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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시즌 특집ㅣ시산제<1>트렌드 변화] 始山祭, 한 해 시작 알리는 산악단체의 작은 축제!

글 김기환 차장 사진 C영상미디어
  • 입력 2020.03.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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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산신제와 같이 지낸 듯… 지금 형식은 서울연맹 雪祭가 최초
유행처럼 모든 산악회 행사로 번져… 친목도모 간소화 추세로 변해

성동공고 총동문회 산악회의 시산제 모습.
성동공고 총동문회 산악회의 시산제 모습.

봄을 앞두고 많은 산악단체가 시산제始山祭를 지낸다. 본격적인 산행과 등반에 앞서 회원들의 안전과 행복을 빌기 위해서다. 산을 무대로 활동하는 산악인들이 산에 제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 산악회의 시산제는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1960년대 이전부터 활동했던 원로 산악인들은 옛날에는 시산제 같은 행사는 없었다고 말한다.

산에서 올리는 제가 하나의 행사 형태로 구현된 것은 1966년 시작된 설악제가 시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행사는 설악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설악산악회, 예총 속초지부, 속초시 공보실의 공동 주관으로 치렀다. 속초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산악인 이기섭 박사가 설악산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행사로 등반대회와 접목한 향토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 행사의 중심에 산신제山神祭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형식의 산악단체가 주최하는 시산제는 1971년 서울시산악연맹이 개최한 ‘설제雪祭’가 최초였다. 설제는 산악인을 대표하는 연맹으로서 산악인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연맹 산하 단체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행사가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며 자리를 잡았고 반응 역시 좋았다. 이후 유행처럼 각급 산악회로 퍼지며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문화로 자리를 잡게 됐다.

우리나라 산악단체의 중요한 연례행사인 시산제의 기원은 토속신앙의 한 형태인 산신제에서 찾을 수 있다. 예로부터 산자락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산에 신령이 깃들었다고 여기고 그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마을 뒷산에 산신당이나 산제당을 짓고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정월 대보름날 사이에 산신제를 지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제례를 지내는 것은 우리의 고유 풍습이다. 뒤뜰에서 지내던 토신제土神祭, 묘를 쓸 때 명당고사明堂告祀,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뱃고사 등의 다양한 제를 지냈다. 이러한 여러 제례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뒤섞이며 산악인들 사이에 시산제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의 제례 방식은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어떤 방식이 원형이고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산제도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산악회의 성격에 따라 절차와 예법에 차이가 난다. 하지만 대부분 유교적 제례 방식에 각종 고사의 형식 어우러진 절차를 따르고 있다. 보통 시산제는 강신降神, 참신參神,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음복飮福 순으로 진행되는 기본적인 제례는 유지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소와 시간의 제약이 많아지며 형식이 좀더 간소해지는 추세다. 국민의례와 순국선열과 먼저 간 산악인들에 대한 묵념 등 통념상 빠지기 어려운 기본적인 행사의 틀은 유지되고 있다.

음식 많아도 처리 곤란, 주로 산 중턱이나 아래서 지내

시산제 시기는 산악회마다 차이가 크다. 신년 1월 1일에 모여서 제를 지내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전통 산신제와 같이 설날과 정월대보름 사이 주말을 골라 시산제를 올리는 팀도 있다. 전문등반 산악회는 암벽등반 시즌 시작에 맞춰 날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대부분의 산악회가 3월 중에는 시산제를 마치는 추세다. 산행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 행사이기 때문이다.

시산제 장소는 산악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의 명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를 올리기 적합한 산정에 널찍한 공터가 있는 이름난 산이면 합격이다. 하지만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 공원법으로 관리되는 지역의 산은 시산제를 지내기 어려운 곳이 많다. 취사, 야영, 야간 산행 등을 할 수 없고 음주까지 금지되며 규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의 명산 정상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산악단체는 제례를 간소화하고 축제 형식으로 진행하는 추세다. 반면, 정식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근사한 시산제를 지내려는 규모가 큰 단체는 행사에 적합한 한적하고 넓은 공간이 있는 산을 찾아 간다. 산정이 아닌 산 아래 공터를 시산제 장소로 선택하는 팀들도 많다. 산에서의 활동에 규제가 많아지며 시산제의 형식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등반을 위주로 하는 산악회는 보통 자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이른바 모암母巖에서 시산제를 올린다. 예전에는 바위 꼭대기에서 야영을 하며 밤에 시산제를 올리는 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요 암장이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경우 그런 행위는 불법이 됐다. 이제 대부분 낮에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시산제를 올리고 가벼운 산행으로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산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다. 제수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떡과 돼지머리와 술, 북어, 감, 대추, 밤, 배, 사과 등이다. 제상에 올리는 음식은 크게 제한이 없지만 돼지머리와 막걸리는 빠질 수 없는 품목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산 위에서 시산제를 지낼 경우 대부분 기본적인 음식만 준비한다. 돼지머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뒤처리도 어려워 머리고기 편육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케이크나 종이로 만든 고사용 돼지머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산악회의 시산제는 형식에 구애받기보다 구성원의 편의와 즐거움에 초점을 맞춰 치러지는 추세다. 특히 친목도모가 목적인 산악회의 경우 가벼운 신년산행으로 시산제를 대신하는 곳도 많아졌다. 산행 뒤 음식점에 모여 신년 만남의 자리를 갖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문화로 꼽던 시산제도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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