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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등반ㅣ치마 그란데] 알프스 6대 북벽! 치마그란데 북벽을 초고속으로 오르다!

글 황태영 사진 현대자동차 산악회
  • 입력 2020.02.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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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초등된 코미치 디마이 루트… 총 17피치 난이도 5.11b, 6시간 52분 만에 완등

트레치메 전경. 가장 왼쪽이 치마 피콜라(2,792m), 가운데가 치마 그란데(2,998m), 오른쪽이 치마 오베스트(2,973m)다.
트레치메 전경. 가장 왼쪽이 치마 피콜라(2,792m), 가운데가 치마 그란데(2,998m), 오른쪽이 치마 오베스트(2,973m)다.

돌로미테를 대표하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의 3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치마그란데Cima Grande(2,998m). 이곳의 북벽은 유럽 알프스 6대 북벽 중 하나로,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 디마이Emilio Comici Dimai가 2박3일에 걸쳐 초등한 ‘코미치 디아미’ 루트가 나 있다. 난이도 5.11b에 등반높이 550m, 오버행의 길이만 180m에 이르는 고난도 루트다. 코미치 디마이 루트는 직등주의의 표본으로 꼽힐 만큼 역사적 의미와 등반성 모두 높게 평가된다.

국내에서 해당 루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 결과 등반인원이 3명 이상이 되면 루트 중간에서 비박한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기록 중에서 제법 등반 경험이 있는 우수한 클라이머 2명이 짝을 이뤄 등반한 경우에는 평균 8시간이 걸렸고, 확인한 국내 등반 기록 중에서도 가장 빨리 등반한 기록이 8시간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등반에서 단 6시간 52분 만에 17피치를 완등하고, 7시간 38분 만에 치마그란데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우리가 국내서 제일 빠른 속도를 기록한 것이 아닐까 감히 예상해 본다. 전문 선수도 아닌 일반 회사 산악회의 일개 회원들이 만들어낸 성취이기에 더욱 자부심이 생긴다.

3피치를 선등하고 있는 필자.
3피치를 선등하고 있는 필자.

속도 고려해 2인1조로 등반 결행

치마그란데는 회사 산악회 동료 4명과 함께 나선 이번 돌로미테 원정에서 가장 기대감이 컸던 봉우리였기에 마지막으로 미뤄뒀다가 등반하게 됐다. 이미 돌로미테 곳곳의 바위 맛을 한껏 봐서 몸이 잘 풀린 상태였던 우리들은 지난해 8월 인근 라바레도산장에 모여 등반계획을 최종 점검했다. 원래는 70m 로프 한 동을 사용해 3인 1조로 등반할 계획이었지만, 총 17피치에 40m가 넘는 피치도 많은데 로프 한 동으로 3명이 등반할 경우 등반 시스템 상 비효율적이고 등반시간도 길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구화집 원정대장님이 60m 로프 한 동을 이용해 2인 1조만 등반하자는 의견을 냈고, 필자와 김수연 등반대장이 등반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잠들기 전 최종 장비 점검을 시행했다. 네파 캠 4~9호, 토템캠 1세트, 퀵드로 10개, 슬링 5개, 안전벨트, 암벽화, 하강기, 헬멧, 60m 로프, 기어랙, 초크백, 재밍장갑, 빌레이장갑, 클라이밍 테이프와 간식까지. 완벽하게 정리된 장비를 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 4시. 산장 식당에서 어제 저녁에 조식 대용으로 받아둔 딱딱한 햄버거를 몇 입 베어 물고 장비를 착용하고 산장을 나섰다. 구 대장님과 남효연 대원은 노말 루트인 치마그란데 남벽을 등반할 계획이라 아직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지만 배웅을 위해 함께 나와 주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사위가 캄캄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안심이었다. 찬 새벽 공기에 움츠러드는 몸을 녹이려 부러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로카텔리산장으로 가는 101번 트레일을 따라 어둠을 가로 지른다. 랜턴 불빛이 얼핏 왼편에 우뚝 솟아 있는 치마피콜라 남동벽을 비춘다.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남동벽이 마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경사진 언덕길을 20여 분 올라 포르첼라 라바레도에 도착하니 갑자기 칼바람이 몰아친다. 이곳은 치마그란데 북벽과 로카텔리산장으로 가는 길 등 여러 갈림길이 나누어지는 포인트다.

정상부에서 하강 포인트를 찾던 중 치마그란데의 전형적인 암질이 보였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암벽이 대개 화강암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석회암, 백운암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띠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홀드는 매우 날카롭고 거칠어 마찰력은 좋지만, 쉽게 쪼개지고 부스러지는 특성도 있어 항상 홀드를 잡거나 딛을 때 꼼꼼히 확인해야 하며, 낙석도 주의해야 한다.
정상부에서 하강 포인트를 찾던 중 치마그란데의 전형적인 암질이 보였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암벽이 대개 화강암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석회암, 백운암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띠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홀드는 매우 날카롭고 거칠어 마찰력은 좋지만, 쉽게 쪼개지고 부스러지는 특성도 있어 항상 홀드를 잡거나 딛을 때 꼼꼼히 확인해야 하며, 낙석도 주의해야 한다.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배웅 나온 대원들과 아직 보이지 않지만 어둠 너머에 있을 북벽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무사 등정을 위해 구호를 외친 뒤 헤어졌다. 김 등반대장과 함께 북벽을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어프로치 트레일은 잘게 부스러진 돌멩이들이 깔려 있어 길 잃을 염려 없이 선명하다. 다만 가끔 비탈진 곳을 밟으면 돌멩이들이 미끄러져 내려 리듬이 깨지곤 했다. 그렇게 치마피콜라를 지나 치마그란데 북벽 코미치 디마이 루트 초입에 다가섰다.

