 엘캡 노즈 11시간 20분 한국 최단시간 등반
설악산 울산바위 개척 및 정리 등반
기타
2007~2013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박사(스포츠학전공)
2005~2007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석사(스포츠학전공)
2002년 생활스포츠지도사(등산) 1급
2001년 전문스포츠지도사(산악) 1급
1999년 전문스포츠지도사(산악)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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