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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25>] 훅 쿠오퀘 트란시비트!(이 또한 지나가리니!)

글 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입력 2020.03.23 17:07
  • 수정 2020.03.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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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악보에 -현鉉을 끊고, 현을 갈고, 다시 연주할 것- 이라고 적혀 있는 줄 알았어. 앳된 연주자가 반주도 없이 휑한 무대에서 첼로를 부둥켜안고 언덕 위 한 그루 소나무처럼 고고하게 연주를 이어가는데. 아뿔싸, 줄이 뚝 끊어진 거야.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 객석은 술렁이지 않고 그믐밤의 숲처럼 무섭게 침묵했어. 잠시 후 무거운 정적을 깨고 그는 차분하게 ‘아! 줄이 끊어졌어요’라고 말하며 무대 뒤를 향해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였고, 매니저가 전해 준 3번 줄을 여유 있게 갈고 정확히 곡이 끊어진 그 부분에서 다시 시작했어. 연주를 마치고 커튼콜에 앙코르까지 받으며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지.”

2003년 대구 모 공연장에서 있었던 19세 첼리스트 장한나의 공연을 회상하며, 그의 위기대처능력과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코로나19에서 데자뷰deja vu를 느낀다는 당시 공연을 기획한 K선배의 이야기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사람들은 일상의 끊어진 줄을 잇는 탈출구의 하나로 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등산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난 특이한 사회현상이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땀 흘리는 과정에서 용기가 생겨나고 버스 토큰 하나로 해결되는 경제성이 크게 작용하며, 도전하는 과정에서 근심과 울분을 삭히며 극복의 성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을 오르면서 응어리를 토하고, 삶의 곤궁함에서 벗어나고자 내쫓기듯 정상에 올라 소리 지르고, 술의 힘을 빌려 암담한 처지를 잠시나마 잊고자 했음이 산을 찾은 진짜 이유였을까? 아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커다란 힘이 산으로 이끌고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자연의 품안에서 투정 부리며 위로와 평안, 무한의 사랑을 얻었고, 생채기 난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강한 힘과 희망의 파랑새도 만나게 되었음을.

우리 몸과 마음은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면역력이 생기고 육체와 정신 모두 강건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모든 상황이 온전한 내 몫의 연주’라고 생각한 장한나의 강한 멘탈mental과 의연함을 배우고, 우리가 자연의 도움으로 IMF 외환위기를 헤쳐 나왔듯이 코로나19 역시 삶의 한 부분으로 품고 넘긴다면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어려움 속에서도 산행인구가 IMF 시절에 버금가게 늘어난 것은 바람직하며, 예전과 달라진 점은 도전의 거친 발걸음이 아닌 묵언수행默言修行 같은 사색과 명상의 차분해진 분위기다. 이는 산을 통해 깊어진 생각으로 자연에 기대어 삶을 건강하게 지켜나가고 있음의 증거로서 매우 고무적이다. 더하여 안타까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하나 있다. 히말라야 언덕에서 희망으로 나부끼는 행운의 오색 깃발 ‘룽다’에 간절함으로 쓰고픈 지혜로운 솔로몬의 시구詩句 하나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Hoc quoque transibit.’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교장/건누리병원고문/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 사)대한산악연맹 찾아가는 트레킹스쿨 교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 교장/월간 산 대한민국 등산학교 명강사 1호 선정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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