새벽 5시 28분,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첫 피치는 오른쪽 크랙과 측면의 검은 바위의 넓은 크랙을 따라 쉽게 오를 수 있었다. 2피치 역시 어렵지 않았다. 좌측 크랙을 따라 오르다보니 확보할 수 있는 널따란 테라스가 나왔다. 3피치부터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됐다. 좌측으로 매달린 슬링을 이용해 트래버스한 후 수직으로 솟은 우측 크랙으로 올라서면 됐다. 6a+급 난이도라 출발 전에는 다소 긴장했지만 등반 선이 뚜렷하게 이어져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4~5피치는 6a급 난이도로 3피치보다 난이도는 다소 낮았지만, 오버행으로 인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슬링을 보니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 등반은 오른쪽 크랙으로 이어지고 작은 오버행을 자그마한 홀드를 딛고 넘어가 다시 왼쪽 크랙으로 올라서면 피치가 종료된다. 6피치는 지금껏 지나온 피치보다 한결 수월해 크랙을 따라 오르다보니 제법 편한 테라스에 안착할 수 있었다. 7피치는 왼쪽 크랙으로 이어지는 6a+급 난이도로 피치를 끝내고 나니 ‘힘들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어려웠다.

5피치를 등반 중인 김 등반대장.
5피치를 등반 중인 김 등반대장.

8피치는 크랙을 따라 직상하는 구간이다. 오버행의 경사가 심해지면서 점점 힘이 부치고 막판에는 팔에 펌핑이 올 지경이었다.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쥐어짜낸 끝에 피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8피치까지 마치고 난 뒤 한계가 온 팔을 주무르며 등반을 돌아봤다. 3피치부터 루트 최고 난이도가 계속 이어졌는데 완력등반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강행하다 보니 경련이 온 것 같았다. 3~8피치는 오버행 형태의 6급 난이도로 시작돼 6피치는 5급으로 다소 쉬워졌다가 다시 7~8피치는 6급으로 난이도가 높아져 지구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나름 이번 원정을 위해 트레이닝을 한다곤 했으나 180m나 되는 거벽 오버행을 등반하기는 역시 쉽지 않았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위에 붙었다. 9~10피치는 전반적으로 난이도도 낮아지고 경사도 완만해져 수월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10피치를 마치고 확보지점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돌로미테 파노라마가 환상적이다. 그저 그림 같다. 저 멀리 트레일을 걷고 있는 트레커들과 작은 장난감 집 같은 로카텔리산장이 마치 다른 세계,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돌로미테 일원의 풍경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돌로미테 일원의 풍경이 장관이다.

12피치부터 바위에 이끼 있어 긴장

11피치는 등반길이가 55m에 이르러서 종료지점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중간에 하켄 두 개와 퀵드로를 걸고 올라도 피치 종료지점이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캠 3개를 설치하고 확보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1m도 안 되는 바로 옆에 하켄 3개가 박혀 있는 확보지점이 보였다. 클래식 루트라 하켄이 드문드문 설치돼 있어 루트를 찾기 어려웠다.

12피치는 코너 크랙 좌측으로 올라선 뒤 거무스름한 침니를 따라 이어진다. 13피치도 연속해서 침니로 등반이 이뤄진다. 아래서 볼 땐 몰랐는데 바위에 붙어 보니 검게 보였던 부분이 바위가 아니라 이끼다. 이끼가 있다는 말은 습하다는 것. 과연 14피치에 올라보니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고 마찬가지로 이끼가 잔뜩 끼여 있다. 바위가 그렇게 미끄럽진 않아 등반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혹여 미끄러질까 많이 긴장이 됐다.

17피치 종료지점에서 돌로미테
일원을 배경으로 필자(왼쪽)와 김 등반대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7피치 종료지점에서 돌로미테 일원을 배경으로 필자(왼쪽)와 김 등반대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5피치 마지막 구간에는 낡은 로프가 한 줄 걸려 있어 이를 따라 갔다가 루트 종료지점을 지나쳐 올라버리는 실수도 범했다. 결국 후등이 종료지점까지 올라온 후 선등자가 하강 및 트래버스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6피치도 크랙을 따라 올라서고, 17피치를 오르면서 등반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12시 20분. 피치 끝에서 기념촬영한 후 신발을 리지화로 갈아 신고 우측 밴드를 통해 남쪽으로 우회해 드디어 십자가가 서 있는 치마그란데 정상에 올라섰다. 시간은 오후 1시 8분이다.

새벽 5시28분 첫 피치를 시작해 마지막 17피치 완료 시간이 12시20분, 실질적인 등반은 6시간52분 만에 끝내어 한 피치당 소요시간이 채 25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등반을 빨리 끝냈다.

정상에 잠시 머무르다가 하강을 서둘렀다. 하강은 남벽 노말 루트 방면에 있는 하강포인트에서 했다. 그런데 워낙 남벽이 광범위해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남벽 노말 루트를 등반한 후 하강하는 현지인들을 만나 이들의 뒤를 바짝 따라서 하강했다. 이제 막 하강을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남벽을 등반하기로 했던 구 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 바위로 올라서니 구 대장님과 남 대원이 등반 중이다. 정상 등정 후 하산 중이라고 하니 너무 빨리 해냈다며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다. 이들의 안전등반을 격려하고 하강을 이어갔다. 몇 차례 하강을 거듭해 마지막 하강을 마치니 오후 3시 30분. 기록 경신을 염두에 두고 한 등반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보상이 기록으로 주어진 것 같아 뿌듯하고 뜻깊은 등반이었다.

치마그란데 정상에는 십자가가
서 있다. 김 등반대장(왼쪽)과 필자.
치마그란데 정상에는 십자가가 서 있다. 김 등반대장(왼쪽)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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